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9화
제36화. 음방 대결(4)
데뷔 전부터 지금까지. 하니엘은 의도치 않게 계속해서 아이비제이와 엮이는 중이었다.
두 그룹 사이에는 컴백 시기와 데뷔 시기가 비슷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거였다.
아이비제이 멤버들 역시 LC 엔터테인먼트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소속사가 어느 케이블 채널과 함께 공동 기획으로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시청자들의 투표를 받고 선정된 게 지금의 9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비제이라고 적혀 있는 대기실 문을 보면서 하니엘 멤버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대선배님들이자 동시에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니,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홍류현 실장이 먼저 노크를 했다.
똑똑.
“네, 누구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매니저의 목소리에 홍 실장이 답했다.
“LC 엔터테인먼트 홍류현입니다.”
“어머, 류현 오빠예요?”
“어, 우리 애들 인사시키고 있는데. 잠깐 들어가도 될까?”
“네, 잠시만요.”
아이비제이 매니저와도 친분이 있는 모양인지, 그녀가 문을 열어주면서 홍류현 실장을 반겼다.
“오빠가 녹화 현장을 다 오고. 웬일이에요?”
“우리 애들, 오늘이 첫 음방이잖아. 그래서 왔지.”
“오늘이 처음이었어요? SSS에서 워낙 자주 봐서 그런가. 전혀 몰랐어요.”
“그럴 수 있지. 너희 애들은?”
홍류현 실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비제이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안녕. 이쪽은 하니엘 애들인데, 혜원이는 이미 구면이지?”
“네.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 때 처음으로 인사 나눴어요.”
아이비제이의 리더이자 동시에 벡스 멤버의 여동생인 지현과 더불어 인기 투톱을 달리고 있는 유명 멤버다.
솔로로 데뷔한 적도 있을 뿐만 아니라 보컬, 댄스, 그리고 비주얼까지. 4세대 걸그룹 중 단연 최고의 능력치를 자랑하는 독보적인 멤버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이끄는 아이비제이는 현 단계로선 가히 무적이라 할 수 있는 그룹이었다.
그런 그녀들과 처음으로 그룹 대 그룹으로 마주 서게 된 하니엘 멤버들.
“안녕하세요, 하니엘입니다!”
“선배님들, 너무 뵙고 싶었어요!”
후배들의 싹싹하고 귀여운 인사에 아이비제이 멤버들의 입가에도 미소 꽃이 피어올랐다.
무대 위에서는 라이벌이지만, 무대가 아닌 곳에서는 언제든 친한 친구이자 언니, 동생이 될 수 있는 게 이곳 연예계다.
그리고 이연은 딱히 아이비제이 멤버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시기가 겹친 건 가요계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그리고 SSS 녹화 당시에 만났던 혜원의 경우에는 오히려 멤버들에게 선배로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 같은 걸 많이 해주기도 했었다.
서로간의 악의는 없다.
가수 대 가수로서.
실력 대 실력으로 붙으면 된다.
혜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발표한 곡, 잘 들었어요. 안무도 너무 마음에 들고. 특히 이연 씨 보컬이 시원시원해서 듣기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SSS 때에도 거의 완성형 아이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성장하신 거 같아요. 특히 표정 연기가 많이 자연스러워지셨더라고요.”
완벽한 이연에게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바로 ‘여성 아이돌로서의 표현력’이었다.
이연의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강제로 성별 전환을 당한 탓에 생긴 어쩔 수 없는 문제였기에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그녀 스스로도 믿고 있었다.
혜원의 말을 듣고 난 뒤, 이연은 자신의 이런 의도에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대단한 아이비제이의 리더가 이렇게까지 말을 해줄 정도면, 확실히 개선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하니엘 멤버들 중에는 아이비제이의 열렬한 팬이 두 명 있었다.
비아와 여솜이었다.
인터뷰 때에도 자주 아이비제이의 노래와 무대를 접한다고 어필했었던 두 사람에겐 지금의 만남이 꿈만 같았다.
“선배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도요!”
아이비제이 멤버들은 두 사람의 사진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요즘 핫한 신인 걸그룹과 같이 사진을 찍게 되어 자신들도 기쁘다는 말을 들려줬다.
대기실에서 갑자기 열리게 된 사진 파티.
그동안 이연은 시우가 건네준 본인들의 앨범을 가지고 혜원에게 향했다.
“선배님. 이거, 저희 앨범이에요.”
“아, 잠시만요. 저희 것도 드려야 하는데…….”
당황하는 혜원에게 매니저가 대신 앨범을 찾아서 건네줬다.
“자, 여기. 하여간 칠칠치 못하긴.”
“죄송해요, 언니.”
카메라 앞에서도 그렇고. 완벽에 가까운 매력을 지닌 혜원이지만, 간혹 이렇게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었다.
이런 점 덕분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 그녀를 귀여워하고 좋아했다.
특히 예능에서 꽤 잘 먹히는 타입이었다.
“여기요.”
각 그룹의 리더가 서로의 앨범을 교환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선배들을 향한 하니엘의 인사 시간이 모두 종료되었다.
* * *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우미가 아이비제이 멤버들을 바로 가까이서 실물로 본 소감을 말했다.
“선배님들 전부 다 어쩜 그렇게 예쁘신지 모르겠어.”
“성격도 좋으시고. 역시 인기 많은 그룹은 달라.”
리샤가 우미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유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안일한 소리 하지 마세요, 언니들. 아이비제이 선배님들은 저희의 경쟁 상대라고요. 아무리 좋은 선배님들이라도 저희 이외에는 다 적이에요, 적.”
“뭐야. 유키 너, 아까 지현 선배님한테 딱 달라붙어서 막 애교 부리고 그랬었잖아.”
“적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거든요? 친근한 척 방심하게 만들어서 뒤를 치는 거죠. 어때요?”
“하여간 쟤, 성격 진짜 이상하다니까.”
남들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밝고 명랑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엉큼한 생각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이연은 이런 유키의 모습이 이제는 완벽하게 익숙해진 모양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무대가 더 중요해. 첫 음방 무대니까 다들 실수하지 말고. 리허설 때도 실전처럼 해보자. 알았지?”
“응!”
“네, 언니!”
모두가 이연의 말에 기운차게 대답했다.
한 차례 리허설을 마친 뒤, 그다음 녹화를 진행한다.
그녀들이 오늘 출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음악 프로그램, ‘뮤직 투게더’는 가수들이 리허설을 하는 모습을 다른 가수팀이 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다.
반드시 와서 다 봐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가장 선배 그룹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모든 후배 가수팀이 참석해서 객석을 채우려고 하는 편이었다.
선배 가수의 무대를 보고 듣는 것만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하니엘의 경우에는 오늘 참가하는 모든 가수들이 전부 다 그녀들보다 선배다.
그래서 최대한 모든 무대들을 다 관람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아이비제이의 무대는 꼭 보기로 서로 입을 맞췄다.
객석에 미리 와 자리를 잡은 선배들과 다시 한번 인사를 나누는 하니엘 멤버들.
마침 첫 번째로 인사를 하러 갔었던 원스탭 멤버들이 무대 위에서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대 감독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인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현장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비트가 울려 퍼졌다.
칼 같은 군무를 선보이는 원스탭의 모습을 보면서 하니엘 멤버들은 감탄을 흘렸다.
“선배님들, 대단하네…….”
“나는 리허설이라고 해도 긴장돼서 막 실수할 거 같은데.”
본방을 보는 것처럼 조금의 실수도 없이 완벽하게 리허설을 끝냈다.
오늘 무대를 펼쳐야 할 가수팀이 워낙 많기 때문에 리허설은 1분 정도 짧게 진행되었다.
“다음, 아이비제이 팀 올라와 주세요.”
“네.”
하니엘 멤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아이비제이의 리허설 무대가 바로 펼쳐졌다.
영상으로 보던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오늘 멤버들의 리허설을 도와주기 위해 현장을 찾은 은서해 트레이너가 뒷좌석에 앉아서 놀란 듯한 혼잣말을 흘렸다.
“저 안무, 어려운 동작인데. 잘하네. 역시 업계 탑은 다르긴 하구나.”
혜원의 턴 동작을 보고서 하는 평가였다.
마침 이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 포지션을 이동해서 다른 멤버들과의 거리가 상당히 좁은 공간을 두고 두 바퀴를 연속으로 턴한다는 건 꽤나 난이도가 있는 구분 동작이다.
그럼에도 혜원은 너무나도 깔끔하게 안무를 이어나갔다.
보는 사람은 그렇구나 하고 당연하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저 한 동작을 위해 수십, 수백,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것이다.
같은 가수이기에 이연은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다른 가수팀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동기 부여가 많이 된다.
‘우리 차례는 언제였더라.’
이연도 지금 당장 무대에 서고 싶어졌다.
* * *
리허설을 마치고. 드디어 본 녹화가 시작되었다.
이전의 음악 방송들은 생방송이 당연시되곤 했었지만, 무대 위에서 사건사고가 하도 많이 발생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하면 사전 녹화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대에 대한 부담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
이연은 잊지 않고 멤버들을 독려했다.
“하던 대로 하면 돼. 겁먹지 말고. 우리도 충분히 잘할 수 있어.”
이연의 믿음직한 말에 멤버들은 한 차례 용기를 얻었다.
리더뿐만 아니라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 역시 하니엘을 응원하기 위해 나섰다.
데뷔 쇼케이스 때와는 달리 이번 무대는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서일까.
멤버들은 데뷔 무대보다 훨씬 더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연을 꾸며갔다.
하니엘 공식 채널에 업로드되었던 응원법 영상 그대로 팬들은 차례로 콜을 넣거나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무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그렇게 첫 음방 무대 녹화가 끝나고.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순위 발표만이 남았다.
MC 뒤로 오늘 참가한 가수팀들 전원이 무대에 올랐다.
“대한민국 트랜드를 이끌어가는 뮤직 투게더! 이번 주 1위 후보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남자 MC의 외침에 따라 화면이 전환되었다.
1위 후보로 오른 두 팀이 공개된 순간, 현장은 그야말로 뜨거운 함성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아이비제이.
그리고 하니엘.
챔피언과 신흥 도전자의 대결 구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후보가 공개되자마자 각각 아이비제이와 하니엘을 응원하는 팬덤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MC들은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침착하게 큐시트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하니엘 팀이 데뷔 5일 만에 음악 방송 첫 1위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아니면 오랜만에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아이비제이 팀이 이길지. 한번 지켜보실까요?”
“결과 보여주세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음방 대결의 결과가 마침내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