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195)

70화

너무나 뜬금없는 물음이라, 말리콥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이고 말았다.

“육체가 깨진다는 말씀은…….”

동시에 머릿속을 강타하는 사실이 있었으니.

‘설마 반쯤 시체로 보이는 저 하녀의 이야기인 것인가?’

놀랍군. 믿기지가 않았다.

‘저토록 젊은 청년이?’

말리콥스는 혼란스러운 기분으로 루의 질문을 되새겼다.

짧은 발언으로 추측하건대, 하녀 데이지는 이제 막 두 번째 경지에 도달한 듯했다.

‘두 번째 경지는 육체가 재정립되는 경지. 지금처럼 검에 관통된 후 깨달음이 있었다면, 상흔만 남고 빠르게 치유되어야 한다.’

말리콥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데이지를 살폈다. 무의식적으로 혀를 찰 만큼 안쓰러운 낯이었다.

게다가 상흔은커녕 봉합된 부분의 피가 여태 축축했다. 한눈에 봐도 육체의 재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심신일체의 진리가 통하지 않을 만큼 비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의심 가는 바가 있었다.

“레냐? 방으로 가서 레레리아 망원경을 가져오너라. 청록색 철제 상자에 있을 거다.”

“네, 네.”

그림자처럼 서 있던 레냐가 재빨리 방을 나섰다.

레레리아 망원경은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마도구이다.

본래 영혼 연구 목적으로 개발되었으나 성과랄 것이 없어 오래전 버려진 물건이었다.

말리콥스는 레냐가 챙겨 온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며 말했다.

“칼레파. 말씀하신 경우에게 관해서 제가 한 말씀 올릴 수 있을 듯합니다. 다만 데이지 양의 영혼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칼레파의 무언은 곧 긍정.

말리콥스는 조금 긴장된 기분으로 레레리아 망원경을 들었다.

상세하게 살핀 데이지의 영혼은 예상한 바 그대로였다.

“역시…… 데이지 양의 영혼은 외부에서 들어온 미지의 힘과 뒤엉킨 상태로 보입니다. 대단한 힘이로군요.”

영혼은 구의 형태를 가진다.

망원경으로 본 데이지의 영혼은 불투명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 안개가 바로 외부에서 유입된 미지의 힘이었다.

‘……아니, 잠깐. 뭔가 달라.’

이제 보니 안개는 구를 감싸고 있는 게 아니라, 산산이 조각난 구의 틈새를 채우고 있었다.

“맙소사.”

말리콥스는 본능적으로 안타까운 탄성을 내질렀다.

“이 아가씨, 살아 있는 게 맞는 겁니까?”

충격적인 광경에 말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영혼이 깨져 있습니다.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 유리 화병처럼 볼품없이 깨져 있어요. 외부에서 유입된 기운이 접착제 역할을 하지 않았더라면…….”

정상적인 영혼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었을 테다. 죽었을 거란 뜻이다.

“길어 봤자 10년이겠군요. 10년 내로 반신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 하녀는 죽습니다.”

웨더우즈의 하녀, 데이지는 죽음을 목전에 둔 운명이다.

슬프게도 희망은 없었다.

반신이라는 것은 평생을 바쳐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였으니까.

‘가엾은 것.’

어쩐지 루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 망가진 영혼에 대해 올릴 수 있다던 말은?”

말리콥스는 천천히 마른침을 삼켰다.

기실 그는 오래전, 데이지와 비슷한 영혼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음에도 아직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과거가.

“칼레파. 데이지 양이 두 번째 벽을 넘자마자 육체가 망가진 이유는…… 지금처럼 영혼이 무너진 상태이기 때문일 겁니다.”

“비슷한 영혼을 본 적 있나 보군.”

“예, 그렇습니다.”

말리콥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마도 전쟁 시대에, 7년 가까이 메피스토의 군대를 염탐해 왔습니다. 놈들의 목적은 깨달음 없이 심신일체의 경지에 도달해,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었지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약한 생체 실험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불사(不死)는 인류의 오랜 꿈이다.

로궤로 흘러들어 오는 신도의 일부는 불사에 매료된 자들이었다.

심신일체의 네 경지를 넘어 반신이 된 인간은 불사에 가까운 삶을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신일체의 벽은 높았고 사람에 따라 그 벽은 더욱 높게 느껴졌다.

삶에 굴곡이 적은 자일수록, 평탄한 생을 누려 온 자일수록 심신일체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

넘을 수 없는 벽이기에 더욱 간절했고.

가질 수 없는 힘이었기에 더욱 원통해진 일부 신도들은, 로궤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로궤의 방식은 구식이다! 특정 신도들에게만 유리한 방식을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는 계속 도태될 뿐이다!”

반기를 든 신도들은 새로운 ‘방법론’을 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기괴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고, 신도들은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북대륙연합교국에서 영영 추방당했다.

추방된 변절자들이 도착한 땅은 이곳, 펜 로타 제국이었다.

제국은 이들을 메피스토의 군대라 칭했다.

“실험 방식은 다양했습니다. 하나의 육체에 두 개 이상의 영혼을 섞거나, 하나의 영혼을 두 개 이상의 영혼으로 나누거나. 이미 벽을 넘은 강자나 동물의 영혼을 떼어 오는 경우도 있었고, 가장 순수한 영혼이나 심장을 삼키기도 했지요. 참혹하고 역겨운 수를 모두 동원했다고 보면 됩니다.”

말리콥스는 지하 신전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생체 실험을 떠올렸다.

“당시 저는 레레리아의 망원경이나 지형도 같은 잡화를 메피스토의 군대에 보급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진품을 입증하기 위해서 실험당하던 아이들을 상대로 망원경을 사용했었는데…….”

“비슷한 영혼이 보였나?”

“예. 데이지 양처럼 산산이 깨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보고 있기 심란할 만큼 크고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영혼들이었지요.”

“…….”

“그리고 안개처럼 퍼져 있는 미지의 힘이 그들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한둘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엿들은 바에 의하면, 망가진 영혼을 지닌 아이들은 육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실험에 유독 취약했다고 한다.

“그들은 실험 과정에 따라서 수명이 쉽게 연장되고 쉽게 줄어드는 특성이 있었지만……. 대체로 단명하고 말았습니다.”

보아하니 데이지는 첫 번째 경지를 무사히 넘긴 듯했다.

데이지의 깨진 영혼 사이사이를 촘촘히 채우고 있던 미지의 힘. 아마 그 힘 덕분에 버틸 수 있던 거겠지.

눈을 감은 채 귀 기울이고 있던 루가 그에게 물었다.

“구멍 난 영혼을 둘러싸고 있었다던 힘은?”

“힘의 정체를 여쭈시는 건지요?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억지로 먹였던 건 확실합니다. 먹기 싫다는 외침을 들었던 게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착각이 아니라면 이야기를 들은 루의 눈에 옅은 이채가 서린 듯했다.

“……‘먹는다’라.”

그러나 말리콥스는 그 눈빛을 모르는 척했고 이 이상 입을 열지도 않았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데이지는 칼레파가 소중히 여기는 존재였다. 괜한 말을 얹어서 화를 살 필요는 없을 테다.

‘저 하녀는 아마…… 메피스토의 군대에서 생체 실험을 당하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겠지. 공교롭게도 나이대 역시 딱 맞아.’

홀로 그리 짐작한 말리콥스는 아주 오랜만에 진득한 자괴감과 자기혐오를 느꼈다.

염탐이고 뭐고 대범하게 그 아이들을 구하려 했다면. 그랬다면, 지금쯤 더 많은 아이들이 살아 있었을 텐데.

‘데이지가 웨더우즈의 하녀로 일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운명이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돌봐 주는 게 맞겠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레냐가 옅게 얼굴에 화색을 띠며 운을 뗐다.

“데이지 님의 호, 호흡이 많이 안정되었어요! 저는 나가서 약을 구입해 올게요. 데이지 님을 잘 부탁드려요, 주인님.”

레냐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저택을 나섰다.

칼레파와 주인님이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대화를 나눈 것 같았으나,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그녀로선 그저 데이지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길어 봤자 10년이라고 했지?’

자신의 무모한 부탁을 받아들이던 데이지의 자신만만한 눈이 떠올랐다.

‘그래도 오, 올바른 식습관과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면 10년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지 몰라.’

내가 열심히 챙겨 줘야지.

데이지는 어려운 부탁을 들어준 친구이자, 뛰어난 다리미 기술을 전수해 준 동료이니까!

굳게 다짐한 레냐가 두 주먹을 움켜쥐고 저택을 나섰다.

* * *

목이 마르다.

목이 너무 마르다.

목이 너무너무 마르다.

목이 너무 너무 너무…….

목마름을 참다 지친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데, 데이지 님! 정신이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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