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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168화 (168/242)
  • 168화

    평평한 땅을 바라보던 남자들 몇이 털썩, 주저앉았다.

    다들 하나같이 제가 보는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비볐다.

    하늘 위를 날며 불길한 울음소리를 내던 새까만 까마귀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알아요. 제가 당신들을 위해 한 수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도로테아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고맙다는 말도 좋지만, 그 고마움에는 상응하는 사례금이 필요한 법이죠.”

    그대로 두었다면 마을을 배회하는 새타니(*아사한 아이의 원귀)가 샘에서 흘러나오는 사기에 영향을 받고 날뛰었을 터. 마을을 덮쳤어야 할 역귀를 막았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원한 것인가.

    ‘그렇다고 내가 목숨값을 내어 놓으라 할 만큼 야박한 인사는 아니니까.’

    그녀가 인심 쓰듯 사례금을 책정해 주었다.

    대도시가 아닌 외곽 지역이라 산수를 제대로 배운 이가 없을 수도 있을 테니, 가장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금액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지.

    “절반만 받을게요.”

    남은 것은 신에게 빚으로 지워 놓을 심산이었다.

    인간의 재산이라고 해 봐야 푼돈에 불과하니, 빚을 지운다면 차라리 신에게 지우는 것이 더 나을 터.

    도로테아의 관대한 결정에 감명 받은 남자들이 입을 떡 벌렸다.

    “미, 미친 계집이 도대체 무슨 짓을……!”

    부르르 떨던 남자 중 하나가 끝내 참지 못하고 도로테아를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사라한테 손댈 생각하지 마!”

    조그마한 몸 어디에서 그런 힘과 용기가 솟았는지 막무가내로 달려든 스탠에 밀려난 남자가 흙바닥에 나뒹굴며 신음했다.

    고분고분하던 아이의 눈에 새파란 불꽃이 튀는 것을 본 마을 남자 중 하나가 뒤로 주춤하니 물러섰다.

    얼핏 보면, 불가해한 상황을 눈앞에 두고 겁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이윽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누군가를 시작으로, 그들은 토굴이 있었던 자리를 파내기 시작했다.

    단단한 흙을 해치는 손끝이 갈라지고 피가 맺혔다.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도로테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충고를 건넸다.

    “땅을 개간할 시간이라면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터이니, 그보다는 슬슬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닥쳐!”

    숨을 몰아쉬던 누군가가 거칠게 대꾸하자, 새카만 눈을 가진 소녀가 싱긋 웃었다.

    도로테아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흙을 파내고 있는 남자들의 등 뒤에 섰다.

    “두 번 다시 내가 마을로 돌아오지 않길 바랐던 아주머니는, 나귀를 타고 먼 길을 돌아 숲 어귀에 나를 묶어 두었어요.”

    소녀는 나긋나긋, 마치 동화를 읽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매듭을 푼 후에도 나는 아주머니가 원하는 대로 마을이 아닌 이곳으로 왔죠.”

    “…….”

    “다만 안타깝게도, 나귀를 탄 아주머니의 흔적을 발견하고 뒤를 쫓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힘겨운 군 생활을 견디지 못한 채 도망친 탈영병 무리.

    몇 날 며칠을 추적자들에게 쫓기느라 쉬지도 못한 채 굶주린 이들은 눈이 뒤집혀 있었을 터.

    삼 일을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는다고 했던가.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나직한 목소리에 다들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이윽고 그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남자가 벌에 쏘인 것처럼 펄쩍 뛰고는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를 시작으로 새하얗게 질린 이들이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사라.”

    “응?”

    “정말로 탈영병들이 마을에…… “

    하얗게 질린 스탠이 말끝을 흐렸다.

    도로테아는 그런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았다.

    “저들이 겪게 될 불행이 안타까워?”

    “…….”

    “애초에 스스로가 자초한 불행인데도?”

    스탠이 한숨을 삼켰다.

    “저들이 얼마나 많은 ‘갈 곳 없는 아이’를 희생시켰는지, 알아?”

    “…….”

    “너의 자유와 삶을 바침으로써 자기네들의 행복을 꾀했어. 욕심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아서 새로운 아이를 들이고, 그 아이가 말라 죽으면 또 다른 아이를 들였으며, 급기야는 커진 탐욕을 제어하지 못해 선심 쓰는 척 네게 지독한 것을 먹였지.”

    조곤조곤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스탠이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사라?”

    “…….”

    도로테아는 그제야 저들을 볼 때마다 들었던 역한 기분과, 물 아래에 가라앉은 것처럼 축 늘어진 무기력함의 까닭을 이해했다.

    이들의 만행은 꼭, 과거의 명재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면 아이는 그것을 진실로 믿어.”

    가족이기에 희생해야 하는 것이라고.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에서, 기꺼이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사라?”

    조심스러운 부름에 도로테아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구물구물, 벌레가 제 머릿속을 기어 다니는 것처럼 불쾌한 기분의 정체를 알아내자 한결 눈앞이 선명해진 기분이었다.

    고개를 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우리도 마을로 가는 것이 좋겠어.”

    스탠의 눈이 커졌다.

    우리라고 했어. 분명히.

    처음으로 누군가와 ‘우리‘라는 단어 안에 묶인 순간, 가슴 한편이 간질거렸다.

    소년이 멍하니 그 여운에 젖어 있자 도로테아가 입을 열어 재촉했다.

    “마을로 가고 싶어 한 것 아니었어? 사람들이 불행하지지 않길 원했던 거 아니야?”

    “응.”

    “그럼 가야지.”

    “괜찮아? 사라 넌…….”

    이상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을 싫어하잖아.

    머뭇거리는 스탠을 흘끗 바라본 도로테아가 담담하게 말했다.

    “가서, 직접 보아야지. 저들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과연 그들을 덮친 필연적 비극 앞에서 스스로의 죄를 뉘우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명재신의 죽음으로 역살(逆殺)을 맞게 되었을 가문의 사람들은 어찌했을까. 부적을 덕지덕지 발라 제 몸 안에 가둬 놓았던 액은 상상 이상으로 사납게 날뛰었을 텐데.

    ‘가진 모든 것들이 부질없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았을 그들은, 과연 후회했을까?’

    나를 희생시킨 것을. 그로 말미암아, 결국 더 큰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된 것을.

    이생으로는 결코 그치지 않을 인과의 업보가 혼에 새겨져, 생을 거치고 거치는 동안에도 차마 갚지 못할 죄를 뉘우치고 반성했을까?

    그럴 리가.

    ‘그 모든 것이 죽음으로 도망친 나의 탓이라며 원망하고 울부짖었을 테지.’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진 ‘제물‘의 희생이었으니.

    멀리 보이는 마을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도로테아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 가서 네 눈으로 직접 보아야겠다면 가야겠지.”

    소녀는 영문을 몰라 눈을 끔뻑이는 스탠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얼른 내 앞에 와서 등을 가져다 대.”

    “내, 내가 업으라고?”

    마치 언제나 그래 왔다는 듯이 몹시 당연하다는 어투였다.

    쭈뼛쭈뼛 다가온 스탠이 순순히 그녀의 앞에 등을 가져다 대자, 몸집 차이도 그리 크게 나지 않는 소년의 등에 업힌 도로테아가 슬쩍 제 손끝을 통해 혼력을 불어넣었다.

    “가자. 이제.”

    “응.”

    툭하면 핀잔을 주거나 구박을 해 대던 권속에 비해 훨씬 고분고분한 소년의 등에 얼굴을 묻은 도로테아가 눈을 끔뻑였다.

    살아 있는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심장 소리가 규칙적으로 귓가를 두드렸다.

    쿵. 쿵. 쿵.

    소녀는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여 그 심장 소리에 맞춰 손가락을 두드렸다.

    *   *   *

    한편, 미적거린 가짜 남매보다 한발 일찍 마을에 도착한 사내들이 마주하게 된 것은 한편의 지옥도(地獄道)였다.

    날름거리는 화마가 마을 전체를 덮친 가운데 무장한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날카로운 검을 찬 이들 앞에 수척한 얼굴로 팔과 다리를 결박당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퀭한 얼굴에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운 남자들은 하나같이 검붉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초점이 풀린 눈으로 덜덜 떨고 있는 손끝에 묻은 붉은 피가, 유독 눈에 밟혔다.

    “여보!”

    그때였다.

    누군가의 새된 목소리에 남자가 고개를 들고서 눈을 부릅떴다.

    멀리서 그을음에 얼굴이 지저분해진 여인이 달려와 통곡했다.

    “에밀리! 다른 이들은 어디 있소?”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은 여인은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울다, 겨우 추스른 듯 입을 열었다.

    “저기, 저, 저…….”

    연기가 새어 나오는 창고를 가리키며 더듬더듬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을에 괴물들이 왔어요. 괴물들이…… 저 괴물들이 모두를…… “

    “죽었소? 다 죽었단 말이오?”

    여인의 눈이 활활 타오르는 창고 건물을 향했다.

    다시 한번 울음을 터뜨리며 도리질 친 여인이 뭉개져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웅얼거렸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이해할 수가…… 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정신 좀 차리고 똑바로 말해 보시오!”

    “저도,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들 처음에는 그냥 저 미친놈들을 피할 생각이었어요.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면서, 저희가 가진 것을 다 주겠다고 해도 듣지도 않았다고요.”

    벼려진 검에 무수히 뿌려진 피에 들러붙은 사기가 검의 주인을 홀린 것일까.

    목적조차 잊고 흥분한 채 검을 휘둘러 대던 자들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은 어느 순간 홀린 듯 저 창고로 몰려들었다.

    평소에는 아이의 생사를 확인할 때나 겨우 들여다볼 법한 창고로.

    “그러더니 문이 닫혀 버렸어요. 그렇데 여보…….”

    고개를 드는 여인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 서렸다.

    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창고는, 분명 안에서 문을 잠굴 수 없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스스로 문을 잠군 채 불타고 있는 창고 안에서 나오질 않는 거죠?

    떨리는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몇몇은 창고 앞으로 달려가 뜨겁게 달아오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상을 입은 듯 손이 발갛게 부어올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레인! 베카!”

    “헤렌!”

    “진!”

    저마다 소중한 가족들의 이름을 목 놓아 외치며 문을 두드렸지만, 단단히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꿈쩍도 않는 문을 두드리던 남자 중 하나가 그레함 일행을 향해 다가가 애원했다.

    “사람들이, 사람들이 저 안에 있습니다! 나으리, 제발 도와주십시오!”

    “문 안쪽으로 진입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불길이 너무 거세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연기가 너무 자욱합니다. 저 안에 있는 이들은 어쩌면 진작…….”

    제타가 씁쓸하고 불편한 얼굴로 설명했지만, 그의 귓가에 그 설명이 제대로 닿을 리 없었다.

    윙, 하고 이명이 그의 귓속을 가득 채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 어떤 문제조차 없었는데.

    문을 두드리던 남자는 마을을 덮친 거대한 참극 속에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레함은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다 결박되어 있는 탈영병들을 내려다보았다.

    검을 들어 무자비하게 사람의 목을 베고, 남은 사람들을 모두 불태우려 든 ‘괴물’들은, 막상 붙잡히고 나자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땅에 처박은 비굴한 인간에 불과했다.

    울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움츠러드는 탈영병의 왜소한 어깨를 보던 제타가 고개를 돌렸다.

    “제발 도와주시오. 저기 들어가서 아이들을 좀 구해 주시오!”

    눈이 벌게진 사내의 말에 그레함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그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당신네들은 이자들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실력을 가지지 않았소!”

    “돈이라면 얼마든 주겠소! 얼마든지 있소이다!”

    사내 중 하나가 헐레벌떡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품 안의 묵직한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원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순간, 제타의 미간이 좁아졌지만 이미 눈이 뒤집힌 이들은 그의 미미한 표정 변화를 보지 못했다.

    “일개 인간이 화마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으아아!”

    참다못한 마을 남자들 중 하나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탈영병을 향해, 화풀이하듯 달려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짜악-!

    가까스로 살아남은 여인의 뺨을 있는 힘껏 내려치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주먹을 쥔 빌리가 보였다.

    분노로 인해 눈이 돌아간 그가 여인을 다그쳤다.

    “그 꼬마 계집을 숲까지 끌고 간 게 정말 너야!?”

    “여보.”

    바닥에 주저앉은 채 펑펑 울고 있는 여인을, 바로 곁에 있던 노인이 재빠르게 감쌌다.

    “아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겨우 살아나온 사람에게 왜 이리 모질게 굴어?”

    “애들은 저 머저리 같은 여인네 때문에 죽은 겁니다!”

    빌리의 말에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한 차례 정적이 지나고, 여인을 품에 안고 감싸던 노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냐? 응?”

    “저놈들이 어떻게 우리 마을을 이렇게 빨리 찾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바로 이년 때문입니다. 이년이 아까 낮에 나귀를 끌고 숲에 다녀온 흔적을 보고 쫓아온 거라고요.”

    그의 말뜻을 이해한 순간, 여인을 품에 감싸고 있던 노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울먹이는 여인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보던 노인이 주춤주춤 멀어졌다.

    마을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할린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저들은 뒤늦게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탈영병들은 모두 이곳에 결박되어 있고, 마을 사람들 중 이 아수라장을 빠져나가 저들에게 소식을 알렸을 만한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사건의 전말을 미주알고주알 알려 주지 않고서야 이토록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을 리 없을 텐데.

    “제가 알려 드렸어요.”

    어디선가 앳된 소녀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고개를 든 그레함이 스탠의 등에 업힌 채 이곳을 향해 오고 있는 낯익은 소녀를 발견했다.

    아주 자연스레 남의 등에 업혀 등장한 소녀가 반가운 듯 웃음 지었다.

    “또 보네요, 아저씨들.”

    “넌 아까 숲에서…… “

    할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도로테아는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잡혀 있는 탈영병들을 둘러보다, 시선을 돌려 불타고 있는 창고를 바라보았다.

    활활 타오르며 열기를 뿜어내는 창고는 자욱한 연기 탓에 반쯤 가려진 상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저들의 방문이 빨랐네요. 어쩌면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쉽게 됐어요.”

    유감이라는 듯한 소녀의 말은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더군다나 소녀는 스탠과 함께 마을에서 ‘희생양이 되어도 상관없을’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다.

    “으아아아!”

    마을 남자 중 하나가 괴성과 함께 도로테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피하지도, 움츠리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를 새까만 두 눈에 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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