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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49화 (249/269)

249화 우리 기사들은 그렇게 입을 거다. (1)

첩자들의 조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굴렸다.

‘뭐지? 얼핏 지나가면서 본 게 전부일 텐데 우리를 기억한다고? 그 많은 인부들 중에서?’

미친 눈썰미다. 영주의 실력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정말 소문처럼 마스터에 가까운 경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어떡하지? 뭐라 해야 하지?’

첩자들은 당황했다. 자신들은 누군가의 기억에 남으면 안 된다. 존재감을 줄이는 것은 첩자 생활의 기본이었다.

조장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이주할 때 만나서 친해지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타지다 보니 서로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오, 그래? 가족들은 없고?”

“네, 저희는 다 홀몸입니다. 본래 고아였던 사람도 있고, 전란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고요.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조장은 마음을 최대한 다스렸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 설정을 확실히 짜 두었다. 무엇을 묻더라도 다 대답할 수 있었다.

신분도 확실하게 조작했고, 혹시나 조사할 걸 대비해 가짜 고향과 가짜 지인도 만들어 두었다. 물론 모두 같은 첩자들이었다.

지셀은 피식 웃더니 조장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래, 타지에서 지내려면 친구를 사귀는 게 정말 중요하지. 그런데 세 명 다 몸이 참 좋네?”

“……부끄럽지만 소싯적에 빈민가에서 무법자로 활동한 적이 있어서요. 지금은 과거를 반성하며 영지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법자? 멋있게 말하네. 그러니까 그냥 백수건달 폭력배였다는 거지?”

“……네.”

“나머지 둘은?”

지셀의 물음에 조원들도 바짝 긴장하며 답했다.

“저는 그냥 상단에서 몸 쓰는 일을 주로 하는 잡부였습니다. 힘이 좋다고 상단 경호 일도 잠깐 했었습니다.”

“저는 주로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는 인부였습니다. 잠깐이지만 노역 부대의 경비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육받은 대로 대답했다. 실제로 해당 일에 관한 지식도 쌓아 둔 상태였다.

자신들의 몸을 보고 누군가 의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지셀은 수상해하는 눈빛으로 세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말했다.

“상의 좀 벗어 봐.”

누구 앞이라고 거절할까. 세 사람은 우물쭈물하면서도 상의를 벗었다.

과연 세 사람 다 제법 몸이 탄탄했다. 그들의 상체와 손을 잠시 살펴본 지셀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검술을 익힌 몸인데……. 손을 보니 암기술도 익힌 거 같고.”

첩자들은 그 말에 더 사색이 되었다. 날씨도 별로 안 더운데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뭔데? 그런 걸 눈으로만 대충 보고 어떻게 아는 건데?’

‘그냥 떠보는 거지? 그렇지? 제발 그런 거라고 해 줘.’

첩자들은 암살 지령을 받게 되거나, 무력으로 탈출해야 할 때를 대비해 대부분 검술을 익힌다. 암기술을 익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물론 아무 무술도 익히지 않는 첩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첩자들은 머리가 좋아서 단순 노동보다는 관리나 학자로 잠입하는 고급 인력이었다.

낯빛이 시커멓게 죽은 두 조원과 다르게 조장은 빠르고 냉철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냥 자백하고 저놈들 팔아 버릴까? 난 진짜 여기에 뿌리 내리려고 했는데! 집도 마련하고 돈도 많이 모았단 말이야!’

가족들까지 버리고 이곳에 뼈를 묻으려고 했다. 조원들도 설득하는 중이었다. 지금 첩자인 걸 걸려서 죽으면 무척이나 억울할 거 같았다.

안 된다. 겨우 내 집 마련에 성공했는데 지금 죽을 수는 없었다.

“저기 사실…….”

조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조장의 말은 제대로 이어지지도 못하고 지셀이 툭 내뱉은 말에 끊겨 버렸다.

“뭐, 됐어. 첩자든 아니든 상관없지.”

그 말에 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순히 떠보는 것뿐이었나?’

‘첩자여도 상관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이야?’

당황하는 셋을 보며 지셀이 씨익 웃었다.

“난 비폭력 평화주의자라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잡아 죽이면 그냥 미친놈이지. 안 그래?”

“그, 그렇죠…….”

“그리고 우리 영지는 일손 하나라도 아쉬운데, 이렇게 몸 좋고 튼튼해 보이는 사람들을 의심스럽다고 죽이는 건 큰 손해야. 아니, 설령 진짜 첩자라도 죽일 수 없어.”

“그, 그렇습니까?”

“그렇지만 의심스러운 사람을 그냥 풀어 둘 수도 없지. 그런 너희들을 위해 준비된 자리가 있어.”

“그, 그게 무엇입니까?”

지셀은 옆에 있는 길리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친구들 다 ‘노동 돌격대’로 보내 버려.”

“알겠습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첩자 삼인방은 바로 바닥에 엎어졌다.

“아이고! 영주님!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첩자들은 울부짖었다.

‘노동 돌격대’는 영지에서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된다. 거기에 군사 훈련도 받아야 한다. 전쟁에서는 선봉에 선다는 소문도 있었다.

곧 데스몬드와 싸울 게 분명한데 선봉으로 끌려가면 같은 편한테 죽을 게 뻔했다.

세 사람의 절규에도 지셀은 고개를 저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해? 거기도 그냥 일하는 곳이야. 아주 약간 더 힘들 뿐이지. 거기서 일하면서 결백을 증명하도록.”

세 사람은 억울한 표정으로 끌려갔다. 당장 안 죽은 건 다행이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죽는 건 확정되었다.

거기에 죽기 전까지 고생해야 한다. 카오르란 놈은 노역 부대원들을 엄청나게 굴린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조장은 끌려가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난 안 죽어! 절대 안 죽어! 반드시 살아서 내 집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낼 거야!’

집이 생기기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그는 데스몬드의 충성스러운 첩자였다.

하지만 좋은 집이 생기니 마음이 달라졌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싶어졌다.

결국 집값이 문제였다. 첩자 보수로는 집값이 비싼 데스몬드 영지에서 언제 집을 살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첩자 노릇을 하다 실수라도 하면 그냥 목이 날아간다.

‘이제 그런 생활은 싫어! 여기는 그냥 일만 해도 첩자 보수보다 더 많이 준다고!’

단단한 충성도 자본의 강력한 힘에 무너지고 말았다.

노역 부대에서 성실하게 생활하면 풀려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앞으로 일하며 많은 돈을 모으고 여유롭게 살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난 반드시 살아남을 거야! 데스몬드 놈들도 가장 많이 죽여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공도 세울 거야!’

희대의 배신자가 탄생하고 있었다.

* * *

지셀이 첩자들을 노역 부대로 보내 버리고 집무실에 돌아왔을 때, 갈바릭과 드워프들이 눈물을 흩날리며 달려왔다.

“영주! 영주우우!”

“뭐야?”

드워프들은 다들 수염 난 고블린 같은 피폐한 몰골들이었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얼굴에는 피로함보다 행복함이 가득했다.

“오, 설마?”

기대감 가득한 지셀의 눈빛을 받고, 갈바릭은 크게 웃으며 외쳤다.

“드디어! 드디어 갈바니움의 제작에 성공했소이다!”

“성공했구나!”

지셀은 환하게 웃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대형 부화기와 다르게 이건 반드시 성공할 줄 알았다.

갈바릭은 재료를 아무것도 모르던 전생에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 성공했었기 때문이다.

환히 웃는 지셀에게 갈바릭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소! 진짜로 영주가 알려 준 걸 토대로 연구를 하니 성공했다는 말이오! 으하하하하하!”

갈바릭은 크게 웃었다. 비록 지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새로운 기술을 터득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그는 품에서 조심스럽게 금속 주괴를 하나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바로 갈바니움이오! 확인해 보시오!”

지셀은 갈바니움 주괴를 들고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무척이나 가벼운 무게. 이 합금이 철만큼 단단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지셀은 바로 검을 뽑아 들고, 마나를 전혀 싣지 않은 채 적당한 힘으로 휘둘렀다.

까앙!

검이 튕겨 나왔다. 흠집도 전혀 나지 않았다.

“크!”

완벽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전생에 봤던 것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지셀은 만족감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 완벽하군. 전설의 대장장이가 만들었던 것과 정말 똑같아.”

“그 대장장이를 만나게 해 달란 말이오!”

“……어디 있는지 모른다니까.”

지셀은 고개를 돌리고 모르는 척했다. 거울 보면 되는데 설명하기가 참 힘들다.

갈바릭은 조금 아쉬운 표정으로 주변의 거울을 보고 수염을 다듬은 뒤 말을 이었다.

“아무튼 역사에 남을 만한 위업이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제 이건 우리만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지!”

갈바릭의 말처럼 이 기술은 펜리스 영지만 가지고 있다. 영원한 비밀은 없기에 언젠가는 퍼져 나가겠지만, 당장은 아니다.

“좋아, 이제 갈바니움을 대량으로 생산해야 해. 재주 좋고 믿을 만한 기술자들에게만 방법을 알려 주고 바로 생산을 시작하자고. 대신 보수는 몇 배를 줘. 전혀 불만이 없게 말이야.”

“알겠소! 절대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게 잘 관리하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갈바릭도 이 영지가 언젠가는 데스몬드 백작과 싸워야 한다는 걸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은 이 기술이 유출되면 절대 안 된다.

그러니 지셀의 말뜻도 무척 잘 알아들었다.

‘믿을 만한’ 기술자와 ‘몇 배의 보수’는 기술자를 감금해 놓고 일하라는 뜻이다.

일손만 확보하면 대량 생산에는 문제가 없다. 이미 이때를 위해 영지 곳곳에 대규모 제련소와 대장간을 지어 놨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장 대량 생산을 위한 작업과 교육에 착수하겠소이다! 그럼 이만…….”

갈바릭과 드워프들이 후다닥 떠나려고 했다. 그들은 영주와 오래 얘기해서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셀은 갈바릭의 어깨를 잡고 웃었다.

“왜 벌써 가?”

“빨리 생산을…….”

불길한 예감을 느낀 갈바릭과 드워프들이 눈을 한쪽으로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제발 보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에이, 우리 스타일 이제 잘 알면서. 갈바니움 제작에 성공했으면 다음 일을 해야지?”

‘너는 사람이 아니야…….’

갈바릭은 눈물을 흘리고 싶어졌다.

이거 만드는데도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거기에 대량 생산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일이 또 늘게 생겼다.

‘괜히 열심히 한다고 약속했어!’

그래도 드워프 자존심에 못 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항상 그 자존심이 문제라는 걸 드워프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래……. 이제 또 뭐요…….”

“무장을 만들 거야.”

“무장? 어차피 무기와 갑옷들은 전부 갈바니움으로 교체하기로 하지 않았소?”

갈바니움을 대량으로 생산한 뒤에는 기사와 병사들의 무장도 교체할 계획이었다. 실생활에 필요한 모든 철제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성문의 창살 문처럼 무게 그 자체가 효용이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셀은 조금 더 특별한 장비를 만들 생각이었다.

“지금 쓰는 장비를 재질만 바꾸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장비를 개발할 거야. 무기도 추가할 생각이지만 일단은 기사들이 입을 갑옷과 투구부터. 이걸 한번 봐 봐.”

지셀은 미리 준비했던 장비의 설계도를 갈바릭에게 넘겼다.

한참 동안 설계도를 찬찬히 뜯어보던 갈바릭이 의문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 갑옷과 투구의 홈은 뭐요? 설마…….”

“그래, 거기다 룬스톤을 박을 거야.”

“허, 갑옷에 마법진을 새기고 룬스톤까지 쓸 생각이오? 이걸 400벌이나 만들라고? 돈 계산 정말 제대로 한 거 맞소?”

지셀이 고개를 끄덕이자 갈바릭은 놀라고 말았다.

설계도대로 만든다면 이 갑옷 하나에 보통 사람은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걸 400벌이나 만든다면 평범한 영지의 수십 년 치 예산은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이 영지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게 이 장비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행정이나 돈 쪽은 잘 모르지만……. 이대로 만들면 영지의 자금이 휘청거릴 듯한데? 갈바니움도 갈바니움이지만, 룬스톤이 문제요. 쓰면 그만큼 팔 수 있는 양이 줄어드니까.”

갈바니움은 아직 초기 생산 단계였다. 들어가는 재료가 많아 생산 비용이 꽤 많이 든다.

영지의 모든 철제 무장과 도구들을 바꾸려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다 룬스톤까지 박겠다니, 이걸 알면 가신들이 모두 기절을 할 것이다. 특히 클로드가 난리를 칠 게 뻔했다.

갈바릭도 그걸 염려했는지 다시 물었다.

“전투력은 강해지겠지만…… 이건 너무 과한 거 같소이다. 이 정도 무장을 갖추고 있는 영지는 어디에도 없소. 이 돈으로 차라리 병력과 병기를 잔뜩 늘리는 게 낫지 않겠소?”

“우리 기사들은 그렇게 입을 거다.”

지셀이 원하는 건 단순히 마나만 쓸 줄 아는 평범한 기사들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싸울 수 있는, 전천후 작전 수행 능력을 갖춘 기사단을 만들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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