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19화
제33화. Vlog(3)
당연하게도 지금의 권이연은 유혜영을 이 자리에서 처음 본다.
그러나 ‘지금의 권이연’이 아닌 ‘이전의 권이연’은 유혜영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권이연이 중학생이었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소속사에 들어가서 연습생 생활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막연하게 가수의 꿈을 꾸면서 혼자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자신이 정말로 가수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
당연히 확실하지 않았다.
선명하지 않은, 흐릿하게 보이는 목표는 오히려 그 사람에 끊임없는 불안감을 심어주게 된다.
게다가 이연의 가정환경은 지금도 그렇듯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자신이 정말 가수라는 꿈을 꿀 자격이 있는 걸까.
괜히 엄마와 동생에게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해서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한창 들 때였다.
무너지려던 이연을 붙잡아준 사람은 엄마도, 동생도 아닌 눈앞에 있는 유혜영이었다.
중학생 때 그녀와 같이 나눴던 이야기와 당시의 장면들이 이연의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재생되었다.
체험해 본 적 없는 경험.
하지만 분명 알고 있는 기억.
이연이 먼저 아는 척을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유혜영의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본인도 당황한 모양인지 황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서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하니엘 멤버들이 처음 만났던 그녀의 오빠가 ‘우왓!’ 하고 외치며 화를 냈다.
“부딪칠 뻔했잖아! 서빙 안 하고 어디 가는 거야!”
“화,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야, 유혜영! ……죄송합니다, 손님. 금방 세팅해 드릴게요.”
갑자기 벌어진 일로 인해 하니엘 멤버들도 덩달아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남자가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어영부영 주문을 마친 멤버들은 남자가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뜨자마자 방금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서로 물었다.
“아까 그 여성분, 울지 않았어?”
“그러게.”
“연이 언니하고 아는 사이처럼 보이던데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인데, 갑자기 연이를 보자마자 울었다라…… 서, 설마.”
리샤가 기겁을 했다.
“여, 연이 너. 학폭 같은 거…… 안 했지? 응?”
“안 했으니까 이상한 말 꺼내지도 마.”
비록 루웰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이긴 하지만, 권이연의 모든 기억을 다 공유하고 있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는 절대로 아니라고.
오히려 반대였다.
당시 이연은 너무 착한 성격 탓에 괴롭힘받기 딱 좋은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 1학기 당시, 유혜영과 함께 일진들한테 각각 오천 원, 만 원씩 삥을 뜯긴 적이 있었다.
쓸데없는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갑자기 열받네.’
착하고 얌전했던 권이연과 달리 루웰은 자존심과 체면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다.
생각 같으면 그때 일진 녀석들을 찾아내서 지금까지 빼앗긴 원금의 만 배 정도를 되돌려 받아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몰랐기에 일단 참기로 했다.
그리고 복수보다 옛 친구와의 재회부터 먼저 해결 봐야 할 것 같았다.
‘아까 화장실 좀 갔다 온다고 했었지.’
유혜영이 했던 말을 떠올린 이연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멤버들에게 잠깐 화장실에 들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리샤가 중간에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울던 여성분, 먼저 화장실에 가 있을 텐데. 괜찮겠어?”
“괜찮아. 그거 때문에 일부러 가려고 하는 거니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 * *
가게 내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얼굴 상태를 점검하는 유혜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연이 보고서 왜 운 거야, 대체.”
오랜만에 만나는 중학교 동창생인데. 느닷없이 우는 모습을 보여준 탓에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다.
이연을 어떻게 봐야 할지.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했다.
“연이는 나 기억 못 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모른 척하고 넘기는 것도 좋을지도…….”
라고 말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미안한데. 이미 다 알고 있어.”
“……!”
화장실 문 열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이연은 어느새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까,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잖아!”
놀랄 만도 하다.
왜냐하면 일부러 들키지 않게 마법을 써서 몰래 접근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평범하게 들어올 생각이었는데, 유혜영이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 탓에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의도적으로 기척을 숨기게 되었다.
역시나. 이연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중학교 동창생이자 그녀의 유일한 친구, 유혜영이 맞았다.
“나, 기억하고 있었구나.”
얼떨떨한 얼굴로 묻는 유혜영을 보면서 이연은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반응을 보였다.
“기억할 수밖에. 중학교 때 우리 많이 친했잖아.”
물론 루웰과 친한 건 아니었지만.
서로 친한 관계였음을 이연이 먼저 말해주자, 유혜영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옛날 일이기도 하고. 중학교 졸업한 이후로 연락이 서로 끊겨서, 나는 그대로 옛날 기억으로 묻히는 줄 알았었어. 게다가…….”
유혜영의 시선이 이연의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너, 엄청 유명해졌잖아. 그래서 굳이 나를 기억해 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유명한 거하고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오히려 유명해졌기에 이연은 유혜영과의 기억을 더욱 소중히 간직해야만 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연이 가수의 꿈을 접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 *
루웰의 머릿속에는 이연의 과거 기억들이 같이 공존한다.
그러나 남의 기억이다 보니 일부러 의식하지 않는 한 먼저 번뜩 떠오르지 않았다.
유혜영과의 기억도 이와 비슷했다.
그녀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같은 도서위원으로 선정되고 나서부터였다.
유혜영의 경우에는 책을 많이 좋아하는 성격이었기에 스스로 도서위원을 지원했지만, 이연은 달랐다.
도서위원이 되면, 야외 휴게실과 연결되어 있는 학교 도서관을 관리해야 하는 업무가 주어진다.
이연은 춤과 노래를 연습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과 후에 학생들의 이용이 적어질 시간대를 활용해서 몰래 혼자 남아 춤, 노래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유혜영에게 들키기 전까지 말이다.
이때의 권이연은 가족들에게조차 자신이 가수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적이 없던 시절이었다.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자신의 꿈을, 그것도 강제로 들키게 되었으니 당연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유혜영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얼굴 예쁘고 얌전한 성격인 줄로만 알았던 권이연이 몰래 도서관에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을 줄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처음에는 크게 당황했었던 유혜영이지만.
이것도 잠시뿐이었다.
-방금 그거, 한 번 더 보여주면 안 돼? 또 보고 싶어.
노래하고 춤추는 이연의 모습에 유혜영은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혼자서 연습했던 안무를 보여주자, 유혜영은 활짝 웃는 얼굴로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줬다.
그날 이후부터 유혜영은 권이연의 유일한 관객이 되었다.
유혜영 덕분에 이연은 누군가가 자신의 공연을 봐준다는 기분을 처음 느껴보게 되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유일한 관객을 위해 매번 연습을 거듭하던 이연이었지만, 이내 그녀에게 커다란 고민거리가 찾아오게 되었다.
자신이 정말 이 상황에서 가수가 되기를 희망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밀려온 거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특출한 재능이 있는 거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본인만의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이연은 공연 대신 유혜영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정말 가수가 될 수 있을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그런 고민을 할 법한 나이이기도 하니까.
유혜영도 이연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확실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일단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퍼부어봐. 그래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 관둬도 되지 않을까.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 포기하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노력해보고 하라고. 그래야 나중에 미련이 안 생긴대.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유혜영이 했던 말을 되새겼다.
과연 자신이 지금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직 오디션 한번 본 적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유혜영이 이연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힘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늘 널 응원할게. 내가 네 팬 1호라는 건 변함없으니까.
처음 얻은 팬.
고작 단 한 명뿐이지만, 이연에게 있어서 유혜영의 존재는 수백, 수천, 수만 명에 이르는 팬들 못지않을 만큼 든든하게 느껴졌다.
* * *
과거의 기억 속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이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팬 1호를 기억 못 하고 있다면 가수 할 자격이 없지.”
이연의 말에 유혜영의 눈에서 다시 한번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진짜…… 왜 이런대. 미안해, 연아. 어른 되고 나서 내가 눈물이 너무 많아졌나 봐.”
겨우 진정시킨 눈물샘이 중학교 동창생의 한마디로 인해 다시 터지고 말았다.
비록 루웰이 직접 겪었던 경험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혜영이 권이연에게 큰 용기를 줬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유혜영과 사이좋게 나란히 가게로 돌아온 권이연.
마침 유혜영의 오빠가 하니엘 멤버들이 주문한 음식들을 막 세팅해 주고 있었다.
여동생을 보자마자 오빠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뭐 하느라 이제 와. 얼른 와서 일해.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여동생이 아직 철이 없어서…….”
발끈한 유혜영이 오히려 오빠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오빠. 이분들 누군지 몰라?”
“이분들? 초면인데 네가 어떻게 알아.”
“지금 나오는 노래 들리지?”
마침 가게 내에 하니엘이 파이널 무대에서 불렀던 ‘페어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 부른 그룹이라고.”
“지, 진짜? 가수분들이셨어?”
“어휴. 내가 못살아. 미안해, 연아. 우리 오빠가 가게 때문에 너무 바빠서 티비나 인터넷 같은 걸 거의 안 하면서 살거든.”
요즘은 어떤 노래가 유행인지, 대중문화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었다.
유혜영에게 와서 같이 앉으라고 말한 이연은 멤버들에게 자신의 친구를 직접 소개시켜 줬다.
“내 중학교 동창생이야.”
“안녕하세요. 유혜영이라고 해요. 아까는 정말 죄송해요.”
하니엘 멤버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니라고 말했다.
상황이 진정되고 나서야 리샤가 유혜영에게 아까 일에 관련된 걸 물었다.
“연이 보고 왜 우셨던 거예요?”
“사실 SSS 보면서 제가 연이 엄청 응원하기도 했고…… 데뷔 결정지었을 때 엄청 울었거든요. 그때 기억이 나기도 하고. 그래서 그랬나 봐요.”
“연이는 중학생 때에도 별명이 ‘연이’였나 보네요.”
“별명이라기보다는 제가 일방적으로 그렇게 불렀던 거예요. 근데 연이도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유혜영이 먼저 손을 뻗어 이연의 손을 잡아줬다.
스킨십에 약한 이연이지만, 오늘만큼은 잠시 참기로 했다.
이연의 근황은 이미 티비를 통해 많이 공개되었다 치더라도.
“혜영이, 너는? 어떻게 지냈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의 근황이 궁금했다.
요즘은 잘 지내지? 이런 느낌으로 별생각 없이 던져본 질문인데.
“그게…….”
유혜영의 낯빛이 굉장히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