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사 도로테아 6화
골목 어귀를 돌자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 아직은 어두운 밤이 사방을 덮고 있어 주위가 고요했다.
비릿한 피비린내에 불쾌감이 증폭되었다.
‘젠장.’
저지른 죄를 다시 돌아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사내는 낯익은 문을 두고 처음으로 주춤 망설였다.
“문을 열어요.”
나지막한 말에 그가 망설임을 떨치고 손을 뻗어 튼튼한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굳은 시체에는 벌써 벌레와 야행성 동물들이 다녀간 듯, 이빨 자국이 보였다.
잔인한 흔적들이었다.
이 대문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은 방금 들어온 도로테아와 남자, 그리고 시체를 갉아 먹던 쥐와 벌레들이 전부였다.
“이제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 그리 멍하니 있을 시간 없어요. 남의 눈을 막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렇겠지.”
무거운 목소리로 답한 그가 등에 업혀 있던 도로테아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녀는 한때 안락한 휴식처였을 정원 의자에 앉아 방치된 시신들을 바라보았다.
시신들 모두 사후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남자는 시신을 유심히 보고 있는 도로테아를 흘끔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저들을 본인들이 생활하던 각자의 방에 넣어 주세요. 단, 머리가 북쪽을 향하고 손은 가지런히 배에 올려 주어야 해요.”
“이미 죽은 시신에 불과한 것들을 가지고 뭘 한단 소리냐.”
“이미 죽어 넋으로 흩어져야 할 자들이 원한에 묶이지 않도록, 가야 할 곳으로 보내는 거죠.”
할 말을 끝낸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남자는 어린 소녀에게 휘둘리는 스스로가 당황스러웠지만 순순히 시신에게로 다가섰다.
적나라하게 남은 흔적에 토기가 올라왔다.
자신의 죄를 힘겹게 돌아보는 남자를 보는 도로테아의 눈이 끔뻑였다.
‘생각보다 마음이 여리구나.’
본인이 저지른 일조차 되돌아보지 못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튼튼한 다리와는 달리 심지가 바늘처럼 가늘어서야.’
아쉬움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저 남자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
한밤중 밖을 돌아다닌 탓에 도로테아의 몸에선 이미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마 돌아가면 또 며칠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할 터였다.
‘적어도 이 몸보다는 유용하겠지.’
도로테아가 저택을 보며 덤덤하게 지시를 이어 나갔다.
“침대가 있다면 침대에, 그게 아니더라도 바닥에 고이 뉘어 줘요.”
시신을 들고 파르르 떨리는 손을 보던 도로테아가 대문을 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끙끙대며 제인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다행히 시신들은 모두 치워진 후였다.
“이리로 오렴.”
저택은 시신이 부패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제인은 자연스레 얼굴을 찡그리며 도로테아가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람의 기척이 없어.’
소녀는 본능적으로 이 퀴퀴한 냄새와 기척 없는 집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다.
살기가 가득한 낯선 남자. 손님이라 칭하던 도로테아.
얄밉고 못돼 먹었던 마샤 부인.
모두가 제인의 머릿속을 팽글팽글 돌았다.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형 같은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도로테아가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힘겹게 열어 불렀다.
“아가씨.”
제인을 향한 맑은 눈망울에 그녀가 한 걸음씩 다가갔다.
‘우리 아가씨야.’
꺼림칙함은 천천히 잦아들었다.
저도 모르게 떨고 있는 도로테아의 어깨에 두꺼운 담요가 걸쳐졌다.
눈을 끔뻑이던 그녀가 자신의 하녀에게 물었다.
“다 챙겨 왔니?”
“네, 그럼요.”
씩씩하게 답한 제인이 품에 들고 온 것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눈이 데굴데굴 구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마샤 부인은…….”
도로테아는 주저하며 묻는 제인을 보며 침묵했다.
불안함과 초조함이 섞인 얼굴은 이미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일들을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앳된 얼굴에 묻어나는 혼란을 모르는 척하며 도로테아가 명했다.
“잿물을 젖어 있는 땅에 골고루 뿌려 주렴.”
피가 스며든 땅은 귀(鬼)가 머무를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지박령에게는 이 장소와의 연결 고리가, 떠돌던 넋에게는 가진 한을 키울 양식을 제공하는 양식장이 되어 줄 터.
“소금은 저택의 현관, 방문, 그리고 대문 앞마다 한 움큼씩 뿌려 주고, 종이는 잘게 찢어 문고리에 걸어야 해.”
명을 받은 제인의 입이 굳게 다물렸다.
눈치 빠르게 물음을 멈춘 그녀가 도로테아의 말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소금을 한 움큼 쥔 제인의 손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마샤 부인의 아담하고 예쁜 저택은 제인의 고생과 아픈 도로테아를 위하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용하며 자라났다.
그리고 남자의 여동생이 겪은 불행도.
시신을 두고 나오던 남자가 어느새 와 있는 제인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각 방 앞에 기름을 머금은 장작으로 불을 놓으세요. 되도록이면 빠르게 번질 수 있도록 주방과 거실에도.”
마을과 외떨어진 골목 끝에 저택이 자리한 것이 남자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했다.
큰불을 놓아도 발견이 늦어질 테니까.
도로테아가 거듭 당부했다.
“명심해요. 이 집안 식구들의 물건은 그 무엇도 가지고 나와선 안 돼요.”
남자가 말없이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제인이 침을 꿀꺽 삼키고 도로테아의 옆에 섰다.
그녀가 속삭였다.
“창고에 값비싼 물건들이 있을 거예요. 분명 되팔면 몇 달은 너끈히…….”
“안 돼.”
제인이 안타까운 얼굴로 저택을 돌아보았다.
도로테아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을 한 제인에게 드물게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업을 되돌려 받은 이의 물건을 가져서 뭘 하려고. 고스란히 보내 주어야 저들 또한 원한의 고리에 갇히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거란다.”
제인은 도로테아의 말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마음속이 꺼림칙했던 만큼 물건에 대한 미련을 털어 냈다.
저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길이 저택을 잡아먹을 듯 위로 솟아 날름거렸다. 가까이 서 있던 제인이 온몸이 익을 듯한 더위에 얼굴을 찡그렸다.
남자는 홀로 몸을 피할 수 있는 제인 대신 옆에 선 도로테아의 왜소한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한 팔에 안길 만큼 가냘픈 소녀가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죽은 자의 물건들은 모두 저택 안에 있어야 해요. 다 두고 이제 나가요.”
“이걸로 끝인가?”
“여동생을 위한 살풀이는 나중에. 지금은 원한을 남기지 않고 보내는 것이 우선이니까요.”
살풀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동생을 위해서 할 것이 남아 있다는 말에 남자가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꿈이라도 꾼 듯 머리가 멍했지만 불타는 저택이 남자의 감각을 현실로 되돌려 주었다. 매캐한 연기를 등지고 빠져나오는 길에 남자는 품에 안은 도로테아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우드. 우드 데버.”
도로테아가 남자의 얼굴을 보며 이름을 되뇌었다.
“우드…….”
“드웰로 장군 아래에서 후방군 백인장을 맡고 있었다.”
“군에 있었나요?”
“그래, 지금은 아니지만.”
휴가를 나온 것도 아닐 테고, 여동생의 소식에 눈이 뒤집혔을 테니 아마 제대로 절차를 밟아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제인이 걱정스레 남자를 흘깃거렸다.
그의 품에 안긴 도로테아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전장에서, 그것도 백인장의 자리에 있는 이가 탈영하는 것은 작은 죄가 아니죠.”
“그래.”
남자가 인정하자 옆에서 제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가씨, 우리 그냥 다른 사람 찾아요. 꼭 저 사람이 아가씨 다리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 근방에서 가장 쓸모 있고 튼튼하잖아.”
“그럼 뭐해요! 감옥에 끌려가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재수 없으면 저희까지 엮여서 죄인 취급받을 수도 있는데!”
“난 이 다리가 아주 마음에 들어.”
“그 다리 저는 별로예요.”
공방이 이어지자 우드가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멀쩡하게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다리가 좋니, 싫니, 쓸모가 있니, 없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복수가 끝나면 자수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알아서 본인 무덤을 팔까 봐 당신 여동생이 날 부른 거죠.”
하나뿐인 오빠가 오죽 못난 인간이면 죽고도 그리 쉽게 저승으로 가지 못했을까.
이승에서 겪었던 불행들을 생각해 보면 미련 하나 남지 않았을 텐데.
여동생의 단 한 가지 미련이 바로 이승에 홀로 남아야 할 오빠였다.
그의 우직한 성정을 아는 만큼, 일을 끝내고 나면 죗값을 치르겠다며 평생을 다 바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리라.
그녀가 바란 것은 그런 결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마지막 바람은, 하나뿐인 오빠가 어리석게 피를 피로 씻어 내는 복수를 마무리하고 살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눈부신 삶을 살다가 늙어 파뿌리가 된 머리를 하고 제 곁으로 오길 바랐다.
그러니 도로테아에게서 느껴지는 희미한 영력을 동아줄처럼 잡고 늘어졌던 것이리라.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는 거냐.”
제인의 안내를 받아 도로테아를 안고 저택에 도착한 남자는 길 잃은 아이 같은 얼굴로 물었다.
동이 트는 것을 알리듯 저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도로테아는 쏟아지는 잠에 가물거리는 눈을 애써 뜨려 노력하며 말했다.
“일단 수염을 좀 깎아요.”
“음…….”
“그 수염 진짜 별로예요.”
덥수룩하니 얼굴의 반을 덮고 있는 수염에 대한 지적에 우드가 침묵했다.
옆에서 새 이불을 꺼내 든 제인이 재촉했다.
“아가씨 주무셔야 하니까 일단 여기 눕혀 주세요.”
혈색이 좋지 않은 탓에 염려를 떨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초조하게 재촉하는 제인을 본 우드가 천천히 도로테아를 침대로 눕혔다. 옅은 분홍빛 눈동자는 이미 감긴 지 오래였다.
윤기 없는 푸석한 머리카락이 우드의 어깨에 몇 가닥 붙어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지?”
우드의 물음에 제인이 내키지 않는 얼굴로 조용히 뱉었다.
“도로테아 아가씨죠. 도로테아 에버리 아가씨요.”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재신은 도로테아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입안에서 맴돌던 낯선 이름과 함께 서서히 의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마샤 부인의 저택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