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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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해그리드가 히포그리프을 묶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내 배에는… 음, 이젠 팔이 아니라 배인 건가. 상처를 보자마자 홧홧한 느낌이 몸에 확 퍼졌다. 배에서부터 울컥울컥 토해지는 피를 보니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놀라서 마법도 못 쓰고 지팡이나 던져댔다. 7학년이나 돼서 잘하는 짓이군. 나는 숲속을 뒹군 지팡이를 쥐어서 붕대 마법과 통각 마법을 걸었다. 알싸한 고통으로 떨렸던 손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는 붕 뜬 느낌으로 일어서서 훌쩍이는 파킨슨과 경악으로 인해 눈을 크게 뜬 포터,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는 히포그리프를 흩어보았다. 아, 사고 쳤다. 그제야 드는 낭패감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말포이, 괜찮니!?"
"괜찮습니다."
해그리드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다 못해 핏기가 싹 가셨다. 그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살짝 몽롱한 기분으로 울 것 같은 해그리드를 응시했다. 뒤쪽의 슬리데린들을 흘긋 바라보니 앞으로 떠돌 소문도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해그리드에게서 옮겨져야 하나? 해그리드의 치료 마법에 의해 나은 척을 하면 좋겠지만, 해그리드에게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의 마법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남은 건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뿐인가. 실제로도 통각 마법 덕분에 꿈을 꾸는 듯하기만 했다. 이 일의 원인에는 동물에게 미움받는 내 탓도 있었다. 물론 위험한 마법 생물을 데리고 온 해그리드의 탓도 있었지만.
"교수님."
"말포이, 조금만 참아라!"
"제가 가겠습니다."
"넌 지금 환자야!"
나는 거의 내 키만 한 해그리드의 배를 두 손으로 밀어냈다.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던 해그리드는 패닉에 빠져서 순순히 밀려났다. 아이들은 걱정 어린 눈길로 나를 응시했고, 히포그리프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만이 숲속을 떠돌아다녔다.
"제가 가겠습니다, 교수님."
괜찮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보란 듯이 걸어서 오두막집을 빠져나갔다. 퍼득 정신을 차린 해그리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난 오두막집에서 나온 후였다.
통각 마법 때문에 온몸이 나른한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감각이 없으니 내 몸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할 수도 없었고. 해그리드가 안을 때 가만히 있어야 했나.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무능한 교수라는 소문은 더욱 악질적으로 퍼질 게 분명했다. 특히 '드레이코 말포이'가, 나아가서 슬리데린이 퍼트릴 소문은 눈을 감고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원작 파괴가 아닌 건가."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지팡이를 잡았다. 나무 막대기 끝의 궤적을 따라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나는 마법에 몸을 맡기며 힘을 쭉 빼고, 축 늘어진 발을 바닥에 대며 걷는 척을 했다. 멀리서 보면 걷는 것 같이 보일 거다. 감각이 없는 상태로 걷는 건 꽤 어려웠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발이 허공에 있으니 발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수업시간에 사람을 만나다니.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지팡이를 휘둘러 공중 부양 마법을 해제했다. 투명 마법이라도 사용할까 고민했지만, 그보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는 게 빨랐다.
"…드레이코!"
"교수님."
검은색 머리에 검은색 눈동자,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나는 경악으로 눈이 크게 떠진 이를 보고 속으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더 귀찮아질 게 눈에 뻔히 보였다. 아는 척하지 말고 가면 안 될까. 작은 소망을 담아 질문했다.
"수업 있지 않습니까?"
"이번 시간은 없다. 괜찮으냐?"
이름하여 호그와트의 마법 약 교수이자 이중 스파이인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걱정을 받는 중이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평소의 말투와 반말을 오가고 있다. 나는 아프지 않다는 뜻으로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괜찮습니-"
"아니, 이런 상처가 있는데 괜찮을 리 없군."
대답도 안 들을 거면 왜 물어본 거냐. 스네이프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몇 가지 마법을 시도했다. 외계어 같은 용어가 나왔는데도 상처는 잠잠해질 생각이 없었다. 마법 생물에 당한 상처는 오래갈 수도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기는 했다.
결국 스네이프는 이를 빠득 갈면서 나를 안아 들었다.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 눈만 멀뚱히 굴리며 무표정한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내려 주실 겁니까?"
"붕대에 피가 배어 나오는데? 꿈 깨라."
내 말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딱 자른다.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는 3학년짜리가 들었다면 울 정도로 무서웠다. 해그리드와 달리 뭘 허락할 것 같지도 않았다. 뭐, 어차피 걷기도 귀찮았으니까. 나는 살짝 경직된 몸을 풀었다. 내 반응에 만족한 듯 스네이프가 내 몸을 더 단단히 바쳤다.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스네이프 교수님? 어떻게 된 일인가요?"
폼프리가 입을 떡 벌렸다. 병동에 있던 몇몇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여든다. 스네이프에 안겨 있던 나는 굉장히 쪽팔렸다. 괜히 가만히 있었나. 매서운 스네이프와 폼프리의 시선에 나는 적당히 거짓말을 지어냈다.
"다쳤습니다."
"어쩌다가?"
"마법 연습을 하다가…."
"이건 무언가에 긁힌 상처다."
전직 죽음을 먹는 자인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슬그머니 스네이프의 시선을 피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폼프리는 벽이라도 뚫을 것처럼 큰 한숨을 내쉬고, 분주한 태도로 많은 약병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녀는 상처의 원인에 대해 더 묻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우선 이쪽으로 눕혀주세요! 뼈가 몇 개 부러졌으니까 그것부터 어떻게든 해야 해요."
"알겠습니다."
스네이프가 놀랍도록 빠르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나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는 배에 단단히 묶여진 붕대를 풀고 꼼꼼하게 내 상처를 살피다가, 선수 교체를 하듯 뒤쪽으로 슬슬 물러났다. 슬쩍 내게로 다가온 폼프리가 갖가지 색깔의 마법 약을 뿌렸다.
"푹 자고 일어나렴."
통각 마법과는 다른 몽롱함이 머리를 잠식했다. 나는 가물거리는 눈동자를 느릿하게 떴다. 흐려진 시야에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보였다. 뭘 뿌린 건가 했는데, 마취제였나.
- 얘야?
분명 잠든 것 같았는데, 순간 이동 마법이라도 한 듯 머리가 윙윙 울렸다. 천장도 없고 바닥도 없는, 그냥 온통 하얗기만 한 공간이었다. 눈이 부실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응시했다. 하얀 머리칼과 눈동자를 가진….
- 하하, 오랜만이구나.
죽어라.
나도 모르게 주먹이 먼저 나간 것 같다. 내 손이 나간 자리에 있던 신새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때리는 감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신새끼는 빨개진 볼을 감싸 쥐며 짐짓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 작위적인 모습에 더 기분이 나빠졌다.
- 너무하지 않느냐. 그렇게 다짜고짜 폭력이라니.
"닥쳐. 한 대 더 때려주리?"
방금은 타격감이 없어서 별로였는데. 친절하게 말하니 신새끼가 눈을 도르르 굴렸다. 나는 아예 하얀 공간에 앉았다. 할 말은 굉장할 정도로 차고 넘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떨어지는 건지 앉은 건지도 몰랐지만.
"난 분명 7년 동안 원작을 유지했다. 그런데 왜 다시 이 모양이지? 설명 좀 해볼까?"
- 그게… 차원 이동이 되지 않는구나.
"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짓거리를 또 하라는 건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새끼는 지배자였고, 나는 피지배자다. 거부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내가 입술을 꾹 깨물자 신새끼가 허허, 웃었다. 웃음소리가 왠지 비웃는 것 같이 느껴졌다.
- 이곳에서는 마력이나 마법을 감당할 장치가 많지. 그런데… 너의 차원은 그런 게 없더구나. 마력이 깃든 네 영혼을 받아들이지 않아. 사실 어느 정도의 마력은 있어도 되지만, 아이야, 너의 마력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아니란다.
"그래서, 날 어떻게 돌려보낼 건데?"
- 방법이… 없어서 불러낸 거란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머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뇌가 백지상태가 된 듯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신새끼를 노려보면서 겨우 생각해두었던 질문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어려진 건?"
- 그것도 내가 의도한 게 아니란다. 갑자기 시간 축이 뒤틀렸지. 그 마법은 너에게서 발현된 거로 추측한단다. 분명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냐?
나는 원작을 유지한다면서 고군분투했었던 때를 떠올렸다. 분명 죽기 전에, 이딴 원작 말고 모두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돌아간다면…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발견해냈다. 무의식중에서 마법을 발현한 건가. 도대체 인제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내가 생각해도 참 웃긴 일이었다.
[작품후기]
2019. 2. 6. 수정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