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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술사 도로테아 (115)화 (115/242)
  • 혼술사 도로테아 115화

    그렇게 필립과 데인을 두고 도망치듯 극장을 빠져나온 두 사람이 탄 마차에 정적이 흘렀다.

    아직도 헉헉거리는 메릴린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제아무리 성질이 더럽고 못돼 처먹은 코니움이라도, 당장 협력해야 할 이가 숨이 넘어가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는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숨 쉬어. 그러다 넘어간다.”

    “후우, 결국 해냈어요. 다행이네요.”

    “…….”

    그걸 해냈다고 하는 건가.

    그게 정말 해낸 게 맞긴 한 건가.

    방금 전의 상황이 떠오르자 마음이 더욱 착잡해진 코니움은, 별안간 가슴이 갑갑해지는 느낌에 목의 단추를 두어 개 풀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운 풍경을 내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말 이렇게만 하면 된대?”

    “도로테아 영애의 말은 이제까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꽤 믿는 모양이다?”

    절대적인 확신으로 가득한 목소리에 빈정거리듯 말하자 갑자기 메릴린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믿는다기보다는 믿지 않을 때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괜히 영애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가 걸어 다니는 시체를 마주한다든가, 아픈 아이의 몸에 내리는 신내림을 보게 된다든가, 납치까지 당한 와중에 공중 부양하는 새까만 후드가 펄럭이는 걸 본다든가…….”

    “…….”

    “믿고 따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아래 체념 어린 눈동자를 마주한 코니움이 떨떠름하게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녀는 메릴린의 말을 절반도 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눈동자 속 가득한 두려움과, 말 속에 녹아 있는 확신을 보니 영 헛된 일은 아니라 느꼈을 뿐이다.

    “근데 마지막에 그렇게 튀어도 되는 거야?”

    “네, 도로테아 영애가 그러라던데요.”

    “영애께서는 이제 도주하는 것만큼은 이골이 나셨으니 우선 사람들의 이목을 끈 뒤, 그 누구보다 빠르게 그 자리에서 도주하세요. 수상하다는 티를 팍팍 내 주시면 충분해요.”

    빙긋 웃으며 그렇게 조언한 도로테아의 말대로 미친 듯이 달려 마차에 올라탄 메릴린이 눈을 깜빡였다.

    코니움이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제국의 3황자잖아? 심지어 처벌을 받고 있던 와중에 황제의 눈을 피해 도주한 거라며. 아무리 모자란 놈이어도 이런 미끼에 낚이겠어?”

    “글쎄요.”

    주어진 역할을 해냈으니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을 한 메릴린이 등을 뒤로 기댔다.

    종잡을 수 없는 ‘계획’에 의구심을 갖고 있던 코니움은, 놀랍게도 그 이튿날 레어 남작가의 저택 주변에서 몹시 수상쩍은 남자와 조우했다.

    ‘설마 했는데…….’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흐트러진 차림새를 하고 있긴 하지만, 관리되지 않은 머리며 차림과는 달리 묘하게 당당한 태도를 지닌 남자였다.

    한때 그 누구보다도 찬란한 영광을 누렸을 그의 고개는 여전히 뻣뻣하기 그지없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이들을 부리는 법부터 배운 오만한 눈동자가 코니움을 훑었다.

    한참을 가만히 그녀를 들여다보던 리처드가 입을 열었다.

    “네가 스카뎀 백작가의 영애인가?”

    코니움은 곧바로 답하는 대신, 경계 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리처드는 그녀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금 물었다.

    “오래 전, 작위를 박탈당하고 가문의 재산을 몰수당한 뒤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지?”

    “……누구시죠?”

    뜸을 들이던 코니움의 갈라진 목소리를 들은 리처드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먼저 말을 걸긴 했지만, 눈앞의 여인은 평소의 그라면 절대 상대할 리 없는 인물이었다.

    평민이나 다름없는 몰락 귀족 출신에, 붕대로 칭칭 감아 놓은 괴물 같은 얼굴을 보라.

    말을 섞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한 듯 했다.

    ‘나는 뭐 신나는 줄 아나.’

    코니움 또한 불쾌하긴 마찬가지였다.

    제 잘못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저를 끌어내린 누군가를 향한 지독한 증오만이 느껴지는 탁한 눈을 외면한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누구신지는 모르오나, 사람을 잘못 찾으셨습니다.”

    슬쩍 상대를 밀어내는 코니움의 말에 리처드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냈다.

    “예를 갖추거라! 내가 바로 이 제국의 3황자이니라.”

    “…….”

    설마설마했건만.

    아무리 그래도 제국의 황자로 태어나 그 능구렁이 같은 황제 아래에서 구른 자식이, 설마 그렇게 단순하고 어리석을까 싶어 믿지 못하던 것이 무색했다.

    ‘진짜로 여기에 낚였다고?’

    파닥대며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 대는 먹잇감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코니움의 반응에 리처드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출신 탓인가. 황족을 보고도 제대로 된 예법조차 갖추지 못하는 무지렁이로군. 하긴 잘나가던 가문이 몰락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

    그렇지만 그녀는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그에게 좋은 패가 되어 줄 것이다.

    리처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까닭을 알고 싶지 않나?”

    “…….”

    “내가 진실을 알려 주는 대신, 너는 내게 협력해야 한다. 네 부모의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마.”

    병사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한 리처드를 보던 코니움이 황급히 그를 잡아끌었다.

    어쩐지 낚아 올리자마자 일단은 숨기라더니 이유가 있었네.

    ‘가만히 두면 잡혀 들어갈 만큼 허술하고, 머리도 나쁘고, 상황 파악도 못 하는 인물이잖아.’

    그런 허접한 연극이 먹히리라 다들 확신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거다.

    *   *   *

    그렇게 리처드를 성공적으로 낚아 올렸다는 소식이 적힌 서신을 확인한 도로테아는 옆에 있던 촛불에 서신을 태웠다.

    한 줌의 재가 되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린 소식을 뒤로하고, 그녀는 좀 더 고차원적인 연극을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저자는 매일같이 이곳을 방문할 모양이로군.”

    “으음.”

    “꼭 다른 이들이 보란 듯 티를 내면서 말이야.”

    옅은 미소를 띤 도로테아가 창 너머로 정원을 서성거리고 있는 남자를 훑었다.

    우드는 몹시 껄쩍지근한 얼굴이었다.

    “실로, 저것이 모두 연기란 말이지?”

    정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는 도로테아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뿐사뿐 복도로 나가는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펠릭스였다.

    “클라이브 경의 제자라 했던가. 젊은 정령사가 오늘도 저택을 방문한 모양이로군.”

    “네, 그러네요. 폐하께서는 사절단이 머무르는 동안 불편함이 없게 하라 명하셨으니, 저렇게 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고는 하나, 지나치게 가까이하는 것도 곤란하다. 폐하께서는 널 타국으로 보낼 생각은 없으실 터.”

    괜한 염문을 뿌리고 다닐 필요는 없다는 충고에 도로테아가 빙긋 웃었다.

    조카의 영민함을 알고 있는 만큼 펠릭스의 진중한 얼굴에 묘한 빛이 떠올랐다.

    물론 단순한 ‘접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한들 과한 건 과한 거였다.

    답지 않게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도로테아 하이클레어.”

    “…….”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을 해도 좋겠지만, 스스로를 해하는 것은 불허(不許)한다. 그것만큼은 너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아서라도 해서는 안 돼.”

    스스로 추문을 만들어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그녀의 속내를 꿰뚫은 말에 도로테아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무뚝뚝한 말 속에 다정한 걱정을 숨긴 서툰 큰외숙부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제가 이제까지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사교계에 발걸음하지 않아도 무시당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 가문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임을 알아요.”

    “…….”

    “그러니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또 외숙부께서는 저를 위해 해 주실 수 있는 일을 하시면 되는 거죠. 그리 속상해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는 다치지 않을 테니까.”

    복잡한 귀족들의 속내에 맞춰 아양을 떨 생각은 없다.

    필요하다면 이용할 테지만 스스로를 낮추거나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것은 하이클레어 가문이 뒤에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겠지.

    그러니 나는 인외의 일들을.

    현세에 머무르는 망자의 혼들을 데려다 장난을 치는 부정한 존재들이 나의 소중한 이들을 해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해 지켜 보일 뿐.

    그런 조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펠릭스가 이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서툴기 그지없는 손길이었지만, 적어도 두 아들에게는 그것조차 해 준 적이 드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발전임에 틀림없었다.

    “에드윈이 필립에게 가문의 직속 정보원들을 부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으면 하더군.”

    “…….”

    “허가하마. 다만 아버지께는 네가 직접 말씀드리거라.”

    손에 쥐어 준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패를 내려다보던 도로테아가 어느새 멀어져 가는 펠릭스의 등을 보다, 이내 정원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부정한 탁기(濁氣)가 저를 몹시 불쾌하게 만들었다.

    *   *   *

    “세상에, 그 이야기 들으셨어요?”

    “하이클레어 후작 영애 말이지요?”

    “그저 소문일 뿐이겠지요. 설마…….”

    “글쎄요, 저도 실은 로헨 왕국의 젊은 정령사가 직접 후작가 저택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지라. 그저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그럼 그게 진짜로…….”

    도로테아 하이클레어가 알렉세이의 구애를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사교계에 파다하게 돌았다.

    두 사람이 이미 미래를 약속한 사이이며, 천재적인 재능을 갖추었다 여겨지는 그녀가 대정령사의 산하로 들어갈 것까지 이야기되었다고.

    뜻밖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다들 어안이 벙벙해했다.

    한쪽에서는 도로테아와 같은 인재를 놓치게 생긴 상황에 망연자실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마어마한 재능의 준수한 정령사에게 구애받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또 누군가는 그녀를 시기 질투하고, 또 누군가는 그런 그녀를 몹시 배은망덕하게 여겼다.

    이를테면 제국의 황태자라든가.

    “타국의 사절단과 친밀하게 지내라는 것이 제국을 배반하고 그의 손을 잡으란 뜻이었던가!”

    도로테아는 제 앞에서 열을 내는 황태자를 바라보다 태연하게 앞에 있는 차를 홀짝였다.

    몸이 달았겠다 싶긴 했지만, 설마 저택으로 찾아올 줄이야.

    어지간히도 조급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3황자의 일이 있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스스로도 궁에서 자숙을 자처해야 할 만큼의 타격을 입었는데, 인재를 타국으로 반출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면 곤란하겠지.

    “영애는 분명 내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도로테아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찻잔을 내려놓고 빈 접시를 만지작거렸다.

    “글쎄요, 저는 분명 제국에서 저를 위협하는 존재가 사라진다면 감사히 황태자 전하께 협력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만.”

    “…….”

    “3황자 전하께서는 모습을 감추셨고, 저는 매일을 불안과 공포에 떨며 싸우고 있습니다.”

    막 황도로 귀환했을 때와는 달리 홀쭉하던 볼에 다시 살이 차오르고, 창백했던 안색에는 혈색이 돌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리카락에 앵두같이 고운 빛을 내는 입술까지.

    그 어디를 보아도 매일 밤 공포와 불안에 떨며 잠을 설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황태자가 제 미간을 꾹꾹 누르며 답했다.

    “그 아이가 그리 발 빠르게 도망칠 줄 난들 알 수 있었겠나! 그렇다고 해서 로헨의 작자들과 어울리다니!”

    황태자는 신경질적인 눈을 하고 도로테아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조건을 완성해야만 그의 조건을 들어주겠다는 듯이.

    “지금은 내 휘하의 병사들을 풀어 그 애를 수색할 수 없어! 설령 잡아 온다고 하더라도 내 손에 붙들려 온 아이가 숨을 거두면 다들 무어라 생각하겠나!”

    다들 황태자의 비정함에 혀를 내두르겠지.

    그리고 휘하의 세력 또한 흔들릴 테고.

    사람이라는 것은 참으로 간사해서, 이미 오랜 시간 겪었으니 그가 어떤 성정을 지녔을지 모를 리가 없을진대.

    꼭 눈앞에서 그의 잔인함과 무정함을 직관해야만 비로소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실감’한다.

    도로테아는 여전히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만을 얻고 싶어 하는 황태자를 향해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글쎄요, 전하. 새로이 군주가 되실 분은 사사로운 정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짐승을 처단할 수 있는 결단력이 있겠구나, 할 테죠.”

    네게는 그럴 배짱도 없을 뿐더러 그럴 수 있는 그릇조차 되지 않지만.

    도로테아를 바라보는 황태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이라도 저 건방 떠는 계집을 바닥에 굽히고서 머리를 조아리게끔 만들고 싶을 테지만 그럴 수 없음을 그도, 그녀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저, 메릴린 영애께서 오셨습니다.”

    “다음부터는 미리 말씀을 하고 오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릴린과의 선약이 우선이었으니, 먼저 자리를 비우는 것을 양해해 주세요.”

    도로테아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그의 앞을 지나, 어리둥절해하는 메릴린에게로 갈 때까지도 황태자는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3황자와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두 사람이 동복형제라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   *   *

    “황태자 전하의 마차를 봤어요.”

    “그분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셨으니까요.”

    “최근 도는 소문 때문이죠?”

    “네.”

    짤막한 답에 잠시 입술을 달싹이던 메릴린이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무엇이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물어봐도 좋아요.”

    “아뇨, 어차피 영애는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을 거니까요.”

    “어머? 전 메릴린에게는 거짓말한 적이 없는데요.”

    거짓말은 한 적이 없지만 말을 이상하게 꼬아서 하는 바람에 꼭 사람을 식겁하게 만들고서 은근히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건만.

    메릴린의 얼굴이 짜게 식었다.

    “저분은 그래도 황태자 전하시잖아요. 적당히 하세요, 적당히.”

    “난 정말 별거 안 했어요.”

    그가 먼저 자신의 아랫사람이 되라 했고, 조건을 말했을 때 들어주겠다고도 맹세했다.

    일방적으로 맹세를 파기한 것도 그가 아닌가.

    “그래서 아무튼, 연회를 앞두고 중요하게 해야 한다는 준비가 뭐예요?”

    눈을 가늘게 뜨고 추궁 아닌 추궁을 하던 메릴린의 물음에, 도로테아는 이미 연무장에 나와 몸을 풀고 있는 에이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사랑스러운 조카와 그의 친구를 맞이하는 에이든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연회 준비해야죠.”

    “……네?”

    “간단하게 우선 낙법하고 보법, 그리고 맨손 격투의 기본을 익힐 거예요. 아, 무기술까지 익힐 수 있다면 더 좋겠네요.”

    산뜻한 어조로 꺼낸 경악스런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메릴린의 얼굴이 점차 파랗게 질렸다.

    “영애.”

    “네?”

    “연회에서, 무슨 짓을 하려고요.”

    메릴린이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뻗어 도로테아의 멱살을 움켜쥐자, 에이든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벌써 연습을 시작했구나. 저리 열정적이니 가르치기도 좋겠지. 내 사양하지 않으마.”

    연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 각자 다른 속내를 지닌 자들이 각자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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