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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237화 (237/269)

237화 기만, 포위, 섬멸이지. (1)

“오…….”

클로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헛웃음만 흘렸다. 역시 말이 안 통한다. 사실 예상한 바였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대답은 지셀이 해 주었다.

“자, 뭐 더 얘기해 봐야 소용없는 건 알지? 빨리빨리 진행하자고.”

클로드는 그냥 포기하고 지도상의 몇 군데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영주님이 예상하신 대로, 우리가 움직이는 경로의 인근 부족들이 모였습니다. 사방에 전사들을 보내 우리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죠. 근데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족족 이쪽에 들키고 있고요. 어휴, 단순한 새끼들.”

클로드는 매일같이 정찰병을 보내 주변을 확인하고 정보를 정리한 뒤, 지셀에게 알려주었다.

야만인들은 주기적으로 옮겨 다니기에 지셀도 그들이 있는 위치는 정확히 몰랐다. 그렇기에 매번 정찰병을 보내 현재 부족들의 위치를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건 첩보관인 로웰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셀은 오랜만에 클로드를 끌고 왔다.

전생에서도 이렇게 같이 다녔기 때문인지 그에게는 로웰보다 클로드를 데리고 오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클로드는 뛰어난 지휘관이자 작전 참모이기도 했다. 지금은 살림만 하느라 본인 재능을 잘 모르는 거 같지만.

“좋아, 다음 목표는 그놈들로 잡아야겠네. 놈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예측되지?”

지셀은 알면서도 물었다. 클로드의 숨겨진 재능을 이제 슬슬 끌어올려야 했다. 앞으로 자신이 없는 전장에서는 클로드가 작전을 세우고 이끌게 할 생각이었다.

클로드는 턱을 몇 번 긁적이더니 말했다.

“뭐……. 지금 같은 상황에서야 뻔하죠. 다른 놈들은 그냥 무작정 싸우려고 하겠지만, 중심이 되는 소리바람의 부족장은 제법 머리 좀 쓴다고 합니다.”

“원래 어설프게 쓰는 놈들이 제일 한심한 법이지.”

“그렇긴 하지만요……. 그래도 수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 쪽의 두 배가 넘어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냥 막기만 할까요?”

“내가 즐겨 쓰는 전법이 있어.”

“추격, 기습, 섬멸이요?”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야 할 거 같아.”

“어떻게요?”

“기만, 포위, 섬멸이지.”

“풉.”

클로드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우리가 훨씬 수가 적은데 어떻게 포위해요?”

그러자 지셀도 같이 웃으며 답했다.

“포위라는 건 애초에 모든 방향을 다 막는 게 아니야. 중요한 길목만 막아도 가능한 법이지. 이제 작전을 짜 보자고. 저놈들은 힘만 세지 단순해서 뭐든 잘 통하거든.”

* * *

쿠스투가 요새 점령을 외쳤지만 다른 부족장들이 모두 바로 동의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성전에 약한 걸 안다. 요새를 몇 번 건드려 본 적이 있어, 공략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른 자의 의견을 따르는 데 대한 반감도 있었다. 어쨌든 다들 부족장으로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으니까.

“뭐 하러 굳이 요새를 친다는 말인가! 그놈들의 주력이 출정했을 때 그냥 이 인원으로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건데!”

“맞아! 어차피 몇백 명밖에 안 된다며? 전사들답게 쫓아가서 밟아 버리자고!”

“우리는 제대로 된 공성 병기도 없잖아?”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쿠스투는 인상을 썼다. 이 무식한 놈들은 전략 전술이란 걸 모른다.

자신은 이놈들과는 다르다. 강하기도 하지만, 머리를 쓸 줄 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대에서 소리바람이 대부족이 되어 북방의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지 않은가.

만약에 페르디움 놈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소리바람 부족이 다른 부족을 짓밟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을 좀 해 봐라. 그놈들 주력은 겨우 몇백 명이지만 하나하나가 대전사들과 실력이 비슷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기사들이다. 이미 2천 명이나 되는 전사들을 피해도 없이 죽였잖아. 우리가 정면으로 맞붙으면 피해가 얼마나 클지 생각도 못 하냐?”

“우리 쪽 수가 5천이 넘어! 아무리 세다고 해도 고작 몇백 정도도 못 이길까! 넌 전사답지 못하다! 거기를 떼 버려라!”

“이긴다 해도 전사들의 절반 이상은 날아갈 텐데? 어쩌면 그 이상이 없어질 수도 있겠지. 왕국의 기사란 그런 존재다.”

보통 기사들이었다면 쿠스투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겠지만, 그가 모르는 게 있었다. 펜리스의 기사들은 순간적인 파괴력은 강해도 지속력이 약하다는 점이었다.

아마 5천 명이나 되는 군대와 맞붙는다면 이기기는커녕 절반을 죽이기도 전에 힘이 빠져 버릴 것이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봤자 절반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다른 부족장들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쿠스투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전사들을 잃는다면 이 북방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부족을 이끄는 자들로서 지켜야 할 선이 있었다.

“에이씨! 그러면 어떻게 하자고!”

“……이미 말했잖냐.”

“요새를 점령하자고? 그러면 뭐 피해가 없어?”

“있지, 있겠지. 그래도 기사들하고 정면으로 맞붙는 것보다 나아. 요새는 작은 편이다. 주력까지 빠져서 허약한 병사들밖에 없지. 거기에 5천이 넘는 전사들이 달라붙는다고 생각해 봐라. 걔들이 어떻게 막겠어?”

“오…….”

다른 부족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요새를 공격한 적은 없었다.

작은 요새를 사방에서 포위하고 전사들이 빠르게 올라간다면? 주력도 빠지고 병력도 부족한 요새에서 모든 방향을 막을 수 있을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사방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절대 막을 수 없는 공격이라니, 생각할수록 매력적이었다.

“좋아, 그러면 그다음은? 출정을 나간 놈들은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긴. 우리가 요새를 깔고 앉아 있으면 자기들이 어쩔 건데? 요새에는 식량이 많다는 소문도 있잖아. 거점을 잃은 놈들은 왕국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어. 보급이 안 될 테니까.”

“오……. 역시 넌 제법 똑똑하구나.”

“그래, 머리를 쓰자는 말이야, 머리를. 일단 우리가 성을 차지하고 나면 공성 병기도 없고 수도 적은 그놈들은 어쩔 수가 없어.”

“그렇지! 집이 없는 놈들은 떠돌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다 요새를 뚫으면 왕국 안으로 들어가서 약탈하는 것도 아주 쉬운 일이 되지. 이래도 내 제안을 거부할 건가?”

부족장들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 작전을 따르겠다! 모든 전사를 모아 요새를 점령하도록 하지!”

“그래, 그게 최고야.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최고의 이득을 생각하고 움직이란 말이야.”

쿠스투는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자신이 가장 똑똑했다.

‘흐흐, 앞에서 싸우다가 다 죽어 버려라. 요새만 점령하면 내 전사들이 너희 부족도 다 먹어 치울 테니까.’

요새를 차지하고 식량을 획득한다면 소리바람 부족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부족을 선동하면서까지 요새를 차지하려는 것이었다.

요새만 점령한다면 지금 소리바람 부족과 대립하고 있는 다른 대부족들도 반드시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쿠스투가 보기엔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고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

그는 주먹을 꾹 쥐며 야심을 불태웠다.

‘내가 반드시 이 북방을 통일할 거다.’

* * *

“그놈들이 출정했다. 기사들을 전부 끌고 나간 모양이야. 확인됐던 숫자와 비슷해.”

쿠스투와 부족장들은 전사들을 사방으로 보내 며칠간 북방 요새 주변을 감시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기사들 수백 명이 출정한 것을 확인했다.

지도를 들여다보던 쿠스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놈들이 원래 움직이던 방향으로 가고 있어. 곧 강철쐐기 부족과 만나겠군. 슬슬 우리도 움직인다.”

반나절 정도 기다린 부족 연합은 요새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출정한 요새의 주력 부대가 다른 부족과 전투를 하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그 사이에 병력이 부족한 요새를 단숨에 점령할 계획이었다.

“빠르게 움직인다! 적들에게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자!”

둥! 둥! 둥! 둥!

짐승의 가죽과 뼈로 만든 북이 크게 울렸다.

그 북소리에 맞춰 5천이 넘는 야만인 전사들이 요새를 향해 진군했다. 이 정도로 많은 부족이 연합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별다른 공성 병기도 없이 사다리만 가지고 왔지만, 작은 요새가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병력이었다.

그들은 그 정도로 화가 나 있었고, 그 정도로 위기감을 느꼈다.

“드디어 저 요새를 점령할 때가 왔노라!”

“영광스러운 전사들이여! 형제들의 원수를 갚자!”

“오오오오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대전사들의 외침에 뒤따라 곳곳에서 전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애초부터 전투를 즐기는 자들이다. 심지어 이 정도 숫자가 모였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요새만 함락한다면 내친김에 왕국 북부의 가난한 영지 몇 곳을 쓸어 버려도 될 거 같았다. 고만고만한 영지들이라 병력도 얼마 안 될 테니까.

야만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들은 뒷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오오오오오오!”

전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며 주위의 공기마저 떨리는 듯했다.

해골 투구를 쓴 야만인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위압적이었다. 그런 야만인들이 수천이나 몰려오자 북방 요새에 남아 있던 병사들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야만인들과 싸우는 데 이골이 난 그들도 한 번에 이 정도로 많은 야만인 전사들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몰려오는 야만인들을 보며 즈발터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정말 잘한 선택일까? 이래도 됐던 걸까?’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다들 반대해도 결국은 항상 성공했던 아들이 언제나처럼 밀어붙여서 못 이긴 척 넘어가긴 했다. 나름대로 아들에 대해 믿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대군을 앞에 두니 그게 정말 잘한 일이었는지 점점 확신이 사라져 갔다.

즈발터뿐만이 아니다. 란돌프도, 기사와 병사들의 심정도 비슷했다.

‘엄청난 수다. 하루도 채 못 버티겠어.’

‘요새에서는 절대 못 막아. 막더라도 우리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볼 거야.’

‘저놈들이 뭉치면 저렇게 무섭구나.’

그간 쌓인 증오와는 별개로 조금씩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저 정도 숫자가 요새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올라오면 절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수의 차이가 압도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왕국과 페르디움에서 야만인들의 토벌을 포기한 이유였다. 건들면 뭉쳐서 덤빈다. 차라리 자기네들끼리 계속 싸우게 내버려 두고 가끔 넘어오는 소수만 막는 게 나았다.

야만인들이 뭉쳐서 요새를 뚫고 들어오면 왕국의 북부 지역 전체가 된서리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마른침을 삼키던 즈발터는 고개를 털며 잡생각을 버렸다. 지금은 어떻게든 야만인들을 막아 내야 할 때였다.

그것도 최소한의 피해로 말이다.

“봉화를 피우고 투석기 공격을 시작해라!”

요새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출정을 나간 지셀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끼이이익.

터어엉! 터엉!

요새에 배치된 두 대의 투석기가 몰려오는 야만인들을 공격했다.

콰아앙! 콰아아앙!

맨몸으로 달려오던 야만인 무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뛰어난 전사들답게 돌이 날아오는 방향을 보고 알아서 흩어졌기 때문이다. 대열이 조금 흐트러지긴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콰앙! 콰아앙! 콰앙! 콰앙!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투석기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시간을 가늠하던 즈발터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 기세가 강하다. 생각보다 접근하는 속도가 빨라.’

야만인들은 공격당하는 걸 무서워하지 않고 광기에 취해 달려오고 있었다. 요새에 달라붙기만 하면 승리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오오오오!”

“이제 방패를 들어라!”

“단숨에 올라가야 한다!”

투석기의 사거리에서 벗어나자 야만인들은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이제 다음으로 올 화살 공격을 막을 차례였다.

나무로 조악하게 만든 사다리들도 앞으로 세웠다. 그간 북방 요새와 싸우며 눈대중으로 잰 높이에 맞춰 만든 사다리들이었다.

그들은 성벽 위에 궁병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냥 눈앞에 있는 요새를 향해 무작정 달려들 뿐이었다.

개떼처럼 달려오는 야만인들을 노려보며 즈발터가 크게 외쳤다.

“성문을 열어라!”

끼이이익!

그간 야만인들을 상대하며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야만인들은 하나둘 발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빈 성이나 다름없는 곳의 문을 열다니? 이건 환영하는 건가? 아니면 항복? 뭐든 좋긴 한데…….

생각도 못 해 봤던 광경에 야만인 전사들의 입에서 나오던 함성도 어느새 멈추었다. 전장에 적막이 흘렀다.

찰나의 정적을 깨며, 곳곳에서 부족장들과 대전사들이 외쳤다.

“차라리 잘됐다! 사다리는 버리고 그냥 빨리 달려서 들어가라!”

“저놈들이 겁을 먹고 항복을 하려는 것이다!”

“항복은 받아주지 않는다! 모두 다 죽여 버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전사들이 다시 전의를 가다듬고 돌격을 하려고 할 때, 한 전사가 중얼거렸다.

“쟤들……. 왜 나오는 거지?”

와아아아아아!

성안에서부터, 즈발터와 요새에 남아 있던 페르디움의 기사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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