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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38화 (238/269)

238화 기만, 포위, 섬멸이지. (2)

두두두두두!

선두에 선 즈발터의 검이 푸르게 물들었다. 지셀이 넘겨준 마나 연공법을 익힌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렬한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다.

맹수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빛나는 은빛 갑옷, 위엄이 서린 표정과 정기가 넘치는 눈빛, 그리고 아침에 멋지게 정리한 수염.

지금 즈발터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북방을 질주하는 늑대들과도 같았다.

“돌격!”

와아아아아!

즈발터가 크게 외치자 뒤따르는 모든 이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그 음성이 어찌 큰지 함성만으로도 땅이 울릴 정도였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반드시 해야만 해!’

즈발터는 이를 악물었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야만인들을 상대할 때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언제나 수성하는 전법을 취했다. 후퇴하는 적들을 쫓을 때면 몰라도, 이렇게 적들이 달려들 때 요새 밖으로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두두두두두!

즈발터를 필두로 모든 페르디움의 기사와 기마병들이 출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궁병을 포함한 요새의 모든 병력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에 야만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으니 대응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뭐, 뭐냐? 이게 무슨 일이지? 왜 아직도 병력이 저만큼이나 남아 있지?”

“주력은 이미 출정한 게 아니었나?”

“사다리를 빨리 버려라! 이대로 맞서 싸운다!”

이들은 지셀이 새로 기사들을 이끌고 합류한 걸 몰랐다. 그래서 최근에 활약하던 병력도 평소에 북방 요새에 머물던 자들 중 일부가 빠져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없어야 할 병력이 나타난 황당한 상황에 야만인들은 기세가 다소 죽어 버렸다.

하지만 대전사들은 곧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어차피 수는 우리가 훨씬 많다! 잘됐다! 그냥 밀어 버려!”

요새에 붙어 싸우는 것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가 많다는 거지, 그들이 겁먹을 정도로 많은 건 아니었으니까.

지금 나오는 북방 요새의 병력은 모두 합해봐야 천 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에 비해 이곳에 모인 전사들은 5천이 넘어갔다.

거친 북방에서 살아온 자들이다. 전투를 앞두고 겁을 먹는 건 그들에게 크나큰 수치였다.

그런데 이렇게 병력 규모에서도 차이가 난다? 겁을 먹으면 전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저놈들은 나약한 놈들이다!”

“저 새끼들의 머리를 모두 박살 내자!”

“북방 요새는 오늘 멸망할 것이다!”

거친 전사들의 함성이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오오오오오오오!”

정신을 차린 야만인들의 눈에서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전사들의 고함에 맞춰 전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페르디움군의 함성을 덮을 정도로 거대하고 위압적인 울림이었다.

전의를 다지는 전사들을 노려보며 즈발터가 크게 외쳤다.

“뚫어라!”

콰아아아앙!

페르디움군의 선두에 선 기사들이 야만인들 사이를 빠르게 뚫고 지나갔다. 마나 연공법을 바꾸고 더 강해진 덕분에 야만인들의 전열은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야만인들도 기마에 익숙한 만큼 기사들의 돌격에도 그리 겁먹지 않았다.

곳곳에서 대전사들이 크게 소리쳤다.

“가자! 저 나약한 놈들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자!”

이들에게는 기병에 대항하는 데 특화된 창병이나 전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야만인들에게 그런 건 나약한 인간들이나 준비하는 것이었다.

대기병 전술은 결국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야만인들은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모두 달라붙어!”

“오오오오오!”

“우리에게는 위대한 전사의 가호가 함께한다!”

전사들이 달려오는 기마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밟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도끼를 들어 말의 발목을 향해 휘두른다.

히이이이잉!

말들이 쓰러지고, 야만인들은 떨어지는 기사들을 잡아채며 전장을 뒹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는 자는 상대하기 쉽지 않다. 야만인들의 진짜 힘은 이런 난전에서 드러났다.

상대가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드니 기마병들도 큰 힘을 내기 어려워졌다.

“큿!”

즈발터가 이를 악물었다.

‘기세에서 눌리면 안 되는데.’

그는 야만인들의 광적인 전투 의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대규모 군대가 정면으로 맞붙는 것만은 그간 피해 왔던 것이다.

“크으으윽!”

“죽어! 이 새끼야!”

“오늘 끝장을 보자!”

다행히 페르디움군도 전의로는 야만인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당한 기억에 이미 독이 오를 대로 올랐고, 지셀과 함께 야만인 부족들을 깨부수며 사기까지 오른 상태였다.

다들 이를 악물고 야만인들과 맞붙었다.

야만인 전사들은 자신들의 수를 믿고 몸으로 계속 부딪쳐 왔다. 전투의 열기에 취해 눈이 돌아가니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어도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계속 밀어붙여라!”

“왕국의 나약한 자들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리라!”

“북방의 늑대! 너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야만인들은 두려움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무시무시한 얼굴로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양쪽 다 서로 그간 쌓인 감정 때문에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기의 전황은 분명 페르디움 쪽에 유리했다. 진형을 갖추어 선제공격을 성공시킨 덕분에, 상대 쪽보다는 피해가 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야만인들은 자신들이 전멸해도 상관없다는 듯 달려들었다. 거기다 수까지 너무나 많으니, 페르디움의 병사들은 점점 야만인들의 광기에 짓눌려 갔다.

콰아아앙!

“크읏!”

야만인 하나가 말을 탄 기사의 몸을 덮쳤다. 기사, 스코반은 고삐를 채어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고는 곧바로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젠장, 이거 진짜 맞는 거야? 이렇게 하면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수가 이렇게 많이 차이 나는데!’

대공자와 클로드란 놈이 짠 작전이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했다. 요새를 버리고 나가서 싸우라니.

원망스러운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머리를 털고 잊었다. 솔직히 대공자가 하는 일이니 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터였다.

모르고 넘기려니 찝찝하긴 했지만, 지셀과 함께 움직였던 요 며칠 동안 즐거웠던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나도 페르디움의 기사다!’

그는 먼저 간 동료들을 잊지 못했다. 영지를 항상 힘들게 하던 야만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 작전을 성공시키면 야만인 놈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다고 했다. 대공자가 그렇게 확언했다면 그런 거다.

스코반은 다시 한번 대공자를 믿어 보기로 했다.

“으아아아아!”

그는 연신 고함을 지르고 자신을 독려하며 검을 휘둘렀다.

쉴 새 없이 덮쳐 오는 야만인들을 몇 번이나 역으로 때려잡았다.

하지만 수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결국 그는 잠깐의 빈틈을 파고든 야만인에게 떠밀려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크윽!”

카앙! 카아앙!

말에서 떨어지자마자 야만인 전사 여럿이 달려와 스코반의 몸에 도끼를 내질렀다. 하지만 스코반은 순간적으로 마나의 힘을 폭발시켜 공격을 전부 막아 냈다.

파악!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자신에게 달라붙은 전사들의 목을 모조리 베었다.

그는 널브러진 시체들을 내려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 미친 마나 연공법, 익힐 때는 정말 죽을 거 같았는데……. 이것 덕분에 살았군.’

지속력이 떨어지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확실히 쓸모가 많았다. 이번에도 야만인들을 단번에 죽인 덕분에 협공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촤악!

“하아, 하아…….”

다시 달려드는 야만인들을 베어 낸 스코반은 피곤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장에 나섰을 때 느끼는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똑같이 움직여도 평소보다 몇 배는 쉽게 피로해진다.

그런데 스코반은 계속 야만인들을 베다가, 마나까지 폭발시켰다. 오히려 지치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아, 하아…….”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적의 피로 물든 몸이 뜨거워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이제 빠져야 해.’

돌격 전술은 이미 힘을 잃었다. 선두의 대열은 무너뜨렸지만, 남은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상대가 격렬하게 달라붙으니 종심까지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기병 돌격을 전부 몸으로 막아 내다니. 역시 질리는 새끼들이야.’

이제 옆으로 빠져야 한다. 기마는 이런 난전 상황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이미 기마병들은 첫 충돌 이후, 진로가 막히자마자 옆으로 빠진 뒤였다. 기사들은 안전하게 퇴로를 확보하려고 일부러 남아 있었던 것이다.

스코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적절한 타이밍에 즈발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제 옆으로 빠져라! 기사들은 어서 빠져라! 어서!”

스코반은 주변의 기사들과 함께 야만인 전사들을 베며 움직였다.

그냥 쓰려져서 쉬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이제 좀 강해지고 살 만해졌는데 여기서 죽기는 억울했다.

‘리카르도 그놈은 좋겠다!’

여자한테 인기도 많고 항상 한량처럼 지내는 놈. 지금은 마수의 숲 주둔지에서 낮잠이나 자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스코반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

‘절대 안 죽어! 아니, 못 죽어!’

그 얄미운 얼굴을 생각하자 없던 힘도 솟아올랐다. 그는 그렇게 질투심에 악이 받쳐 열심히 검을 휘두르며 움직였다.

“방패! 어서 방어선을 만들어라!”

즈발터의 외침에 뒤따라오던 방패병들이 방어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평소와 다르게 거대하고 두꺼운 방패를 들고 있었다.

척! 척! 척!

기사와 기마병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어느새 기다란 방패의 벽이 세워졌다.

“우오오오오오오!”

야만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이렇게 막을 거면 차라리 요새에 있지, 뭐 하러 나왔다는 말인가?

그들은 더욱더 광폭하게 공세에 나섰다.

초반에 크게 당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아직도 수는 그들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니까. 오히려 그 희생이 야만인들의 열기를 부채질했다.

콰앙! 콰앙! 콰앙!

전사들의 도끼가 무지막지하게 방패들을 후려쳤다.

페르디움의 방패병들은 이를 악물며 거친 공세를 버텨 내었다. 방패 사이로 창을 찌르지도 않고 오직 방어에만 힘을 썼다.

“크하하하! 드디어 겁을 먹었구나!”

“나약한 새끼들이 하는 짓이 그렇지!”

“나온 김에 얌전히 목이나 바쳐라!”

야만인들은 더 기세가 등등해져 방패 너머로 넘어가려 했다.

방패병들의 뒤에 있던 창병들이 창을 내찔러 넘어오는 자들을 처치했지만, 야만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끊임없이 덤벼들었다.

이것이 야만인 전사들의 무서움이었다. 한번 눈이 돌아가면 주변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몰랐다.

방패병들의 대열이 옆으로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즈발터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숨을 죽이고 눈을 빛냈다.

‘진형은 완성되었지만…….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공세가 전환되었다.’

원래는 조금 더 싸우다가 진형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미친 듯이 달려드는 야만인들의 광기에 밀려 시간을 더 끌 수가 없었다.

만약 더 시간을 끌었다며 기사들과 기마병들의 피해가 커졌을 것이다.

이제는 방패로 막으면서 버텨 내야만 했다.

‘어서……. 어서…….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

즈발터의 애타는 마음과 다르게 야만인들의 공격은 더욱더 거세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자 더 거침없이 움직였다.

페르디움군의 수는 야만인들보다 훨씬 적었다. 막기만 하다가는 결국 뚫리기 마련이다.

이제 공격은 오직 야만인들만 하고 있었다. 페르디움군은 간간이 넘어오는 자들을 요격하는 걸 제외하고는 오직 방어에만 집중했다.

카앙! 카앙!

“오오오오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밀어붙여라! 더 밀어붙여라!”

전장의 열기와 거대한 함성에 취한 야만인들은 듣지 못했다.

두두두두두!

강하게 땅을 박차며 울려 오는 말발굽 소리를 말이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확인하고 즈발터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오지 않고, 단 한 사람만이 말을 타고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왜?’

카앙! 카앙! 카앙!

도끼가 내리쳐질 때마다 방패의 열이 흔들렸다.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린 야만인들의 공세를 일반 병사들이 계속 버티긴 힘들었다.

즈발터는 입으로는 병사들을 독려하면서도 다가오는 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의아하다는 표정만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냐? 왜? 어째서 혼자 온 거지?’

예상했던 것보다 작전이 빠르게 진행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버텨 보려 했다.

그런데 마치 이렇게 될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약속한 상대도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단 한 사람이란 게 문제긴 했지만.

두두두두두!

무언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후방에 있던 야만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적이다! 적이 뒤에서 나타났다!”

“뭐야? 혼자야?”

“미친놈인가? 우리한테 혼자 달려든다고?”

야만인 진영의 후방에서 한바탕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하지만 앞에서 페르디움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야만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방어선을 뚫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 문제가 생겼다면 뒤에서 신호가 올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별일이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어느 누가 한 사람의 돌격을 무서워하겠는가? 그런 전사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최후방에 선 전사 몇몇이 도끼를 들고 몸을 돌렸을 뿐이다. 한 사람 정도 잡는 데는 그들만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돌아선 자들은 다가오는 상대를 보고는 곧 눈을 크게 떴다.

두두두두두!

눈 한번 깜빡일 때마다 상대의 모습이 훅훅 가까워졌다.

“뭐, 뭐야? 왜 저렇게 빨라? 저게 가능해?”

말과 일체가 되어 그 힘을 한계까지 끌어낼 수 있어야 가능한 기예. 평생 말을 타고 살았던 야만인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기마술이었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자의 이목구비를 멀리서 확인하고 즈발터가 크게 외쳤다.

“지셀―!”

붉은 눈을 빛내며 빠르게 다가오는 자는 지셀이었다. 그가 마나를 끌어올리자, 손에 들린 창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곧 지셀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갑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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