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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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펑펑 사용하면서 도착한 곳은 하나의 낯선 방이었다. 떡하니 '시리우스의 사감실'이라고 적혀있는 문을 보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어쩐지 천문학 교실에 가깝다 했더니, 시리우스의 사감실 이었을 줄은 몰랐다.
꽤 빨리 도착한 건지 아무도 내 주변에 있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고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곧 식기들이 깨지는 번잡한 소리와 함께 어쩐지 잔뜩 인상을 찡그린 시리우스가 나타났다. 발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었는데, 꽤 심각해 보이는 상처였다.
"시리우스, 뭔 일이에요? 괜찮아요?"
"드레이코? 괜찮아. 보이는 것처럼 아프지도 않고."
시리우스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곤란함이 스쳤다. 나는 상관하지 않고 시리우스를 추궁했다.
"왜 이렇게 된 건데요?"
"그게… 공격 마법 연습하다가…"
"왜요?"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야."
시리우스가 이빨을 드러내면서 활짝 웃었다. 안심시키려고 지은 미소가 분명했지만 다리에 피가 철철 흘러서 전혀 안심되지 않았다. 입술 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오히려 더 걱정되는 모습이었다.
"페룰라."
"오, 고맙다."
시리우스가 내 머리를 툭툭 쓰다듬고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다시 사감실로 들어갔다. 나는 달칵, 하는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보다가, 한숨을 쉬면서 바닥에 떨어진 피를 바라보았다. 무슨 공격 마법을 연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닥을 흥건히 적실 정도로 많은 피였다.
"조급한 건가?"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실력이 뒤쳐진다는 자각을 했다면 충분히 그럴만 했다. 나는 굳게 닫힌 문을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뭐야?"
"무슨 일이지?"
뒤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지만 않았으면 나는 바로 슬리데린 기숙사로 돌아갔을 거였다. 웅성대는 소리가 더 커졌고, 나는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리우스의 피가 조금 고인 웅덩이와 마찬가지로 시리우스의 피가 튀긴 얼굴. 좋아, 환상적이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파악한 나는 더 빨리 자리를 뜨기로 했다. 여기서 있다가 또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문제는 앞도 뒤도 사람들이 몰려와 탈출구가 막혀 있다는 점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유일한 탈출구를 향해 문을 두드렸다.
"시리우스, 들어가도 돼요?"
방문을 잠겨 있었고,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마법 연습을 계속 이어가는 것 같았다. 이런 개같은…. 요즘 험해져서 욕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점점 커지는 말소리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핏자국이라도 없애려 했다. 피냄새는 나겠지만 빨간 액체가 더 급했다.
"이게 무슨 일- 말포이 군? 왜 여기에…?"
"벌베이지 교수님?"
시리우스의 사감실 근처에 벌베이지 사감실이 있었던 것 같았다. 뒤 쪽이라서 발견하지 못한 문이 삐걱거리며 나를 반겼다. 나는 피 웅덩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미친듯이 떨고 있는 벌베이지에게 말했다. 내가 말해 놓고 놀랄 정도로 다급한 외침이었다.
"저 좀 들여보내 주세요!"
다행히도 벌베이지는 나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조금의 정적 후에 어색한 미소를 걸치면서 말이다. 나는 몰려오는 인파를 문 너머로 보면서 피신했고, 다른 사람들이 날 보기 전에 벌베이지의 사감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벌베이지의 사감실은 몽글몽글하고 포근한 기운이 가득했다. 여기저기에 비행기나 오토바이 모형이 즐비해 있었고, 비마법사들의 책이 책장에 깨끗하게 꽂혀 있었다. 가구는 전부 연한 파스텔톤이었고, 모차르트의 클래식이 방 안을 채웠다.
"차 마시겠니?"
벌베이지가 온화한 어투로 물었다. 내가 고개를 저으면서 티나지 않을 정도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움직이는 물건, 그러니까 마법 물건이 거의 전무하다 싶은 방은 꽤 오랜만이었다. 뭔가 고향에 온 것 같은 낯간지러운 기분도 들었다.
"신기하지?"
"네…."
"저건 비행기라고 불리는 거란다.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거야. 저 비행기에 많은 사람들을 실을 수 있어."
벌베이지가 그렇게 말하면서 차를 가져다 주었다. 안 마셔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이 눈을 반짝이는 벌베이지를 부담스러운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무슨 반응을 해주어야 잘 반응했다고 소문날까.
"엄… 그러니까, 물건이 하늘을 날아다닌다고요?"
"그게 머글들의 신비함이지! 저 옆에 있는 건 자동차, 그 위 쪽에 있는 건 배야. 자동차는 도로를 달릴 수 있게 해주고, 배는 물 위에 뜰 수 있게 해주지."
"…마법 없이요?"
대충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에 놀라움을 담으려 노력했다. 순수 혈통 도련님의 반응에 만족한 건지, 벌베이지는 후후, 하는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차를 홀짝였다.
"그래, 마법 없이. 머글들은 마법 없이도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창조했단다."
"와아… 신기하네요."
"어떨 때는 마법보다 편리한 기구도 존재하고 말야."
둘 다 살아봐서 아는데, 마법보다 편리한 기구는 없다. 핸드폰이라면 모를까. 나는 편리한 검정색의 사각형 물체를 상기하면서 벌베이지의 말을 경청하는 척 했다.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벌베이지는 이미 머글 연설에 심취한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면서 조금 높아진 톤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물건의 절반 이상이 어디에서 응용된 건지 알고 있니? 머글들의 물건을 응용한 거란다! 화장품, 옷, 음식, 놀이기구… 거의 전부 다라고 볼 수 있지. 머글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적이야."
"놀랍네요."
나는 들뜬 기분을 숨기지 못하는 말에 대충 맞장구를 쳐주면서 방안을 티나지 않게 살폈다. 벌베이지도 '크라우치 2세'로 의심되는 인물이었다. 학생이 줬다던 차를 계속해서 마신다는 유력 용의자. 나는 부러 더 감탄사를 터뜨리면서 물건 하나하나를 샅샅히 흝었다.
캐비닛이 존재했다. 다른 폴리 주스의 재료들도 조금씩 있는 것 같았다. 교묘하게 배치된 재료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벌베이지 교수님."
"응? 아, 미안하구나. 너무 주책이었지?"
"아뇨. 저도 꽤 흥미로웠어요."
"그러니?"
"네… 교수님, 저건 뭐예요?"
"아, 저건 표시된 맛이 나는 캔디란다. 머글들의 캔디는 메론맛에서 메론맛이 난다더구나. 저번에 사서 보존 마법을 걸었어."
"신기하네요."
그냥 사탕에 보존 마법까지 거는 벌베이지의 참신함이 신기했다.
"저건, 또 뭐죠?"
"아, 저건 바이콘의 뿔가루란다. 걸어두면 올해의 운이 좋아질 거라고 해서 말이다."
벌베이지가 쑥쓰러운 듯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하하, 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뒤로 다른 폴리 주스 마법약의 재료들을 열심히 물어보았다. 벌베이지는 운세가 좋아서 라느니, 익명으로 선물 받았다느니 따위의 대답을 했다. 계속해서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라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벌베이지 교수님, 차도 선물 받았다면서요? 차 좋아하세요?"
"꽤 자주 마시는 편이지? 고맙게도 후플푸프의 귀여운 아이가 만들어 주어서, 항상 가지고 다닌단다."
"헤에… 좋은 제자네요."
"그래? 고맙다."
후플푸프 중에 벌베이지에게 차를 선물한 여학생. 머릿속으로 정보를 도입하면서 아보트에게 물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짝 제도를 도입해서 좋은 것들 중 하나는 타 기숙사생과 어느 정도 말을 텄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다른 기숙사생들끼리 말을 주고 받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학생들은 다 간 것 같은데?"
"아, 고맙습니다! 가볼게요."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도 괜찮단다."
나는 온화한 웃음을 이리저리 가늠해 보다가 곧 고개를 돌렸다. 아직까지는 크라우치 2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후플푸프생을 만나서 얘길 들어봐야 할까. 어쩐지 쌓여가는 것 같은 일거리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뭔가 수상한 것 같은 벌베이지와의 면담 뒤에는 크라우치를 찾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다른 교수들을 다 한 번씩은 찾아간 것 같다. 해그리드도 방문했는데, 해그리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축 쳐져 있었다. 그를 위로해 주느라 거의 모든 시간을 소비한 것 같았다. 해그리드가 코를 팽, 풀면서 중얼거렸다.
"사실 난 드레이코, 네가 수업을 싫어하게 된 줄 알았어. 오늘 온 것도 수업을 안 듣는다고 하는 건 줄 알았고."
"제가 왜 해그리드의 수업을 거절하겠어요. 요즘 일이 많아서 못 갔을 뿐이에요. 편지도 하지 않고 찾아가지 않아서 죄송해요."
"아니, 아니야! 수업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 없어서 오히려 기쁜걸."
나는 조금 찔린 기분을 자각했다. 사실 수업을 안 듣는다고 말하려 온 건데, 이렇게 까지 말해버리면 내가 싫다고 말하기도 좀 그랬다. 결국 해그리드와의 수업은 어영부영 넘어갔다. 바빠졌다고 말을 꺼내서 일주일에 한 번을 이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기는 했다.
몇주 동안 교수들을 감시하기만 했다. 사실은 나 스토커가 천직이 아닌 걸까. 집요하게 쫓아다니면서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덤블도어가 도입했다던 짝 제도는 별 탈 없이 굴러갔다. 이 제도는 원작의 비틀림 때문일까, 나 때문일까. 덤블도어가 '나'를 경계하며 이 제도를 세운 건가, 아니면 원작이 비틀어지며 덤블도어의 행동이 바뀐 걸까.
한참동안 생각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볼드모트라는 공통된 적 앞에서 덤블도어는 적이 아닌 아군이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게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모든 변수를 가정해서 계획을 짜는 건데, 가장 큰 변수를 모르니 짜증만 쌓였다.
"시계 방향으로 지팡이를 휘둘러봐."
"이렇게…? 와, 됐어!"
아보트가 손뼉까지 치며 좋아한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삐욕, 하는 소리와 함께 거북이가 개구리로 변했다. 대단해, 말포이! 아보트가 다시 손뼉을 쳤다. 콧노래까지 부르는 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좋아, 지금이 딱 적기인 것 같다.
"후플푸프 중에서 벌베이지 교수님께 차를 선물한 사람이 있어?"
"차?"
아보트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다가 아! 하고 소리치며 손뼉을 탁 쳤다. 손바닥 안 아픈 걸까. 나는 몇번이고 손뼉을 치는 아보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히아신스 베일리라고, 벌베이지 교수님이 특히 좋아하는 애인데."
"아, 그래?"
"다른 애는 몰라도, 히아신스는 성격 진짜 좋고 요리도 잘해. 차도 잘 끓이겠지? 그런데 그건 왜?"
"그차가 진짜 맛있어 보여서. 나도 먹고 싶었거든."
"아아…"
"혹시 차를 선물할 만한 다른 애들도 알아?"
"음… 수잔? 아니면 아펠라?"
슬리데린이라면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뜰 것이 뻔했다. 나는 순진하게 정보를 술술 부는 아보트를 조금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듣기로는 아보트 가문의 하나 남은 후계자라던데, 저렇게 착해서 가문을 이끌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툭하면 나오는 자판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대충 아보트에게 차를 선물해줄 만한 사람들을 들은 나는 히아신스 베일리를 먼저 찾아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리스트의 사람들 중 베일리(Bailey)가 제일 첫 번째의 알파벳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충 후플푸프 기숙사의 근처에 서서 노랑색 안감의 교복을 한 명 잡았다. 꽤 순한 인상의 학생이었다.
"히아신스 베일리 좀 불러줄래."
"뭐야, 너 슬리데린이냐?"
"……?"
후플푸프 맞나…? 나는 조금 귀찮았던 마음을 다잡으면서 노랑색 안감을 바라보았다. 목도리도 검정색과 노랑색이 교차하는 색이었다.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오소리. 내가 약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에 순한 인상의 여자아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꽤 짜증스러운 태도였다.
"내가 히아신스 베일리야."
"아, 그래.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뭔데?"
히아신스 베일리가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 바닥에 신발을 맞대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순한 얼굴에서 어떻게 위압감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네가 벌베이지 교수님한테 차 준 거야?"
"하,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베일리가 궁금할 정도로 크게 코웃음을 쳤다. 덕분에 다른 후플푸프들의 시선이 몰렸지만, 베일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뭔가 히아신스 베일리한테 뒷골목 양아치가 겹쳐 보이는 건 기분탓일거다.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자각하면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야, 그거 뇌물 아니고. 내가 만든거야, 시발아. 하여간 요즘은 왜 시비 안 걸고 다니나 했지. 머글 연구학 교수님이 그렇게도 싫니? 너흰 벌베이지 교수님이 뭐만 하면 꼬투리 잡아서 지랄이야? 그러면 머글 혈통이 많은 이 호그와트에는 왜 오셨대? 너 새끼들은 항상 그렇게 시비를 걸고 다녀야 분이 풀리는 거냐?"
한층 험악해진 얼굴을 조금 아련한 기분으로 감상하던 나는 아보트가 했던 말을 상기해냈다.
- 히아신스는 성격 진짜 좋고 요리도 잘해.
"왜? 꼽냐? 꼬우면 꺼지시던가요."
그거 어디 사는 누구냐.
[작품후기]
래번클로 디키와 독수리 석상
독수리: 마법사의 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라.
레이븐: 음… 마법적인 생?
아스토리아: 몽환적이고 우아한 생.
디키: 죽어가는 생.
독수리, 아스토리아, 레이븐:
디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생물은 모두 죽어가잖아.
2019. 7. 3.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