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2화
제28화. 승자와 패자(2)
베네핏을 얻고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까 하니엘 팀원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할 때, 진절혜를 데려오자는 의견이 소수였지만 있긴 했었다.
실력으로 따지면 진절혜가 정답이긴 했으니까.
그러나 진절혜의 경우에는 연시우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고.
그리고 업보가 너무 많이 쌓여 있었다.
이 와중에 시라이시 유키라는 존재가 갑자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포텐이 제대로 터졌던 파이널 라운드 2차 유닛 대결은 팬들 사이에도 SSS 내에서 레전드 무대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였다.
이연도 그녀의 무대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다.
그리고 오늘, 이연은 벨제브의 1차 오리지널곡 무대를 보면서 강하게 확신했다.
이제는 시라이시 유키가 진절혜를 실력으로도 뛰어넘었다고.
사실 이연은 진절혜가 센터로 섰던 ‘H’보다 시라이시 유키가 센터를 맡았던 ‘SSSwip’이 더 좋았다.
시청자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실력을 고려해 봐도 이젠 시라이시 유키가 답이었다.
반면, 유키는 베네핏으로 자신이 지목받을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연은 저게 연출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방송이니까. 저 정도 리액션은 보여줘야지.’
반대로 벨제브 팀원들은 시라이시가 선택될 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저는…….”
시라이시가 멤버들의 눈치를 살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이건 팀원들을 배신하는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 살아남는 거니까.
하지만 연예계에서는 쓸데없이 의리를 차릴 필요가 없다.
특히나 데뷔를 눈앞에 둔 연습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망설이는 시라이시를 향해 벨제브 팀원들이 먼저 그녀의 등을 살포시 떠밀었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유키, 넌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해줬어. 그런데 우리가 붙잡는 건 너무 염치없지.”
“언니들…….”
시라이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미안함 때문이었다.
팀원들의 말대로, 사실 시라이시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패자부활전은 마지막 중에서도 마지막에 찾아오는 최후의 기회다.
이것을 놓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은솔이 시라이시 유키에게 물었다.
“하니엘 팀에서 시라이시 유키 연습생을 지목했습니다. 시라이시 양.”
“네.”
“하니엘 팀에 합류하시겠습니까?”
시라이시의 대답을 듣기까지 시간은 그리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네!”
이렇게 해서 팀 하니엘은 데뷔를 확정 지음과 동시에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게 되었다.
* * *
모든 생방송 무대가 종료되었다.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나여솜은 빠른 걸음으로 바로 근처에 앉아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랑의 요정들 팀원들에게 달려갔다.
“언니만 데뷔하게 돼서 미안해…….”
“아니야, 여솜 언니.”
“언니라도 데뷔해서 다행인 거지.”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 계속 보여주도록 해. 우리도 언니 따라서 데뷔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고마워, 얘들아…….”
비아와 리샤, 그리고 시우도 각자 자신을 응원하러 온 가족들을 만나러 이동했다.
이연도 응원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반대로 우미는 멀뚱히 서서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듯이 주변을 살폈다.
“언니 오빠분 찾는 거야?”
“그걸 어떻게…….”
“아까 가족들 인터뷰할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그러나 당시에 우미는 오빠의 존재를 부정했다.
혹여나 그녀의 이런 태도에 실망해서 가버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뒤늦게 밀려온 것이다.
이때, 권민준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모양인지 거리를 좁혀오면서 우미의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형, 아까 급한 연락 받고 가셨어요.”
“그, 그래요?”
우미의 표정에 많은 감정이 담겼다.
여동생이 이런 반응을 보일 걸 예상이라도 했던 걸까.
양우섭은 갈 때 그냥 가지 않았다.
“아까 그 형이 우미 누나한테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어요.”
“나한테요?”
“네. 무대 잘 봤다고, 감동적이었다고 꼭 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
할 말이 굉장히 많아 보이는 우미였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권민준은 우미가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 걸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양우섭에 대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형, 엄청 잘생기셨던데요? 저는 처음에 배우 일 하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악!”
옆에서 이연이 발끝으로 권민준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엄청난 통증을 느끼면서 자신의 발을 양손으로 감싼 권민준이 강력하게 항의했다.
“뭐 하는 거야, 누나!”
“눈치 없는 짓 그만하고 어머니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시간 너무 늦었어.”
“……누나는.”
“난 뒤풀이 회식 가야지.”
“쳇. 알았어. 하여간 성질머리하고는. 괜히 목이 터져라 응원했네.”
중얼중얼.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권민준은 누나의 말에 얌전히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연이 대신해서 우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언니. 쟤가 다른 건 다 좋은데 눈치가 별로 없어.”
“아니야. 그래도 민준이가 우리 오빠 부탁 받고서 말까지 대신 전해줬는데. 오히려 고맙지.”
기왕 가족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연은 우미에게 슬쩍 가정사에 대해 물어보는 걸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전에 훼방꾼이 등장했다.
비아가 큰 소리로 외치면서 두 사람을 불렀다.
“언니들! 대표님이 배고프시다고 빨리 회식하러 가재!”
“알았어. 곧 갈게.”
모처럼 찾아온 기회였지만, 회식 일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다음으로 미뤄야만 했다.
‘언젠가 또 좋은 기회가 찾아오겠지.’
그렇게 믿고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 * *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대망의 종영 파티가 끝난 다음 날.
오채일 대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면서 겨우 오전에 퇴근을 마쳤다.
“어후, 죽겠다.”
마침 오 대표가 출근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사무실을 찾아온 찐 프로듀서, 진세혁이 쓴 미소를 지었다.
“대표님. 어제 얼마나 달리신 겁니까?”
“새벽 3시였나, 4시였나. 기억도 안 나네.”
“진짜요? 설마 애들도 그때까지 같이 있었어요?”
“아니. 미성년자들도 껴 있는데, 어떻게 끝까지 데리고 있겠어. 애들은 1차 끝나고 박 매니저가 바로 집으로 데려다줬어. 새벽부터 생방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테고. 비아하고 리샤도 꾸벅꾸벅 졸고 있길래 내가 일찍 들어가서 쉬라고 했지.”
“잘하셨어요. 그러면 어제는 누구랑 그렇게 마신 겁니까?”
“어디 보자. 나하고 현아하고, 서 PD하고 제작진 몇 명. 이 정도? 은솔이하고 석호는 일 있다고 먼저 갔고. 아, 주린이도 끝까지 남아 있었다.”
“주린이가요? 별일이네요. 술자리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나도 신기했다니까? 찐 프로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진세혁 프로듀서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러게요. 저도 가고 싶은 마음이 산더미였는데, 대표님이 내준 숙제 때문에 도저히 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원흉이 바로 눈앞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오 대표가 쓴 미소를 머금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렇게 SSS와 하니엘 팀이 대중들로부터 크게 화제몰이를 했을 때, 최대한 빨리 데뷔 무대까지 이 흐름을 이어가야 한다.
그래서 오 대표는 진세혁에게 데뷔 앨범 작업에 바로 들어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곡은 나왔어?”
“아마 내일 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멜로디는 얼추 완성됐고요. 타이틀곡만 먼저 후딱 작업하고, 수록곡들은 SSS에서 선보였던 오리지널곡들 모아서 하니엘 7인 버전으로 다시 레코딩 할 예정입니다.”
“7인이라. 그랬지. 유키까지 들어가기로 했으니까.”
시라이시 유키의 이름이 나오자, 진세혁 프로듀서가 눈빛을 빛냈다.
마침 오 대표에게 묻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니엘 애들이 절혜가 아니라 유키를 고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나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는데.”
진세혁 프로듀서는 카메라가 꺼졌을 때의 연습생들의 관계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라이시를 선택한 하니엘 팀의 결정이 이해가 안 된 거였다.
“절혜가 실력은 좋은데, 뭐라고 해야 할까. 다른 연습생들은 좀 어려워하는 면이 있더라고. 반대로 유키는 그런 거 없잖아.”
“성격 좋고 싹싹하죠. 언제나 생글생글 잘 웃고. 귀엽더라고요.”
“그렇지. 그래서 나는 유키가 하니엘에 합류한 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보고 있어. 그리고 이건 대외비인데…….”
말끝을 흐리던 오채일 대표가 진세혁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사무실 문을 가리켰다.
살짝 열려 있는 문.
진세혁은 오 대표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문을 닫은 것도 모자라서 혹시 몰라 잠금장치까지 걸어 잠갔다.
창문도 전부 닫혀 있고.
완전한 밀실 환경이 완성되었다.
오채일 대표가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어제 3차까지 달렸을 때였나. 서윤철 PD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 투표 때 각 팀별로 번호를 적고, 그다음에 응원하는 연습생의 이름을 적어서 문자를 보내도록 했었잖아?”
“네, 그렇죠.”
“현장에서는 발표를 안 했었지만, 각 연습생별로 득표율도 기록했었대.”
“서윤철 PD가 그런 것도 데이터로 뽑아냈답니까?”
“어. 만약에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시즌 2를 계획하게 되면, 참고삼으려고 일부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뒀나 봐. 그런데 말이야. 놀라지 마. 여기서 시라이시 유키가 몇 등 했는지 알아?”
“글쎄요.”
오채일 대표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3등.”
“예? 잠시만요. 그러면 웬만한 하니엘 멤버들보다도 높게 나온 거 아닙니까?”
“그렇지. 벨제브 팀 기준으로는 가장 높아.”
“진절혜보다도요?”
“그렇다니까?”
1등은 말 안 해도 권이연일 테고.
2등은 리샤나 여솜, 둘 중에 한 명이 차지했을 것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라이벌 팀이었던 시라이시가 3위에 랭크되었다니.
“만약에 하니엘 애들이 베네핏 사용 안 했더라면, 유키가 많이 억울할 뻔했네요.”
“어쩔 수 없지. 팀 선택도 실력이니까.”
파이널 라운드 팀 매칭 당시, 누구도 어느 팀에 가라고 연습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을 내린 거였다.
그래서 설령 시라이시가 베네핏의 수혜를 받지 못했더라도 본인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중들 반응 보니까, 유키가 제7의 멤버로 합류한 것에 대해서 긍정적이라는 여론이 압도적이더라.”
“이번 파이널 라운드는 유키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그렇지. 이연이나 절혜는 방송 시작할 때부터 쭉 잘해왔으니까.”
최고의 드림팀이 만들어진 만큼, 오 대표의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찐 프로가 기가 막힌 타이틀곡 하나 뽑아내 줘. 데뷔하자마자 음방 1위, 음원차트 1위 팍팍 찍어보자고! 어때?”
“노력해 보겠습니다.”
진세혁은 그냥 가볍게 회식 잘 끝내고 왔냐고 안부나 물으러 왔을 뿐인데.
오 대표한테 부담감만 팍팍 얻고 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