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2
- 이왕이면 이 세계에 정착해보는 걸 추천한단다. 돌아갈 생각으로 누구에게도 마음을 안 주었잖느냐. 사실 후회하고 있었던 것 아니더냐?
"…너, 스토커냐."
- 하하, 얘야. 난 모든 것을 안단다.
그건 스토커의 변명 중 하나인데. 가라앉은 기분을 털어내고 눈을 게슴츠레 뜨며 신새끼를 바라보았다. 신새끼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뭔가 불안하다. 두 번의 만남이지만 저 새끼가 웃을 때는 좋은 꼴을 못 봤다.
- 그러면, 잘살아 보아라. 마음대로 사는 것도 재밌겠구나.
"잠깐, 계약위반으로 대가 정도는 내놔."
- 대가는 아직 제작 과정을 거치고 있단다.
"장난해? 왜 다 안 만들고 부른 거야?"
- 하하하, 잘 가거라.
신새끼가 상큼하게 검지를 들어 올려서 원 모양을 빙글빙글 돌린다. 그러자 밑에 나만한 크기의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흰 공간에서 생긴 암흑 같은 구멍은 굉장히 눈에 띄었다.
"야, 이 개새-"
- 참고로 이쪽 시간대와 그쪽 시간대가 조금 비틀려있단다. 짧게는 1초에서 길게는 한 달 정도. 행운을 빌어주마.
-끼야. 차마 뱉지 못한 말을 끝으로 검은색의 공간에 빨려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무얼 하는지 구분이 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눈을 감았을 때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며 몸에 힘을 쭉 뺐다.
곧이어 깃털은커녕 공기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던 공간이 압박하듯 날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영혼이 이동할 때 특유의 느낌이었다.
'신새끼 개새끼, 시발 새끼. 신새끼가 아니라 십새끼다.'
쓸데없는 라임을 맞추면서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을 확 침범하는 빛에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가, 치밀어오르는 짜증에 얼굴을 와락 구겼다. 도대체 시간대가 얼마나 안 맞은 거야?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살짝 입을 열려는데 마른기침이 튀어나왔다. 나는 멍하다 못해서 띵, 하고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몸도 미묘하게 무거웠고, 눈은 아직도 빛을 받아들이지 못해 형편없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소음이 들렸고, 그건 머릿속에서 윙윙 울렸다. 골 아프다.
"오, 디키? 디키!"
익숙한 목소리에 겨우 찡그렸던 눈을 폈다. 눈물범벅이 된 나시사가 시야에 담겼다. 눈을 도르륵 굴리니 익숙한 방도 보였다. 잘 안 돌아가는 머리가 상황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여긴 말포이 가고, 신새끼의 말에 따르면 최소 일 초에서 최대 한 달 정도 못 일어난 것 같다. 좆됐군. 머릿속에서 비상경보가 울렸다.
"누가 보면 죽었다 살아난 줄 알겠어요."
"너는 며칠 동안 숨을 쉬지 않았단다! 내가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나시사가 맥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을 안 쉬었다고? 어쩐지 아련하게 웃는 신새끼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속으로 신새끼를 욕했다. 영혼이 이동하면 숨도 안 쉬는 거였냐고. 다시 말하지만, 인생에 도움이 안 됐다.
나시사의 눈가가 거뭇했다. 비틀거리는 몸은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았다. 괜한 걱정을 시켰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숨을 안 쉰 건 뭐라 변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변명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리 좋은 생각은 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체질이에요? 이제 건강해졌어요? 유체이탈해서 그래요? 다 미친 소리였다.
"어, 음… 별거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드레이코?"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제는 확실하게 들렸다. 나는 또렷한 의식으로 루시우스 말포이를 응시했다. 루시우스도 나시사의 상태와 그리 다를 게 없었다. 파리한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몰려오는 죄책감에 눈을 데구르르 굴렸다.
"살아, 있었구나. 그걸로 되었다."
"괜찮으세요? 좀 먹지 그러셨어요."
둘이 식음을 전폐하는 동안 나는 신새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멀린의 수염 정도 남은 양심이 콕콕 쑤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손을 공손히 모았다. 내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사죄해야 할 것 같았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깨어난 것만으로도 고맙단다. 디키, 네가 사과하면 내가 고마워할 수가 없잖니."
"그래도…."
"디키, 고마워. 살아 있어 줘서 고맙고, 깨어나 줘서 고마워. 우린 네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단다."
나시사가 코를 팽, 풀며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만지작거렸다. 그건 애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내가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지만. 과할 정도로 조심스러운 태도에 어쩐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아들은 이미 자리에 없는데. 사기 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도 고마워요."
나는 나시사를 조금 밀어내면서 괜찮다는 걸 확인 시켜주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리가 꺾여서 넘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몸을 안 움직인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를 갈면서 팔로 몸을 지탱해 일어나려 했다. 약 0.5초 뒤에 팔까지 맥없이 쓰러졌다. 시발….
"디키! 괜찮니?"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예요?"
"이 주 정도 되었단다."
이 주라…. 배운 거에 따르면 영혼은 폐 쪽으로 쏠려 있으니, 폐가 반동을 받아서 숨이 멈춘 거다. 육체는 살아있으니까 심장은 뛰었겠지. 숨이 멈췄으면 몇 분 안에 시체가 되었겠지만, 대충 숨을 유지하는 마법을 쓴 것 같았다.
병동에서 숨이 멈췄다면 폼프리와 스네이프가 기겁을 했을 거다. 심지어 몇몇 호그와트 학생들도 있었다. 호그와트에 가면 굉장히 귀찮아질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호그와트의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퍼뜩 드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현재 나는 말포이 가의 금지옥엽 외동아들이었고, 그건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 외동아들은 표면적으로 숨이 멈춰서 죽을 뻔했고, 루시우스 말포이는 호그와트의 이사장이다. 누구 하나 모가지가 잘려도 이상할 거 없는 일이었다. 설마, 덤블도어가 가만히 있었겠어?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말을 꺼냈다.
"교수님들은요?"
묘하게 조용해진 분위기에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는 누군가가 부정해주길 바랐다. 솔직히 잘못을 따지자면 신새끼 때문이었고, 호그와트의 교수님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나시사가 날 일으키면서 여상스럽게 속삭였다.
"네가 다쳤지 않니? 죽을 뻔한 정도인데 어떻게 루시가 가만히 있겠니."
"누가 희새, 아니, 파면당한 거예요?"
"아직 파면은 안 되었지만, 그 하인이란다."
약 3초 정도 뒤에 '하인'이 '루베우스 해그리드'를 뜻한다는 걸 알아챘다. 해그리드, 왜 하필 수업에 히포그리프를 데려와서…. 나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루시우스가 날 보며 어깨를 쭉 폈다. 고귀한 얼굴은 칭찬해 주라고 말하는 듯 반짝거렸다.
"걱정하지 말아라. 재판만 열린다면, 그 하인은 아즈카반에 갇힐 거야. 살인미수죄로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겠지. 그러니 몇 주만 참아라, 드레이코."
몸속에 남은 핏기가 싹 가시는 듯했다. 새하얘졌을 게 분명한 얼굴로 루시우스를 마주 보았다.
"히포그리프에 공격당한 건 제 부주의 때문이었어요."
"파킨슨 가의 아이가 말하기로는, 그 하인의 잘못이라던데?"
"동물이 절 싫어한다는 건 아시잖아요."
"3학년의 수업에 히포그리프를 데려온 것부터가 그 하인의 잘못이다."
"엄… 제가 숨을 안 쉰 건 교수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럼 누구의 잘못이란 거니?"
"그 하인이 너를 협박했나?"
"아니요?"
필사적으로 해그리드를 변호하려 노력했지만, 벽에다 대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듯한 기분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그러니까-"
"오랜만에 깨어났는데 그 하인의 얘기는 듣고 싶지 않군."
"그래, 디키. 저녁 식사나 하자꾸나."
네…. 내 팔을 잡는 나시사의 손길이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가볍게 바꾸려 노력했다. 아직 호그와트에는 가지 않을테니까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회복을 명목으로 삼 일간 호그와트를 가지 않았다. 열심히 설득해서 줄인 숫자였다. 아마 몇 달간 말포이 가에 있었다면 가는 곳마다 시선이 따라붙을 거였다. 이미 주목을 받을 대로 받은 것 같지만, 호그와트를 가지 않아 시선이 몰리는 건 더 싫었다.
화장실을 몇 번 들락날락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부모님이 들어오지 않는 곳은 유일하게 화장실밖에 없으니까. 철저한 방음 마법과 냄새 제거 마법, 긴장 풀기 마법이 설치돼있으니 화장실 빼고 좋은 장소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말포이 부부는 생각만큼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아들 바보인 면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그 아들이 원하지 않는다고요. 간절하게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딱 삼 일이 되었다. 해결이 안 된 일을 떠안고 나가자니, 기분이 영 찝찝했다. 과보호에서 벗어날 수 닜다는 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말이다. 세베루스 스네이프가 말포이 가로 찾아왔다. 여태껏 스네이프가 그렇게 반가운 적은 없던 것 같았다.
[작품후기]
2019. 2. 6. 수정완료.
루시우스의 경우
디키: 그러니까, 해그리드가 벌을 받게 하기는 싫어요.
루시우스: 그 하인은 죄가 명백하지. 히포그리프를 3학년의 수업에 사용해? 감히 내 아들의 수업에?
디키: 제가 숨이 멈춘 건 히포그리프의 탓이 아니에요. 물론, 저도 해그리드가 잘못했다는 건 동의해요. 그렇게 위험한 동물을 저학년의 수업에 사용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아즈카반 무기징역은 너무-
루시우스: 그 얘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구나.
디키:
나시사의 경우
디키: 어머니, 해그리드 말인데요.
나시사: 디키, 이거 먹고 싶니?
디키: 네? 네.
나시사: 하나 더 먹을래?
디키: 네… 아니, 그래서 해그리드-
나시사: 기다려 보렴. 하나 더 갖고 올테니까.
디키:
+) 아즈카반 무기징역인데... 일반인이라면 똑같은 반응 아닐까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