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제59화. 불안한 출발(2)
베네핏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이연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말았다.
베네핏 내용에 대해 민주린이 짧게 설명해 줬다.
“각 그룹이 자신이 속할 1개 팀을 선정해서 그 팀의 센터를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센터 지정권.
이건 아이돌에겐 굉장히 크나큰 특권이다.
“보컬, 랩, 그리고 댄스. 이렇게 세 개의 파트로 흩어지실 거잖아요. 그러면 각 파트별로 여러 개의 팀으로 또 나뉘게 될 텐데……. 예를 들어서 보컬 파트에 20명의 사람이 넘게 몰려서 총 3개의 팀으로 나뉘었다고 치죠. 만약 MAYO 팀이 보컬 1팀 쪽에 센터 지정권을 쓰고 싶다, 그러면 그 보컬 1팀의 센터를 MAYO 팀이 마음대로 지목할 수 있습니다.”
지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랑이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꼭 자기 자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그룹의 멤버를 지명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대신에 센터 지정권은 딱 한 번만 쓸 수 있으니까 웬만하면 자기 그룹 멤버를 센터로 세우는 데 사용하는 게 좋겠죠?”
민주린의 말이 맞다.
어렵게 베네핏을 얻었는데. 다른 팀원을 센터로 세우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략적인 이유가 들어가 있다면 모를까.
아무튼 상당히 막강한 내용을 지닌 베네핏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센터 자리에 서는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갈 테니까 말이다.
“베네핏을 가진 팀이 현재 샤이걸스하고 MAYO, 그리고 아이비제이 트윙클. 이 세 팀이네요. 센터 지정권은 파트 팀이 정해진 다음에 사용하시면 되니까, 충분히 상의한 다음에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럼 파트 분배부터 시작해 볼까요. 먼저 샤이걸스 팀부터 나와주세요.”
샤이걸스 멤버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섰다.
보컬, 랩, 댄스.
선택지는 3가지다.
객관식 시험 문제보다 보기가 적긴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훨씬 길 수밖에 없었다.
선택의 순간까지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한 샤이걸스 멤버들은 결국 결심을 굳힌 듯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같은 쪽으로 걸어갔지만, 이내 각기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보컬에 리더 앤서를 포함한 멤버 3명. 랩에 1명. 그리고 댄스에 1명.
샤이걸스의 선택지를 눈여겨본 이연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예상대로네.’
샤이걸스라면 분명 보컬 쪽에 힘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파트 미션은 모든 멤버들이 다 골고루 점수를 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랩과 댄스 쪽에는 최소 인원만 배치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샤이걸스의 특기인 보컬 쪽에 올인하기로 작전을 짠 거였다.
이연은 다른 팀들도 비슷한 전략을 들고나왔을 거라고 보고 있었다.
“다음은 아이비제이 트윙클, 나와주세요.”
혜원, 미수, 지현. 세 명의 고참들은 샤이걸스 같은 작전을 쓸 수가 없었다.
세 명이 전부라서, 무조건 다 흩어져야 했다.
대신에 어느 멤버가 어떤 파트를 고를지. 이게 중요한 포인트였다.
여기서 이연이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바로 혜원의 행방이었다.
혜원은 샤이걸스 멤버 3명이 서 있는 보컬 쪽으로 향했다.
서로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그 와중에 이연은 샤이걸스 보컬 파트 멤버들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본인 포지션에 맞게 찾아갔네.’
리더 미션 때에는 일부러 변수를 줬던 혜원.
그러나 이번 파트 미션에서는 다시 고향을 찾아 돌아왔다.
의외인 것은 랩 쪽에 지현이, 그리고 메인 보컬인 미수가 댄스로 갔다는 거였다.
보통은 메인 보컬 포지션을 맡는 멤버가 보컬로 갈 테지만,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혜원 선배님이라면 보컬로 가셔도 충분하시니까.”
“맞아. 노래 엄청 잘하시잖아.”
아이비제이의 제2의 메보좌라 불리는 혜원이었기에 참가자들은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선택에 큰 의아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지막 베네핏 소유팀인 MAYO의 선택이 이어졌다.
MAYO 역시 샤이걸스와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대신에 분야는 좀 달랐다.
자신들의 특기 영역인 랩 파트에 2명의 인원을 배치하고, 나머지는 각각 한 명씩만 인원을 분배했다.
리더인 미랑은 랩 파트 쪽에 위치했다.
“MAYO 선배님들은 랩에서 확실하게 점수를 따고 가실 생각인가 보네.”
“그러게 말이야.”
“미랑 선배님이 저기 계시면, 랩은 끝났다고 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약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컬에는 혜원이.
랩에는 미랑이.
보기만 하더라도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항복 선언을 할 수는 없었다.
해볼 수 있을 때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나.
“다음으로…… 가을소녀 팀, 나와주세요.”
“네!”
12명의 아이돌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인원수가 워낙 많다 보니까 보컬에만 4명, 랩에 3명, 그리고 댄스에는 무려 5명이 배치되었다.
CDP 역시 이에 못지않은 물량 공세를 보였다.
이다음은 원더존의 차례.
원더존 또한 보컬에 3명, 랩에 2명, 댄스에 4명을 배치했다.
마지막은 하니엘의 차례다.
“연이 언니.”
유키가 이연을 다급하게 불렀다.
“저는 어디로 가면 돼요?”
이연은 눈짓으로 보컬 쪽을 가리켰다.
“여솜이하고 우미 언니랑 같이 보컬로 가.”
리샤하고 비아는 댄스로. 그리고 시우는 미리 이야기했던 그대로 랩을 맡기로 했다.
여기서 멤버들은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연이, 너는?”
이연이 과연 어디로 갈지가 궁금했다.
보컬? 아니면 의외로 랩?
이연이 택한 곳은.
“난 댄스로 갈게.”
열심히 땀 흘리는 쪽이었다.
* * *
혜원은 리샤, 비아를 따라서 댄스로 이동하는 이연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녀와 같이 보컬 파트를 택한 초영이 혜원에게 작게 말했다.
“이연 씨는 보컬로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댄스를 택했네요.”
혜원도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크게 놀랄 선택은 아니었다.
이연은 보컬도, 댄스도, 랩도. 다 잘하는 만능 플레이어니까.
그래서 사실 혜원은 이연이 어딜 가든 다 잘할 거라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연이 보컬을 피해서 다른 파트를 선택해 준 게 혜원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강력한 경쟁자 한 명이 사라진 셈이니까.
모든 멤버들의 파트 정하기가 끝났다.
이제 중요한 순서가 남았다.
민주린이 제작진으로부터 인이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뭔가를 전달받았다.
“보컬에 20명, 랩에 12명, 댄스에 19명. 이렇게 분배되었네요.”
51명이나 되는 여자 아이돌들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다 보니 민주린뿐만 아니라 제작진도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것치곤 아직까지 큰 혼선은 보이지 않았다.
“보컬 3개 팀, 랩은 2개 팀, 댄스는 3개팀. 이렇게 총 8개의 팀으로 나누게 될 예정입니다. 팀 배치는 랜덤 방식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결과를 화면으로 띄워 드리겠습니다.”
보컬과 랩을 고른 아이돌들은 속으로 제발 혜원, 미랑하고만 같은 조가 되는 걸 피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댄스 쪽에는 피해야 할 인물이 두 명 있었다.
뭐든지 잘하는 이연.
그리고 CDP 소속의 비주얼 강자, 인지였다.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민주린이 말한 대로 팀 분배 결과가 공개되었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감탄이 뒤섞여 쏟아졌다.
가장 눈여겨 볼만한 건 댄스 팀 결과였다.
“연이 씨하고 인지 선배님이 같은 팀 됐네!”
“어머, 세상에!”
“댄스 2팀, 볼만하겠다.”
비주얼계 넘사벽이 두 명이나 속해 있으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 두 사람과 같은 팀에 배치된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 중에 리샤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필이면 왜…….”
댄스 1팀에 포함된 비아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언니는 이연 언니하고 같은 팀 됐잖아. 나는 혼자 떨어지게 되었다고.”
이건 리샤 입장에서 괜찮은 소식이었다.
혼자서 대선배님들과 아우러져 연습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연의 곁에 붙어 있는 게 나았다.
이연, 리샤, 인지와 같은 댄스 2팀에 포진된 사람은 원더존의 채미와 하영, 그리고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메인 보컬, 미수였다.
여기서 이연은 인지보다 미수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녀의 댄스 실력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베네핏 때문에 그렇다.
‘보컬하고 랩 쪽에 베네핏을 쓸 거 같진 않은데.’
보컬은 애초에 혜원의 노래 솜씨만으로도 센터 못지않은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을 테니까 의미가 없고.
랩은 센터라는 개념이 크게 의미가 없다.
만약에 베네핏을 쓸 거라면, 차라리 댄스 파트에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퍼포먼스에서 센터에 설 수 있다는 건, 자신의 존재감을 독보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연과 인지의 비주얼이 압도적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그녀들의 미모가 아무리 예뻐도 소용이 없다.
결국 댄스는 자리싸움이다.
민주린이 샤이걸스 멤버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샤이걸스부터 먼저 베네핏을 어디에 사용할지 말씀해 주실까요?”
“저희는…… 보컬 1팀에 사용하겠습니다. 센터는 저희 멤버인 예희로 하겠습니다.”
샤이걸스는 보컬 쪽에 확실히 힘을 주겠다는 뜻을 재차 어필했다.
“MAYO 팀은요?”
“저희는 댄스 3팀에 사용하겠습니다.”
“같은 멤버를 센터로 올리실 거죠?”
“네! 당연하죠!”
미랑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갈랐다.
가장 중요한 아이비제이 트윙클의 차례다.
혜원의 시선이 댄스 쪽으로 향했다.
이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우리 팀 센터 자리에 같은 멤버를 올릴 생각인가 보네.’
이연의 예상대로 흘러가나 했지만.
갑자기 혜원이 급커브를 보였다.
“댄스 2팀에 사용하겠습니다.”
“미수 씨를 센터로 지명하실 건가요?”
“아니요.”
“……?”
순간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이연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같은 팀인 미수를 센터로 올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라고 말하니까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린도 이연과 같은 생각이었기에 재차 물었다.
“예? 아니라고요?”
“네. 아까 선배님이 말씀하셨잖아요. 굳이 같은 팀 멤버를 센터로 지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마. 다른 팀 멤버를 지명하실 건가요?”
혜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던진 변수라는 이름의 돌멩이 하나가 호수 전체에 큰 물결을 만들어냈다.
“저희 아이비제이 트윙클은…… CDP의 인지 씨를 센터로 지명하겠습니다.”
지목을 받은 인지 본인이 가장 크게 놀랐다.
“저, 저를요?”
“네.”
태연하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재차 확인시켜 주는 혜원.
그제야 이연은 혜원이 왜 같은 팀 멤버가 아니라 인지를 골랐는지 알 수 있었다.
‘나 견제하려고 그러나 보네.’
어중간하게 미수를 센터로 내세울 바에야, 차라리 인지를 센터로 세워서 이연이 획득 가능한 점수를 확실하게 낮춰 버리겠다.
이 전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