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아서왕이 살았던 곳을 찾아가기로 결심은 했지만 무턱대고 출발할 수는 없었다. 고작 마차 한 대만 끌고 가기에는 상당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가는 데 한 달, 오는 데 한 달이지.’
마탑으로 갈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먼 곳이다. 게다가 지형도 평탄하지 않기에 에탄은 떠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다.
“흐음….”
그래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아서왕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갈지 말이다.
똑똑.
“도련님. 세바스찬입니다.”
그때. 세바스찬이 서재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에탄이 그 말을 듣고 리든이 준 책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동시에 세바스찬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답했다.
끼익.
그러자 세바스찬이 서재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어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역사서들을 보고 두 눈을 끔뻑였다.
“역사서를 보고 계셨습니까?”
“어. 좀 찾아볼 게 있었거든.”
“그렇군요. 혹시 역사서가 더 필요하시면 따로 보관하고 있는 책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이미 원하는 답을 얻었으니까.”
에탄이 세바스찬의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미 리든이 준 책을 통해서 길을 찾았으니. 남은 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세바스찬이 에탄의 대답에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 혹시 모헨이 대련을 하다가 기절했나?”
“그건 아닙니다.”
그 후 에탄의 물음에 고개를 젓고는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 에탄에게 건넸다.
“북부에서 열리는 대연회 초대장입니다.”
북부 대연회를 상징하는 인장이 각인된 편지였다. 제법 화려하게 꾸며진 게, 이 연회가 얼마나 상징적인지 알려 주고 있었다.
“흐음?”
쓰윽.
에탄이 세바스찬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면서 그가 내민 편지를 받아 내고는.
북!
편지 봉투를 바로 뜯었다.
하나 그 안에는 북부 대연회에 초대한다는 초대장만 있을 뿐, 그 외에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단순한 건 이때도 똑같네.’
에탄이 그걸 보고는 픽 웃었다.
화려한 미사여구가 없는 초대장이지만, 이 연회의 규모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북부 대연회라….”
북부 대연회는 북부에 있는 중요 가문들이 모이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그 규모가 워낙 커서 ‘대연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게 벌써 열릴 줄은 몰랐는데.”
에탄 또한 이 연회에 대해서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전생 때 몇 번 참석해 보기도 했으니 모르는 게 이상했다.
‘베르사르 가문에서의 일 때문에 시기가 당겨졌나 보네.’
하지만 이번에는 열리는 날이 빨랐다. 원래 같으면 석 달 뒤쯤에 초대장이 오는 게 정상이다.
보통은 그쯤에 연회를 여니까.
‘오히려 좋다.’
하지만 이번 연회는 석 달이나 일찍 열리니, 일정이 많이 조정됐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그러나 에탄은 이 사태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연회장에서 아서왕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겠어.’
잘만 한다면, 이 연회를 통해서 난관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
“예. 도련님.”
때문에 이번에 열리는 북부 대연회에.
“이번에는 나도 참석한다.”
자신도 얼굴을 드러내겠다고 말했다. 전생보다 몇 년은 더 일찍 말이다.
* * *
에탄은 대연회 초대장을 받은 뒤 연무장으로 향했다.
“우리도 대연회에 참석한다.”
그리고 한참 대련을 하고 있는 모헨, 아린이, 뇽뇽이에게 연회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연회에 참석한다고요?”
모헨이 그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에탄을 쳐다봤다.
설마. 에탄이 대연회에 참석한다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연회는 딱 한 번만 가고. 그 뒤로는 절대 안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에탄은 공식 선상에 얼굴을 비추는 걸 싫어했다.
그중에서도 대연회는 극도로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북부에 있는 대부분의 가문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도 알고 있어?”
“…그때 당시에 도련님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듣기는 했습니다.”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비교를 하게 된다. 특히 대연회 같은 경우에는 그게 더 심했다.
북부에 있는 모든 가문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니까.
‘딱 뜯어먹기 좋은 고깃덩어리였지.’
그곳에서 에탄은 놀림거리 그 자체였다. ‘저런 돼지 같은 놈이 대연회에 참석한다니’ 같은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로 무시 받았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마.’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에탄은 누구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성장했기에 지금은 대연회에 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스스로 여겼다.
‘그 재수 없는 놈한테 한 방 먹여 주고도 싶고.’
게다가 자신을 대놓고 모욕하던 녀석에게 주먹을 먹이고 싶기에.
이번 연회는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빠! 대연회가 뭐예요?”
“아주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야. 베르사르 가문에서 했던 것보다 몇십 배는 많이.”
“우아! 엄청 재밌을 거 같아요!”
아린이가 에탄의 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린이는 이미 베르사르 가문의 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기에 연회가 어떤 곳인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연회가 머임?”
하지만 뇽뇽이는 아니었다.
“으음… 다 같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곳이야.”
“뇽뇽이. 가고 싶음.”
뇽뇽이는 베르사르 가문의 연회에 같이 따라가지 못했다.
“뇽뇽이… 갈 수 없음?”
때문에 에탄이 말하는 대연회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번에는 뇽뇽이도 연회에 함께하고 싶었다.
“가고 싶음. 혼자 있으면 외로움.”
저번에 모두가 베르사르 가문으로 떠났을 때, 뇽뇽이는 가문에서 쓸쓸히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세바스찬이 함께하기는 했지만, 아린이가 없는 자리는 뇽뇽이에게 아직 버거웠다.
“아니. 이제는 뇽뇽이도 함께할 거야.”
그래서 이번에도 못 갈까, 속으로 불안감을 느꼈지만.
“우리 가문의 일원이니까. 당연히 참석할 수 있지.”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갈 수 있음?”
“응. 이제 뇽뇽이도 같이 갈 수 있어.”
“…….”
에탄의 대답에 뇽뇽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후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하더니.
“흐응!”
이내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앗! 뇽뇽아! 머리에 뿔 생겼어!”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폴리모프를 살짝 해제하고 말았다.
“!”
뇽뇽이가 그 사실을 깨닫고는 다급히 폴리모프를 보완했다. 그러자 머리에 뽈록 튀어나왔던 뿔이 언제 그랬냐는 듯 모습을 감췄다.
“허어.”
모헨이 그걸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뇽뇽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말로는 들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니.
“놀랍군요.”
감탄을 하는 게 당연했다.
“뇽뇽이. 사람 할 거임!”
그때 뇽뇽이가 모헨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자신은 드래곤이 아니라 인간이 될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말이다.
“사람…좋음!”
“그래. 그래. 뇽뇽이는 인간해. 우리도 인간이니까.”
에탄이 뇽뇽이의 머리를 쓸어 만졌다.
‘드래곤이 사람을 좋아한다라. 드래곤 학자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
그러면서 속으로 픽 웃었다.
어떤 드래곤도 이런 식으로 인간에게 호감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에 한해서는 그러했다.
‘이번 생은 신기한 일을 많이 겪네.’
환생부터 시작해서 드래곤과의 만남까지.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변화를 에탄은 몇 개나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걸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 변화들을 통해 전생보다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까.
“뇽뇽아. 그런데 연회에 같이 가기 위해서는 네가 지켜야 하는 조건이 있어.”
“조건? 무엇임?”
뇽뇽이가 에탄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뇽뇽이가 나랑 아린이. 그리고 같이 가는 사람들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거야.”
“…….”
“잘 지킬 수 있겠어?”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입을 꾸욱 다물고 고민하더니.
“지킬 수 있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겠다고 답했다.
“좋아. 그거면 됐어.”
에탄이 뇽뇽이의 대답에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연회 준비 한번 맛깔나게 해 보자. 다들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게 말이지.”
그리고 뇽뇽이, 아린이, 모헨을 쳐다보면서 이번 연회에 칼을 갈자고 말했다.
“그런데 도련님… 어떻게 해야 모두를 놀래킬 수 있는 겁니까? 설마 거기서도 대련을 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모헨이 그 말을 듣고는 에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탄이라면 거기서도 칼을 휘두르고도 남을 성질머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누가 시비만 안 걸면 그럴 일은 없겠지.”
“한 놈 걸리면 본보기로 삼겠다는 뜻이군요.”
“뭐. 부정하지는 않을게. 내가 한 대 맞고도 가만히 있을 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니까.”
에탄이 모헨의 말에 긍정했다.
사실. 이번 대연회에서도 시비가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워낙 망나니처럼 살아왔으니까.
“물론. 그런 걸로 두각을 드러내겠다는 건 아냐.”
하지만 단순히 힘을 통해서 인지도를 만들려는 건 아니었다.
“그러면….”
“연회는 사교야. 그러니까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인정하겠지.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게 뭔지 알아?”
에탄의 말에 모헨이 눈을 찡그렸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곰곰이 머리를 굴려 봤지만.
“모르겠습니다.”
끝내는 답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당연한 거였다.
모헨 또한 연회장에 가 본 경험이 별로 없으니 에탄의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알고 있어.”
하지만 에탄은 연회를 제법 많이 가 봤기에 연회장에서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춤이야.”
사교회의 꽃이나 다름없는 춤.
에탄은 거기에서 두각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우리 모두 춤을 연습한다.”
아린이, 뇽뇽이, 모헨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