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춤은 연회의 꽃이다.
어지간히 큰 연회장에는 춤을 추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심지어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도 따로 있을 정도니, 연회의 절반은 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런데 춤을 배우는 거랑 베르사르 가문으로 향하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그래서 춤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건 모헨도 납득 했다. 비록. 연회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춤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냥 가문 내 에서 춤을 출 줄 아는 사람과 합을 맞춰도 될 텐데….”
하나 춤을 배우기 위해, 자신들이 베르사르 가문까지 이동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마차에 탔으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냐?”
에탄이 모헨의 질문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에탄과 이들은 베르사르 가문에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그런데 인제 와서 굳이 이곳까지 올 필요가 있냐고 물으니.
“한 대 맞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럼 지금 당장 때려 줄 수 있는데.”
에탄이 짜증을 느낄 만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가서 그렇습니다. 혼자서 계속 생각해 봤는데 춤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도 아닌 거 같아서….”
“어휴. 이래서 어린 녀석들은.”
에탄이 모헨의 말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도 어리면서….’
모헨이 그걸 보고는 속으로 어이없어했다. 에탄과 모헨의 나이는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나 그걸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에탄의 주먹이 얼굴로 날아올 테니까.
“모헨. 우리 가문에서 연회에 꾸준히 참석한 사람을 말해 봐.”
“전부 말입니까?”
“그래.”
“흐음.”
모헨이 에탄의 말에 턱을 쓸어 만졌다.
“제가 알기로는 가주님…뿐이군요.”
“맞아.”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우리 아버지가 연회에서 춤을 춘다는 이야기 들어 봤냐?”
움찔.
모헨이 에탄의 대답에 몸을 멈칫했다. 그 후 곰곰이 기억을 뒤져 보고는.
“없습니다.”
에탄의 말에 없다고 답했다.
“그럴 수밖에 우리 아버지는 춤을 못 추거든.”
“예?”
“쉽게 말하면 몸치야.”
“…아.”
모헨이 에탄의 대답에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몰랐던 슬픈 진실 하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 * *
마차는 계속해서 베르사르 가문으로 나아갔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그리고 베르사르 가문에 도착하는 순간, 가주 베이른이 이들을 마중 나왔다.
“마차를 타고 와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에탄이 베이른의 말에 고개를 꾸벅였다. 그 후 아린이와 뇽뇽이를 쳐다보면서.
“아린아, 뇽뇽아. 가주님께 인사하자.”
베이른 가주님에게 인사를 하라고 말했다.
“베이른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인사함.”
그러자 아린이와 뇽뇽이가 허리를 팍! 숙였다.
“허허.”
베이른이 그 모습을 보고는 함박 미소를 지었다. 아린이와 뇽뇽이의 해맑은 인사를 받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그래.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심지어 할아버지라는 호칭도 마음에 들었기에 가주라고 부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배가 많이 고플 거 같은데 일단 식사부터 하자. 다들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히려 아린이와 뇽뇽이의 허기짐을 걱정하니.
‘누가 보면 아린이와 뇽뇽이가 손녀인 줄 알겠네.’
에탄은 조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설탕 사탕도 있어요?”
“물론이지! 이 할아버지가 산처럼 만들어 놨다.”
“우아!”
“흐응!”
그때 아린이와 뇽뇽이가 베이른의 대답에 두 눈을 크게 떴다. 동시에 그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베이른 가주님이 원래 저렇게 인자한 사람이었습니까?”
모헨이 그 모습을 보고는 혼란을 느꼈다.
“아. 너는 그때 산에 있었지.”
에탄이 모헨의 말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베르사르 가문에서 악마 숭배자를 토벌할 때, 모헨은 산에서 폭포를 베고 있었다는 거였다.
“어쩌다 보니 이런 관계가 됐어.”
그래서 모헨의 물음에 간단하게 답을 해 주고는.
“우리도 밥부터 먹자.”
모헨을 지나쳐 식당으로 발걸음을 움직였다.
“도대체 내가 산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렇게 모두가 안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모헨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나도 모르겠다.”
그러다 이내 피식 웃으면서 생각하기를 멈추고는.
“도련님 같이 가요!”
에탄을 따라 베르사르 가문 내부로 향했다.
* * *
그렇게 에탄이 베르사르 가문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총 세 개의 보구를 가져갔다라….”
케레니아 왕국 국왕은 테이론으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전해 들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보구 보관소에 있는 3개의 보구가 반출되었다는 거였다.
“어떤 것들을 가져갔느냐?”
“우선, 태양 기사단의 초대 기사 단장이 사용하던 검이 반출됐습니다.”
“호오.”
테이론의 말에 국왕이 흥미롭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상징적인 보구를 가져갔구나.”
“그렇습니다.”
“그래. 태양 기사단의 검이 확실히 명검이라고 듣기는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흥미 이상의 감정을 보이지는 않았다. 국왕이 생각하는 초대 기사단장이 휘두르던 검의 가치는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한데 남은 두 개 중에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음?”
“저조차도 처음 보는 갑옷을 에탄 영식이 보관소에서 들고 나왔습니다.”
“그래?”
그러나. 이어지는 테이론의 말에 국왕은 손에 쥐고 있는 포크를 내려놓고는.
“처음 보는 갑옷? 어떻게 생겼지?”
“평범, 아니 낡아빠진 오래된 갑옷이었습니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씀드리면 철판때기를 덧붙인 모양이었습니다.”
“흐음….”
에탄이 가져간 갑옷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다.
“나중에 따로 조사해 보거라.”
심지어 이번에는 흥미를 넘어 살펴보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머지 하나는 무엇이냐?”
“그게….”
테이론이 국왕의 물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나머지 하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면서 국왕에게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이 두 눈을 끔뻑였다.
“알지 못한다고?”
“예. 그자가 보관소에서 나올 때 자신이 고른 보구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보관소를 살펴보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지시를 내렸습니다만. 그런데….”
테이론이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국왕에게 보고를 올리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목록에서 사라진 보구가 없었습니다.”
“음?”
“두 개의 보구는 자리에 없는 게 확인됐지만, 그 외에 모든 보구는 제자리에 온전히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몇 번이나 철저히 조사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허.”
테이론의 말에 국왕이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법이군.”
그리고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보구를 가져갔지만 보관소에는 보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들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것과 똑같은 보구를 가져오는 것뿐이죠.”
“그래. 아니면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고차원의 마법을 이용하거나.”
국왕의 말에 테이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리든에 대해서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물었다.
“내버려 두거라.”
“예?”
“굳이 여기서 더 건들 필요 없다. 게다가 보구를 내주라고 한 것도 내 명령이지 않았느냐? 그러니 신경 끄도록.”
“…알겠습니다.”
국왕의 말에 테이론이 당황했다.
하나 그 이상에 의견을 말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그저 왕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일 뿐이니까.
“칼라사르 가문이라고 했지….”
하지만 그런 테이론도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재밌군. 재밌어.”
지금 저 국왕의 번뜩거리는 눈빛이, 칼라사르 가문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말이다.
‘과연….’
하지만 그 변화가 좋은 쪽일지 나쁜 쪽일지는 테이론도 확신할 수 없었다.
* * *
에탄은 베르사르 가문에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그럼. 지금부터 춤을 배워 보도록 하자.”
아린이, 뇽뇽이, 모헨과 함께 베르사르 가문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회에서 선보일 춤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테이벤과 포이른이 너희를 도와줄 거다.”
“…저 두 녀석이요?”
하지만 이런 에탄조차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그래. 두 사람 모두 춤에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으니 너희를 잘 도와줄 것이다.”
테이벤과 포이른이 보조 강사로 온 거였다.
“…….”
에탄이 그 사실을 깨닫고 눈앞에 있는 테이벤을 빤히 바라봤다. 사실 포이른이 자신을 알려 주는 건 상관이 없었다. 어린애인지라 쪽팔린 건 좀 있겠지만, 딱히. 녀석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니까.
“흐음.”
다만 테이벤은 예외였다.
물론 지난 울분을 전부 풀었다고 하지만, 에탄은 아직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빠아안.
그래서 쏘아붙이듯이 테이벤을 바라보자.
“크흠.”
테이벤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자신이 저질렀던 사고가 있으니 눈치가 보이는 게 당연했다.
“에탄. 오늘은 내가 네 춤 스승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지 말아라.”
하나 이번에는 테이벤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찌 됐든 에탄에게 춤을 알려 주는 처지니까.
“그래. 알겠어.”
에탄이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납득을….”
테이벤이 그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탄이 자신을 이해하겠다는 뜻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에탄의 말에.
“제대로 못 가르치면 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
“하루 만에 완벽하게 출 수 있게 알려 줘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괜히 나 고생시킨다고 어렵게 설명했다가는 연무장에 드러눕게 될 거야.”
테이벤은 깨달았다.
오늘, 날을 잘못 잡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