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양재벌 강태준-142화 (142/361)

142화 판촉 전쟁

비상시국을 선포한 강태준은 회사에 아예 침낭까지 가져다 놓은 채 판촉전을 진두지휘했다.

“현재 마케팅 상황은 어떤가?”

“일단 오성에서 작정하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광고를 미끼로 신문사 지국 쪽에 연락을 넣은 모양입니다. 미수금을 미완납한 사람들에게 압박을 넣어서 실적이 나쁠 경우 지국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다는군요. 그래서 오성일보 측 지국장들이 난리가 났답니다.”

출판 전문가인 방국진의 말에 광필이가 분노한 듯 말했다.

“이런 치사한 새끼들. 밥줄 갖고 장난을 치다니.”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신문사 지국장들에게도 지대를 미끼로 미납금을 저리 대출해 주겠다 했다는군요. 덕분에 지금 신문사 쪽으로는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종합일간지 지국장들은 지입 계약을 넣는 트럭 차주와 같이 영세한 개인 사업자나 다름없었는데 신문사와는 전형적인 갑을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칙에서는 신문사에서 지국의 확장에 도움을 주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실제는 지국에서 독자 확장 요원·경품 비용까지 자가 부담이었던 것이다. 독자 확보 차원에서 무료 구독까지 자가 부담을 하다 보니 지국장들은 이중고에 시달렸다.

경쟁이 심화된 탓에 확장 독자가 유료로 바뀌어도 구독 기간이 연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본사의 요구를 무시하면 강제 접수를 당하는 만큼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을 뛸 수밖에 없었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신문사 역시 불만이 많았지만, 오성 같은 큰 기업에 정면으로 척지는 것은 부담이었기 때문에 쉬이 나서지 못하게 된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강태준이 지시를 내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출판 쪽 판촉사원들을 동원해서 가정 방문을 하라고 하게.”

“에? 가정 방문을 하란 말입니까?”

“그래. 우리 회사에서 내는 정기간행물 중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게 뭐지?”

“월간 하이틴입니다.”

“그럼 그걸 정기구독하면 요리책을 선물로 준다고 하고, 거기에 풍미를 사은품으로 끼워 넣어 봐.”

도서 시장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할부 방문 판매 기법을 도입한 것. 강태준의 마케팅은 곧바로 이재무 측에도 즉각 입수되었다.

“잡지사 쪽을 이용해서 광고 시장을 뚫었다? 이 새끼들 머리 좀 쓰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리도 압박을 넣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이재무가 고개를 저었다.

“잡지사가 한두 갠가 그걸로는 절대로 못 막아.”

“그러면?”

“어차피 마케팅의 목적이 뭔가?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거 아닌가. 이슈를 가져오는 쪽이 이긴다. 큼지막한 경품을 걸자고. 근래 사람들한테 먹힐 만한 선물 세트가 뭐지?”

“음. 아무래도 생필품류겠죠. 그중에는 아무래도 의류가 인기 있을 시점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겨울이 코앞이다 보니.”

“좋아. 그럼 이왕 시즌 오기 전에 창고서 남은 재고 좀 털자고. 광고 모델은 제일 비싼 놈으로 섭외해.”

오성에서 내세운 것은 스웨터였다. 애초에 오성그룹 자체가 섬유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보니 이쪽 부문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더욱이 당시 섬유값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회사원 월급의 오 분의 일이나 될 정도로 비싸다 보니 금세 입소문을 탄 것이다. 그렇게 되자 관심에서 자연히 멀어진 백경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오성에서 풍원 빈 봉지 다섯 장 내면 1만 명 한정 선착순으로 3천 원짜리 여성용 스웨터를 경품으로 준다더군요.”

“이거 미친 새끼들이네. 아주 돈으로 밀어붙일 생각인가 봅니다.”

강태준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스웨터라, 그럼. 우리는 금반지로 간다.”

“네. 금이요?”

“맞불 작전으로 갈 수밖에. 광복 신문에 연락해서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광고 띄워. 사상 최대의 호화판 사은 대잔치'란 제목으로. 이번 명절에 일천 명 당첨자에게 사은품으로 1돈(3.75g)짜리 순금 반지를 주겠다고 말이야…….”

“가만, 형님, 진짜 일천 명이나 줄 생각입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 가능한 범위이니 걱정 마라.”

천 명이라고 해 봐야 3.75kg 정도에 불과하니 금 시세가 오르기 전에 현물을 미리 확보해 둔 강태준으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 캔 뚜껑에 황금 도색까지 해서 황금세트라고 이름 붙인 이 프리미엄 제품은 황금빛 보자기와 금빛으로 색칠한 캔에 포장되어 발매 즉시 엄청난 반향을 얻으며 날개돋인 듯 팔려 나갔다.

그러자 자극받은 오성에서는 곧바로 풍작 기념 사은 대잔치라는 명목으로, 고기 한 근 패키지를 사은품에 추가했다. 포장지 안에 일련번호를 넣어 당첨자에게는 최고급 쇠고기를 주기로 한 것이다.

‘500그램 빈 봉지 5장 가져오면 순금반지 사은품 당첨권 하나.’

‘풍원 빈 봉지로 고급 쉐타에 쇠고기까지! 일석이조 행사!’

풍미 쪽에서 나일론 양말과 실크 장갑을 사은품으로 구성한 로얄 세트를 출시하자. 이를 접한 풍원은 고급 양산, 풍원병 등을 선물로 증정하는 사은행사를 진행했고, 백경식품에서는 이에 질세라 경복궁을 유화로 그려 넣은 애국애족 세트를 내놓았다.

모델 선정에서조차 양사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풍원에서 인기 배우 황정아를 내세워 광고하자 풍미에서는 곧바로 라이벌인 배우 김진영을 데려와 광고를 때렸다.

이쯤 되니 광고판도 경쟁이 아닌 자존심 대결로 번졌다.

“장난이 아닌데 이거. 진짜 노빠꾸네. 오성에서 황정아 섭외 한 번에 20만 원을 불렀답니다.”

“놈들도 그만큼 진심이란 거겠지. 이 정도로 해서는 화력이 모자라.”

상황을 주시하던 강태준이 김광필에게 다시 말했다.

“연기자 협회 애들 섭외해서 레스토랑 하나 열어 보자고. 식당 서빙할 놈들 섭외해 봐 얼굴마담 좀 시키게.”

“예? 식당을요?”

“백화점에 남는 공간이 한두 갠가? 그쪽에서 남는 공간 활용하기도 좋고, 홍보도 할 겸 사람을 끌어모으자는 거지.”

“근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못 할 건 또 뭔데? 영화사 입장에서는 소속배우 홍보도 되고, 꽁으로 장소를 협찬받는 셈인데 사양할 게 없잖나? 정 안되면 사무실 하나 내어 줘.”

협회도 이익단체인 만큼 서로의 이해만 맞는다면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60년대 말 라면회사와 배우 연기자 협회가 협약을 맺고 배우들이 라면을 끓여 주는 고급분식점을 운영했던 적이 있던 만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김광필이 떨떠름하게 말했다.

“이슈는 확실히 되기야 하겠습니다만 협의에는 좀 시간이…….”

“시도해 봐서 나쁠 거 없지. 영화사 쪽에 수소문해 보게. 소속배우 중에서 인기 있는 하이틴스타들로 몰아 보자고 뭐. 어때. 연기의 일환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남는 이익금은 보육원에 기부한다고 하면 명분도 서고 좋겠지. 나도 심 사장 쪽이랑 이야기해 볼 테니.”

연기자 협회에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강태준의 제안은 꽤 파격적인 데다 경기가 안 좋은 와중에 새로운 수입 거리가 생기게 된 만큼 오히려 기꺼웠던 것이다. 소속 배우들이 순번대로 당직을 서며 서빙을 한다는 소식에 음식점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신박한 홍보법에 화들짝 놀란 오성에서도 대책을 마련했지만, 이미 협회와 독점계약을 맺은 강태준이 유리하게 앞서 나갔다.

-신토불이! 국산품이 팔려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일제 말고 국산품을 애용합시다.

-좋은 물건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프리미엄 제품 풍원! 미국산과 똑같은 기술로 만듭니다.

강태준이 애국심 마케팅을 할 때면 오성에서는 되려 외제임을 부각하며 제품의 고급화를 시도하는 등 양 사의 경쟁은 이제 자존심 대결로까지 번졌다.

두 회사의 판촉 경쟁이 과열되자, 꿔다 버린 보릿자루가 된 그 외 업체들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각사의 항의가 빗발치며 클레임이 심해지자 상공부와 치안국이 개입해 시장 질서 교란을 이유로 경품행사 중지를 명령했다. 양사는 의도치 않게 사은잔치 중지 성명서를 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물밑 경쟁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과태료 및 시정명령 통지서를 받은 노기철이 성질을 부렸다.

“이런 개같은 애미나이들을 봤나, 어디서 돈 처먹고 할 짓이 없어서. 그럼 국산을 국산이라고 하지 뭐라카노. 정부가 편을 들지 못할망정 무슨 짓인지.”

“그래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금까지는 시장에서 선방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장기전으로 가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해.

겉으로 보기에는 1등인 풍미가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다르다. 무섭게 치고 올라간 풍원은 벌써부터 점유율 20%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반면 풍미의 점유율은 고작 3프로 증가했다.

“그래도 잘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시장규모도 더 커졌으니.”

“절반의 승리지. 덩치가 작은 우리가 계속 이렇게 출혈경쟁을 강요당할 수는 없어 노 이사, 멸치를 이용한 신제품은 아직 멀었나. 가쓰오부시 연구가 진척이 있는 걸로 아는데.”

“확신할 수 없습니다. 최소 6개월. 랩실에서 배지단계에 있으니, 균주를 배양하고 상용화까지는 아직 남은 절차가 많습니다.

“갈수록 태산이군. 당밀 수급은 불가능한가?”

“의견을 조율 중이지만 부정적입니다. 현재 당밀 시장은 영국과 일본 등지의 대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태라 수입처를 확보하기가 요원합니다. 더욱이 정부에서 수출 규제를 풀지 않아 새로 들어가기에는 무리입니다.”

감칠맛을 내는 요소인 글루탐산은 표고버섯, 쇠고기, 닭고기, 다시마, 미역, 멸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하지만 가장 수율이 높은 것이 사탕수수를 활용한 배양법이다. 따라서 사탕수수를 수입하면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지만, 당밀 수급 자체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반면 오성제당은 일찌감치 설탕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밀 구매에 있어서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가 먹힌다.’

현재로서는 팽팽해 보이는 구도가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결국 자금력에서 압도적인 저쪽이 정공법을 밀고 들어온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긴다 해도 상처뿐인 피로스의 승리일 뿐.

근본적인 체급의 차이를 뒤집을 수 없다면 획기적인 반전이 필요한 시점.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것인가? 그때 강태준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그래. 박 여사가 언급한 암시장 전자제품 밀수 건!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뭘 말입니까?”

“오성 놈들을 잡을 방법이 하나 찾은 거 같아.”

곧바로 생각한 구상을 찬찬히 설명하는 강태준. 그 말에 광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오성이 대량으로 전자제품을 밀수해 암시장에 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 한번 뒤를 조사해 보자는 말씀이십니까?”

“십중팔구는. 아마 리베이트조로 공작기계나 설비를 들여오고 있을 것이 분명해.”

오성의 후계 구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던 만큼 강태준으로서는 심증을 넘어선 확신이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광필은 미심쩍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흠. 그거는 좀 허무맹랑한 거 같은데, 어디 근거는 있는 소립니까?”

“박 여사의 말로는 일단은 쿼터로 허용된 물량의 몇 배가 전국 암시장에 돌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해. 근데 시장가가 들썩일 정도의 물량을 별다른 뒤탈 없이 국내에서 들여올 수 있는 수입처가 어딨겠나? 그건 오성이나 미래 정도겠지.”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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