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292화 (292/361)

292화 웨일 마트

“해외수출을 하겠다고요?”

“그래 지금 단계에서 우리가 먼저 선점해야지. 일본산이나 다른 업체들이 들어오기 전에 말이야.”

“건강 기능식품이라 수요가 있을 거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처음에는 교포들이나 동양계 위주로 뚫어 봐야지.”

승인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클로렐라는 해초류로 분류되는 만큼 비타민으로 허가받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수출품의 경우, 단가가 많이 오르더라도 카라가난이랑 한천 등을 활용해 환 형태로 압착한 다음 캡슐화한 형태로 개량해 접근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제 문제는 이걸 팔 사람이었다.

“메모지 판매망을 이용할 수는 없나?”

“아무래도 그쪽이랑은 취급하는 물건이 달라서, 현지 교민 중에 유통 쪽에 종사하는 사람을 살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유통 규모가 커지면서 업무 과부하에 걸린 강태준으로서는 새로운 파트너가 절실해지는 와중이었다. 따라서 현지에서 유통을 담당할 지역민이 필요했던 것이다.

강태준이 파트너를 모집한다는 소식 들리자 전미에서 사업계획서가 쇄도했다. 백경이라는 브랜드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기도 했고, 진주나 군수 물자 사업을 통해 나름 검증된 업체인 만큼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았던 것이다.

“하 이것도 일이군.”

산처럼 쌓인 프로필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는 작업이었기에 일일이 대조해 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프로필이 보였다. 실눈을 떴는데도 눈이 안 보일 만큼 작고 통통한 체격을 보니 누군가 생각날 법도 했다.

“이 사람은 누구야? 뭔가 상인복이 어울릴 거 같은데 ”

“그러게 비단옷에 짜이오라고 하면 딱이겠네요.”

“하하. 코리아타운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로빈 장입니다. 한인 2세로 어머니가 중국계랍니다.”

“그럼 중국계 아닌가?”

“뭐 정체성은 한국인이라니까 따지지 말죠. 그보다 꽤나 유망한 사업가라던데요. 현지에서 음식점 3개와 식료품점 2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 그럼 영어가 능통하겠군.”

“뭐 어렸을 때 이민을 갔으니 원어민이나 다름없죠. 꽤나 수완이 있다는 평입니다. 사실 우리 회사 통조림을 제일 먼저 사 간 사람입니다.”

“그거 호감 가는군. 근데 수요가 있으려나?”

“일단 동양계에만 팔아도 돈이 되긴 하니까요. 시카고 지역 아시아 인구는 전체 인구의 3퍼센트 정도쯤 된다는군요.”

부모한테 배운 덕에 중국어도 잘한다고 한다. 인상은 곧 관상이라고 호감을 주는 외양에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점이 메리트. 강태준의 마음이 동했다.

“좋습니다. 이 사람 만나 보지요.”

* * *

그로부터 2주 후, 클라크 스트리트. 시카고의 한인 거리.

애드슨과 벨몬트 사이에 있는 이 거리는 식당가와 여행사, 보험대리점, 책방, 가발 도매상 등 아시아계 상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한인 사업체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활기를 띠고 있었다.

나름 이 지역에서 유지로 꼽히는 로빈은 소위 넥타이를 몇 번이나 고쳐 매고 있었다.

“나 좀 괜찮은가,”

“아니, 몇 번을 묻는 거예요. 평소답지 않게 왜 그래요. 평소대로만 해요.”

“그래도 상대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지.”

로빈 장은 몹시 설렜다. 그 역시 접객으로 닳고 닳은 인간이지만 상대가 보통 거물인가. 진주소송으로 전미에 이름을 떨친 강태준은 이미 한인들 사이에서 유명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영화와 전자, 원양어업, 통조림, 의류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성공신화를 쓴 강태준의 일대기는 유명했고 미주 한인들에게 있어서도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번 일만 제대로 마무리하면 나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어.’

백경 같은 그룹사를 뒷배로 둔다면 천만장자가 되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덕분에 미리 약속했던 장소에 한 시간이나 일찍 나간 로빈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강 사장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도 반가워요. 시카고는 몇 번 왔었는데 여기는 처음이군요. 듣자 하니 잡화업으로 하셨다는데? 저희 제품도 이미 취급 중에 있으셨다면서요.”

“원래 아버지가 이민 오기 전에 미군에 납품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조부께서도 쌀장사를 하셨고요.”

“호오. 사업가 집안이군요. 어쩐지. 사업 이야기를 할까요? 그럼.”

강태준이 본론으로 들어가자 준비했던 계획을 풀어놓았다.

“입지를 보니 남부 흑인 밀집 지역부터 진출하겠다라. 보아하니 빌딩 내에 의상실과 잡화점, 미용실과 세탁소를 같이 넣었군요?”

“소규모 자본과 경험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니 좀 부담이 적기도 하고, 고객의 발길을 머물게 하려면 한번에 쇼핑과 잡일까지 처리할 수 있는 편이 나으니까요.”

로빈 장이 심혈을 기울인 포트폴리오를 살핀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업종 구성은 좋군요. 다만 규모를 좀 키워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잡화점에 그치지 않고 좀 크기를 키워 보지요. 예를 들면 할인점 사업을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럼 어디에?”

“메인 스트리트에 인접한 지역이 좋겠죠. 시작은 약 10만 제곱피트 규모 정도면 적당하겠군요.”

“아니, 그렇게 큰 규모로 말입니까?”

“할인점의 성공요건은 마진율보다는 수익률에 있습니다. 개별상품의 마진율을 낮추더라도 고객을 끌어들이려면 대규모 매장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죠. 인지도를 확보하려면 보다 광범위한 상품구색을 취급하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나름 사업을 해 봐서일까 로빈장은 이해가 빨랐다.

“그 말씀은 박리다매로 다수의 구매자들을 끌어모아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거군요.”

“네네. 저도 백화점을 운영해 봤지만 유통에서의 승패는 유동성을 확보하는 거죠. 품질 좋은 상품을 다른 소매점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해 인원을 끌어들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할인점을 여시겠다는 겁니까? 이 근처 땅값이 장난이 아니라서 수익률을 생각하면 마땅한 장소가…….”

“한 곳 있긴 하더군요. 여깁니다.”

그걸 본 로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강태준이 짚은 장소는 다름 아닌 오래된 창고.

오래전 마피아 항쟁으로 학살이 일어난 곳으로 수십 년째 폐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거기는 아시다시피 총기사고가 일어난 곳인데, 정말 진심이십니까?”

“나도 알아요. 철거 후에 인근 요양원에서 정원 및 주차장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는군요. 그래서 샀지요.”

“재고해 보심이…… 세간의 인식이 좀…….”

“총기사고야 벌써 수십 년 전 아닙니까. 인식을 바꾸면 되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려의 뜻을 보였지만 강태준의 결심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대대적인 증축 작업을 하기로 한 강태준은 직업훈련부터 시켰다.

오픈 전, 전 직원을 모아 둔 강태준이 엄숙히 선언했다.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희 할인점에서는 자체상표 상품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체상표를 안 판다고요? 그럼 대체 어떤 걸?”

“이미 사회에서 인증된 브랜드 상품 위주로 진열합니다. 전국적 상표가 없거나 할인업에서 취급할 수 없는 상품은 쓰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염두에 두고 가지요.”

마진은 적겠지만 책임 소재가 분명한 브랜드 상품이 들어와야 신뢰를 지킬 수 있다.

단지 마트 하나가 끝이 아니다. 여기를 교두보로 삼을 생각.

그렇게 웨일마트가 오픈했지만 당연하게도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일단 총기사고가 일어난 곳이다 보니 재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 개점 후 썰렁한 분위기를 살핀 강태준이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안전 논란에 대해 좀 우려가 있긴 한가 보군요.”

“예. 아무래도 아직 그때 풍상을 겪은 사람들도 살아 있는 터라…….”

아무래도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언론도 괴담을 생산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다. 주기적으로 지역 신문을 통해 강조하다 보니 꺼림칙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식 개선이 우선이겠군요. 그러면 직원들로 하여금 찾아가는 서비스를 하면 되지요.”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럼 비용이.”

“그 부분은 제가 해결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강태준은 군인 출신 전역자들을 대거 채용해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고객 진심 마케팅이라는 모토 아래 강태준이 직접 훈련교관으로 나섰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접객의 기본은 늘 친절하라는 겁니다. 따라 하세요. 친절은 생명이다.”

“친절은 생명이다!”

“그렇습니다. 접객에서 전투와도 같습니다. 거기 김영철 씨.”

주위를 둘러보던 강태준이 약간 어색하게 서 있는 인원을 지적했다.

“예. 옙!”

“웃으세요. 웃음은 우리가 고객을 향해 유일하게 쓸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투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자자. 다시 훈련합니다. 스마일!”

태도 교정부터, 화법까지 하나하나 세세히 살폈다. 사장이 직접 교육을 맡은 효과는 굉장했다. 성과에 따라 승진 속도가 달라질 거라는 말에 태도부터가 달라진 것.

군에서도 엄선된 인력들이었던 만큼 배우는 속도는 빨랐다.

그렇게 3주가 넘게 엄격하게 훈련을 마친 인력이 투입된 것이다.

* * *

마트 오픈 3주 차. 직원 하나가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의 트렁크로 물건을 옮겨 주었다.

“이 무거운 걸…… 고맙네 매번.”

“아닙니다. 이 정도야. 조심히 가세요. 할아버지. 또 찾아 주십쇼.”

차에 물건까지 다 실어 준 직원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옆에서 뺀질거리던 동료가 하품을 했다. 한참 동안 삐까뻔쩍한 창고를 둘러보던 직원이 무료한 듯 한탄했다.

“손님이 별로 없구만.”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한가해서 좋잖아.”

“좋기는. 이렇게 운영해 가지고야 우리 인건비나 줄 수 있겠어? 그래?”

방첩대 출신인 방정남이 보기에 지금 상황이 영 미덥지 못했다. 픽업 서비스까지 하며 열심히 영업을 뛰었지만 손님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이 번을 서는 동기는 그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강사장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허긴. 그렇긴 해.”

“이거야말로 꽃보직이지. 나중에 바빠지면 이때가 그리워질 거야.”

기지개를 켠 동기가 중얼거렸다. 여기 취직한 사람들 상당수는 다들 월남에서 한따까리 하던 참전용사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군에서 쌈질을 잘했다 해도 전역하면 잉여인간이 되기 마련. 이렇게 취직한 것만 해도 용한 것이다.

“나는 달라. 어떻게든 빨리 돈을 모아서 나도 사장님이 될 거야.”

“그래 어련하겠냐? 난 그냥 편하게 살련다.”

틈틈이 실습 때 배운 메모를 살피는 방정남에 동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군대 시절부터 알아 왔지만 정말로 바른생활 사나이다.

유별나기 그지없는 친구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동기는 그러려니 했다.

방정남이 의욕을 불태우던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거 미스터. 물건 좀 찾아 줄 수 있겠나?”

“예. 잠시만요.”

자청해서 손님을 돕던 방정남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뭔가 이상한 촉이 느껴진 방정남이 반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통조림 뒤에서 흑인 하나가 수상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