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22화
제34화. 고백(2)
알고 있었다.
이 말에 우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녀가 역으로 이연에게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연이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된 계기를 알려줬다.
“우미 언니의 오빠분을 만났었거든.”
“우리 오빠를? 어떻게?”
“비아하고 드라이브를 겸해서 저번에 우리가 갔던 그 해상 카페에 갔었는데, 거기서 마주쳤어.”
그러면서 이연은 그때 받았던 명함을 우미에게 직접 보여줬다.
명함을 확인하자마자 우미의 입가에 쓴 미소가 번졌다.
“……오빠 거 맞네.”
이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근거였다.
“젊은 나이에, 그것도 중소기업도 아니고 대기업인 YN그룹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래서 조사를 해봤는데, 양진석 회장님의 아드님이라는 걸 알게 됐어.”
우미와 달리 양우섭은 직접적으로 회사 일에 관여하고 있으니까.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두 사람이 부자지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양우섭과 양우미는 남매 관계다’라는 사실을 적용하면.
“언니의 아버님이 양진석 회장님이라는 걸 알 수 있지.”
말없이 이연의 설명에만 귀를 기울이던 우미가 보인 첫 반응은 깊은 한숨이었다.
양우미가 YN그룹 현 회장의 딸이다.
그러면 그녀가 젊은 나이에 혼자 자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강이 버젓이 보이는 넓은 평수의 집을 자가로 소유하고 있다는 게 설명이 된다.
비싼 차도 그렇고.
여러 가지 것들이 우미의 집안 재력이 범상치 않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연은 우미가 알려준 대답을 미리, 쉽게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알면서도 나한테 물어보지 않았던 거야?”
궁금해서라도 우미에게 자신이 조사한 게 맞는지 물어보고 싶어 했을 텐데.
그럼에도 이연은 끝까지 이에 대해 함구했다.
이유가 있었다.
“언니가 집안에 대해 말하는 걸 어려워했으니까. 그래서 조용히 있기로 했던 거야.”
이연의 마음 씀씀이에 우미는 작은 감동을 느꼈다.
분명 나이상으로는 자신보다 어리지만.
“네가 나보다 더 언니였구나.”
우미의 말속에는 많은 생각이 함축되어 있었다.
“그럼 비아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겠네?”
“아니, 몰라.”
“응? 모른다고?”
“내가 말 안 해줬거든.”
비아는 우미의 오빠가 능력이 좋아서 승진을 빨리 했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다.
비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우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비아는 이연처럼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기에 이연은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쪽으로 행동했었다.
이연은 입이 무거운 여자였다.
우미는 이연의 이런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을 텐데. 고마워, 연아.”
“같은 팀 동료니까. 도우면서 살아야지.”
SSS 촬영이 끝났다고 앞으로 이연과 하니엘 멤버들이 탄탄대로만을 걷게 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SSS 때보다 더 심한 경쟁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데뷔 쇼케이스 일정부터 걸 그룹 끝판왕과 붙게 되었는데. 이것만으로도 냉혹한 현실을 엿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멤버들끼리 회의할 때 말이 나온 것처럼 아이비제이 못지않은 화제성으로 하니엘이라는 그룹을 어필해야 한다.
우미의 결정에 모든 것이 달린 셈이었다.
“만약에 내가…… 내 가족사에 대해서 끝까지 입을 열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우미의 물음에 이연은 지체 없이 바로 답했다.
“언니가 불편하다면,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지. 우리가 살자고 언니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대신에 우미가 가진 비밀 이상으로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 뿐.
애초에 이연은 우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고 있었다.
그녀를 찾아와 자신이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부터 우미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어느 타이밍에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게 좋을까?”
우미는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 * *
데뷔 일까지 이제 남은 기간은 고작 1주뿐.
LC 엔터테인먼트로 출근하자마자 권이연은 박도수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지금 회사에 계시죠? 잠깐 상담 요청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대표님? 잠깐만.”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와 연락을 취한 박도수 매니저가 잠시 뒤 이연의 질문에 답해줬다.
“사무실에 계시다는데.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런 게 있어요. 우미 언니, 가자.”
우미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연과 함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려 했다.
“자, 잠깐만, 얘들아! 스톱!”
이연이 손을 뻗기 전에 박도수 매니저가 다급하게 한 발 먼저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매니저님도 같이 가시려고요?”
“너희가 나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말도 안 해주고 가려니까 그렇지. 나, 매니저라고. 매니저.”
“가봤자 대표님한테 쫓겨나실 텐데요.”
“그건 보면 알겠지.”
이번에 이연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박도수 매니저는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이연과 우미는 예정에도 없던 박도수 매니저와 강제로 동행하게 되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박도수 매니저가 앞장서서 오채일 대표의 사무실을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어, 박 매니저가 웬일이야?”
박도수만 온 줄 알았는데.
뒤이어 이연과 우미도 같이 들어오니 오채일 대표의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둘은 또 왜?”
“대표님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나한테?”
“우미 언니가 하고 싶은 말 있대요.”
우미의 표정을 살핀 오채일 대표가 갑자기 박도수 매니저를 불렀다.
“박 매니저.”
“예, 대표님. 저도 같이 들어도 되는 거죠? 네?”
“아니. 나가 있어.”
“…….”
이연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그거 봐요’라고 말했다.
실장급도 아니고. 대표가 직접 나가보라고 말을 하는데. 매니저 입장에서 뭘 어찌 할 방도가 없었다.
얌전히 대표의 말에 따르는 수밖에.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문을 닫고 나가려는 박도수 매니저를 향해 오채일 대표가 혹시나 해서 추가 경고를 날렸다.
“문에 귀 대고 몰래 엿들으려고 했다가 나한테 걸리면 알아서 해라.”
박도수 매니저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세 사람만의 공간이 완성되고 나서야 오채일 대표가 다시 입을 움직였다.
“아버님에 관한 이야기니?”
오채일 대표도 우미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우미가 이연에게 알려준 그대로였다.
“네, 대표님.”
“보니까 이연도 다 아는 거 같은데. 일단은 앉아라. 마실 거라도 줄까?”
“괜찮아요. 이야기가 길어지진 않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이거 끝난 다음에 바로 안무 연습을 하러 가야 한다.
지금도 멤버들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이연과 우미를 소파에 앉힌 오채일 대표가 그녀들에게 먼저 발언할 기회를 줬다.
이연이 우미에게 직접 말하라는 신호를 줬다.
우미 가족에 관한 일이니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하는 것보다 본인이 직접 털어놓는 게 당연했다.
“연이하고 이야기를 해봤는데…… 이번에 저희가 아이비제이 선배님하고 쇼케이스가 겹쳤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그전에 저하고 아버지에 대한 걸 기사로 슬쩍 흘리는 건 어떨까 해서요.”
오채일 대표의 생각이 깊어졌다.
침묵을 지키던 그가 겨우 말문을 뗐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안 했던 건 아니야. 네가 YN그룹 현 회장님의 막내딸이라는 게 밝혀지면, 확실히 파급력이 클 테니까. YN이 워낙 유명한 대기업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그 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사람의 딸이 걸그룹으로 데뷔한다?
이건 못 참는다.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하니엘의 첫 데뷔 쇼케이스를 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오채일 대표는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었다.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네.”
만약에 두 사람이 부녀지간이라는 게 기사를 통해 퍼지게 된다면, 양진석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신경 쓰였다.
어쩌면 우미가 또 한 번 상처를 받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고.
오채일 대표가 우미의 집안에 대해 미리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가정사까지는 몰랐기에 그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연이 직접 대답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기사가 나가도 양진석 회장님은 크게 신경 안 쓰실 거라고 했거든요.”
“응? 누가?”
이연이 주머니 속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우미 언니의 친오빠하고 만나서 직접 확인받고 왔어요.”
* * *
이연이 우미와 함께 오채일 대표를 찾아가기 하루 전.
쉬는 날을 이용해서 이연은 혼자 차를 끌고 서울 도심 외곽에 위치한 어느 작은 카페를 찾았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젊은 남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궈, 권이연 씨 맞으시죠?”
“아, 네.”
“우와! 실물로 보니까 더 예쁘시네요! 저, SSS 매회 챙겨봤는데. 여동생하고 저하고 이연 씨가 1픽이었거든요! 첫 방송 때부터 이연 씨 보자마자 이 아이는 반드시 뜰 거라는 느낌이 팍 오는 게…….”
남자의 수다가 더 길어지기 전에.
가게에 있던 또 다른 한 남자가 헛기침을 하면서 카페 사장의 말을 끊었다.
“누가 보면 이연 양이 내 손님이 아니라 형 손님인 줄 알겠어.”
양우섭. 그가 눈을 흘기면서 가게 사장에게 주의를 줬다.
“미, 미안. 가서 우섭이하고 이야기 나누세요. 마실 건 뭐로 드릴까요? 계산은 우섭이가 할 거니까 아무거나…… 아니, 비싼 거 시키세요, 무조건 비싼 거!”
“형. 제발 조용히 좀 있어줘. 이연 양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이 짜식이. 그래. 알았다, 인마. 서러워서 못 살겠네.”
가게 사장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그를 대신해서 양우섭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이연 양. 저 형이 성격은 참 좋은데, 말이 너무 많아서요. 불편하게 해드렸다면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전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양우섭이 이연의 주변을 살폈다.
“우미는 같이 안 왔군요.”
그의 표정에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처음에 이연한테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을 당시, 양우섭은 어쩌면 여동생도 같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저도 우미 언니 데려오려고 했었는데. 아직 오빠분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오늘은 저 혼자만 갔다 오기로 했어요.”
“그렇군요.”
아쉬움도 잠시.
양우섭은 이연을 카페 구석 쪽으로 안내했다.
매장 안에는 그들 말고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사람들의 눈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구석 쪽으로 자리를 잡기로 한 거였다.
괜히 이연이 외간남자와 단둘이서 만났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가서 스캔들 기사라도 터지면 서로 곤란할 테니까 말이다.
음료가 나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양우섭이 이연에게 먼저 본론을 물었다.
“저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요?”
이연은 단도직입적으로 이곳에 온 목적에 대해 말했다.
“우미 언니가 양진석 회장님 딸이라는 사실을 기사로 슬쩍 흘리고 싶어서요. 이에 대해서 오빠분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연락드렸어요.”
과연 이에 대해 찬성할까?
아니면 높은 확률로 반대?
짧은 고민 끝에 들려준 양우섭의 대답은 이연의 예상과 반대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