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103화 (103/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103화

제29화. 아는 오빠(1)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가 종영된 지 일주일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터넷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습생들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시끌시끌한 바깥세상과 달리.

요 1주일 동안 연습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한 한 주를 보내고 있었다.

오채일 대표로부터 ‘일단은 쉬어라’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간 정신없이 달려왔던 연습생들.

이제 바로 데뷔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또 열심히 달릴 준비를 해야 하는데. 숨 돌릴 시간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연은 쉬는 동안, 음악 말고 다른 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바로 운전이다.

우승 상금과 함께 부상으로 이연 앞으로 차량 한 대가 주어지게 되었다.

원래는 이 차량을 그대로 팔아치우려 했었다.

그러나 이연은 방송에 출연하면서 생각을 달리 먹게 되었다.

‘내 차 정도는 있어야 편하겠어.’

이동하는 데 매번 지하철 아니면 버스, 아니면 택시를 타고 다녀야 하니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물론 앞으로 스케줄 관련으로 이동할 경우에는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면 되긴 하지만.

방송이 아닌 사적인 약속이 있을 경우에는 이연이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그녀는 이 차량을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해 뒀다.

운전면허증은 파이널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틈틈이 운전면허 학원을 다니면서 따뒀다.

그러나 아직 혼자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기에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특별 게스트를 모셨다.

이 게스트가 주말이라고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다는 게 약간의 문제라면 문제였다.

결국 참다못한 이연이 집 안으로 쳐들어가 권민준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야, 권민준. 안 일어나냐?”

이불을 빼앗으려고 하던 순간, 권민준이 필사적으로 그것을 사수했다.

“이, 이불만큼은 안 돼!”

“왜. 빨가벗고 잠이라도 자고 있냐?”

“아, 씨! 남자는 아침마다 말하기 힘든 사정 같은 게 있다고!”

그랬었지.

생각해 보니 이연도 과거에는 남자였다.

그러나 요즘은 하도 여자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건지, 권민준이 말하는 남자만의 사정이라는 걸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무튼 빨리 씻고 나와라. 어제 말했던 드라이브 갈 거니까.”

“……진짜로 가는 거야?”

“왜. 그러면 가짜로 갈 줄 알았냐?”

“아니, 뭐…….”

가기 싫어하는 티가 팍팍 나는 얼굴이었다.

남동생의 이런 반응을 보고 있자니 이연은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마치 자신이 가달라고 애원하는 거 같아서였다.

“가기 싫으면 말든가. 너 아니어도 같이 가줄 사람은 많으니까.”

“그래? 잘 됐다. 그러면 누나, 차라리 그 사람들 데려가. 나는 잠 좀 더 잘게.”

한 번쯤은 약속이니까 내가 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권민준은 그런 거 일절 없었다.

눈치코치도 없는 남동생을 보면서 이연은 일부러 들으라고 혼잣말을 흘렸다.

“넌 평생 여자 못 사귀겠다.”

그렇게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부으면서 이연은 다른 대체 인력을 구하기 위해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 * *

차를 끌고 나온 이연이 향한 곳은 바로 비아의 집 근처였다.

나름 꾸미고 나오느라 정신이 없었던 비아는 차에 오르기 전에 이연에게 여러 차례 물었다.

“정말 운전면허 있는 거 맞지? 그렇지?”

“왜 그래. 내가 설마 면허증도 없이 운전하다가 적발이라도 될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당연하지. 우리, 아직 데뷔도 안 했다고. 데뷔 기사 뜨기도 전에 무면허 사건사고 기사가 먼저 뜨면 안 되잖아.”

이럴 때를 대비해서 이연은 미리 가져온 자신의 면허증을 꺼내 비아에게 실물로 보여줬다.

“자, 됐지?”

“……이 언니, 진짜로 파이널 무대 준비하면서 면허증 땄었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이연이 지친 멤버들을 웃겨주기 위해 농담한 줄 알았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언니. 안 피곤했어?”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한 일정도 소화하고 그랬었는데, 뭘.”

“진짜? 우리가 그렇게 하드한 연습 일정을 겪은 적이 있었나?”

아무리 과거의 기억들을 찾고 또 찾아도 비아는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게 당연했다.

왜냐하면 이연이 말한 일정은 이 세계가 아니라 이전 세계에서 겪은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연의 운전 솜씨는 꽤 능숙했다.

“뭐야, 언니. 잘하잖아?”

“내가 못할 줄 알았어?”

“면허 딴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나름 각오하고 온 거였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옆좌석에 탄 비아는 대만족이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진짜로 평소에 좋아하는 언니와 같이 드라이브 가는 느낌도 나고. 괜찮았다.

“근데 언니.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목적지는 따로 안 정했는데.”

그냥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럼 거기 가자. 저번에 우리 치어리딩 미션 때 언니가 해상 카페 데리고 갔었잖아. 옆에 한강 풍경 보니까 또 가고 싶어졌어.”

“그럴까?”

말을 들어보니 이연도 오랜만에 그곳의 음료와 케이크 맛이 그리워졌다.

이연과 비아에게 있어서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고.

목적지로는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20여 분을 달린 끝에 근처 공영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세우고 하차하기 전에 이연은 안경과 마스크를 챙기는 걸 잊지 않았다.

물론 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어딜 다녀도 항상 얼굴을 가릴 만한 걸 챙겨야 했다.

스타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카페에 들어서자, 비아가 작은 목소리로 이연에게 속삭였다.

“오늘 엄청 한적하네.”

“2층은 아예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음료 주문하고 우리, 2층으로 올라가자.”

웬만하면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괜히 사람들의 눈에 띄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음료를 받고 바로 2층으로 올라오자, 이연의 말대로 사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경과 마스크를 벗은 두 사람은 그제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비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여긴 다시 와도 좋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우하고 언니들도 부를 걸 그랬어.”

“한 명 빠졌는데.”

“맞다, 유키.”

베네핏을 통해 가장 마지막에 합류한 멤버여서 그런지 아직은 같은 팀이라는 느낌이 잘 와닿지 않았다.

이연도 비슷하긴 했다.

그래서 매번 하니엘의 완전체는 6명이 아니라 7명임을 스스로 상기시키곤 했다.

“유키는 어때? 저번에 너하고 시우하고 셋이서 같이 놀러 다녔다면서?”

“응. 고3 라인들끼리 뭉쳤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언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알아? ‘공부해’야.”

그 유명한 수능 포기자가 이연의 눈앞에 있을 줄은 몰랐다.

“시우는 그래도 틈날 때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공부는 하던데.”

“걔는 나하고 다르게 머리가 좋으니까. 유키도 그렇고. 하아…… 생각해 보니까 언니들도 그러네. 역시 내 동료는 리샤 언니밖에 없나?”

“리샤가 들으면 화낼 거 같은데.”

“괜찮아. 리샤 언니도 자기 머리 나쁜 거 인정했거든.”

안 되는 걸 애써 부정하는 것보다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인정해 버리는 게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법이다.

그래도 이연은 친한 언니로서 비아가 걱정되었다.

“학업은 웬만하면 포기 안 하는 게 좋아. 배워두면 나중에라도 다 쓸 곳이 분명 생기거든.”

비아는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은 채 ‘잔소리 결사반대!’를 외쳤다.

여기까지 와서 공부로 쓴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결의를 표현했다.

이연도 이럴 생각으로 비아를 부른 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백날 말해봐야 어차피 비아가 학업에 관심을 보일 성향도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잘 안다.

“알았어. 공부 이야기 안 할 테니까 케이크나 좀 먹어봐. 이러다가 이거 먹지도 못하고 남기겠네.”

“리샤 언니가 있으면 이런 걱정 안 해도 되는데.”

“그렇긴 하지.”

단기간 내에 가족 이상으로 계속 가까이 붙어서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뭐만 하면 멤버들 생각이 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라이시 유키의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숙소 들어가면 좀 나아지겠지.”

“응? 무슨 소리야, 언니?”

“유키에 대해서 생각 좀 하고 있었어. 어차피 다음 주에 다 같이 숙소 잡아서 앞으로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으니까.”

“맞다, 그랬지.”

박도수 매니저가 그토록 원하던 숙소 생활이 바로 다음 주에 시작된다.

매니저는 그대로 박도수가 하니엘 팀을 맡기로 했다.

멤버들과의 케미도 잘 맞는다고 회사에서 판단한 덕분에 이런 결정이 내려지게 되었다.

하니엘 멤버들과 박도수 매니저, 두 쪽 다 이런 결정에 크게 만족했다.

숙소는 이미 회사가 잡아뒀다고 했다.

멤버들은 개인 짐만 챙기고 다음 주에 숙소로 입주하기만 하면 된다.

숙소 이야기가 나오자, 비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갑자기.”

“우리 아빠가 아직 애기인데 어떻게 벌써부터 부모 품 떠나보내냐고 엄청 걱정하시더라고. 반대로 우리 엄마는 아빠가 괜한 걱정을 한다고 막 구박하시고. 집안 분위기가 뒤숭숭해.”

덩달아 비아의 마음도 똑같이 뒤숭숭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언니한테만 미리 말하는 건데. 나, 엄마 아빠랑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내본 적 없거든.”

“단합 여행 때는?”

“그때도 사실 아빠가 당일치기로 갔다 오면 안 되냐고 막 방송국에 전화해서 물어보려고 했었어. 나하고 엄마가 겨우 말려서 다행이었지, 그거 아니었으면 PD님하고 작가님들한테 민폐 제대로 끼쳤을걸?”

딸내미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굉장했다.

“근데 용케도 숙소 생활을 허락받았네?”

“우리 엄마가 힘 좀 써줬지.”

이연은 몇 개월 동안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멤버들과는 알 만큼 아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직 그녀가 모르는 멤버들의 이야기들이 한가득했다.

비아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복잡한 가정사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 또 한 명 있었다.

“우미 언니는 나하고 다르게 이른 나이부터 독립한 것처럼 보이던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우미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기를 오히려 희망하는 편이란 점이었다.

“우미 언니 오빠가 직접 방송을 보러 올 정도면, 모든 가족들이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닌가 본데…….”

“잠깐만. 연이 언니, 우미 언니 오빠가 현장에 왔었어?”

당시에는 워낙 정신이 없어서 이야기해 주질 못했었다.

비아가 우미의 가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언니 오빠분은 어떻게 생겼어? 응? 대충이라도 알려줘!”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이에 대해 이연의 고민이 깊어지려는 찰나였다.

누군가가 전화 통화를 하면서 2층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네. 그럼 인도 건은 부장님이 알아서 잘 처리해 주세요. 네. 계약 조건,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거 잊지 마시고요. 그리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미남이었다.

이연이 손으로 남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렇게 생겼어.”

설마 여기서 양우섭과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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