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30화
제37화. 첫 예능(1)
비슷한 시기에 컴백과 데뷔를 하게 된 두 걸그룹의 운명 같은 대결이 마침내 첫선을 보이게 되었다.
디지털 음원 점수에 음반 판매 점수, 시청자 선호도와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점수들이 합산되어 뮤직 투게더 이번 주 1위를 결정짓는다.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들.
어느 분야에서는 아이비제이가 큰 점수 차이로 앞서고.
또 어느 한쪽에서는 하니엘 팀이 근소한 차이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모습을 보였다.
점수 합산 결과.
모두가 궁금해 하던 걸그룹 대전의 결과가 드러나게 되었다.
“1위는 바로……! 아이비제이 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쉽게도 첫 음악 방송에서는 아이비제이의 위엄을 넘어서진 못했다.
못내 아쉬움을 감추면서도 하니엘 멤버들은 진심으로 선배들의 1위 수상을 축하했다.
아이비제이 멤버들도 좋은 경쟁을 펼쳤던 후배 그룹과 진한 포옹을 나눴다.
“수상 소감 한마디 해주시죠.”
MC가 자연스럽게 리더인 혜원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이런 수상 소감은 늘 침착함을 유지하는 혜원이 적격이었다.
“저희가 오랜만에 이렇게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날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런지 오늘의 이런 자리가 더욱 영광스럽고 기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들, 항상 사랑하고요. 그리고 하니엘 여러분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1위 감사합니다!”
아이비제이는 소감 이후에 1위만이 누릴 수 있다는 앙코르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계속해서 무대에 남아 있기로 했다.
다른 가수팀들과 함께 무대 아래로 내려온 하니엘 멤버들.
대기실로 오자마자 유키가 가장 먼저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1위할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선배님들하고 맞붙어서…….”
명예로운 패배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불만인지 화인지 애매한 감정을 드러내는 유키를 보면서 이연은 작게 웃었다.
“괜찮아.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그리고 음악 방송이 뮤직 투게더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직 그녀들이 서야 할 무대가 너무나도 많다.
물론 아쉬움이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이연도 바로 눈앞에서 음방 첫 1위라는 자리를 놓친 게 여전히 눈에 아른거렸다.
그렇다고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에 얽매이는 건 더 좋지 않다.
“주눅 들지 말고 오늘처럼 계속 노력하면 돼. 데뷔하자마자 1위 후보에 오른 것도 대단하잖아. 그렇지?”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지금껏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 기나긴 연습생 시절을 버텨왔다.
그것에 비하면, 이 정도 아쉬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연이 말이 맞아. 2위도 대단한 거니까.”
“그렇지.”
“아직 기회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때는 더 열심히 하면 돼!”
멤버들이 다시 기운을 차리는 모습을 보면서 홍류현 실장은 팔꿈치로 박도수 매니저를 툭툭 건드렸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이연이가 대신하고 있는 거 같은데.”
“이러다가 이연이한테 제 일감 다 빼앗길지도 모르겠네요.”
자조 섞인 웃음소리를 흘리는 박도수.
설마 이 타이밍에 매니저 자리에 쫓겨날 위기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 * *
바로 어제가 하니엘의 첫 음악 방송이 있는 날이었다고 한다면, 오늘은 첫 예능 프로그램 녹화가 있는 날이다.
그동안 멤버들은 라디오나 토크 위주의 프로그램만 위주로 출연했었다.
그러다가 데뷔 6일 만에 처음으로 예능 신고식을 치르게 되었다.
오늘 그녀들이 출연할 예능은 ‘아이쇼’라는 타이틀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은 유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아이쇼’가 무슨 뜻이야?”
멤버들 중에서 예능 마니아라 불릴 정도로 예능 프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막내즈 멤버, 이비아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아이돌’하고 ‘쇼(Show)’를 합쳐서 ‘아이쇼’로 지었다고 들었어. 매번 다른 아이돌을 게스트로 초대해서 이 아이돌이 어떤 가수인지, 낱낱이 파헤쳐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취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지. 어때, 이해돼?”
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말이나 문화, 식습관 등은 통달했지만, 아직 한국 예능에는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반대로 리샤는 유키처럼 같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아와 더불어서 한국 예능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미국 예능보다 한국 쪽이 자신의 취향에 더 맞다는 이유에서였다.
오늘이 하니엘의 첫 예능 출연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멤버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도 출연해 본 적이 없나? 하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SSS 녹화 당시, 2라운드 마지막 미션 때 팀 단위로 타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하니엘 팀이 아닌 다재다능 팀이었던 시절, 이연과 당시의 멤버들은 패션을 주 소재로 다룬 예능 프로그램, ‘스타일 나이트’에 출연했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게 그녀들의 첫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하니엘로서는 오늘이 첫 출연이 맞다.
그래서인지 ‘아이쇼’ 제작진 측에서 하니엘이 우리 프로그램에서 예능 신고식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사로 널리 널리 퍼뜨렸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어떤 게스트가 오느냐에 따라 매회 시청률이 극과 극을 달리다 보니, 이런 홍보는 기본으로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하니엘은 데뷔 때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형 신인 그룹이니까.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당연하다.
멤버들도 촬영 섭외가 들어왔을 때부터 ‘아이쇼’에 대한 모니터링은 한 번씩 쭉 해둔 상태였다.
진행자는 바로 어제 만났던 원스탭의 멤버, 종현과 함께 코미디언 겸 MC로 활동 중인 김운혁, 그리고 걸그룹 멤버 출신인 유미. 이렇게 셋이서 ‘아이쇼’의 진행 담당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분위기가 어떤지. 그리고 무슨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이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이연은 지금까지 방영되었던 ‘아이쇼’ 전 회를 모두 모니터링했다.
전 회차라고 하면 굉장히 많아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쇼’의 경우에는 전부 합쳐봤자 7회가 다였다.
방영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편수가 많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차를 타고 스튜디오로 이동하는 와중에 이연이 모니터링을 통해서 얻은 정보를 멤버들에게도 확인 차 공유해줬다.
“별거 다 시키던데. 수학 문제도 풀게 하고. 퀴즈 같은 것도 내고.”
수학, 그리고 퀴즈.
전부 다 비아와 리샤가 싫어하는 것들뿐이었다.
리샤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예능이라며. 근데 왜 공부를 시키려는 거야?”
“‘아이쇼’가 원래 그런 프로그램이니까. 아까 비아가 말했잖아. 아이돌을 ‘낱낱이 파헤쳐서’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고 알려준다고.”
여기에는 지능과 상식이라는 항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두뇌 평가만 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돌 육상 대회, 줄여서 아육대 맛보기 느낌으로 멤버들의 피지컬도 테스트하는 코너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MC분들이 어려운 거 안 시키셨으면 좋겠는데.”
오늘 녹화는 쉬운 난이도로 걸리기를.
우미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속으로 강력히 희망했다.
* * *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PD를 비롯해서 오늘 녹화 때 같이 고생할 MC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짧은 리딩 이후, 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깔끔한 흰색 배경으로 꾸며진 스튜디오 한가운데에서 세 명의 출연진이 나름 상황극을 펼치면서 오프닝을 알렸다.
‘아이쇼’ 첫 회 방송 때부터 꾸준히 밀고 있는 상황극 오프닝이지만.
이연이 봤을 때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어색한 맛이 웃음 포인트겠지.’
그래서 제작진도 포기하지 않고 MC들에게 꾸준히 상황극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김운혁이 먼저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본격 아이돌 분석 쇼, 아이쇼! 9회차 방송으로 여러분들 앞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운혁이고요. 옆에는!”
“종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유미입니다! 반갑습니다!”
꾸벅 머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종현과 달리, 유미는 두 손을 활짝 펼친 채 귀여운 인사 포즈를 취했다.
같은 아이돌이라 할지라도 온도 차이가 극명하게 났다.
그럼에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김운혁이 중간에서 조율을 잘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미 씨. 오늘 게스트 분들, 바로 소개해주시죠!”
“네. 오늘은 여러분들께서 굉장히 기대 많이 하셨을 그분들을 모셔봤습니다. 하니엘 여러분들 나와주세요!”
게스트의 비중이 거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오프닝을 길게 끌 것 없이 바로 오늘의 게스트를 무대로 불렀다.
하니엘 멤버들이 캐주얼한 복장으로 스튜디오에 나란히 섰다.
아이돌 그룹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단체 인사까지, 순조로운 출발을 이어갔다.
메인 MC 역할을 맡고 있는 김운혁이 먼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데뷔한 지 이제 6일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네, 맞아요.”
비아가 애교를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아직 1주일도 안 됐어요.”
이 말 속에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이니까 제발 살살 다뤄주세요’라는 부탁이 녹아 들어가 있었다.
이 말이 통했을지 어떨지는 잠시 뒤에 MC들의 태도를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김운혁이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더더욱 상세하게 여러분들에 대해 파헤쳐야겠네요. 그래야 시청자 여러분들이 하니엘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옆에서 유미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운혁 오빠. 평소보다 빡세게 가실 건가요?”
“그래야죠! 아주 귀한 분들을 모셨는데. 예의상 그냥 보내드리면 섭하지 않겠습니까?”
멤버들이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고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지만, MC의 폭주를 막을 순 없었다.
지금 하니엘 멤버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망했다.
봐달라고 어필했다가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만 셈이었다.
본격적으로 코너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멤버들의 입으로 직접 앨범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연이 이번 앨범에 대해 최대한 간략하게, 하지만 중요한 말들은 쏙쏙 넣은 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김운혁이 이연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감탄을 흘렸다.
“이연 양. 멘트 치는 게 보통이 아닌데요? 어느 정도 짬이 차야 나올 수 있는 모습인데. 다른 신인 그룹 리더들은 처음에 여기 와서 앨범 소개하라고 하면 중간에 말 더듬거나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거든요. 근데 이연 양은 다르네요.”
옆에 앉아 있던 여솜이 이때다 싶었는지 리더 자랑에 나섰다.
“연이는 못하는 게 없거든요. 만능이에요, 만능.”
“정말 그렇게 보이네요. 괜히 팀명을 ‘다재다능’이라고 붙였던 게 아니네요.”
“어머, 선배님. SSS 보셨나요?”
“당연히 봤죠! 매 회마다 라이브로 챙겨봤는데요?”
순간 비아가 이때다 싶었는지 운혁에게 복수심을 담은 회심의 멘트를 날렸다.
“선배님. 제일 좋아하는 연습생이 누구였어요? 딱 한 명만 골라서 말씀해주세요.”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김운혁.
헛숨을 삼키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멤버들은 비아를 향해 속으로 ‘나이스!’를 외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