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술사 도로테아 (7)화 (7/242)

혼술사 도로테아 7화

기름을 놓아 불을 지른 덕에 저택은 빠르게 불타올랐다.

매캐한 연기에 근처에 살던 이들이 잠에서 깼을 땐 저택은 이미 반쯤 재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마샤 일가를 살해한 후 불을 지른 게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말입니다. 도대체 그게 누구냐는 거죠.”

조사를 맡은 치안대에서도 골머리를 앓았다.

저택이 모조리 타 버리는 바람에 물증이 될 만한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거였다.

거기다 밤중임을 감안해도 목격자 하나 없었다.

“분명 금품을 노린 범행은 아닙니다.”

고가의 금붙이들이, 타고 남은 재 사이에서 발견된 걸로 보아 범인이 챙긴 것은 없었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여겼으나, 조사에 협력하기 위해 온 신관은 다른 의견을 냈다.

“이토록 정순한 기운을 가진 땅은 오랜만에 봅니다.”

“그럴 리가요. 여러 명이 이곳에서 죽었는데…….”

“성지라 불리는 풍요의 땅도 이보다 더 정순하고 맑지는 않았을 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신전을 짓도록 권하고 싶군요.”

신관은 별다른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감탄만 하다 돌아갔다.

“어차피 귀족도 아닌데요. 고작해야 동네 유지 아닙니까. 살인범이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뭐 큰 문제야 있겠습니까. 거기다 평도 그렇게 좋지 않았던 것 같고요.”

“그거야 그렇지만…….”

“아직도 여자애들과 함께 있던 그 남자가 마음에 걸리십니까?”

“…….”

치안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죽은 마샤 부인이 어린 여자아이를 돌보아 주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녀의 저택을 찾았다.

낡고 허름한 집에 왜소한 여자아이 둘, 그리고 체격 좋은 남자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함께 지내고 있었다.

하녀 아이가 남자의 존재를 설명했다.

“제 친척 오빠인데 고향에서 신붓감을 찾아 여기까지 온 거예요.”

“본인 마을에서 찾아도 될 텐데, 굳이 이 구석까지?”

“가진 재산이 별로 없어서요. 게다가 저희도 함께 머무르며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거든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기까지 흘러들어 올 만한 인물이 아닌데…….”

“대장님.”

그의 보좌관이 정색했다.

“요즘 얼마나 구혼 문제가 심각한데요.”

“그러냐?”

“본인이 똑똑하고 예쁜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남들도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으르렁거리는 보좌관 또한 미혼이었다.

“편하게 연애하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즐기다 보면 말이죠.”

그의 눈이 아련해졌다.

“눈 깜짝할 새에 젊음은 사라지고 저축도 없고 상대도 없고. 인연을 만나려면 산 타고 물 건너오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

너 그렇게 힘들었냐.

치안대장이 할 말을 잃고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서류에 조사 종결 인장을 찍었다.

신관조차 그 사내에게서 살업의 흔적을 찾지 못했으니…….

사건은 결국 범인을 찾지 못한 채 미결로 남았다.

*   *   *

도로테아는 모처럼 생긴 다리를 적절하게 써먹었다.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부탁들이 하루에 수십 번씩 이어졌다.

노루의 배설물을 구해 오라는 요구는 약과였다.

강가의 흙을 퍼 오라 시켜 놓고는 몇 번이나 퇴짜를 놓아 다시 돌아가게 만든 적도 있었다.

“이것보다 조금 더 붉고 진득해야 해요.”

“흙이 다 흙인 게지.”

“다시 가져와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앙상한 몸은 위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우드는 도로테아의 눈과 마주할 때마다 몸이 굳었다.

조그마한 소녀에게서 장군의 기백을 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면 자신은 순한 양처럼 그녀의 지시에 따르고 있었다.

“다시 다녀오마.”

“이번에는 제대로 가져와요.”

울컥했지만 터벅터벅 걸어 저택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를 보던 제인이 쪼르르 다가와 도로테아를 향해 물었다.

“왜 애써 얻은 다리를 괴롭히고 그러세요?”

“괴롭히지 않았어.”

그녀가 담담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저 필요하니, 요구했을 뿐이다. 적절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돌려보낼 뿐이고.

제인이 눈치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 못마땅해 어쩔 줄 모르더니만 몇 번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니 이내 마음이 바뀐 모양이었다. 마샤 부인 일가의 죽음으로 생긴 꺼림칙함은 우드가 생고생하는 모습을 보는 며칠 사이에 상당 부분 누그러졌다.

도로테아의 닦달에 축 처진 우드의 등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이 집은 오랜 시간 방치되었으니, 이곳을 지켜 주실 신왕께 인사를 드리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정성이 필요하거든.”

“제, 제가 나름대로 열심히 쓸고 닦았는걸요.”

‘방치’라는 말에 제인이 얼굴을 붉혔다.

도로테아는 작고 야무진 하녀를 보며 방긋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를 붙잡고 터에 함께 살고 있는 ‘조상’을 언급한다 한들 그녀가 이해할 리 만무했다.

“이곳에 좀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 생기도록 ‘마음’을 담으려고 하는 거야.”

제인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은 척 시늉했다.

“바람이 차요, 아가씨. 이제 그만 창문을 닫을게요.”

그녀에게는 이 땅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는 허무맹랑한 말보다도, 창백한 아가씨의 안색이 더 중했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아무래도 두꺼운 옷을 내어야겠어요.”

저택이 좁은 만큼 공간이 협소한 탓에 창고에는 잡동사니가 굴러다녔다. 가장 구석에 있는 낡은 궤짝을 열자 깔끔해 보이는 드레스 몇 벌이 나왔다.

최신 유행에 비해 투박한 디자인에 최고급 옷감도 아니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간 것만은 분명했다.

촘촘히 바느질한 소맷단과, 계절에 맞춰 옷 안쪽에 덧댄 솜이 손끝에 두툼하게 만져졌다.

입는 사람을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돌아가신 부인께서 바느질 솜씨가 좋으셨어요.”

“그렇구나.”

도로테아는 제인이 꺼내 온 연분홍빛 드레스를 만지작거렸다.

일부러 그녀의 눈동자 색과 맞춘 고운 드레스의 결이 손끝에 느껴졌다.

“좋은 분이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제인의 위로에 도로테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기억에 없으니 그립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옷에 남은 ‘어머니의 애정’이 가슴에 온기를 채웠다.

어떤 마음으로 옷을 준비했을까.

도로테아가 천천히 옷에 얼굴을 묻었다. 옆에서 제인이 재잘거렸다.

“아가씨도 그 옷이 가장 마음에 드시죠? 발견한 것 중에 가장 좋은 옷감이에요.”

오랜 시간 궤짝 안에 잠들어 있던 옷에서는 쿰쿰한 냄새는커녕 말린 꽃향기가 가득했다.

옷이 상하거나 냄새가 날까 염려한 그녀의 어머니가 말린 꽃을 함께 넣었던 모양이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아가씨?”

조심스럽게 제인이 그녀를 부르자, 도로테아가 천천히 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좋은 사람이었네. 어머니.”

“그럼요.”

제인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이 저택으로 들어올 즈음 이미 도로테아의 어머니인 에버리 부인은 병으로 숨을 거둔 후였다.

낡은 저택 곳곳에 아직도 에버리 부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도로테아가 쿵쿵, 느리지만 존재감을 알리는 심장 위로 손을 얹었다.

명재신은 어머니의 애정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삶에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었다.

그녀를 이용하려는 이들과, 그녀의 힘에 경탄하면서도 두려워 그녀를 제압하려는 자들.

그 속에서 사람의 애정이 고팠던 명재신은, 오누이 간의 정에 배신당해 벼랑에 몸을 던졌다.

도로테아의 몸은 비록 불편하고 갑갑하며 괴로웠지만 곳곳에 그녀를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평생 가질 수 없으리라 믿었던 것을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에 삶에 대한 의욕이 솟았다.

“아가씨?”

이승과 저승을 잇는 길 위에서 혼을 보내고, 달래고, 또 그 한을 씻어 주는 숙명 아래에서 재신은 언제나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다.

감정이나 욕망에 휩쓸리는 것은 혼에 균열을 만들고, 균열 안에 어둠이 서리게 되면 더 이상 혼술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니까.

그럼 지금의 자신은 여전히 ‘명재신’일까, 아니면 ‘도로테아 에버리’일까?

가만히 드레스를 내려다보던 도로테아가 입을 열었다.

“내가 어찌해야 할까?”

“네?”

힘들게 얻은 삶이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애정이 가득한, 사람 냄새가 나는 삶.

문제가 있다면 그녀가 이 몸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라는 점 단 하나였다.

만일 ‘진짜 도로테아’의 혼이 돌아온다면, 돌아와 자신의 몸을 되돌려 달라고 한다면 재신은 그 말에 따라야 할까?

기껏 잡은 생을 다시 놓아주어야 하는 걸까. 그것이 단지 ‘순리’라는 이유만으로.

줄곧 순리를 지켜 온 재신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참 이상하지. 제대로 된 도리를 지키지 않는 이들이 힘겹게 도리를 지키는 이들보다 더 행복한 것 같아.”

“그치만 벌을 받잖아요.”

마샤 부인처럼요. 제인이 뒷말을 삼켰다.

“그래, 벌을 받지.”

한숨처럼 말한 그녀의 눈이 허공을 응시했다.

제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크게 앓았다가 깨어났던 날의 그 눈빛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그녀만이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눈빛.

“아가씨.”

“오늘은 생선을 굽는 게 좋겠다.”

불쑥 튀어나온 말에 제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들인 도로테아가 웃으며 제인과 눈을 맞췄다.

“먹고 싶어졌어.”

텅 빈 듯했던 도로테아의 눈이 다시 생기로 반짝였다.

어둠이 걷히고 웃음기가 스민 얼굴을 본 제인은 깊이 안도했다.

그녀는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가씨가 드시고 싶으시다면 제가 직접 잡아 올 수도 있어요!”

한껏 소매를 걷어붙이며 하는 말에 도로테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가 안 해도 돼. 할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네요. 아가씨의 다리는 아주 튼튼하고 능력도 좋으니까요.”

제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택의 문이 열렸다.

막 강가의 붉은 흙을 쓸어 담아 가지고 돌아온 우드가 정원에 흙더미를 내려놓고 우뚝 섰다.

그러고는 자신을 부려 먹을 계획을 알차게 세우고 있던 아가씨와 어린 하녀를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얼굴로 그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지금 당장 치안대로 가서 모든 일을 자수하마.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

홱 돌아서서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한 남자의 등을 보던 도로테아가 다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저녁은 그냥 고기 스튜가 좋겠다. 생선을 잡을 줄 모르는 모양이니 어쩔 수 없지 않니.”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그녀의 말에 돌아선 우드의 몸이 움찔했다.

“정말 칼질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네요. 어쩔 수 없죠.”

거기에 제인의 말이 더해지자 남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항복을 선언했다.

“……잡아 오겠다.”

우울한 얼굴로 바닥에 흙을 내려놓은 그가 다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를 흘끔 본 제인이 도로테아를 향해 다정히 말했다.

“저는 생선과 함께 먹을 채소와 요리에 쓸 기름을 좀 얻어 올게요.”

“응.”

식탐은 없으나 먹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녀가 순순히 답했다.

제인은 채소를 담을 그릇을 옆구리에 끼운 채 어느새 잠든 도로테아를 돌아보았다.

“낮잠을 주무시면 밤에 일어나실 텐데.”

소녀는 염려가 섞인 말을 하면서도 커튼을 닫아 빛을 가렸다.

“다녀올게요, 아가씨.”

어린 하녀는 잠에 취해 대답이 없는 아가씨를 향해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윽고 그녀는 씩씩한 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내려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