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1화
제34화. 고백(1)
대한민국에 수많은 걸 그룹들이 존재한다.
1세대 걸 그룹들을 시작으로 현재 4세대라 불리는 걸 그룹들까지.
수많은 아이돌들이 대중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무대 위에서 눈물과 땀을 흘려왔다.
그중에서 현존 4세대 걸 그룹 중 최강자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 누가 있냐고 묻는다면, 열 명 중 아홉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이비제이라고.
하니엘 멤버들에게도 아이비제이는 낯선 그룹이 아니다.
파이널 라운드 첫 번째 미션이었던 전문가 평가 당시, 아이비제이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혜원이 특별 심사 위원으로 참가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에는 평가를 내리고, 평가를 받고. 그런 수직적 관계였는데.
지금은 서로 경쟁해야 하는 수평적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심지어 아이비제이와의 컴백 일자와 하니엘의 데뷔 쇼케이스 일자가 단 하루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랴부랴 긴급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홍류현 실장과 진세혁 프로듀서, A&R 팀, 마케팅 담당, 비주얼 디렉터, 그리고 은서해 트레이너와 나현아 트레이너까지. 하니엘을 서포트해 주고 있는 팀들이 모두 소집되었다.
오채일 대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안 그래도 LC 엔터테인먼트가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차세대 대표 걸 그룹이 하니엘인데. 하필이면 현존 최강 걸 그룹과 정면 승부를 펼치게 되었으니 회사에 비상이 제대로 걸렸다.
가장 간단한 해결책이 하나 있긴 하다.
“데뷔 일자를 바꾸는 건 어때요?”
의상팀을 대표해 나온 최공예 코디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그러나 A&R을 담당하고 있는 박태송 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그녀의 의견을 부정했다.
“그렇게 되면 하염없이 뒤로 미뤄야 돼. 그다음에 어떤 그룹이 컴백하는지 알아?”
“누군데요?”
“벡스.”
“…….”
아이비제이가 걸 그룹 분야에서 톱이라면, 벡스는 아이돌 분야 전체에서 톱이라 할 수 있다.
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발군의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벡스다.
벡스와 붙을 것인지, 아니면 아이비제이와 붙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박태송의 말대로 데뷔를 한참 미룰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우미가 입을 열었다.
“앞당기는 건 불가능한가요?”
“그러면 준비 기간이 너무 빡세. 지금 정해진 데뷔 일자가 내가 봤을 때에는 최선이야.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실걸?”
오채일 대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까. 사실 이번 데뷔 날짜도 겨우 맞춘 거긴 해.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앨범을 내는 상대가 강력하다고 계속 뒤로 미루는 것도 별 의미가 없어. 그달, 그리고 그다음 달에 컴백이 예정되어 있는 굵직한 그룹들이 많이 몰려 있다고 하니까.”
한참 뒤로 미루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러면 SSS에서 기껏 끌어올린 하니엘의 인지도가 흐지부지되어 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몇 달 사이에 수많은 걸 그룹들이 데뷔할 텐데. 과연 그때까지도 하니엘을 향한 팬심이 견고하게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멤버들의 생각이다.
“너희는 어떻게 할래?”
오채일 대표가 직접 그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워낙 민감한 문제였기에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침묵을 지키던 이연이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모양인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정대로 가죠.”
그녀의 선택은 아이비제이와의 전면전이었다.
* * *
이연은 오채일 대표의 생각과 비슷했다.
어느 쪽으로 데뷔 일자를 잡든, 하니엘보다 강한 상대와 맞붙게 되는 건 변함없다.
왜냐하면 하니엘은 이제 막 데뷔하게 될 신인 걸 그룹이니까.
누구와 붙어도 하니엘이 불리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회사와 멤버들이 원하는 날짜에 데뷔를 하는 게 좋다.
게다가 이연은 상대가 누구라도 자신이 있었다.
이런 이연과 달리, 박도수 매니저는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불안감을 드러냈다.
“날짜를 바꾸는 게 더 좋았을지도…….”
뒤에 앉은 비아가 박도수 매니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매니저님! 이미 결정된 거잖아요. 이제 와서 대표님한테 날짜 다시 바꾸자고 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요.”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하…… 이거 참.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그룹 중에 아이비제이하고 붙게 되냐. 진짜 운도 없지.”
약자는 늘 강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반드시 강자가 약자를 이긴다는 법칙 따윈 없다.
간혹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가 발생할 때도 있다.
그래서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면서도 재미있다.
멤버들을 숙소로 바래다준 뒤에도 박도수 매니저의 걱정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이연아. 우리, 정말로 괜찮은 거지? 응?”
“네.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은 일찍 퇴근하세요. 아셨죠?”
데뷔 무대에 서게 될 당사자들보다 더 걱정하는 박도수 매니저의 등을 강제로 밖으로 떠밀었다.
물론 멤버들도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도수 매니저보다는 침착하게 있을 수 있는 비결이 존재했다.
SSS에서 이런 걱정을 이미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여솜이 거실에 먼저 앉아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매니저님, 저렇게 걱정하시는 거 처음 봐.”
“매니저님, 가끔 보면 과몰입이 너무 심하단 말이야. 우리 연습생 때에는 안 그러셨으면서.”
우미의 말에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소속 연습생과 자신이 담당하는 연예인은 입장 차이가 크니까 그럴 수도 있다.
박도수 매니저 앞에서는 다들 괜찮다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멤버들만의 대책 회의에 돌입하기로 했다.
“다들 옷 갈아입고 모여봐.”
멤버들은 이연의 주도대로 거실 소파 한 자리씩을 차지했다.
이연은 멤버들과 마주 보며 앉는 형태를 취하기 위해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앉았다.
하니엘이 붙을 그룹, 아이비제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4세대 최고의 걸 그룹이다.
리더인 혜원을 필두로 9명의 멤버 전부 다 재능 있고 개성이 넘친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상대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메인보컬인 미수.
“미수 선배님, 노래 엄청 잘 부르시잖아.”
“성악 전공했다고 하셨을걸?”
“나, 저번에 인터넷에서 미수 선배님 출연하셔서 노래 부르는 거 봤는데, 입이 안 다물어지더라.”
서로 앨범 발표일이 하루 차이밖에 안 나다 보니 아이비제이와 하니엘이 서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아이비지에의 메인보컬은 이연이다.
유키가 이연을 보면서 걱정을 드러냈다.
“성악 전공이라는데…… 괜찮겠어요, 언니?”
“어. 상관없어.”
상대가 대선배라 할지라도 경쟁 관계라는 건 변함없다.
실력 대 실력으로 맞붙는다면, 이연은 오히려 자신이 있었다.
메인보컬끼리의 대결보다 이연이 더 견제하는 멤버는 정작 따로 있었다.
“난 지현 선배님이 더 신경 쓰여.”
아이비제이에서 서브보컬을 맡고 있는 강지현.
메인보컬인 혜원보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댄스나 랩 쪽에 특화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연이 강지현을 지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비제이가 하니엘처럼 막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정식 데뷔 무대를 가질 때쯤.
강지현으로 인해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끌어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특별히 뭔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강지현의 존재 자체가 특별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정체는…….
“벡스의 강의찬 선배님 친동생이시지?”
“응, 맞아.”
벡스의 강의찬, 그리고 아이비제이의 강지현.
두 사람이 남매 관계라는 건 연예계에서는 공연히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잘나가는 벡스의 친동생이 걸 그룹으로 데뷔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비제이는 초창기부터 벡스에게 간접적으로 지원사격을 받고 지금까지 순항을 이어올 수 있었다.
물론 오빠가 벡스 멤버 중 한 명이라고 무조건 뜬다는 보장은 없다.
이것은 일시적인 어그로일 뿐.
롱런을 결정하는 건 결국 실력이다.
아이비제이의 경우에는 보컬, 댄스, 비주얼, 그리고 인성까지. 모든 분야에서 MAX에 가까운 스탯을 찍은 걸 그룹이다.
그래서 LC 엔터테인먼트 내에서도 오늘 긴급회의를 열 정도로 난색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니엘도 이와 비슷한 스타트를 보이면 된다.
SSS로 대중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긴 했지만, 아직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뭔가를 추가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게 필요한데.”
리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들 중에 출생의 비밀 같은 거 가지고 있는 사람이 나서면 될지도?”
출생의 비밀이라는 말에 우미의 어깨가 한 차례 움찔했다.
반대로 비아는 리샤의 팔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날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언니!”
“아야야, 왜! 웃자고 한 말인데.”
리샤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이 말에 웃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는 사실은 예상 못 했을 것이다.
“…….”
말을 아끼던 우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아무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 * *
아이비제이의 컴백 일자에 묻히지 않으려면, 더 큰 화제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다.
하니엘의 정식 데뷔. 이것만으로는 2퍼센트가 부족한 느낌이다.
공교롭게도 우미가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우미 언니 입장에선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열쇠겠지.’
이연은 침대에 누워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우미가 결심을 굳히지 않았을 때의 상황까지 상정하여 대비를 해두는 게 좋다.
잠시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똑똑.
누군가가 짧게 노크했다.
“연아. 혹시 자니?”
우미의 목소리였다.
“아니. 안 자고 있어.”
“들어가도 돼?”
“어. 괜찮아.”
자정이 훌쩍 넘은 늦은 시간에 혼자서 이연의 방을 찾아온 우미.
그녀의 얼굴은 수심이 굉장히 깊어 보였다.
“너하고 애들한테 말 안 한 게 있는데…….”
말끝을 흐린 뒤에도 우미는 한참을 망설였다.
우물쭈물해 하던 그녀가 결국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사실 나, 이번에 YN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양진석 회장님 막내딸이야.”
양준복 회장의 뒤를 이어 그의 첫째 아들이 YN그룹을 승계받게 되었다.
재계에서는 상당히 이슈가 되었다.
그만큼 대한민국 내에서 YN그룹의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현 회장의 딸이라는 우미의 고백에 이연은 놀라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반응했다.
“알고 있었어.”
이 말에 오히려 우미가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