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투자 좀 받아 오자고. (1)
두두두두!
병사는 쉬지 않고 말을 몰았다.
북방의 너른 대지를 달리던 말이다. 쭉 뻗은 도로를 달리니 다른 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거리가 너무 멀면 각 거점에 있는 다른 말로 갈아타면 된다. 그러니 지구력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직은 영지 내에서만 운영할 수 있지만, 앞으로 도로망이 넓어지고 거점이 늘어날수록 배송 가능한 곳도 더 많아질 것이다.
아침에 출발한 배송병은 그날 저녁 즈음 마수의 숲 경비대에 도착했다.
“이게…… 우리 엄마가 오늘 아침에 보낸 거라고요?”
“네, 저희 펜리스 화살 배송은 최대한 빠른 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리카르도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배송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가까운 영지라 해도 이렇게 빨리 온다는 게 말이 되나?’
보통 이런 서신을 보내려면 상단이나 용병들에게 의뢰해야 한다.
그러니 가격도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값을 치르지 않는 한,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움직일 리가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요새 대공자님이 무슨 배송 사업을 할 거라고 난리를 치긴 했지.’
페르디움에도 도로가 깔리고 전보소와 여러 거점 시설이 지어졌다. 배송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걸 리카르도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하긴, 나한테 굳이 이런 사기를 칠 일이 없지.’
누가 장난을 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눈앞에 있는 배송병은 온몸이 먼지투성이에 땀까지 잔뜩 흘리고 있었다.
장난으로 보기엔 너무 열성적인 모습이었다.
리카르도는 편지를 펼쳐 봤다. 엄마는 글을 모르니 대필을 썼겠지만, 내용을 보면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너는 도대체 언제 결혼할 거니? 여자 좀 그만 만나고 제발 빨리 결혼 좀 해라. 엄마 친구 아들은 벌써 결혼도 하고 손주도 봤는데…….]
‘아, 엄마 맞는 거 같은데?’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들었던 잔소리와 내용이 똑같았다. 진심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사람들이 쓰지도 않는 ‘화살 배송’까지 써서 편지를 보냈을까?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여기에 잘 받았다는 서명을…….”
“아니, 잠깐만요.”
리카르도는 이게 진실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는 급하게 편지를 하나 써서 배송병에게 건넸다.
“지금 공짜 맞죠? 이거 우리 엄마한테 보내 줄 수 있죠?”
“네, 지금은 무료 기간입니다. 그러면 어머님께 이걸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전보소를 이용해서 보내도 되지만 리카르도는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편지에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 엄마만이 알고 있는 내용에 관해 적어 달라고 썼다.
정말로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건지, 화살 배송이 진짜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으면 주변에서 글을 아는 사람에게 읽어 달라고 하거나 다시 전보소를 이용할 것이다.
다음 날 저녁 리카르도는 엄마의 편지를 받았다. 리카르도의 편지는 아침에 전달되었고, 엄마가 바로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와, 이거 진짜네? 속도 미쳤네?”
편지에는 정말로 엄마만 아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전혀 문제가 없었다.
화살 배송의 위대함을 맛본 리카르도는 신이 나서 마수의 숲 경비대원들에게 떠들었다. 친목회의 여자들에게도 자랑하는 걸 잊지 않았다.
펜리스에 있는 리카르도의 부모님도 신기하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은 곧 영지 내의 가까운 친척들에게 편지를 보내 보고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와! 이거 진짜 화살만큼 빠르잖아? 페르디움에 있는 친척이랑 벌써 몇 번이나 편지도 주고받고 선물도 주고받았다니까?”
“도로가 잘 깔려서 그런가? 하루 이틀이면 금방 도착하더라고!”
“물건 주문해 봤어? 진짜 집 앞까지 가져다주더라!”
소문이 퍼질수록 전보소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존 직원들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어 직원을 더 뽑고, 사람이 많은 도시와 마을에는 아예 전보소를 몇 개나 더 지었다.
특히 가장 인기 있던 것은 물품 배송이었다. 시장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 대량으로 구해야 하는 물건을 주문할 때는 전보소를 이용하곤 했다.
당장 구할 수 있는 물품은 많지 않았지만, 전보소 내에서 배송이 가능한 물품과 수량을 보고 신청하면 집까지 가져다주는 서비스였다.
사람들은 그 서비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제 화살 배송 없이는 못 살아!”
“주문할 수 있는 물건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니까? 영주님이 더 늘린다고 했어.”
“우리 영지에 이런 게 생기다니! 역시 영주님은 대단해!”
사람들이 칭송할수록 지셀의 콧대는 올라갔다. 그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가신들에게 말했다.
“어때? 봤지? 사람들은 빠르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법이야. 내가 항상 빨리빨리 하자는 것도 다 그래서라고.”
“…….”
클로드를 비롯한 가신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화살 배송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행정관들은 더 바빠졌다. 이건 개인이 하는 사업이 아니라, 영지에서 하는 사업이었던 탓이다.
물류 창고의 재고를 매일 확인하고 각 마을과 도시들의 물품을 빠르게 채워 주는 것도 다 행정관들의 일이었다.
“크으, 영지 내에서만 굴려도 이 정도인데 이게 왕국 단위로 뻗어나간다고 생각해 봐. 우리가 배송할 수 있는 물품도, 화살 배송을 이용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거라고.”
가신들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죽어나겠지.’
도로를 건설하는 대신 이용료 징수권을 달라고 왕실에 신청한 것도 아직 승인이 나지 않았고, 사업 자금 투자도 받지 않았다.
그게 전부 다 끝나면 친왕파 귀족 전체의 영지에서 화살 배송 사업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투자를 아무리 받아도 사업의 주체는 펜리스 영지라는 거다. 결국 펜리스의 관리들이 이곳저곳에 퍼져 사람들을 고용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몸이 더 갈릴 게 분명했다.
이쯤에서 멈추고 싶은 클로드가 살짝 태클을 걸었다.
“그런데 적자가 심합니다.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데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무료 기간이 끝나도 수수료가 꽤 싼 편이라 한동안 흑자 전환은 힘들 거 같습니다.”
“괜찮아. 지금은 적자가 나도 상관없어. 중요한 건 그 기반을 다지는 거라고. 결국 언젠가는 엄청나게 돈을 벌어들일 테니까. 우리가 전부 독점할 거잖아?”
‘에잉, 안 통하네.’
클로드는 자신이 예측한 내용을 그대로 읊는 지셀을 보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압도적인 물류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다른 상단도 화살 배송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게 싫으면 도로 사용료를 내든가.
‘그래도 뭔가 이상해. 예측한다고 하기에는 항상 과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어. 예지몽이라도 꾸는 건가?’
지금까지 영주가 벌인 일들 대부분이 어디에도 없던 것을 개념부터 새로 만든 것이라 더욱 이상했다.
처음에는 젊은 혈기로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하는 얘기를 들어 보면 또 나름대로 아는 것도 많고 논리적이었다.
매번 성공하는 것이 그저 운 때문만은 아닌 게 확실했다.
클로드가 의심 어린 눈으로 지셀을 관찰하는 중에도, 펜리스 영지는 빠르게 발전해 갔다.
도로가 건설되고 말들이 추가된 덕분에 대량 생산된 고기와 식량, 여러 자원이 영지 곳곳에 엄청난 속도로 운송되었다.
매일 상황을 보고 받으며 지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일이 아주 매끄럽게 잘 굴러가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게 많으니까 더 빨리 움직이자.”
전보소, 마구간, 물류 창고 등 운송에 필요한 시설이 전부가 아니었다. 영지가 더 강해지려면 더 많은 시설이 필요했다.
지셀이 재촉할수록 행정관들은 죽어났지만, 영지 개발 속도는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고, 사람들의 편의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마 이렇게 살기 편한 영지는 대륙 어디를 뒤져 봐도 흔치 않을 것이다.
지셀은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로 다음 일에 착수했다.
“이제 슬슬 브랜포드 후작님한테 가자. 징수권하고 투자 좀 받아 오자고.”
* * *
클로드와 가신들은 효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한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다.
왕국의 절반을 아우르는 사업이다. 이 정도 규모는 왕실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징수권? 브랜포드 후작이 주라고 하면 줄 거다. 친왕파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절대 이쪽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다.
일단 한번 징수권을 받으면 끝이다. 혹시 다른 영주들이 나중에 돈을 주기 싫다고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지셀의 성격에 분명 군대를 끌고 갈 테니까.
명분이 있으면 남 패기도 쉬워진다.
클로드는 사업 계획을 점검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영주님 말대로, 설령 어느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상관이 없어. 돈 몇 푼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영지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거야. 잘만 이용하면 우리가 영주들과 상단들의 목줄을 쥐게 된다.”
징수권만 얻어 낸다면 물류 유통과 사람들의 이동까지 꽉 잡을 수 있게 된다. 체제만 제대로 구축된다면 누구도 펜리스를 넘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펼쳐진 건 아니었다.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강력한 군사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도로를 강제로 뺏겠다고 덤비는 놈이 없을 테니까.
그 점에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지금 당장은 브랜포드 후작이 뒤에 있으니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 영지의 최우선 목표는 강력한 군사력이니까. 그것도 무척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친왕파 귀족들이야 문제가 아닌데…… 앞으로의 내전이 문제로군.”
공작가는 친왕파를 노리고 있다. 거기에 휩쓸렸다간 자칫 이 영지도 숨통이 끊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내전에서 친왕파가 승리한다면? 혹은, 친왕파가 지더라도 펜리스 영지는 살아남는다면? 그사이에 영주가 원하는 대로 강력한 군사력을 갖출 수 있다면?
“어쩌면…… 공작가 대신 우리가 왕국을 지배하는…….”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었다. 클로드는 화들짝 놀라 자기 입을 막았다.
자신에게 이런 야망이 있었던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냥 놀고먹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웬디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야.”
영주하고 같이 있다 보니 무모함이 옮은 모양이었다. 클로드는 헛생각을 털어내려 고개를 몇 번이나 저었다.
내전이고 뭐고, 지금은 그런 것보다 눈앞에 닥친 일이 더 중요했다.
몇 날 며칠을 가신들과 회의하며 상세한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다. 이제 이걸 브랜포드 후작에게 보내 주기만 하면 끝이었다.
문제는 지셀이 영지 개발에 신경 쓰느라 너무 바쁘다는 점이었다.
클로드가 몇 번이나 물어도 지셀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말 수도에 안 가실 겁니까?”
“아, 귀찮아. 지금 나 엄청 바쁘거든? 영지 개발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수련도 해야 하고, 훈련 상황도 점검해야 하고……. 그러니까 대충 사람 보내. 후작님은 무조건 허락할 테니까.”
“…….”
서신이야 물론 사람만 보내도 전달되긴 한다.
하지만 상대는 왕국 최고의 권세가인 브랜포드 후작이다. 영주가 직접 가도 부족할 판에 누구를 보낸단 말인가?
‘난 가기 싫은데…….’
클로드는 예전에 로잘린을 치료하겠다고 나선 지셀 때문에 목숨이 간당간당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솔직히 그때 후작이 너무 무서웠다. 그를 보기만 해도 오줌을 쌀 거 같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도 너무 바쁘긴 했다.
그래서 클로드는 다른 이에게 서신 전달을 미뤄 버렸다. 그는 로웰을 불러 분위기를 잔뜩 잡고 말했다.
“네가 가라, 수도.”
“네? 제가요?”
“그래, 가서 브랜포드 후작님한테 우리 사업에 관해서 잘 설명해 드리고 징수권 받아 와. 로잘린 아가씨랑 메리엘 님한테는 투자 좀 하시라고 하고.”
“그런 큰일을 제가 어떻게 해요! 아, 싫어요! 무섭다고요! 저도 바빠요!”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빨리 가라. 안 그러면 웬디한테 너 죽이라고 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웬디가 경멸 어린 눈빛으로 그를 흘겨봤지만 클로드는 모르는 척했다. 그는 영주가 왜 그렇게 강제로 사람들을 몰아넣는지 조금 이해하게 됐다.
‘하라면 좀 그냥 하라고! 뭘 자꾸 개겨! 귀찮아 죽겠네!’
클로드의 성화에 로웰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수도로 향했다. 가뜩이나 일도 바쁜데 갔다 오면 또 일이 밀리게 생겼다.
진짜 영주나 총관이나 똑같은 놈이라 죽을 거 같았다.
* * *
사업 계획서를 받아 든 브랜포드 후작은 무척이나 서늘한 눈빛으로 그의 앞에 선 로웰을 노려보았다.
“도로 사업? 징수권?”
“네, 네……. 그게 필요하시다고……. 친왕파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하셨습니다.”
말 잘하는 로웰도 브랜포드 후작 앞에서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양옆에 서 있는 가신들과 기사들, 병사들의 기세에 눌려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압박감이 느껴졌다.
다들 자유롭게 개판(?)으로 지내는 펜리스 영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턱을 몇 번 두드린 브랜포드 후작이 불쾌하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일개 변방의 영주 주제에 감히 왕국을 아우르는 사업을 하겠단 말이냐?”
“……그, 그런 거 같습니다.”
로웰은 벌벌 떨면서 고개만 주억거렸다.
지셀은 제가 하고 싶으면 무조건 밀어붙이는 놈이다. 그러니 자신한테 물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후작님도 못 말리시면서.’
로웰이 소심하게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브랜포드 후작은 고심에 빠졌다.
‘영악한 놈. 이 기회를 틈타 돈도 벌고 제 영향력도 더 늘릴 셈이구나. 이런 생각을 다 할 줄이야.’
다른 귀족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남의 영지에 도로를 깔아 줘 봐야 자기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원도 엄청나게 필요하니 시도하기는커녕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건 왕실이 직접 나서서, 왕국 차원에서나 할 법한 사업이었다.
그런 거대한 사업을 겨우 영주 하나가 해 보겠단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다면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상대는 식량을 꽉 쥐고 있어 돈도, 사람도 넘치는 지셀이었다. 그러면 얘기가 달라져 버린다.
‘좋은 생각이다. 완성만 된다면 공작가와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어차피 이제는 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단일 세력으로도 최강인 공작가와 싸우려면 왕실과 친왕파 영주들이 연합해야 한다.
누군가가 공격당했을 때, 주위 영지에서 군대와 물자를 빠르게 지원해 주어야 버틸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영지를 여러 곳 점령당하면 오히려 적들에게 진군로를 넘겨주는 꼴이 되겠지만,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했다.
진군로가 아예 없다면, 친왕파는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어차피 무너지게 될 테니까.
‘이놈은 마치 내전이 끝난 뒤를 생각하는 거 같구나. 무조건 승리하겠다는 자신감인 건가? 건방진 놈.’
그런 자신감은 보기에 나쁘지 않았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왕실에서 이 사업을 진행할 수는 없다.’
기근의 여파가 아직도 채 가시지 않았다. 다른 영주들은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이런 대규모 사업은 식량과 돈이 넘치는 그놈만이 시도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놈이 나선다면 나머지 영주들은 인부만 지원해 주면 된다.
그래도 혼자 하기는 부담이 됐는지 대규모 투자도 원하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일개 영주가 혼자 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지.’
한참 동안 고민하던 브랜포드 후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다. 사업을 허락하고 영주들에게 협조하라 이르겠다. 왕실의 이름으로 징수권 또한 펜리스 백작에게 주겠다.”
‘오!’
로웰은 깜짝 놀랐다. 브랜포드 후작이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바로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 영주님이 말한 대로 됐네. 신기하단 말이야.’
그런데 브랜포드 후작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
“……?”
후작은 서늘한 눈빛으로 로웰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지분을 좀 늘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