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0화
제33화. Vlog(4)
이연은 하나밖에 없는 친구의 반응이 신경 쓰였다.
유혜영의 표정이 어두워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연의 성격대로라면 안 좋은 일이 있는지, 그 일이 어떤 건지 직설적으로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이연은 유혜영의 고민거리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가게 매출 때문에?”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사실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이 이곳에 온 순간부터 고민거리가 단번에 보였다.
오빠가 가게 사장이고, 유혜영은 이곳에서 서빙 담당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매출 이야기가 나오자, 주방 안에 들어가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슬쩍 듣고 있던 유혜영의 오빠가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반대로 유혜영은 깊은 한숨 뒤에 오빠를 향한 잔소리를 뱉어냈다.
“지금 웃을 때가 아니잖아, 오빠.”
“알고 있어. 나도 열심히 노력 중이라고. 내가 가게 차리려고 얼마나 열심히 요리를 배워왔는데.”
아직 멤버들은 이연과 유혜영의 이야기를 듣느라 음식에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리샤가 먼저 나서서 주문했던 치즈 돈가스 한 조각을 입 안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한참을 씹으면서 맛을 느끼던 그녀의 머릿속에 커다란 느낌표 하나가 떠올랐다.
“맛있는데?”
“정말?”
“나도 한번 먹어봐야겠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던 탓에 멤버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우미와 유키, 그리고 이연까지.
모두가 다 호평 일색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음식 쪽에 진심인 리샤한테도 맛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면, 유혜영의 오빠가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맛이 보장되어 있는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없었다.
유혜영의 입에서 다시 한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픈한 지 세 달째인데, 벌써부터 가게 월세도 못 내게 생겼어. 안 그래도 엄마 병원비도 내야 하는데…….”
“병원비?”
“어디 많이 편찮으신가요?”
엄마가 아프다는 말에 이연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걱정을 드러냈다.
“저희 어렸을 때부터 엄마 혼자서 쭉 키워주셨거든요. 거기에 일까지 하다 보니까 많이 쇠약해지신 거 같아요. 그래서 저하고 오빠하고 어른 되자마자 어떻게든 엄마 고생 안 시켜 드리려고 바로 일 시작했는데…… 뜻대로 잘 안 되네요.”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없다.
이연만 해도 그렇다.
음유시인으로서 좀 더 오랫동안 명성을 떨칠 수 있었는데 단명하고 다른 세계로 넘어와 여자의 몸이 되어버렸는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란 녀석이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점 때문에 이연과 유혜영이 더욱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둘 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동질감이 우정으로, 그리고 우정이 유대감으로 발전해 두 사람을 이어줬다.
루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아니다.
같이 무대에 서는 동료를 위해서 정신계 마법도 배울 정도였다.
비록 루웰과 유혜영이 직접적인 연은 없지만.
그래도 권이연과 유혜영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 아닌가.
하나뿐인 친구를 위해서 이연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사장님. 가게 차린 뒤에 홍보 같은 거 혹시 하셨나요? 요즘은 SNS라든지. 이런 걸로 가게 홍보 많이 하던데요.”
“아니요. 저는 SNS 계정도 없어요. 혜영이도요. 그렇지?”
오빠의 말에 유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가게의 가장 큰 문제는 맛도, 청결 상태도 아닌 마케팅 부족에 있다.
요즘은 음식 맛만 좋으면 다 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사람들의 입맛과 함께 눈길과 관심도 같이 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점점 입소문을 타게 되고, 손님도 늘게 된다.
“리샤. 우리, 그거 어디 있어?”
“그거?”
이연이 양쪽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리샤가 잠시 내려놓았던 브이로그용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사장님. 저희, 여기서 브이로그 촬영해도 될까요?”
“네? 브이로그가…… 뭐예요?”
요즘 유행하는 것에 대해 취약한 오빠를 위해서 유혜영이 짧게 설명을 해줬다.
“대충 영상 찍는 거라고 알고 있으면 돼.”
“아, 그래? 근데 그건 왜 갑자기…….”
이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선보이면서 그 이유에 대해 알려줬다.
“가게 매상 올려주려고요.”
그것도 아주 많이.
* * *
하니엘의 공식 채널에 처음으로 데뷔 준비 영상을 다룬 브이로그 영상이 올라간 날.
공개된 지 아직 10시간이 안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조회 수가 10만 단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9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 탓에 팬들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forever3823 : 영상 너무 짧아!!!!! 다음부터 1시간 이상씩 찍어주세요!!!!!!]
[Nqpei1111 : 아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ㅠㅠㅠㅠㅠㅠ 그래도 울 애들 볼 수 있어서 좋다 ㄹㅇ ㅋㅋㅋㅋ]
[Honeyyy3932 : 2편 존버 간다. 업로드 기원 1일 차!!!]
영상으로나마 오랜만에 하니엘 멤버들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쇼핑 멤버들이 백화점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날 겪었던 일정들이 9분이라는 짧은 영상에 압축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이연이 박도수 매니저를 통해 특별히 꼭 넣어달라 부탁했던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하니엘 멤버들이 유혜영네 가게에 들어가서 맛있게 점심 식사를 하는 장면.
이연에게는 이 신이 꼭 필요했다.
2분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이었던 데다가 가게 상호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곳이 어딘지 알아내서 성지순례 가겠다고 말하는 팬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었다.
‘예상대로네.’
댓글 반응을 확인하던 이연은 의도대로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마음 같아선 아예 대놓고 홍보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오히려 PPL 느낌을 줄 수 있었기에 일부러 음식 먹는 장면만 내보냈다.
그러나 요즘은 인터넷 기술이 하도 발전해서 그런지, 장소를 유추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미 가게에 갔다 왔다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멤버들과 함께 차를 타고 회사로 이동하는 동안, 이연은 유혜영한테서 받은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손님 많이 왔냐는 질문에 유혜영은 한참 뒤에 답장을 보내왔다.
[미안해 ㅜㅜ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다들 올 때마다 혹시 여기서 하니엘 멤버들 식사하고 간 적 있냐고 물어보시더라. 네 사인 사진도 찍고 가고 그랬어.]
만약에 유혜영네 가게가 맛집이 아니었다면, 이연은 홍보가 아니라 다른 일을 찾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했을 것이다.
이렇게 SNS로 슬쩍 친구 가게를 홍보해 줄 일도 없었을 테고 말이다.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소중하다 할지라도, 팬들의 입맛까지 버려가면서 가게 매상 올리는 일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샤조차 인정할 정도로 맛이 굉장히 뛰어났다.
미국 태생조차도 감탄할 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이런 맛집은 널리 공유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덕분에 팬들도 이연의 SNS 계정을 통해 좋은 맛집 하나 발견해서 기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네.’
멤버들 몰래 깊은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뚫어져라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이연의 모습에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여솜이 관심을 보였다.
“뭘 그렇게 재미있게 보고 있어?”
“어제 올라온 브이로그 영상 1화. 그거 반응 보고 있었어.”
멤버들도 오늘 한 번씩 다 체크했던 영상이다.
LC 엔터테인먼트 촬영팀이 영혼을 갈다시피 해서 뽑은 영상이라 그런지 퀄리티가 상당했다.
촬영을 너무 대충 찍은 거 아니냐는 멤버들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잘 나왔다.
편집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속사에 도착하자마자 멤버들은 곧장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이번에 새로 받은 데뷔곡 ‘Hug’ 안무를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와서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던 퍼플피플 팀의 리더, 은서해가 멤버들과 가볍게 포옹을 나누면서 그녀들을 반겼다.
“저번에 내가 연습해 오라는 거, 다 했지?”
“네!”
“좋아, 그러면 그것부터 한번 볼까?”
멤버들과의 의견 조율을 통해서 안무가 최종적으로 확정되고. 여기에 마침내 데뷔 일자도 정식으로 정해지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기한 동안 멤버들은 얼마 전에 레코딩한 자신들의 첫 앨범 타이틀곡을 들으면서 열심히 무대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
하니엘 멤버들의 연습 과정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박도수 매니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예, 실장님…… 네? 지금요?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네.”
짧은 통화를 마친 박도수 매니저가 은서해와 멤버들에게 잠깐 자리 좀 비우겠다는 말을 남겼다.
시우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약간의 불안감을 드러냈다.
“매니저님, 통화하면서 표정이 약간 안 좋으셨던 거 같은데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랬었나?”
리샤는 박도수 매니저의 얼굴 표정까지 확인하진 못했는지 아리송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보다 지금은 안무 연습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Hug’의 안무는 난이도로 따지면 ‘첫사랑’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편에 속했다.
아무래도 하니엘의 기념비적인 첫 번째 앨범 타이틀 무대니까.
퍼포먼스 측면에서도 힘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일부러 어려운 동작들을 많이 집어넣었다.
이로 인해 준비하는 멤버들이 적지 않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
은서해의 목소리가 오늘도 날카로워졌다.
“비아하고 우미! 둘이 손잡을 때 각도 동일하게 유지하라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시우하고 유키는 서로 같은 동작 들어갈 때 타이밍 좀 잘 맞추고! 아까부터 유키가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
디테일함이 무대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이것이 은서해가 가진 안무가로서의 신념이었다.
퇴사한 이석호 트레이너보다도 더 빡세게, 더 엄격하게 그녀들의 동작을 봐주는 은서해 덕분에 멤버들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 와중에 이연은 단 한 번도 은서해한테서 동작으로 지적을 받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쪽이 부족했다.
“연이는 역시 잘하네. 근데 SSS 때에도 몇 번 말한 적이 있지만, 표정 조금만 더 신경 써줘. 조금만 더 섹시한 느낌으로. 알았지?”
“네. 주의할게요.”
이연이 유일하게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런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남자로서 여자를 연기하려다 보니 아직은 어색함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창 안무 연습이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박도수 매니저가 급하게 뛰어들어 오더니, 멤버들을 다급하게 불렀다.
“자, 잠깐만 다들 모여봐, 어서!”
“왜 그러세요, 매니저님? 누가 보면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보이겠어요.”
“진짜로 그러니까 문제지!”
불안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이내 박도수 매니저가 이 불안감의 정체를 알려줬다.
“우리 데뷔일…… 아이비제이하고 하루 차이로 겹쳤대.”
아이비제이.
현시점에서 걸그룹 중 가장 잘나간다고 알려진 팀과 데뷔하자마자 맞붙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