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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48화 (248/269)

248화 투자 좀 받아 오자고. (2)

브랜포드 후작은 친왕파에 득이 되니 제안을 수락하긴 하겠지만, 지셀의 영향력은 조금이라도 줄일 생각이었다.

내전에서 승리한 뒤, 새로운 공작가가 나타나는 건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있으니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하지만……. 지셀이란 놈에 한해서는 섣불리 단언할 수가 없었다.

‘군사력이 너무 빠르게 늘고 있어. 지금은 내버려 두는 게 우리한테 좋지만……. 내전 이후가 문제다. 계속 저놈한테 자금이 흘러가게 두면 안 돼.’

왕실과 자신이 밀어주면 도로 사업은 분명 성공할 것이다. 그 수익을 최대한 뺏어와 군사력 증강에 써야 한다.

그래야 내전 이후에도 지셀이 함부로 설치지 못하게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지분이면 괜찮으시겠습니까?”

로웰의 물음에 브랜포드 후작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답했다.

“펜리스 백작이 제시한 20%에서 두 배인 40%로 늘리겠다. 수락하지 않는다면 없던 일로 하겠다고 전해라. 연락을 취해 보고 결정이 나면 다시 찾아오도록.”

“아뇨, 연락할 필요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

흔쾌한 대답에 브랜포드 후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 배로 올렸는데 영주도 아니고 일개 행정관이 제안을 수락하다니?

“권한을 다 받아 온 것이냐? 네가 이 자리에서 판단해도 되냐는 말이다.”

“네, 제가 다 권한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로웰은 지셀에게 이미 언질을 받은 상태였다. 분명 지분을 올릴 테니 50%만 넘지 않으면 무조건 수락하라고.

지셀에게 중요한 건 사실 수익이 아니었다. 수익이 들어오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래 봐야 자금을 채우기 좀 쉬워지는,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 중요한 건 그 도로의 주인이 나라는 명분이다.

처음 한 번만 공표를 받으면 된다. 나중에 반항하는 놈들은 힘으로 다 밀어 버리면 되니까.

아직은 브랜포드 후작과 친왕파의 힘이 지셀보다는 훨씬 위였다. 그렇기에 브랜포드 후작은 비슷한 수익만 가져가도 지셀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셀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힘만 갖춘다면 별다른 명분이 없어도 다 쓸어 버릴 수 있다.

단지 그 시간을 더 줄이기 위해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이었다. 공작가를 상대하려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힘을 갖춰야 하니까.

그런 지셀의 생각을 모르는 브랜포드 후작은 로웰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하고 대답을 준비해 둔 것 같지 않은가. 그놈이 이렇게 쉽게 수익을 양보한다고? 왜?’

그간 후작이 보아 온 지셀은 돈에 미친 놈이었다. 정확히는 돈이 아니라 자신의 이득이었다.

그래서 포리스코의 이름을 걸고 기부했을 때도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수상했다. 무척 수상한데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으니 더 찝찝했다.

‘분명 우리에게도 득이 되는 사업이다. 돈 많은 그놈이 주도하면 더 좋고.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불쾌하지?’

무슨 의도를 품었는지도 수상하지만, 꼭 자신의 생각이 읽힌 것만 같아서 더 기분이 안 좋았다.

그놈과 엮이면 꼭 이렇게 미묘하고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항상 그놈이 만들어 놓은 판에 끌려다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포드 후작은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현재 상황과 이득을 계산해서 현실적으로 최대한 나은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으니 그대로 가면 된다.

“좋다. 왕실의 이름으로 징수권을 주고 각 영주에게도 전달할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진행하라고 전해라.”

“감사합니다. 존귀한 후작님의 은혜로 어려운 일을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후작님이 우리의 가장 큰 후원자라는 걸 잊지 않고 항상 후작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브랜포드 후작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혀가 제법 매끄러운 놈이로구나. 나머지 투자 건에 관해서는 로잘린과 상의하도록.”

“그리하겠습니다.”

브랜포드 후작 앞에서 물러난 로웰은 바로 로잘린을 찾아갔다.

그녀는 사업 계획을 세세히 검토하고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가에서 도와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사업이로군요. 좋아요, 제가 메리엘 님과 투자 모임의 귀족들을 설득할게요. 지분 비율은 아버지와 얘기가 다 끝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펜리스 백작님께서 다른 얘기는 없으셨나요? 돈 얘기 말고요.”

“없었습니다.”

“…….”

로잘린은 또 얼굴에 열이 올라오는 걸 느끼고 숨을 깊이 내쉬었다. 병을 앓은 뒤로는 화가 나면 자꾸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새끼는 진짜 나랑 돈 얘기 말고는 할 게 없구나!’

뭔가 씩씩거리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로웰은 살짝 긴장해서 엉덩이를 뒤로 빼고 앉았다.

‘왜 저러지? 뭐가 마음에 안 든 거지?’

로잘린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투자금은 확보되는 대로 화장품 대금과 함께 보낼게요. 수도와 인근 영지들은 저희 쪽에서 인부를 모집해서 작업을 시작하지요.”

무려 40%의 수익을 먹는 사업이다. 거기에 로잘린 개인이 하는 게 아닌, 후작가가 직접 손을 대는 사업이니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지셀이 돈 얘기만 하는 게 무척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녀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로잘린의 시원한 결정에 로웰은 싱긋 웃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아가씨의 빠른 결정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바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로웰이 물러간 뒤, 로잘린은 대대적으로 귀족들을 모집해 투자를 받아 냈다.

“오오! 후작가가 하는 사업이라면 믿을만하지요.”

“왕실과 후작 각하께서 밀어주신다면 이건 무조건 성공하는 겁니다.”

“무조건 투자해야 합니다! 안 하면 바보죠!”

몰려드는 귀족들의 투자 제안에 오히려 사람을 가려 받아야 할 정도였다.

사업의 주체는 지셀이지만 아무도 그가 주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브랜포드 후작이 끼어들었으면 그건 후작가의 것이다.

그 정도로 브랜포드 후작의 명성과 그가 쌓아 온 신뢰는 대단했다. 덕분에 로잘린은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모아 올 수 있었다.

브랜포드 후작가가 끼어든 사업이니, 작업 중간에 훼방을 놓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각 영지의 영주들도 떨떠름해했지만 거부는 하지 못했다.

“에잉, 그 애송이 새끼가 별짓을 다 하는구나.”

“브랜포드 후작을 믿고 나대는 꼴이라니. 봐주기가 참 힘드네.”

“버릇은 나중에 고쳐 줘야겠어. 일단은 중요한 사업이라 하니 어쩔 수 없지.”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은 인부들을 지원해 주었다. 어차피 인부들 고용비는 펜리스에서 대기로 했으니 돈이 많이 나갈 일은 없었다.

인부들이 번 돈에서 세금을 좀 떼 가면 오히려 이득이기도 했다.

펜리스 영지에서 옆 영지로 이어지는 도로 건설이 시작되었고, 수도에서는 로잘린의 지휘 아래 도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각 영지에서는 펜리스에서 파견된 관리들과 기술자들이 인부들을 지휘 감독하며 도로를 건설했다.

도로를 동시에 건설하느라 어마어마한 인부들이 투입됐다. 돈과 사람을 갈아 넣으니 당연히 작업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도로 건설 작업에 참여한 인부들은 대부분 말없이 일에만 집중했지만, 유독 세 사람만은 소리 죽여 떠들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조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온종일 일만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 영지는 처음 봤습니다.”

“데스몬드 백작님도 이렇게까지 일을 시키시진 않습니다. 이러다가 탈출할 체력도 안 남을 거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무척 평범하게 생긴 중년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 일이 안 끝나는 걸까? 왜 우리는 계속 일만 하고 있는 걸까?”

이들은 데스몬드 백작이 파견한 첩자들이었다.

그동안은 영지 봉쇄 때문에 첩자들이 펜리스 영지에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왕국 곳곳에서 이주민을 받으면서, 이들도 그사이에 섞여 성공적으로 잠입한 것이었다.

이주민 중에는 신분증도 없는 빈민들이 많이 섞여 있었던 탓에 지셀도 첩자들을 모두 걸러내지는 못했다.

첩자들의 조장인 남자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일이 좀 많지만……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 열심히 해야지.”

“그런데…… 아직 화장품이나 부화기 기술도 못 빼돌리지 않았습니까? 아니, 빼돌릴 수 있긴 할까요?”

“그건…… 조금 뒤로 미루자. 그 기술들에 접근하거나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첩자들은 펜리스 영지에서 일하며 꽤 놀라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식량이 줄지 않는다. 소문을 들어 보니 무슨 괴물 밀알이 있다고 한다.

닭을 마구 뽑아내는 대형 부화기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화장품은 유명한 제품이라 들어오기 전부터 조사 대상 목록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생산 기술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괴물 밀알은 옛 펜리스 지역에서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것까지는 알아냈지만, 역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더 조사해 보고 싶어도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나중에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겠지만, 얻은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게 더 문제다. 한시도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구나.”

“지금이라도 힘들어서 일 못 하겠다고 하고 그만두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면 조사할 시간은 좀 날 텐데요.”

“어허, 우리 같이 연고도 없는 사람은 그게 더 위험해. 차라리 공사 일을 하는 게 더 나아. 우리하고 같이 들어왔다가 재수 없게 병사로 끌려간 놈들 못 봤어? 거기 가면 죽는 거야. 우리 영지 군대랑 싸워야 한다고. 펜리스 백작이 아무리 대단해도 절대 데스몬드는 못 이겨.”

지셀은 영지 봉쇄를 풀고 새로 들어오는 이주민들에게는 특별한 정책을 취했다.

연고도 없이 한량처럼 노는 자들과 정체가 불분명한 자들 중, 뭔가 사고를 칠 거 같거나 사고를 친 놈들은 죄다 잡아서 노역 부대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영지에서 죄를 지은 죄수들도 모두 노역 부대로 끌려갔다. ‘노동 돌격대’라는 이상한 이름의 부대로 말이다.

그리고 그 부대를 관리하는 자는 ‘미친개’라고 소문난 카오르와 전 광견단원이었던 기사들이었다.

첩자들은 노역 부대에 끌려간 자들을 떠올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절대 그곳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으으……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여기 너무 힘든데요…….”

첩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영지민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롭게 많은 정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준비 없이도 이주민들 덕분에 의심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런데 알고 보니 펜리스 영지 안에 들어온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화장품이며 대형 부화기며, 대단한 기술이 있다는 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접근할 수 있어야 내용을 알아보기라도 할 거 아닌가?

첩자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일단은 공사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나도 지금 죽겠다고. 온몸이 다 쑤셔.”

“저도 잠자기 바쁩니다. 정보는 무슨 정보입니까? 그것도 자유 시간이 있어야 얻지.”

“그냥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안 될까요? 도로 건설에 끌려온 뒤에는 상단과 접촉도 못 하고 있습니다.”

첩자들은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공사 인부 지원을 했더니 선택권도 없이 도로 작업에 끌려와 버렸다. 다들 이런 중노동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요령이 없어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일단 의심을 받지 않는 게 첫 번째니 일은 무척이나 열심히 하고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게 이런 걸 일컫는 말이었다.

“온종일 자재만 날랐더니 팔을 들기도 힘듭니다.”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왜 우리만 이렇게 아프고 힘들죠?”

요령 없이 무작정 열심히만 할 뿐이니 힘든 게 당연했다.

조원들이 투덜거리자 조장이 살짝 주변을 살피다 소리 죽여 속삭였다.

“우리 그냥 첩자 짓 때려치우고 여기서 살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여기서 돈 많이 벌어서 집도 샀잖아…….”

“그게 무슨 상관…….”

“생각을 좀 해 봐. 너희들 데스몬드 영지에 집 있어?”

조장의 물음에 조원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부모님 집에서 살다 왔는데요. 우리 영지는 집값이 비싸잖아요.”

“있긴 한데……. 그냥 작은 마을에 대충 지은 통나무집이죠.”

조장은 이때다 싶어 눈을 빛냈다.

“그래, 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사는 건 어때? 집도 있고 돈도 많이 벌잖아? 첩자 생활보다 훨씬 낫지 않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서 살자니요? 그럼 가족들은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우리가 배신한 걸 알면 절대 가족들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아무런 조치도 없이 첩자를 보내는 영지는 없다. 당연히 배신하지 않도록 족쇄를 채워 둔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가족들을 인질로 삼는 것이다.

조원의 목소리가 커지자 조장이 다급하게 손을 휘저었다.

“쉿, 쉿! 가족들이야 거기서 잘 살면 되지. 우리는 걸려서 죽은 척하면 되잖아. 그러면 가족들도 안 건드릴 거라고. 가족들 쪽은 그냥 우리가 배신할 때를 대비해서 감시만 하고 있는 거니까.”

“이 미친 배신자가…….”

조원은 말을 이으려다가 멈췄다. 가까운 곳에 소란이 일어난 걸 보니 높은 사람이 온 모양이었다.

조장은 슬쩍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영주가 왔나 보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일단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사리자고.”

곧 건설 현장에 지셀이 나타났다. 영주가 하루도 빠짐없이 여러 공사 현장을 점검하고 다니는 건 유명했다.

지셀은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확인하다가 한쪽에 몸을 구기고 있던 세 사람을 발견했다.

“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지셀의 중얼거림에 조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아직 큰 죄를 지은 건 없지만 큰 죄를 지으러 왔기 때문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고민하던 지셀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전에 거주지 작업을 할 때 본 친구들이구나. 그런데 그때도 이렇게 세 명이 붙어 다녔던 거 같은데?”

그 말에 첩자들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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