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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265화 (265/361)

265화 락토 프리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던 황철득이 드럼통을 어루만졌다.

“아니, 이건 뭔가. 쌀을 드럼통에 담아서 팔다니.”

“그러게요. 신기하군요. 저도 이렇게 들이로 파는 건 첨 보네요.”

“이런 또라이같은 발상을, 제조사가 어? 백경이구먼.”

“어, 진짜네? 강사장이 이런 것도 팝니까?”

“몰러.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지 그래. 혹시 이야기 들은 거 없나?”

“제가 그런 걸 알면 여쭤봤겠습니까?”

신기한 듯 관심을 보이는 두 사람에 눈치 빠른 영업사원이 나와 말을 붙였다.

“한번 사 보시면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쌀로 만들었는데 달달한 게 맛있어요.”

“밥이 달달하다고?”

“네.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고두밥이랑 비스무리합니다요. 직접 먹어 봤는데 꽤 먹을 만합니다.”

“그래? 이거 들고 가긴 좀 묵직한데 혹 배송도 해 주나?”

“물론입죠. 이것도 나름 사이즈가 여러 개입니다. 이것보다 반짜리랑 더 큰 것도 있습니다.”

“오 그래? 이거보다 더 큰 것도 있다고?”

“함 보시겠습니까?”

호기심에 창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집채만 한 녀석도 있었다. 생각 없이 몸체를 확인해 보니 포장지 위에 경고 문구를 붙여 놓았다.

-개봉 후 상온에 너무 오래 두지 마십시오. 변질되면 막걸리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응? 막걸리라고?’

새삼스럽게 옆을 돌아보니 밀가루 포대는 물론, 제빵용 누룩과 효모를 보란 듯이 전시해 놓았다.

“이것도 파는 건가?”

“예. 꼭 이 앞에 놓으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세일 기간인데 밀 한 포대도 같이 드려요.”

이스트랑 누룩이라니.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 양자의 눈이 마주쳤다.

“이거…… 설마?”

“그 뭐냐. 그레이프 브릭 같은 거군요. 이거.”

그레이프 브릭.

1920년 미국에서 금주령이 발효되었을 때, 유행했던 물건으로 건조한 포도를 상자 모양으로 가공해 물에 넣으면 포도주스가 되고, 상온에 오래 두면 자연스럽게 발효해 와인이 되어 버리는 물건이었다. 다만 당시 업자들은 상온에 두면 술이 된다고 경고문을 써붙임으로써 법망을 피해 갔던 것이다.

술을 빚기 위해 멸균작업을 하거나 누룩을 써서 술을 빚는 건 일반 집에서는 하기 힘든 작업이라 탁주 미묘한 맛을 재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누룩을 직접 시중에 공급해 준다면…….

돈냄새를 맡은 황철득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덥썩 드럼통에 손을 올린 장성택이 드럼통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밥이라…… 마침 쌀이 부족했는데 이런 게 나오다니 식구들이 참 좋아하겠는걸요.”

“혹시 자네. 따로 장소가 필요하지 않나?”

얼마 후, 부산 어딘가서 상조회사 하나가 출범했다.

장례 대행 서비스라는 명목을 내건 업체에서는 주로 경조사에 쓰일 차례상이나 음식도 제공했는데 신기하게도 출범 직후부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며 순식간에 중견 업체로 발돋움했다.

“거 상조라니. 넙치 형님. 대단하네. 머리를 역시 잘 쓴다니까?”

“아주 살판 났는지 싱글벙글입니다. 노인들 데리고 상조 대행 서비스까지 한답니다.”

“다른 놈들도 벌써 눈치챘는지 많이들 뛰어들었더군요.”

사실 술 제조라는 것이 말은 쉬워도 진입장벽이 있는 분야긴 하지만 통조림 묵은쌀을 풀자 이야기가 달라진 것이다.

거대한 열망을 반영하듯 통조림 쌀은 폭발적인 판매고를 보였다. 냄새를 맡은 경찰들도 뒷배를 봐주면서 슬슬 끼어들었던 것이다.

“사실 묵은 쌀을 소비하면 오히려 좋은 일 아닌가. 한손으로 열을 막을 수 있나. 바보짓이지.”

그 말에 오재갑이 염려하듯 간했다.

“그래도 적당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서 다시 규제에 나서긴 한다니 슬슬 국내 물량은 수급조절을 해야 할 거 같아요.”

“그래 재미는 봤으니 슬슬 빼야지. 어차피 팔 만큼은 다 팔았어.”

그러자 급 실망한 광필이가 시무룩해졌다.

“아, 그러면 이건 그만 파는 겁니까?”

“행정처분이 취소될 때까지는 어떡하겠어? 일단 해외 위주로 돌려야지.”

정부에는 부랴부랴 규제를 나섰지만 이미 맛을 본 사람들은 자진해서 대책을 강구했다. 달고 향이 강한 제철 과일을 넣거나 옥수수나 콜라 등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누룩은 어떡할까요?”

“넙치 형님한테 독점 공급하자고. 그 양반 돈욕심이 장난 아니야. 누룩 그거 보더니만 빵 장사도 해 보겠다고 하더구만. 이번에 막걸리빵을 한 포대나 보냈다니까?”

“어, 정말입니까 그게?”

“아마추어가 만들었다 보기엔 제법 맛있더구먼. 요새 황철득 반장님이랑 지내더니 꽤나 미식가가 된 모양이야.”

양지로 나오고 싶다는 열망이랄까.

강태준이 느끼기에도 꽤나 좋은 재료에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는 느낌이었기에 솔직히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잘되었네요. 그보다 방문일이 내일이었지요?”

“응. 세브란스 쪽으로 가 봐야지. 마침 복만이 그 녀석도 불러와야 하니. 마누라 곁이 그렇게 좋은가 통 올라오질 않는구먼.”

“그래요? 제가 직접 가 봐야겠군요.”

고민이 된 강태준은 직접 거제 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아직 장성량과 추진할 사업도 많이 남았고 새로 지은 병원 운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궁금했던 것이다.

환아들에게 줄 선물을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마리아가 마중을 나왔다.

“강 사장님, 아니 아주버님 오셨어요?”

“아. 형수님.”

“복만이는?”

“읍내 갔어요. 멸치 공장 좀 둘러본다고.”

그 말에 광필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아놔, 형 내려왔다는 소리 들고 토꼈구먼. 아, 죄송합니다, 형수님.”

“뭐. 괜찮아요. 그이 농땡이 까는 건 한두 번 아니니까. 제가 잘 좀 말해 둘게요.”

“감사합니다.”

“그보다 뭐 필요한 건 없나요?”

“괜찮아요. 병원도 신축이라 널찍하고 설비도 잘 되어 있어서. 요새는 수련의들도 열심히 지원하더라고요. 예전보다 훨씬 사정이 좋아졌습니다.”

벽지에 의사라고는 씨가 말랐던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백경복지재단 소속의 연희세브란스의료원에 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메리트였을까 지원자가 꽤나 늘었던 것이다.

그때 뭔가 그렇게 궁금한지 집무실 밖으로 나온 아이들이 고개를 빠꼼이 내밀었다.

“사장님 왔어요?”

“뚠뚠이 아저씨도 또 왔네. 그새 배가 더 나왔어.”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에 광필이가 피식 웃었다.

“임마.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고 해야지.”

“우…… 근데 광필 아재는 우리 아빠보다 나이 많은걸.”

그 말에 아이 하나가 다 이해한다는 듯 슬픈 표정으로 다리를 어루만졌다.

“아저씨, 포기하면 편해.”

“뭐라고. 이것들이 보자보자하니까…… 확 잡아먹어 버린다! 왁!!”

“으악!! 괴물이다 괴물!!”

까륵거리며 도망치는 아이들. 애들 여럿을 키워서인지 무뚝뚝한 얼굴로 놀아 주는 재갑이를 보며 강태준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환아들이라기엔 꽤나 건강해 보이네요.”

“덕분이죠. 특수 분유 덕분에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지요.”

“다행입니다.”

“형부가 결단을 내려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사실 저도 들어주실지 반신반의했거든요.”

그때 막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에그머니나. 이걸 어째?”

“애가 설사가 멈추지 않아요.”

알고 보니 수련이 덜된 간호사가 식사를 혼동해 잘못 먹인 것이다. 아이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에게 따끔하게 일침했다.

“유당불내증은 분유 먹이면 안 돼요. 애들한테 독인 거 몰라요?”

“예.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꼭 제대로 확인하세요.”

유당불내증 아기들은 말 그대로 모유나 우유 속 유당 성분을 소화하지 못하는 병인 만큼 식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차례 훈계 마친 간호사가 돌아가자 강태준이 관심을 보였다.

“유당불내증이라니. 저희 회사에서는 락토프리 제품은 생산하지 않았는데 혹 필요하다면 유당함량을 낮춘 제품이라도 만들어 볼까요?”

“아 그 부분은 괜찮아요. 이미 두유를 공급받고 있거든요.”

“두유요?”

“네네. 이번에 아이들 치료식으로 납품받고 있는 건데 콩을 갈아서 우유처럼 만든 물건이지요. 콩국보다 훨씬 맛이 좋고 순해서 애들도 잘먹더라고요.”

“오, 그건 누가 만든 겁니까?”

“네. 유인국 박사님이란 분이 개발한 물건인데 이거 개발하느라 외국서 4년간 유학을 다녀오셨다네요. 발명 특허 및 영양식품 허가까지 받았는데 대단하신 분이세요.”

원래 황해도 출신인 유인국 박사는 명동서 견습 의사로 일할 당시, 설사병에 걸린 아기 환자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두유 개발에 매진했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태준이 물었다.

“음. 관심이 생기는군요. 혹시 하나쯤 맛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음료를 시음해 보니 달콤하면서도 익숙한 콩맛이 혀안을 감돌았다. 약간 심심하기는 했지만 예전에도 자주 먹었던 바로 그 맛이다.

“음…… 맛있네요. 좀만 개선하면 일반인도 좋아할 거 같은데. 이거 어디서 만들죠? 개발자분을 한번 뵙고 싶습니다.”

“마침 삼 일 후에 새로 물량을 받으러 가니 같이 가 보는 건 어떠실까요?”

“좋습니다.”

약속일자가 되자 강태준은 지체 없이 목적지로 향했다. 차를 타고 신갈쪽 갓길로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나타난 식품공장 표지.

그 앞에 있는 것은 대두를 보관하는 거대한 사일로였다..

사일로는 30톤 정도 보관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환기구가 있어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소박하군요.”

“고작해야 작년에 시판 시작했으니까요. 아직 가내 수공업 형태라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요. 병원에서만 쓰는 정도니. 그래도 안에 들어가시면 놀라실 겁니다. 위생관리가 생각보다 철저하거든요.”

연희 세브란스에서 왔다는 표시를 확인하자 관리원들은 순순히 문을 열어 주었다.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건물 안쪽으로 향하자, 공병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살균한 공병은 예열된 다음, 유액 충전기에서 넣어지고 있었다. 모두들 고무 장갑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정이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여기서 따로 멸균작업을 합니까?””

“예. 112℃에서 11분간 멸균시켜야 균이 사멸합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병 품질에 이상이 없는지, 이물질 검사가 끝난 뒤 표지가 부착되는 것을 보니 품질관리에 꽤나 신뢰가 간다. 갑작스런 방문객들에 소식을 들었는지 뒤늦게 온 유인국 박사가 일행을 반겼다.

“유 박사님! 간만이에요.”

“오 마리아! 근데 왜 이렇게 화사해졌나. 점점 예뻐지는걸?”

“유 박사님도 더 젊어지셨는데요? 그보다 직원들이 많이 늘어났는데요?”

“아이구야. 한참 멀었지요. 그보다 바로 이쪽 분이?”

“예. 백경그룹 강태준 사장님이십니다.”

“굉장히 젊으시네요. 마리아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사회사업을 많이 하신다고요.”

“사회복지사업이랄 것까지야. 좀 쑥스럽네요.”

“자, 이럴 때가 아니지. 이쪽으로…….”

사장실에 들어간 강태준은 단도직입적으로 투자 의사를 말했다. 유인국 박사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저희 두유 제품을 상용화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지금 제품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지만 현재 설비로는 대량 생산이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희 백경이 투자를 한다면 단기간 내에 전국에 보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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