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71화
제20화. 유닛 대결(2)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은 정우재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권이연을 보고서 크게 놀랐다.
“이연 씨가 여긴 어떻게…….”
“소속사에서 앞으로 헬스 할 일 있으면 여기서 하라고 등록시켜 줘서요. 나온 지는 얼마 안 됐어요.”
“그랬군요.”
“근데 선배님은요? 지금 군대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난번에 휴가를 나왔을 당시, 정우재의 계급이 일병이라고 들었다.
요 한두 달 사이에 벌써 전역했을 리가 만무하고.
이렇다 보니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정우재가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짧은 머리를 매만지면서 자초지종에 대해 설명했다.
“휴가 나왔거든요. 일병 정기휴가를 아직 못 썼는데, 상병 달기 전에 어떻게든 쓰라고 행보관님이 하도 압박을 주셔서 어쩔 수 없이 엊그제 쓰고 나왔습니다.”
“그럼 곧 상병 진급하시는 건가요?”
“네.”
“축하드려요, 선배님.”
이연이 활짝 웃으면서 말하자, 정우재의 머쓱함이 더욱 깊어졌다.
이연은 비록 군대 갈 일이 없지만, 그럼에도 군부대에 관한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이었다.
음유시인으로 활동했을 때에도 아주 잠깐 병역의 의무를 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진짜 별의별 고생을 다 했는데.’
이 세계와는 직급도, 훈련 방식도, 내무생활 문화도. 모든 게 다 다르다.
그러나 ‘군인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이연은 정우재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우재는 이연 앞에서 군대 이야기를 꺼내는 걸 웬만하면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제 지인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 군대 가더니, 휴가만 나오면 군대 이야기만 한다고. 그래서 최대한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 중인데…… 오늘도 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제가 물어봐서 그런 거니까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전 군대 이야기 좋아해요.”
“네? 그…… 래요?”
“그쪽에 관심이 많거든요.”
정우재는 모를 것이다.
눈앞에 있는 여성이 군필자라는 사실을.
* * *
젊은 선남선녀가 헬스장에서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결코 흔치 않을 것이다.
심지어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다니는 유명 헬스장에서 이런 모습은 더욱 보기 힘들다.
그 일이 오늘, 실제로 벌어지게 되었다.
“사격할 때 100사로, 200사로, 250사로, 이렇게 표적지를 나눠서 실사격을 하거든요. 개머리판을 이렇게 어깨에 견착하고, 가늠자 가늠쇠로 표적지 맞춰서 방아쇠를 당기면, 그대로 적중합니다. 여기서 팁을 드리자면, 호흡 때문에 몸이 들썩일 수 있으니까 잠깐 숨을 참아서 조준하는 게 맞출 확률을 높일 수 있죠. 그리고 PRI라고 아시나요?”
“네. 들어는 봤어요.”
“전진무의탁에서 엎드려 쏴, 앉아 쏴 자세로 계속 바꿔가면서 훈련시키는 건데, 이걸 시멘트 바닥 위에서 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팔꿈치하고 무릎이 그냥…… 어후! 그거 훈련받을 때 진짜 저 배우 데뷔 초창기 때 생각나더라고요. 그때도 몸도 힘들고, 멘탈도 탈탈 털렸었는데.”
신이 난 모습으로 정신없이 군대 이야기를 하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정우재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만해, 형. 운동하러 온 사람 붙잡고 재미없는 군대 이야기 언제까지 계속 들려줄 거야?”
권이연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은솔이 운동복을 입고서 정우재를 직접 만류했다.
이은솔을 보자마자 이연이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 오 대표님이 연습생들 여기 헬스장 단체로 등록시켜 줬다는 말은 들었는데. 진짜였구나.”
“네. 얼마 안 됐지만요.”
“보다시피 여기 시설이 정말 좋아. 내가 이 근처 헬스장은 다 다녀봤는데, 여기만큼 시설 괜찮고 관리 잘되는 곳도 없더라.”
“그러게요. 저도 그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정우재가 부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이은솔에게 물었다.
“이연 씨하고…… 말 놓는 사이야?”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고. 최근에서야.”
파이널 라운드 진출자가 확정된 이후, 단체로 회식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민주린을 포함해서 이은솔까지. 연습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말을 편하게 놓기로 한 거였다.
이번에는 권이연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서로 원래부터 아셨던 건가요?”
“어. 우재 형하고 나하고 데뷔 연도도 비슷하고. 마음도 잘 통해서 예전부터 친한 형, 동생처럼 지내고 있어. 형이 나보다 두 살 많지?”
“그렇지. 뭐, 요즘 시기에 두 살이면 거의 차이 안 나는 거지.”
티비 안에서는 어느 연예인이 누구와 친한지, 이런 것까지 상세하게 다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연도 정우재와 이은솔의 관계에 대해 오늘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은솔이 팔꿈치로 정우재의 넓은 등빨을 사정없이 찔렀다.
“아무튼 형,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군대 이야기 하는 거 좀 그만해. 이연이가 뭘 알겠어?”
“이연 씨가 먼저 말해달라고 했다고.”
“그거야 형이 연예계 선배니까 마지못해 그렇게 말한 거겠지.”
“아…… 그런가. 미안해요, 이연 씨.”
권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단정하게 묶은 긴 머리카락이 팔랑거렸다.
“아니요. 전 괜찮아요. 정말로 군대에 대해 궁금해서 말한 거였으니까요. 마지못해 한 말 아니에요.”
“거봐. 이연 씨도 그렇대잖아.”
“어휴, 이 형이 진짜 눈치가 이렇게 없네.”
오해가 오해를 부르고 있었다.
그 전에 이은솔이 먼저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형. 운동 슬슬 그만하고 우리도 가야지.”
“그래. 오늘 재미있었어요, 이연 씨.”
“아니에요. 나중에 또 군대 썰 들려주세요, 선배님.”
“그럴까요? 그러면 시간 한번 내주세요. 제가 원 없이 들려드릴게요.”
두 사람만 따로 약속을 잡게 만들 수 없던 모양인지, 이은솔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러면 셋이서 보자. 다음에 형 휴가 나왔을 때. 좋지?”
“그래, 괜찮네. 이연 씨는 어때요?”
두 남자의 말에 이연은 싱긋 웃었다.
“네, 저도 좋아요.”
“그럼 서로 연락을 해야 하는데…….”
정우재가 그녀에게 선뜻 연락처를 달라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에 휩싸였다.
망설이는 그와 달리, 이연은 어렵지 않게 번호를 주겠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정우재 말고 그녀가 번호를 알려줘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이은솔이었다.
“선배님. 저번에 저한테 번호 알려주고 가셨잖아요. 그때 제 번호 알려 드린다는 걸 깜빡해서…… 제가 조금 있다가 문자 보내드릴 테니까 그 번호 저장해 주세요.”
“어. 알았어. 고마워.”
“천만에요.”
그렇게 두 남자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게 된 이연.
한 명은 잘나가는 보이 그룹의 멤버.
그리고 또 한 명은 드라마며 영화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다.
두 남자의 번호를 쭉 훑은 이연은 스마트폰을 러닝 머신 위로 올려놓으면서 서서히 뜀걸음을 시작했다.
‘이렇게 차츰차츰 인맥 늘려가는 거지.’
데뷔도 중요하지만, 연예계 인맥을 넓혀가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 * *
매번 SSS 촬영 때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연습생들보고 알아서 100퍼센트 다 준비하라고 하진 않는다.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주는 전문 프로듀싱 팀이 존재하고, 안무나 보컬 부문에서는 이석호 트레이너나 나현아 트레이너가 도와준다.
이번에는 유닛 대결이라서 그런 걸까.
총 여섯 개의 팀을 봐줘야 했기에 이석호 트레이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이연이 개인으로 사용 중인 작은 안무 연습실에 도착한 이석호는 잠시 쉬고 있는 이연을 보면서 인사했다.
“안녕, 이연아.”
“안녕하세요, 트레이너님.”
“어디 보자. 이번에 네가 선곡한 게…… ‘Lonely’ 맞지?”
“네.”
‘Lonely’를 부른 여성 솔로 가수, 윤혜미.
그녀도 예전에는 걸 그룹으로 활동하던 가수였지만, 그룹이 해체되고 난 이후부터는 솔로 가수 겸 배우로 활동 중이었다.
단체곡을 고를까 하다가 혼자서 소화해야 할 하는 파트가 너무 많을 거 같고. 그래서 이연은 여성 솔로 가수 중에 한 명을 택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이연이 택한 곡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훑은 이석호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이면서 탁월한 선택임을 알렸다.
“‘Lonely’가 걸크러쉬 콘셉트니까 너하고 이미지 매칭도 잘되고. 괜찮네. 잘 골랐어.”
“감사합니다.”
“안무는 다 땄지? 일단 한번 볼까?”
원래 다른 연습생들 같은 경우에는 미션 받고, 연습할 곡 선택하고. 안무는 이제 첫걸음마를 떼는 단계였다.
그러나 권이연이라면 다르다는 것을 이미 모든 심사 위원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녀만큼 빠르게 진도를 빼는 연습생도 없었다. 그래서 이석호는 이연이라면 이미 머릿속에 안무를 다 집어넣은 상태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반주가 나오자마자 이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외워둔 안무를 펼쳤다.
혼자서 무대를 채워야 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물론 본무대에는 백댄서들이 멤버들 대신 이연의 뒤를 받쳐줄 예정이지만, 그래도 결국 무대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 모두를 장식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이연이다.
그녀 혼자 주연, 조연, 단역까지.
전부 다 소화해야 하기에 솔로 무대가 특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연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혼자라서 휑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석호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꽉 차 있는 느낌을 받았다.
기본적인 안무 동작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시선 처리에 표정 연기까지.
이석호가 지적할 만한 곳은 없었다.
아니, 딱 한 군데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이석호가 이연에게 그 지적 사항에 대해서 알려줬다.
“2절 들어갈 때 있잖아. ‘다른 여자 보지 마, 나만 바라봐’라는 부분. 그때 표정하고 동작을 좀 더 요염하게 지어봐. 가사대로 저 남자를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처럼.”
이연이 어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킨 이연은 자기 자신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한 30퍼센트 정도?
“이렇게요?”
“좀 나아졌네. 이건 뭐. 나중에 연습하다 보면 더 자연스러워지겠지.”
그럴 것이다.
아마도.
이석호가 기대했던 대로 이연의 무대는 거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오케이. 그러면 이것으로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았네? 혹시 나한테 뭐 궁금한 거라도 있어? 아니면 연습하면서 막히는 거 있으면 그거 물어봐도 되고.”
다음 팀 연습을 보러 떠나기까지 시간이 제법 남아서 이석호는 Q&A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에게 물어볼 게 뭐가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없다.
그렇다고 안무 담당 트레이너와의 독대 시간을 그냥 허무하게 날리는 것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쩍. 카메라들을 빠르게 살폈다.
‘아까 스태프들이 배터리 교체할 거라고 꺼뒀었지.’
어차피 트레이너들이 연습생들의 연습을 봐주는 건 방송에 안 나갈 거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 이석호 트레이너가 연습실을 돌면서 그녀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 거였다.
“방송 말고 다른 거 물어봐도 되나요?”
“뭐, 그래. 한번 물어봐.”
이석호 트레이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연이 들려준 질문은 그냥 가벼이 넘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절혜하고 트레이너님하고. 사적으로 많이 친해 보이시던 거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