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133
내일 재판이었나?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속으로 날짜를 가늠했다. 그러나 해그리드에 대한 걸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재판 날짜 따위를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사람 좋게 웃던 해그리드를 떠올렸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서 죄책감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네가 아팠던 건 알고 있어. 해그리드도 많이 반성하고 있고. 아마 해그리드는 교수가 처음이라 위험의 정도를 몰랐던 걸 거야." 그레인저는 말을 꺼내면서도 나를 연신 살폈다. "교, 교수가 그걸 몰라서는 안 되겠지만, 해그리드에게는 교수로서 첫날인 셈이잖아. 아, 참! 해그리드가 사과는 했니?"
"아니…?"
"안 했어?"
그레인저의 눈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녀가 살벌한 기색으로 손에 있던 책 한권을 책장에 쑤셔박았다. 책장과 책이 거칠게 부딪히며 쿵, 소리를 냈지만, 그레인저는 개의치 않고 눈으로 욕을 했다.
더 가만히 있다간 그레인저가 폭발할 것 같았다. 나는 급하게 화재를 돌렸다.
"그보다 선례를 찾는 거라면 역사 쪽 코너에 많을 거야. 호그와트의 역사 교수 편에서는 파면 당할 뻔 했지만 무사했던 호그와트 교수들도 몇 있었어."
"정말이야?"
그레인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뒤에는 미심쩍은 기색이 옅게 깔려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몇번이나 찾아보았는데…."
"동물이 상해를 가했을 때의 판례만 찾았지? 파면 당할 뻔한 교수가 없을 리가 없잖아.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들은 일년마다 바뀌니까. 한 1975년 쯤에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였던 그레이스 교수도 파면 당할 뻔 했는데, 재판에 이겨서 다른 과목 교수로 취임했어."
"잘 아는구나."
그야 어둠의 마법 방어술이니까…. 볼드모트가 저주 비슷한 걸 퍼부은 과목의 교수 자리이다. 알아두어서 나쁠 건 없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리는 없었기에 나는 머릿속으로 비슷한 의미를 골랐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과목에는 관심이 많아서."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그레인저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그녀는 몇 초간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곧 날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놀랍게도 호의가 섞인 미소였다.
"그 책들은 반납할 거야?"
"다시 넣을 건데."
"내가 넣어줄게. 책 위치는 거의 다 알고 있거든. 그리고 난 마녀잖아?"
그레인저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품 안의 책이 춤이라도 추듯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지휘자가 된듯 지팡이를 움직이는 그레인저를 얼떨떨하게 구경했다.
"곧 마법 약 수업인거 알고 있니?"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혹 마법을 쓰는 이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레인저가 지금 자의로 말하고 있다는 건가. 뭐야, 무서워. 나는 뒷걸음질 칠 뻔한 발을 가까스로 제지했다.
"지금 가려고."
"그래, 잘 가."
그레인저가 스스럼없이 손을 흔든다. 나도 떨떠름하게 마주 손을 흔들었다.
*
"정말, 포터. 네 머리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스네이프가 코웃음을 치며 힐끔 나를 보았다. 이걸로 정확히 스물 네번째였다. 나는 질린 표정을 애써 감췄다.
"교수님,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두꺼비 앞다리말고 뒷다리를 넣어라."
"…고맙습니다."
똥 씹은 표정을 애써 감추며 두꺼비 뒷다리를 집어들었다.
기실 스네이프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여기저기서 달라붙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를 상종도 안 하던 이들 몇몇도 이제는 내 손길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이렇게나 주목을 받을 일인가? 고작 쓰러진 거 하나가? 나는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신새끼 때문에 숨을 멈췄다는 거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결론은 모든 게 신새끼 잘못이라는 거다.
빌어먹을 신새끼. 존재 자체가 해악인데 도대체 왜 신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신이 되는 기준이 대체 뭐란 말인가. 말아먹은 인성? 무해해 보이는 얼굴? 쓸데없는데 심력을 기울이는 성격? 나는 이것저것 재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애초에, 신새끼가 신이라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완성한 약은 모두 제출하세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스네이프는 냉담하게 선언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불만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렸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 중에서도 여덟 명 만이 마법 약을 제출하러 일어났다. 그 여덟 명에 포함된 나도 진한 분홍색의 마법 약을 들었다.
나를 마법 약마냥 평가하듯 보던 스네이프가 덧붙였다.
"위즐리, 말포이의 마법 약을 네가 대신 제출하거라."
하필 위즐리를? 그리핀도르 점수를 깎고 싶기라도 한 건가.
나는 스네이프의 지시와 여러 시선을 무릅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혼자 걷지 못하는 멍청이도 아니었고, 위즐리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대신 해주는 것보다 내가 제출하는 게 편했다.
"야, 말포이."
"어?"
"마법 약 줘."
분명 내가 직접 제출했을 거다. 소리소문 없이 다가온 위즐리가 마법 약을 낚아채듯 가져지만 않았어도.
내가 얼빠진 표정을 하든 말든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마법 약을 갖다 냈다. 스네이프가 미심쩍은지 몇번이고 위즐리가 제출한 마법 약을 살폈다.
쟤 누구야. 그레인저도 그렇고, 위즐리도 그렇고. 내가 돌아온 후로 원작 인물들이 조금씩 이상해지고 있었다. 호그와트 자체에 현혹 마법이 걸려 있기라도 한 걸까. 좀 더 있다가는 스네이프가 해맑게 웃으며 사랑을 외칠지도 몰랐다.
스네이프의 평가를 흘려들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게 제일 소름돋았다. 차라리 덤블도어가 마왕이 된다고 해라. 잠시만, 그것도 좀….
"…말포이, 먼저 나가봐도 좋다."
"네?"
"빨리 나가거라."
쫓겨났다.
[작품후기]
헤르미 착각계 입성! +1=133
2019. 12. 30.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