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힘을 숨기고 즐기는 평화로운 하녀 생활-191화 (191/195)

191화

알 키우는 법.

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동그랗고 매끈한 타원형의 계란…… 아니, 새알을 떠올리며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알 키우기, 새알 관리하기, 매 양육법…….’

오늘만큼 다급하고 또 진지하게 서적 목록을 살핀 때가 없었다.

그러나 『조류 대사전』, 『가축의 진화』, 『신비로운 북대륙 생태계』등 웨더우즈 가문에서 훑어볼 수 있는 서적이란 모든 서적을 모아 확인해도, 원하는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그 어떤 멍청한 작자가 북대륙에서나 서식하는 매를 남대륙 도시 한가운데서 기르려 하겠는가? 그것도 심지어 갓 태어난 새알 상태에서!

떠올리고 보니 괜히 또 불안해진다. 이게 바로 천금 같은 자식을 통나무집에 버려두고 돈벌이하러 마을을 전전하는 어미가 된 기분일까?

나는 펼쳐둔 서적들을 내팽개치고 침실로 돌아갔다.

계절에 맞게 폭신하고 두꺼운 침구 정중앙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침대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춰, 그 안쪽에 자리한 연약한 존재를 확인했다.

매의 알.

이 알은 알에서 발견되었다.

……지극히 사실에만 기반한 문장에 설명을 덧붙이자면, 전자의 ‘알’은 이불로 꽁꽁 싸맨 이 알이고 후자의 ‘알’은 디안의 유산 중 하나였던 눈알을 가리킨다.

공성 무기와 다름없던 눈알의 목적이 단순히 웨더우즈 가문의 수호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 유산이 기를 쓰고 지키고 있던 물건은, 다름 아닌 눈알 안에 잠들어 있던 이 작은 생명체였던 것이다!

“하아. 걱정이야, 걱정.”

잘 자랄까 싶어 걱정이라고.

긴 여행을 끝내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웨더우즈 저택 침실에 고이 누워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현실감을 되찾기 무섭게, 디안이 남긴 다섯 개의 유산 중 하나였던 눈알이 깨졌다.

반 토막이 난 껍질 안에는 새하얀 서신 한 장과 작은 알이 들어 있었는데, 서신에 적힌 설명은 몹시 단출했다.

『한쪽 날개를 다친 회색 매, 애쉬를 기억하시나요?

이 알은 그 애쉬의 먼 후손입니다.

회색 매는 산란기에 두 개의 알을 낳는데, 다른 알은 멋진 성조로 성장시켜 북데우스 산맥으로 떠나보낼 예정입니다.

이 알은 당신에게 맡길게요.

겨울날 한 번 죽었던 알이라 새끼가 태어나도 많이 약할 거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하아.”

이것도 디안이 날 위해 남겼다는 그 안배 중 하나인 건가?

‘일단, 내게 뭐라도 하나 더 넘겨주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했다는 건 확실히 알겠어.’

하지만 나는 쥐새끼 한 마리조차 내 손으로 키워본 적이 없단 말이야. 괜한 걱정에 이불을 다시 들추자, 뒤통수 너머에서 하녀장의 날카로운 질타가 들려왔다.

“그만 들추세요, 주인님. 아무리 알에 들었다 해도 엄연한 생명체예요. 쑥쑥 크려고 자는 도중에 그렇게 훌렁훌렁 들추면 기분이 좋겠어요?”

그런가? 납득이 가는 논리라 얌전히 이불을 내려놓았다.

이어서, 침대맡에 쭈그렸던 무릎을 펴고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시야와 소리를 비롯해 내게 밀려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왜곡되면서 극심한 어지럼을 일으켰다.

“……아.”

“주인님! 괜찮으세요?”

부리나케 달려온 하녀장이 비틀거리는 날 부축했다.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녀장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내 몸을 번쩍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이불 안에 잠든 알을 조금도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안 돼! 내 알!”

나는 껍질이 멀쩡하단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편히 드러누울 수 있었다.

“제발…… 알을 소중히 대해줘…….”

“알겠으니 그만 중얼거리고 쉬세요!”

뒤늦게 안 사실로, 디안의 유산이 발동된 직후 나는 장장 2주간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하녀장은 주인 한정 건강염려증이 생겼다.

식은땀은커녕 지루한 얼굴로 널브러진 내 곁에 다가와, 따뜻한 물과 천으로 전신을 닦으며 간병하는 모습이 조금 짠했다.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건 일종의 가벼운 부작용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나는 네 개의 벽을 온전히 넘었다.

그 여파로, 신의 영역에 들어선 내 육체와 영혼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빠른 속도로 재구성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눈을 감고 집중할 때마다…… 익숙지 않은 감각에 전율이 일고는 했다.

아직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각성임을 알기에,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정비되기까지는 최대한 조심하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렇듯 예고 없이 힘이 방출될 때면 불편하기보다는 기꺼웠다. 내가 뛰어넘은 경지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오늘도 다르지 않다.

쿵, 쿵, 쿵.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면서 닫혀 있던 육감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나의 손아귀는 펜 로타 제국을 지나치고, 북데우스 산맥을 넘어 북대륙연합교국까지 뻗쳤다. 대륙 곳곳에 박힌 희미한 기운들 가운데 유독 선명한 기운이 눈에 띄었다.

활개 치며 유람하는 내 육감으로도 쉽사리 닿을 수 없는 그 힘.

로드 칼레파, 루의 힘이었다.

‘음, 역시…….’

같은 반신의 경지에 올랐어도 차이가 크구나.

아니, 오히려 같은 경지에 올랐기에 그 차이가 실감 난다고 해야 하나.

이제서야 루와 같은 길을 달릴 수 있는 출발선에 선 느낌이었지만……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긴 시간의 간극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루.

더없이 사랑스러운 이의 얼굴을 떠올리자니 입안이 쓰다.

기실, 나는 루를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확히는 찾아가지 않는 것에 더 가까웠다. 모종의 이유로 루가 인간의 지위를 돌려받아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부터였다.

아마 과거의 그와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바람은 하나다.

루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들이 즐비했다. 나타샤, 황실, 웨더우즈…… 이들을 비롯해 주어진 모든 의무와 책임을 다한 후, 루 앞에 서서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 연약하지 않다고.

당신과 대등한 존재로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일주일 내로 루를 찾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남은 이틀간 최선을 다해 잡일을 마무리해야 했다.

“아, 하녀장. 마침 도와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

내 목 부근을 열심히 닦아내던 하녀장이 이제 막 고개를 든 순간.

바깥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웨더우즈 자작은 지금 당장 황제 폐하의 명을 받으시오!”

그와 동시에, 우리 둘의 시선이 창밖으로 모였다.

* * *

베르단드는 고뇌했다.

고뇌의 온도는 차갑다. 근 10년 만에 일대를 뒤덮은 대폭설로 하늘이 뿌옇고, 그 하늘을 가로질러 방금 막 도달한 소식이 그 고뇌의 근원인 만큼 차디찰 수밖에 없었다.

찢긴 서신 봉투를 말없이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곧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궁정에 살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군.’

20년 전, 북대륙연합교국 소속 라흐벨페사 왕국에서 네리시퀸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베르단드는 친부를 이어 왕실의 시종장으로 임명되었다.

시종장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왕의 심기를 파악하고 비위를 맞추는 일이다.

당시 그가 섬겼던 왕은 라흐벨페사 왕정사에 이름난 성군이자 걸출한 재능을 지닌 책략가였기에, 베르단드는 시종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를 누리다가 로궤에 귀의했다.

라흐벨페사 선왕과 함께 보낸 시간은 그가 세 개의 벽을 넘고 칼레파로 성장하는 데 인상적인 영감과 깨달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그에게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한번 라흐벨페사 선왕의 시종장이 되겠느냐?’고 묻는다면, 베르단드는 지체 없이 아래처럼 답할 것이다.

‘절대, 절대로 아니 되오!’

십수 년을 걸쳐 깨달은 바에 의하면, 재능과 인성은 대체로 반비례한 경향성을 지닌다.

그리고 분야를 불문해 경지의 극에 달한 천재들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에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라흐벨페사 성왕이 그 대표적인 격이라, 시종장이었던 베르단드는 육체적 호사는 누리되 정신적 호사는 일말도 누리지 못했었다.

그의 스승이자 군주이기도 한 로드 칼레파께서도 그러하시다.

분명, 로드 칼레파의 무인으로서의 재능(이라 표현하기 애매한 감이 있었으나 어찌 되었든)은 스물 초반에 반신의 경지로 오를 정도로 위대하나…….

벌컥.

‘헉.’

고뇌에서 깨어난 베르단드가 주춤하며 물러섰다.

말없이 응시하고만 있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니, 문 따위가 저절로 열릴 일은 없지. 로드 칼레파께서 친히 마법을 부려 문을 열어 주신 게다.

“더 기다려 줘야 하나?”

“……아닙니다.”

재단에 걸터앉아 계시는 로드 칼레파께서는 한눈에 봬도 바쁘셨다.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고서와 서류를 훑느라 이쪽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셨고, 이 같은 상황은 닷새 내리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걸음을 옮긴 베르단드가 재단 위에 서신을 펼쳤다.

이어서, 저 홀로 꾸깃꾸깃 일어선 서신지는 둘로 갈라져 움직이는 종이 인형이 되었다. 오른쪽에 선 종이 인형이 왼쪽에 선 종이 인형을 향해 말했다.

―웨더우즈 자작은 지금 당장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시오!

로드 칼레파의 시선이 재단으로 향했다.

―웨더우즈 자작은 무릎을 꿇으시오.

왼쪽에 선 종이 인형이 답했다.

―싫은데?

베르단드가 70세만 더 어렸어도 흥미를 갖고 즐겁게 관람할 극이었다. 그러나 지난 닷새간 무려 세 번이나 직관한 종이 인형극에 흥미가 동할 리 없었다.

하나 로드 칼레파께서는 달랐다.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하찮은 종이 인형극에 집중하셨고, 종종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짓기도 하셨다.

분위기가 좋은 걸 봐선 오늘 종이극은 무난하게 끝…….

―웨더우즈 가문의 가주, 데이지 웨더우즈와 버클리그레이튼의 가주, 지하르크 버클리그레이튼의 성혼명을 내린다!

쾅!

로드 칼레파가 재단 위로 주먹을 내리쳤다.

가차 없는 난폭한 행동에, 한낱 종이 쪼가리가 볼품없이 짓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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