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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72화 (72/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72화

제20화. 유닛 대결(3)

이연의 갑작스러운 질문 공격에 이석호는 순간 말을 잊고 말았다.

설마 이연이 그가 진절혜와 몰래 내통해 온 걸 눈치챈 걸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석호 트레이너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깃들었다.

“갑자기 그건…… 왜?”

“지난번에 진절혜하고 트레이너님하고 복도에서 따로 이야기 나누는 걸 우연히 봐서요. 자세히는 못 들었고, 슬쩍 보니까 꽤 친해 보여서 물어본 거예요.”

다 알면서도 일부러 이연은 대화 내용까진 듣지 못해서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했다.

그녀의 말에 이석호 트레이너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찔리는 건 여전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고…….”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진 탓에 어떤 식으로 이 위기를 풀어나가면 좋을지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이게 이연이 노린 거였다.

원래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준 다음에 가하는 일격은 막힐 게 뻔하다.

그래서 기습이라든지. 야습 같은 작전이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그…… 내가 예전에 금전적으로 좀 어려웠던 때가 있었거든. 댄스 학원을 차렸었는데, 그게 망해 버렸어. 그때 절혜 아버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지. 그게 인연이 되어서, 절혜하고도 알음알음 아는 사이가 된 거야.”

“그게 진절혜가 연습생이 되기 전의 일인가요?”

“그렇…… 지? 절혜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아버님한테 은혜라도 갚으려고 몇 번 댄스 레슨 해주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다고 절혜가 내 백으로 여기 LC에 합격한 건 절대로 아니야. 우리 대표님 성격 알지? 실력도 없는데 외적인 이유를 들먹이면서 연습생들 받아주려는 스타일, 절대로 아니시잖아.”

“네. 잘 알죠.”

진절혜의 LC 엔터테인먼트 오디션 합격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전혀 반영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석호 트레이너.

이연이 판단하기에 이 말은 사실로 보였다.

‘진절혜가 아예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니까.’

실력은 이연도 인정한다.

인성이 문제지.

“아, 아무튼 그렇게 해서 절혜하고 알게 된 거야. 궁금한 건 그게 다지?”

“네. 일단은요.”

‘일단’이라는 말이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이 이상 대화를 진행하면 이석호 트레이너는 자신이 모든 걸 스스로 자백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자리를 뜨기로 했다.

“그, 그럼 연습 힘내라. 잘 안 풀리는 거 있으면 언제든 나 찾아오고.”

“네.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석호 트레이너가 사라진 뒤.

스태프들이 다시 돌아와서 카메라 배터리를 갈아 끼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이연은 이석호 트레이너가 했던 말을 다시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진절혜의 아버지한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이석호 트레이너가 자발적으로 협조하기로 한 건지. 아니면 진절혜 쪽에서 먼저 이석호에게 내통하라고 압박을 걸었던 건지. 이걸 모르겠네.’

사실 시작점이 누구인지는 상관없다.

과정, 그리고 결과가 중요하니까.

‘나중에 또 추궁해 볼 기회가 있겠지.’

일단은 이석호 트레이너가 알려준 요염한 표현부터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좋아 보였다.

* * *

순항을 이어가는 이연과 다르게, 다른 유닛들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나여솜이 손뼉을 강하게 짝짝 치면서 잠시 연습을 중단시켰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 지금 둘 다 너무 집중을 못 하고 있는 거 같아.”

그녀의 말이 맞다.

연시우와 이비아는 안무 연습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마음이 뒤숭숭한 상태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권이연이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러다가 자신들이 괜히 지기라도 하면. 팀원들에게 많은 부담감을 안겨주는 거 아니겠나.

이 우려가 압박이 되어 둘을 위축되게 만들고 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스포츠 음료로 목을 축이는 비아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여솜 언니.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을까?”

“왜? 갑자기.”

“그냥……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고. 그래서 불안해.”

무대를 선보이기 전까지. 연습생들은 벽을 보고 연습한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게 과연 맞을까? 하는 의문과도 지속적으로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연이 그 역할을 맡았다.

이연이 맞다면, 그건 무조건 정답이었다.

그래서 비아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답을 알려주는 이연 덕분에 쭉 직선으로 달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파이널 라운드에서 같이 호흡을 맞춰본 지 이번이 두 번째밖에 안 되는 멤버들과 같이 연습을 해야 하는 터라 이연이 주던 확신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잘못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충분히 잘한다.

하지만 흔들리는 마음은 비아도 어쩔 수 없었다.

연시우의 경우에는 이와 반대였다.

“다 쉬었지? 이제 연습하자.”

비아가 시우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15분부터 다시 연습하기로 했잖아. 아직 10분 남았는데.”

“시간 없어. 오늘은 무조건 정해진 파트까지 완벽하게 습득하고 가기로 아침에 약속했잖아.”

“이연 언니가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다고 했어.”

“10분 안 쉬었다고 컨디션이 박살이 날 정도는 아닐 거잖아.”

점점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져 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여솜이 직접 나섰다.

“둘 다 그만해. 그리고 쉬는 시간은 정해뒀으니까 비아 말대로 15분부터 시작하는 걸로 하자. 알았지? 시우야.”

“……네.”

두 사람의 충돌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선곡하는 과정에서도 둘은 서로 다른 곡을 주장하면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곡을 정하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소요되었다.

그 덕분에 벌써부터 시간 부족에 많은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이연 없이 무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요소도 멤버들에게 큰 불안감을 줬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셈이다.

이것이 방금처럼 부정적인 감정의 덩치를 키워갔다.

하아.

몰래 한숨을 삼킨 나여솜은 쉬는 시간 동안 잠시 휴게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서 연습실을 나섰다.

휴게실에는 나여솜 말고 또 한 명 더 미리 온 손님이 있었다.

바로 양우미였다.

“어머, 우미 언니.”

“여솜이 아니야? 연습은 다 끝났어?”

“아니요. 한창 하고 있는데…… 죽겠어요.”

“왜?”

“그게 말이죠…….”

나여솜은 우미를 만나자마자 금세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팀 연습을 하면서 가장 견제해야 하는 게 바로 멤버들 간의 불화다.

한번 마음이 틀어져 버리면 같이 모여서 연습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게 초반부터 벌어지고 말았으니, 나여솜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연이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연이는 카리스마로 사람들 휘어잡는 타입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서 애들한테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쓴소리 한번 못 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늘상 느끼는 고충이었다.

이건 우미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래.”

“언니도요?”

“응.”

“무슨 일 있었어요?”

휴게실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힘이 없어 보이는 우미의 모습에 관심이 솟구쳤다.

“앨리샤가…… 너무 느긋해서 탈이야.”

“그게 어떤 뜻이에요?”

“아니, 그게…… 얘가 너무 긍정적이라고 해야 되나. 나는 솔직히 불안해 죽겠거든? 시간도 많지 않고. 선곡도 늦어서 빨리빨리 안무 따고, 그래야 하는데. 리샤는 오늘 점심에 뭐 먹을지, 간식으로는 어느 게 좋을지, 저녁으로는 또 어떤 걸 먹어야 할지. 이 생각만 가득해.”

“정말 리샤다운 모습이네요.”

나여솜이 다재다능 팀원들과 함께 하니엘 그룹을 꾸미게 된 지 얼마 안 된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앨리샤만큼은 어떤 타입인지 확실하게 알아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만큼 단순한 멤버였다.

그러나 우미에게는 이 단순함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이번에는 우미의 한숨이 더욱 깊어졌다.

부정적인 상황들이 서로 만나니, 아무리 위로를 하려고 해도 기운이 생기지 않았다.

이때 하늘이 그녀들의 현재 상황을 불쌍하게 여기기라도 했는지, 권이연이라는 이름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줬다.

마실 게 떨어져서 잠시 휴게실에 있는 자판기에 볼일이 있었던 권이연.

그녀를 보자마자 우미와 여솜이 눈에 이채를 뿜어대면서 이연에게 달려들었다.

“연아!”

“어디 있다가 이제야 온 거야!”

각각 좌, 우측에서 이연을 안기 위해 다가오는 두 여자.

이연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면서 위기(?)를 모면했다.

“뭔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둘이 모여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그게 말이야…….”

이연의 등장으로 인해 그녀들의 한탄은 다시 한번 턴을 이어가게 되었다.

* * *

양우미, 나여솜으로부터 현재 각 유닛별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해 들은 이연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연은 멤버들을 다루는 방법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가서 멤버들의 의욕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그건 제작진이 금지시켰다.

“방법이 없을까?”

우미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직접적인 만남은 금지되어 있지만, 이렇게 휴게실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까진 터치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걸 이용하면 된다.

“방법이 아예 없진 않겠네.”

“응? 해결책이 있어?”

“뭔데? 나한테도 들려줘!”

우미와 여솜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그러나 이연은 이 자리에서 전부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이연은 손가락으로 슬쩍 그 이유를 가리켰다.

위에 달려 있는 카메라.

여기서 나누는 대화 내용까지도 오디오 장치를 통해 다 녹음이 될 것이다.

제작진이 같은 팀웜들끼리의 우연한 만남까지 금지하진 않고 있지만, 방금처럼 각 유닛별로 중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주의하는 편이 좋다.

괜히 이걸로 유닛 대결이 시작되기 전부터 꼬투리 잡힐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대신에 이연은 두 사람에게 암암리에 지시를 내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줘.”

제작진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한 하니엘의 은밀한 작전이 개시되었다.

* * *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들른 비아는 고개를 한 차례 갸우뚱했다.

연습실을 나서기 직전.

여솜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5분 뒤, 8시 정각에 휴게실로 가봐.’

왜냐고 물었지만, 여솜은 이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싱긋 웃기만 할 뿐.

무슨 꿍꿍이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 때문에 안 가볼 수가 없었다.

연습실로 가려던 걸음을 휴게실 쪽으로 튼 비아는 어색함이 뚝뚝 묻어 나오는 연기 톤으로 말했다.

“커피 캔 하나 사서 들어가 봐야겠다.”

복도에도 SSS 제작진이 설치해 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되지도 않는 연기 실력을 강제로 뽐냈다.

휴게실 문을 열자, 비아는 여솜이 왜 8시 정각에 맞춰서 휴게실로 가보라고 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리 와 있던 권이연이 음료수를 마시던 걸 잠시 멈추며 말했다.

“어머, 음료수라도 마시러 온 거야? 나도 그런데. 우연이네.”

비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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