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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재벌 강태준-237화 (237/361)

237화 연육 소시지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밤새 41도까지 치솟았던 열이 조금씩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거친 숨이 잦아들더니 심박수가 정상을 찾았다.

그리고 복만이가 깜빡 눈을 떴다.

“형! 여기가 어디요? 아니, 마리아?”

“복만 씨!”

“엉? 마리? 진짜 마리아예요?”

“그럼요. 다행이에요. 정말.”

복만이가 정신을 차리자 감정에 복받친 마리아가 와락 그를 껴안고 울먹였다.

한바탕의 신파극에 병원에 있던 간호사들도 감동한 듯 눈물을 훔쳤다.

코를 훌쩍이던 광필이가 툴툴거렸다.

“시키가 멀쩡히 살아날 거면서 쇼하긴…….”

그러자 복만이가 강태준 돌아보며 보면서 찡긋했다.

“형, 나 나 다 들었소. 약속 지키는 거 알지?”

“알았다 인마.”

한바탕 신파극이 끝나고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병실을 나왔다.

복만이에게 과일을 깎아 주는 마리아를 부러운 듯 주시하는 광필이.

잠시 입가를 씰룩이더니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극정성이구만요. 근데 형님 저거 근데 둘 사귀는 거 외삼촌한테는 말 안 했다고 했잖습니까?”

“뭐 저걸 어떻게 떼어 놓나. 완전 코 꿰였구만.”

대대로 유교를 숭상했던 뼈대 있는 집안에 코쟁이 며느리라니.

뒷목 잡고 넘어질 일이었지만 솔직히 복만이 입장에서는 땡잡은 거 아닌가.

앞으로 뒷감당을 할 것을 생각하니 골이 땡겨 오는 강태준.

이미 약속까지 한 마당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 * *

며칠 후, 하와이 공장.

생산 라인을 둘러보는 강태준 일행. 이들은 통조림 공장을 견학 중이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종업원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통조림 안으로 주입액을 넣고 있는 제조과정을 살펴보던 강태준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씀은 통조림에 주입액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예. 그렇습니다. 새우에는 염수에 후추나 피망, 월계수 잎 같은 젤리형 피시 스톡을 주입하거나, 토옹 훈연 식물유나 대두유를 쓰지만, 면실유가 제일 효과가 좋습니다. 무난하게 아무 맛이 나지 않거든요. 그래서 어떠셨나요? 저희 공장에 대한 소감은?”

“확실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식재도 신선하고 물건도 좋군요.”

그 말에 공장장의 낯빛이 펴졌다.

“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시식을 해 볼까요? 마침 식사를 걸러서 출출하던 참이라서요.”

“아이구야. 미리 말씀하시지.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안내원이 데려간 식당에는 견학 겸 전투식량 체험을 위해 미리 준비한 시식 코너가 준비되어 있었다. 강태준이 요구한 전투식량들이 번호대로 매겨져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오오, 이건가요? 이렇게 뜯어 보니 다르네.”

“자, 일단 이곳에서 생산되는 가공식품 종류는 김치, 장조림, 꽁치, 소시지, 쇠고기, 멸치 등 6종입니다. 콩자반과 깻잎도 개발 중에 있습니다.”

“오, 먹음직스럽게 생겼군요.”

식탁에 착석한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 캔 따개로 통조림을 뜯어 주었다.

맨 먼저 통통하게 생긴 분홍 소시지를 든 강태준. 이건 강태준이 특별히 주문한 것으로 밀가루 전분에 돼지고기와 섞어 제조한 것이다. 소시지를 입 안에 넣자 전분의 질감에 계란, 향신료가 섞인 듯한 특유의 향이 스멀스멀 입안을 감쌌다.

“역시 이거 맛있군요. 김밥에 싸 먹기도 좋을 거 같고.”

“약간 눅진하긴 하지만 어차피 데워 먹을 거니까. 케첩도 같이 동봉하면 반응이 좋을 거 같군요. 패키지에 포함시켜서 말이죠.”

연이은 호평에 공장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뭘 좀 아시는군요. 역시. 일반 소시지도 좋아하시지만, 또 특유의 맛을 더 좋아하시는 분도 계시지요. 여기 꽁치 통조림도 드셔 보십시오.”

통조림을 까자 꽁치 통조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맛에 꽤 신경을 썼는지 비린 맛이 덜하면서도 토막이 부스러지지 않은 채 풍미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괜찮네요. 이 꽁치 통조림은 별미인데요. 생선 살이 그대로 살아 있고, 뼈째 씹어 먹기 좋아서 장병들이 좋아할 거 같아요. 찌개에 넣어서 먹기도 좋겠고.”

“근데 김치 통조림은 영 밍밍한 게 맘에 들지 않네요. 이건 거의 볶은 김치인데, 좀 더 아삭아삭하게 만드는 건 안 됩니까?”

“죄송하지만 그거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김치란 물건이 참 까다롭거든요. 유산균 함량이 너무 높아지면 가스 때문에 통조림이 터져 버려서리. 볶을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그 부분은 좀 아쉽네요.”

강태준은 통조림 공장을 돌며 생산 라인의 위생 상태를 세세히 점검했다. 두 군데 더 견학을 끝내고 난 뒤 강태준이 안연복에 물었다.

“어떻습니까. 안 선생님.”

“배울 점이 많더군요. 일단 위생이 엄격한 게 인상적이더군요. 반은 보여 주기식이었겠지만 보건증을 구비하고 신체검사를 하면서 엄격하게 위생을 준수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맛은 어떤가요?”

“보존식품인 것을 감안해도 약간 아쉽습니다.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드네요. 맛의 패턴이 단조로워서 계속 먹다 보면 좀 질릴 것 같더군요.”

그 말에 광필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별로라니. 전 맛있게 먹었는뎁쇼. 거, 기준이 너무 높은 거 아닙니까. 그러게 우리 안 이사님 기준에 맞추려면 전문 음식점 셰프 정도는 와야 할 거 같은데?”

“단가 관계상 품질과 타협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좀 더 신경은 써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타국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장병들이 먹는 음식인데, 아무래도 신경을 더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질리는 거야 미국 MCI도 원래 그런 거니 그건 어쩔 수 없지요. 그럼 노 이사는 어때?”

강태준의 질문에 노기철이 의사를 밝혔다.

“잘 만들었더군요. 캔 뚜껑도 그렇고, 재질이 녹이 잘 슬지 않도록 코팅한 건 잘한 선택인 거 같습니다. 다만…….”

“다만?”

“김치에 가스 제거가 안 된다는 변명은 좀 비루하네요. 차아염소산나트륨 같은 걸 이용해서 가스 발생 유산균을 제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흠. 김치가 맛난 건 유산균 때문인데, 염소를 넣어 버리면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겠나? 피부 발진 같은 것이 나타날 위험도 있고.“

“그렇게 따지면 통조림을 먹지 말아야죠. 진공포장을 하면 숙성 시 폭발 위험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압력을 가장 많이 받는 밑면을 오목하게 하면 전체에 압력이 고르게 퍼져 캔 모양이 변형되지 않고…….”

자기 전문 분야라서일까. 블라블라 말이 길어지는 노기철에 사람들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강태준이 재빨리 말꼬리를 잘랐다.

“그래그래. 우리 노 이사가 그쪽 분야는 전문가니 충분히 잘 개량할 거라고 믿어. 그건 그렇고. 한국의 통조림 공장 사정은 알아보았나?”

“옙…….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총량이 연산 3백 40만 관 정도랍니다.”

“엥? 그거밖에 안 되나?”

“그게 공장 가동률이 낮습니다. 고작 15% 정도인데 전국 58개 업체 중에서 풀로 가동하는 업체가 하나도 없을 정도랍니다.”

한국에서도 통조림 사업이 한땐 활발했던 때가 있었지만 휴전 후 군납이 완전 중단된 지금은 가동률이 낮았고 그마저도 생산량의 5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 말에 강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매물로 내놓은 업체들이 있을 거니 접촉해 보도록. 일단 인수를 타진해 봐. 일단 통조림 안건이 공론화되기 전에 덩치를 키워야 하니까. 업체들에 매입 물건 협의는 비밀 엄수를 보안 유지 각서를 쓰고, 식품연구부에선 햄이랑 소시지는 가져가서 휴대용으로 개량해 보도록 해.”

“옙? 소시지를 휴대용으로 만들라고요?”

뜬금없는 의뢰에 노기철이 관심을 보였다.

“그래 통조림이야 아직 설비가 없어서 당장 생산이 불가능하지만 이런 간식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나? 명태 어묵에 치즈랑 전분을 섞어서 스틱형으로 구현해 봐. 이왕이면 계란도 섞고. 카라가난이나 구아검 같은 걸 넣어서 식감을 좋게 하면 좋을 거 같군.”

“흐음. 어육 소시지를 만들라는 말씀이시군요. 근데 스틱형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라는 겁니까.”

“뭐 포장이 좋아야 먹음직스럽지 않겠나. 포장은 투명한 걸로 속이 비치는 타입이면 좋겠지. 예를 들면 오렌지색으로 양쪽을 링으로 묶는 거지. 뭐 대충 가운데는 빨간 비닐을 붙여서 뜯기 쉽게 하면 좋을 거 같아.”

강태준이 펜을 들어 슥슥 그림을 그렸다. 생선 그리기에 취미를 붙인 탓일까 그림 솜씨가 일취월장한 그림은 꽤 그럴듯했다. 강태준이 그린 그림을 본 노기철이 그제서야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했다.

“아, 종 타입이군요. 시위를 당기듯 잡아당겨 포장을 뜯게 만든다라. 이거 참신합니다.”

“흠, 뜯는 재미도 있어 보이네요.”

“하나에 15g 정도로 손가락 두께 길이면 될 거 같아. 군복 앞섬이나 뒤꽁무니에 두세 개씩 박아 넣고 심심할 때마다 챙겨 먹을 수 있게 말이야.”

“15g이라, 그 정도면 적당히 짭짤하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양이군요.”

“오호……. 한번 시도해 보지요.”

강태준은 방문 선물로 받은 소시지 세트를 뜯어 다시 오물오물 씹었다. 육질은 좋았지만 역시 추억의 맛이 아니다.

‘역시 이건 아니지. 소시지는 역시 마산 햄인데 말이야.’

국민 간식이 된 그때 맛을 떠올리며 강태준은 입맛을 다셨다. 보안에 철저한 일본인들이 생산 라인을 보여 준 것도 강태준이 수송을 맡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통조림을 만든다는 걸 알면 이렇게 자세히 알려 주지 않았겠지.’

하와이 공장에서는 이미 경합이 치열한 터라, 강태준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군납이라는 걸 규모로 환산하면 엄청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이 추정한 1식분 원가는 139원…… 그런데 쌀 서 되에 하루 부식비로 5백 원을 추가하면 700원을 넘어선다.

한국군에 대한 식량 공급을 1일 1식분으로만 제한해도 1년에 9백만 달러,

2식분으로 확대되면 납품량도 배가 되니 당연히 환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대충 튕기면서 시찰을 이유로 앙꼬를 쏙 뽑아 먹고 난 다음에 서울에서 기무치 관련 언론 기사를 쫙 내주면…….

“크흐흐흐흐.”

“그렇게 웃지 마십쇼 형님 소름 끼치게. 누가 보면 악당인 줄 알겠습니다.”

“티 났나?”

“많이요. 암튼 배도 채웠는데 어쩔까요. 몸 좀 움직여야 할 거 같은데.”

“오늘은 무리할 필요 없지. 와이키키 해변에서 아가씨들 좀 보고 좀 놀다 와라. 이쪽 물이 그렇게 좋다더라.”

광필이의 표정이 화색을 띠었다. 자기도 내심 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오, 진짜요. 무르기 없깁니다.”

“그래 임마. 니도 얼른 결혼해야지. 재미 보고 와.”

“아니. 그러면 형님은요?”

“난 쇼핑센터 좀 들러서 구경 좀 하고, 쇼핑 좀 할라고. 오랜만에 유하 씨 보는데 빈손으로 가기는 그렇잖나.”

“하긴. 그렇긴 하군요. 그럼 나중에 오십쇼.”

강태준은 개인 안내 가드를 제외하고 전부 내보냈지만 핸더슨은 열외였다.

놀랍게도 자기 스스로 남겠다고 한 것이다.

“엉, 자네도 광필이 따라 와이키키 안 가나? 좀 쉬다 오지.”

“저는 오히려 이게 편합니다. 보스.”

가정에 충실한 핸더슨 입장에서는 오히려 추파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게다가 덩치가 덩치다 보니 어딜 가든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한몫했다.

“그래? 그러면 자네도 따라오게. 하나 골라 주지.”

“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무슨 소리. 나만 재미 볼 수야 없지, 대신 딴 사람들한테는 비밀일세.”

둘이 찾아간 곳은 와이키키에서 1.6km 정도 떨어져 있는 알라모아나 센터. 하와이의 쇼핑, 식사 및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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