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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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로 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시어도르와 팬시, 다프네를 만나면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 것 같기도 했고, 이게 꽤 중요한 일이었기도 했다.
"페를루키디타스, 카르카로프의 아이들."
어두침침한 배가 주문을 기점으로 화사해진다. 나는 짜게 식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솔직히 크룸이 말할 때는 하나도 안 믿었었는데, 진짜니까 더 떨떠름해졌다. 암호가 참 카르카로프 답다고 해야 할까. 취향이 이상하다고 해야 할까.
투명 마법을 써서 그런지 아무도 내 쪽을 보지 않았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면서 교장실로 향했다. 어째선지 대부분의 덤스트랭 학생들은 기가 죽어 있었다.
"신문 봤어?"
"…그럼, 그때도 그랬던 거야?"
"시벨, 너 시비 걸었었지?"
"모, 몰랐어!"
"크룸도 화냈잖아. 빨리 사과하는 게 좋을걸?"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쓸데없이 잘 들린다. 신기한 성능을 가진 귀가 조금 짜증났다. 헤르미온느한테 시비 건 걸까. 크룸이 화낼 만한 일은 그런 것 밖에 없었다. 어쨌든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여전히 휘향찬란한 '교장실' 문구까지 확인한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이번에도 반응은 없네.'
뭔가 데자뷰같다. 또 도망같은 걸 계획하고 있거나 자리에 없는 걸 거다. 제일 가능성 있는 가설은 뭔갈 생각하고 있는 거려나.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문을 열어젖혔다.
"…! 누, 누구냐!"
카르카로프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을 두리번거린다. 투명 마법을 썼으니 안 보이는 건 당연했다. 카르카로프는 짙은 다크서클과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항상 올라가 있던 수염도 축 쳐져서 이제는 안쓰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상태로 호신기를 누르려고 하는 카르카로프를 제지했다.
"접니다. 드레이코 말포이."
"……."
"머플리아토."
내가 지팡이를 휘둘러 방음 마법을 걸자, 카르카로프는 꽤 창피해진 것 같았다.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안타깝지만 나는 카르카로프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용건만 말할게요. 루도빅 베그만, 요즘은 어땠습니까?"
"…난 심판 했을 때만 기억하지. 다른 때는 만나지도 않았어."
"그때만이라도 괜찮습니다. 얘기 좀 해봐요."
카르카로프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곧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요약하자면, 해리 포터를 우승시키려는데 집중했다는 거였다. 꽤 게으르고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다는 혹평도 함께였다.
"뭔가에 쫓기는 낌새는요?"
"있었어. 꽤 초조해 보였지."
도깨비들에게 시달려 빚에 쪼들렸다,라고 원작에 쓰여 있었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리타 스키터를 만났던 날에 베그만도 만났던 걸 상기해냈다. 그때도 원작과 일치하는 대사를 했었다. 그럼 베그만이 크라우치 2세는 아니라는 건가.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지?"
"호그와트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죽음을 먹는 자가 있어요."
카르카로프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카르카로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주위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휙휙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그럼… 그분이 내 배신을 알았단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이 놀랄만큼 창백해졌다. 핏기가 없는 얼굴은 유령을 보는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손톱을 딱딱 물어뜯는 카르카로프를 보자 어쩐지 짜증을 감출 수 없었다.
"겁쟁이 같아요, 카르카로프. 지금 그렇게 덜덜 떨 때입니까? 누가 전쟁에 나가라고 했습니까? 후방 지원이나 똑바로 하라고요."
"…넌, 아직 모른다. 그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아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카르카로프가 눈을 크게 뜨는 것조차 거슬렸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이 효과적으로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남을 자신과 똑같이 만드는 것부터가 글러먹었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피해 끼치지 말자.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뭔가 푸시식 식는 느낌이었다.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카르카로프를 노려보았다. 카르카로프는 조금 놀란 듯한 태도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쪽이 더 급했다. 사실 생각하는대로 될 지도 잘 몰랐다.
"…불사조 기사단원으로서, 카르카로프가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카로카로프 밖에 못하는 일입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원작에는 없던 변수, 카르카로프가 제일 믿을만 했다. 덤블도어를 제외하면, 덤스트랭 교장인 이상 마법 능력도, 말주변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도 전부 뛰어났다.
"지금부터, 제 말대로 해주세요."
* * *
카르카로프를 설득하는 건 꽤 어려웠다. 했던 말을 또하고, 덤블도어가 시킨 일이라며 신뢰성을 부여하고, 죽음을 먹는 자들도 봤으니 이제는 끝이라는 약간의 협박을 하고, 끝에 나오는 보상을 말해 구슬리는 걸 돌려가며 사용해야 했다. 카르카로프는 결국 핼쑥한 얼굴이 되어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수락할 거면서 왜 버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괜한 자존심인건가.
카르카로프를 설득하고 나서는 바로 슬리데린 기숙사에 돌아갔다. 크라우치 2세를 찾아야 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95번, 용서를 잘해준다."
"비꼬는 거야?"
"96번, 뒤끝이 기네."
"그거 욕이잖아."
"97번, 착하다!"
그일은 스네이프가 내준 숙제를 뜻했다. 2시간 뒤에 스네이프의 사감실로 내려가야 하는 운명을 가진 나는 신경질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검은색의 펜촉이 울컥울컥 잉크를 내뱉는다. 시어도르는 눈을 크게 뜨고 그 마법을 감상했다.
"…그거 고난이도 마법인데."
"고난이도 마법인 걸 어떻게 아는건데?!"
"98번, 마법을 잘한다…?"
"그보다 이거 500개야? 스네이프 교수님, 너 싫어하는 거 아니냐."
"나도 조금 고민 중이야.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건 없었다. 나는 꽤 억울했다. 내가 무슨 취급(나는 툭하면 부러지는 유리 인형 정도였다)을 받고 있는 건지도 잘 알았지만 그건 그거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업도 꼬박꼬박 참석했는데 이렇게 효과적으로 엿을 먹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냥 말하고 와야겠어."
"뭘?"
"내 건강 상태를."
"…오."
뭐라 웅얼대는 소리를 흘러 넘겼다. 여기도 저기도 동정 어린 시선들 뿐이니 짜증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저번에는 가고 있는데 사탕을 쥐어주는 애도 있더라. 반쯤 체념하고 이 재앙을 엄브릿지 정도로 받아들였던 나는, 장점을 적으며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브릿지는 1년이라는 기간이라도 있지, 이 이상한 오해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나는 이를 갈았다.
"99번, 잘 버틴다."
"……?"
다프네가 아련한 얼굴로 생긋 웃었다. 난 조금 뒤에 슬리데린 휴게실이 조용하다는 걸 알아챘다. 보글거리는 물소리와 잔잔한 클래식 소리가 섞인 휴게실에는 내 목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말의 뜻을 물어보려는데 팬시가 활기찬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했다.
"100번! 매우 유익한 얼굴이다!"
"방금 전에 반짝반짝 하다고 적지 않았어?"
"그러면서 받아 적고 있잖아."
"500개 쓰려면 어쩔 수 없잖아."
"101번, 다른 사람을 잘 생각해준다."
"내가…?"
"뭐, 그렇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
"시어도르, 그거 욕이지?"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나는 검정색의 잉크가 유려한 글자로 변하는 걸 질린 안색으로 구경했다. 이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뭔가 성가신 벌레를 잡아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말하면 짜증났다. 인상이 점점 험악해지는 걸 팬시가 보았는지 내 등을 말없이 두드려 주었다.
'장점 500개 적어오기'는 셋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완수한 것 같았다. 사실 300개가 넘자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엄… 이나 음… 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나조차도 생각이 없어서 '손톱을 잘 깎는다.' 따위의 문장만 끼적이고 있었다. 거의 구세주처럼 파울리와 플린트가 아니었다면 남은 200개는 '눈알이 예쁘다.' 정도의 말로 채워졌을지 몰랐다.
"파이팅!"
"꼭 이기고 와!"
누가 보면 시합이라도 나가는 줄 알겠다. 물론 내 심정도 뭔가 전쟁에 나가는 장군의 마음이었다. 문득 비장함과 결의가 치솟는 것 같았다. 그리핀도르가 된 기분이다. 나는 미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장점 1000개 적어오기 같은 숙제는 항의하고!"
"항의서 써줄까?"
"괜찮은데요."
"너무 힘들면 말해!"
"사감실까지 데려다줄까?"
"바로 옆인데요."
"그래도, 언제든지 말해도 괜찮아."
"캔디 먹을래?"
스네이프의 사감실은 지하감옥에 위치해 있었다. 즉, 열 발자국 정도 걸으면 닿는 거리에 있다는 소리다. 나는 이상한 데에서 친절한 슬리데린들을 미묘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후플푸프를 바라보는 기분이어서, 시어도르에게 눈짓을 보냈다. 혹시 슬리데린들이 미쳤어? 시어도르는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무튼 슬리데린이지만 슬리데린같지 않은 인사를 받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사감실 문 앞에 섰다. 뒤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 플린트나 파울리일 것이다. 나는 조금 질린 기분을 자각하면서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들어와라."
쓸데없이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면서 문을 열었다. 널려있는 마법 약 병, 조금은 서늘한 온도, 어색할 정도로 삭막한 공기. 스네이프의 사감실은 예전에 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스네이프가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정도일까.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스네이프의 눈치를 보면서 내 키 만큼이나 긴 양피지를 스네이프에게 건냈다.
"교수님, 숙제 해왔는데요."
"아… 그렇지."
스네이프의 살벌한 얼굴이 양피지를 받으면서 조금은 누그러졌다. 500개의 장점을 써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양피지를 든 스네이프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는 걸 무시하면서 나는 옆의 소파 쪽에 앉았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지 똑똑 거리는 물방울 소리만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눈을 굴렸다. 스네이프는 그러거나 말거나 양피지를 뚫을 것 같은 기세로 눈을 굴리고 있었다. 지금은 나만 어색한 걸까.
"굉장히… 흥미롭군."
"감사합니다."
스네이프는 슬리데린의 결과물에 만족한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뱀들을 칭찬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조금 낡아 보이는 바닥이 시야를 채웠다. 위 쪽에서 스네이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아무 감정도 없는 목소리였다.
"좋아, 그럼 새로운 과제를 내주지."
"네?"
나는 욕이 나올 것 같은 걸 삼키면서 고개를 들었다. 단호한 표정의 스네이프가 니를 내려다 보았다. 이런 멀린의 때만도 못한… 나는 그말을 삼키면서 눈빛으로 대신 욕을 전했다. 스네이프는 내가 무슨 짓을 하던 아랑곳하지 않았다. 거의 말 안 듣는 루시우스 같았다.
"드레이코, 하루에 세 번씩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
"……?"
"그리고 그걸 양피지에 쓰는 거지. 이 과제는 다음주 까지다. 내일은 다른 수업을 할 거고."
나는 양피지를 건내는 스네이프에게 주먹을 날리는 상상을 했다. 물론 실현될 가능성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장점 500개 적어오기'보다 조금 작은 것 같은 양피지를 받았다. 짜증이 목 끝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네이프 교수님."
"왜 그러지?"
"말씀 드려야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서요. 저 안 아프거든요."
스네이프의 의미 모를 시선이 따라온다. 그는 어째선지 조금 화가 나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손에 든 양피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말할 건 말해야 했다.
"영혼이 뒤틀린 건 마력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릇이 그걸 감당하지 못해서…"
"드레이코 말포이."
사감실은 마법약을 만들기 좋게 설계되어 있어서 스네이프의 목소리는 웅웅 퍼졌다. 나는 은은한 분노마저 깔린 목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멀린의 때같은 상황이 온 것 같다. 멀린이 욕하는 환청은 흘러 넘겼다.
"넌, 후우… 아니다. 가보거라."
"네?"
사라진 어이를 찾기 위해서라도 뭘 말해야 했다. 스네이프는 전혀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도 뭔가 화 내는 듯한 기색을 보이다가 나가라고 했으니까. 나는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실감하면서 반쯤은 포기한 채로 문 쪽으로 향했다. 삭막한 공기가 더 삭막해진 기분이다.
"그럼 치료제는 만들지 마세요. 어차피 전 건강하고, 소용 없는 일이거든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망할 스네이프. 포터에게 쌓인 걸 아들에게 풀 때부터 속 좁은 건 알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구시렁 거리면서(겉으로는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문을 닫았다. 언뜻 마른 세수를 하는 스네이프를 본 것 같기도 했다.
뭔가 복잡한 생각이 얽히는 것 같다. 스네이프가 왜 저러는지 부터, 이 이상한 오해는 좀 많이 심각해 보인다는 것까지. 지하감옥이라 서늘하고 조용한 복도에서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BOOM!
위 쪽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더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거였다.
그 폭발소리는 아마 반대편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스네이프와 시리우스가 싸울 때 냈던 폭음 정도의 소리였다. 어째서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날이 없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폭발의 원인이나 살펴보아야 했다. 가만히 있다가 나오는 스네이프와 마주치기도 좀 껄끄러웠다.
[작품후기]
이 외전(인가 카피폐인가)은 피곤피로귀찮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조금조금씩 써서, 나눠서 업로드 예정입니다!
래번클로 디키와 독수리 석상
독수리: '나'는 누구인가?
디키: 돌.
독수리: 그게 아니라-
디키: 자, 봐봐. 너는 모래가 뭉쳐진 알갱이로 되어 있어, 맞지?
독수리: …그으렇지.
디키: 그걸 돌이라고 하는 거야. 이제 알겠니?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