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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용병은 다 계획이 있다-117화 (117/269)

117화 내가 다 먹는 게 낫다. (1)

“저도 간다고요? 제가 왜요?”

“그럼 나 혼자 가서 장사하리? 같이 가서 어떻게 팔지 고민해야 할 거 아냐.”

“아니, 저 할 일 많다고요! 바쁜데 어딜 가요!”

“웃기지 마. 나 없으면 바로 엎어져서 쉴 거잖아.”

지셀은 클로드가 어떤 놈인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저 열심히 할 거거든요?”

“말은 잘한다.”

지셀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뭐, 그 거짓말이 진짜여도 말이지. 어차피 쭉 장사하려면 한 번은 네가 와서 봐야 해. 수도부터 시작해서 왕국 전역에 팔 건데, 관리할 사람이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그럼 지금 여기 일들은요?”

“일단 큰 틀은 잡혔으니까 잠깐 감독하는 정도는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을 거야. 당분간 일 맡길 사람이나 구해 놔.”

“으으으…….”

클로드는 할 말이 없어 머리만 감싸 쥐었다.

사람을 구하더라도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자리를 비운 동안 작업 상황이 어땠는지 확인해야 하니 오히려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셀의 말대로 앞으로 화장품 판매를 총괄하려면 수도에 가서 판매처도 찾고, 유통 준비도 해야 한다.

현재 펜리스 상단의 상단주 역할까지 클로드가 맡고 있으니까.

물론 파는 건 하나도 없이 무언가를 사 오기만 하는 유령 상단이지만 말이다.

가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던 클로드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만요. 굳이 우리가 직접 팔아야 해요?”

“직접 안 팔면 어떻게 하려고.”

“그냥 신용 좋고 큰 상단에 팔죠? 그러면 그쪽에서 어떻게든 검증해서 귀족들한테 팔 겁니다.”

화장품은 그 정도로 효능이 확실한 물건이었다.

거대 상단이라면 사람을 구해 검증하기도 쉬울 것이다.

하지만 지셀은 클로드를 한심하게 보며 혀를 찼다.

“내가 왜?”

“아니, 그냥 큰 상단에 넘기면 편하잖아요?”

“우리도 상단이 있는데 그걸 아깝게 왜 넘겨?”

“우리 상단은 그냥 이름만 상단이지 인지도도 없고, 뭐 사 올 때 편하게 사 오려고 만든 것뿐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화장품을 시작으로 크게 키워야지. 직접 팔면 이윤도 우리가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다른 상단을 끼워? 난 내 걸 남에게 넘긴 적이 없다.”

클로드가 헛웃음을 지었다.

“와, 욕심 뭐야…….”

“그리고 다른 상단에 맡기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최대한 빠르게 판로를 만들고 돈을 마련해야 한다. 상단도 키워야 하니까 잔말 말고 그냥 따라와.”

“아니, 돈도 많으신 분이 왜 그렇게 급하세요? 룬스톤도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투덜거리는 클로드에게 지셀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부족해. 시간과 돈은 언제나 부족하다.”

‘공작가가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 그 전에 준비를 끝내야 해.’

당장 펜리스 영지가 공격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데스몬드는 지난 전쟁에서 진 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쪽보다는 레이폴드를 하루빨리 차지하는 데 더 힘을 쏟을 테니까.

그 틈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영지의 힘을 키워야 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지금 있는 돈도 부족하다.

‘룬스톤도 슬슬 한계가 보이고.’

아직 룬스톤이 떨어진 건 아니지만, 룬스톤을 대량으로 써야 하는 계획이 남아 있었다.

마탑에 넘겨줄 양까지 생각하면 아슬아슬하다.

‘다시 마수의 숲에 갈 여유가 없어.’

마수의 숲을 새로 개척하기에는 아직 전력이 부족했다.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마수의 숲 외에 다른 기반을 활용해야 했다.

‘연계할 세력도 만들어야 해. 발목이라도 잡아 줄 놈들이 필요하다.’

그저 화장품만 팔기 위해서 수도에 가는 건 아니었다.

델파인 공작가의 강대한 세력과 맞붙으려면 반대 파벌의 힘이 필요하다.

‘나 혼자서 공작가와 싸울 필요는 없지. 왕실도 델파인 공작이라면 이를 갈고 있을 테니까.’

지금이면 친왕파와 공작가의 대립이 점점 심화되고 있을 때니 이용하기도 좋다.

그들을 만나서 손을 잡아야 한다.

‘전쟁은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곳에서 시작할 거다. 전쟁을 걸어도 내가 먼저 건다. 내 땅에서 싸울 일은 절대 없어. 네놈들의 기반까지 박살 내 주지.’

지셀이 주먹을 꾹 쥐었다.

영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도 결국 공작가를 상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속내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매사 조급해하는 지셀을 이해하지 못했다.

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식량 문제도 해결했고, 룬스톤도 있고, 이젠 특산품까지 개발했다.

이대로만 있어도 펜리스 영지는 점점 발전할 것이다.

그런데 지셀은 뭐가 그렇게 급한지, 꼭 항상 뭔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이거 그거네. 백 퍼 누구한테 원한 산 거야. 아오, 미치겠네.’

지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기껏 히트 상품을 개발했는데 다른 상단에 넘기는 건 남 좋은 일만 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클로드는 화장품을 직접 팔러 다니기는 죽어도 싫었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상단 업무까지 늘어나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화장품이 팔리기 시작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바빠질 것이다.

“아! 진짜! 수도 갔다 오면 또 일이 어떻게 됐는지 점검해야 하잖아요! 나 혼자 언제 다 해요! 거기다 상단 일까지 하라고요? 싫어요! 싫다고요! 나 못해요! 그냥 죽이십쇼!”

급기야 클로드는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로 대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더 뽑으라니까. 다른 관리들한테 좀 일을 나눠 주면 되잖아.”

지셀의 말에 클로드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울상을 지었다.

“지금 그 사람들은 자기 일만도 벅차서 겨우 하고 있습니다. 맡은 분야 말고 다른 일은 아예 몰라서 서로 돕지도 못해요. 일도 뭘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음…….”

지셀이 생각해도 확실히 업무량에 비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수가 너무 적었다.

중요한 일은 지셀이 직접 진행하고, 클로드를 영입해 총관리직을 맡겼지만 여전히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두 사람이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한계는 있었다.

지셀도 그걸 알지만, 시간은 촉박하고 할 일은 많으니 계속 클로드를 쥐어짤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어. 그냥 네가 더 굴러……. 음? 잠시만.”

문득 지셀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 믿을 만한 놈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영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업무의 대부분은 처리할 수 있는 놈이었다.

그놈이라면 클로드의 보조로 적합할 것이다.

지셀은 갑자기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요새 힘들지? 사람 하나 소개해 줄까? 너 도와줄 만한 애를 하나 아는데.”

“여자예요? 예뻐요?”

“남자야.”

“……싫은데요.”

“그럼 계속 혼자 하든가.”

클로드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놈의 영주는 항상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물어보지만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누군데요? 영지 일을 맡기려면 진짜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해요.”

고양이 손 하나라도 아쉬운 판이긴 하다.

하지만 영지 운영을 맡기려면 최소한 글을 알아야 하고, 숫자 계산도 가능한 사람이라야 한다.

“그건 만나서 한번 확인해 봐. 바로 움직이자.”

“……지금요?”

“시간은 금이라니까.”

“아니, 뭐 이렇게 급하게……. 미리 연락이라도 해 두고 가야죠. 만나서 일하라고 하면 한대요? 그 사람이 거절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지셀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거절하면 죽는 거지.”

* * *

지셀은 클로드와 함께 옛 디갈드 백작의 성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겸사겸사 영지를 둘러보던 두 사람은 영지 상황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와, 여기도 상태가 만만치 않네요. 우리 영지 보는 줄. 아니, 이제는 우리가 훨씬 더 낫군요.”

디갈드 영지는 전쟁에서 진 뒤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페르디움도 돈과 사람이 부족해 디갈드 영지 쪽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그나마 지셀이 준 룬스톤으로 영지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보내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기껏 땅을 넓혔는데 세금은커녕 돈만 더 나가는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나중에 식량이라도 좀 보내 줘야겠군. 아니면 그냥 여기까지 내가 먹는 게 나으려나?”

“아주 대놓고 불효자네요.”

“아깝잖아. 페르디움에 맡겨 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지셀은 차후 펜리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디갈드 영지까지 받아 오기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땅을 놀리자니 아까웠지만 당장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펜리스를 발전시키는 데 온 힘을 다해도 모자라다.

지셀은 디갈드 성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지하 감옥으로 내려갔다.

“흐음, 그놈이 어디 있으려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놈은 빼 가지 말라고 했는데.”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하급 관리들은 이미 페르디움에서 죄다 데려간 상태였다.

하지만 한 사람은 지셀의 부탁으로 그대로 감옥에 처박혀 있었다.

“와, 못 보던 친구들이 많이 늘었네. 개판이네, 개판이야.”

감옥은 빈방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죄수들 대부분은 엉망이 된 영지에서 깽판을 치다가 새로 잡혀 온 범죄자들이었다.

지셀은 혀를 차며 죄수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겨우 찾던 사람을 발견했다.

남자는 그래도 특별 취급을 받고 있었던 건지, 그나마 깨끗한 방에 혼자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바로 엉터리 숫자 계산으로 지셀을 웃겨 살아남았던 로웰이었다.

“음, 이름이 로웰이었나? 그래도 아직 살아 있었네.”

해골처럼 비쩍 마른 로웰이 지셀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었다.

“누, 누구…….”

“나야, 나. 기억 안 나?”

“으허허헉!”

로웰은 엉덩걸음으로 후다닥 물러나 뒤에 있는 벽에 달라붙었다.

어두워서 한 번에 알아보진 못했지만, 저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페르디움에서부터 디갈드까지 짓쳐들어와 항복한 백작과 가신들을 모조리 죽인 자.

로웰에게 지셀은 끔찍하게 두려운, 사신과 같은 존재였다.

“저, 저기, 왜, 왜 오셨어요? 서, 설마 이제 저 죽이시려고요?”

감옥에 갇힌 직후에는 겨우 살았다고 안도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감이 좋지 않았다.

같이 갇힌 사람들은 모두 풀려났는데 자신만 계속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불안한 마음으로 매일 밤을 지새웠다.

나중에 사형에 처하려고 자신만 감옥에 내버려 두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 때문에.

그리고 결국 그의 목숨줄을 쥔 악마가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살려 주세요! 저 진짜 죄 없어요!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전 그냥 열심히 일했습니다!”

지셀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예전에 물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럼 750 곱하기 1920은 뭐지?”

“144만!”

빛과 같은 속도로 답이 나왔다.

로웰은 감옥 안에서 매일 그날의 대답을 후회하며 곱씹었다.

이렇게 말할걸!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클로드는 순식간에 나온 대답에 깜짝 놀랐다.

“아니, 뭐야? 뭐가 저렇게 빨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정도로 머리가 좋은 놈이라면 조금만 가르쳐도 금방 적응하겠는데?’

클로드가 얼른 지셀에게 말했다.

“이놈 저 주십쇼. 제가 잘 쓰겠습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예……. 근데 생긴 건 그냥 해골 병사 같네요. 여기 식사가 별로인가 보네.”

“감옥에서 못 먹어서 그렇겠지. 잘 먹이면 될 거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진짜 데려갈 거야?”

미묘하게 수상한 대화였다.

마음에 든다? 나를 달라고? 잘 먹이고 잘 쓰겠다고?

로웰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벽에 막혀 도망치지 못했다.

그때, 지셀이 창살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너, 나랑 같이 일 좀 하자.”

“무, 무슨 일 말입니까?”

“그거 알려 주기 전에……. 20년짜리 노예 계약서 하나 쓰지 않을래?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 보자는 뜻으로.”

“20년……이요?”

살아날 수만 있다면 20년이든 30년이든, 노예살이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 직전에 이어진 대화의 흐름이 너무 꺼림칙해서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셀은 잠깐 고민하다 혀를 차며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노예 계약이 싫다면야 강요할 수는 없지. 그럼 다른 거 골라 봐. 1번, 감옥에서 굶어 죽기. 2번, 사형. 선택지를 더 주다니, 나도 참 착해졌다니까.”

분명 강요는 아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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