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70화
제20화. 유닛 대결(1)
지금까지 SSS 촬영을 진행하면서 연습생들은 유닛이라는 단어를 거의 들어본 적 없었다.
단체, 팀 미션. 이런 건 많이 들어봤어도 유닛은 낯설게 느껴졌다.
매번 미션 내용이 발표될 때마다 연습생들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그러나 이번 미션 발표만큼 당혹스러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은솔이 유닛 대결이라는 미션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에 임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상대 팀과 총 세 번의 대결을 펼치게 될 겁니다.”
대진 항목은 다음과 같았다.
[1차전 : 듀오]
[2차전 : 3 대 3]
[3차전 : 솔로]
“각 팀마다 듀오에 출전할 멤버 2명씩, 3대3 대전에 출전할 멤버 3명씩, 그리고 마지막 남은 솔로 대결에 출전할 대표 멤버 한 명을 선출해서 유닛을 구성하면 됩니다.”
3 대 0이든. 2 대 1이든.
상대 팀보다 많이 이기면 된다.
“어느 멤버가 어떤 유닛으로 출전할지, 여러분들끼리 상의한 다음에 스태프들한테 알려주시면 됩니다. 회의 시간은 30분입니다. 오늘 대진표까지 다 공개될 예정이니, 신중하게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연에게도 이건 어려운 문제였다.
어떻게, 누구와 붙느냐에 따라 결과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진절혜의 벨제브 팀 역시 우수한 멤버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앞서 파이널 라운드 1차 미션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들의 점수 차는 고작 2점뿐이었다.
상황은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는 걸 이연은 항상 머릿속에 넣어둘 생각이었다.
“자, 그럼 회의 시작해 주세요!”
이은솔의 외침과 함께 연습생들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 * *
회의실로 이동한 팀 하니엘.
1차 미션에서 승리했다는 기쁨도 잠시. 2차 미션으로 인해 멤버들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연이 먼저 연습생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난 이 분야에 꼭 나가고 싶다고 주장하고픈 사람, 혹시 있어?”
“음…….”
“글쎄…….”
말끝을 흐리면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멤버들.
이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만도 했다.
팀전도 아니고. SSS 역사상 처음 있는 유닛 대전이니까.
게다가 평가는 여태껏 진행했던 팀 미션 때처럼 대중들 앞에서 무대를 선보이며 점수를 받는 시스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관중들이 바라는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때, 비아가 처음으로 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말해봐.”
“나는 2차전 나갈래.”
2차전이라면.
“3 대 3 말하는 거지?”
“응.”
“이유는?”
“그냥…… 최대한 많은 멤버들하고 같이 무대 준비하고 싶어서. 솔로는 절대로 나가고 싶지 않고. 나 혼자서 무대 준비하는 건 무리야.”
오리지널 곡으로 무대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처럼 기존에 발매되었던 노래들 중 하나를 택해 커버하면 되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건 변함없었다.
이연은 비아가 말한 대로 그녀의 이름을 적고, 선호하는 유닛과 기피하는 유닛을 동시에 적어 넣었다.
비아가 먼저 스타트를 끊은 덕분인지, 곧바로 연시우가 두 번째 지원자를 자처했다.
“저요. 저도 솔로는 피하고 싶어요.”
“래퍼니까?”
“네.”
간단한 이유였다.
물론 래퍼라는 이유로 솔로는 하면 안 된다는 법 같은 건 없다.
만약에 이곳이 래퍼들이 나와서 서바이벌 오디션을 펼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걸 그룹으로 활동할 아이돌을 뽑는 과정이었기에 힙합 쪽으로 분위기를 내기보다는 아이돌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무대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연시우가 솔로로 배치되는 건 피하는 게 좋다.
시우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비아가 그녀와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그럼 나하고 2차전 나가자! 보컬 둘에 랩 담당 한 명! 조합 좋지 않아?”
“이연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시우가 이연에게 의견을 구했다.
이연은 팀 내에서 맡고 있는 게 많다.
센터, 비주얼 담당, 메인 보컬, 메인 댄서, 랩도 가능한데다가 팀장 역할까지.
다재다능이라는 팀명에 가장 어울리는 연습생은 그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시우는 이연에게 주로 생각을 묻는 편이었다.
이연의 펜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약간 보태면, 마지막 한 자리에 여솜이가 들어가면 좋겠는데.”
“내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지목을 당한 모양인지, 나여솜의 작은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딱히 싫은 건 아닌데. 왜?”
이연의 성격상, 그냥 자리가 비어 있으니까 아무나 집어넣으려고 하진 않을 테고.
굳이 나여솜을 언급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여솜을 팀으로 스카우트하기 위한 목적과 연결된다.
“너라면 비아하고 시우, 잘 이끌어줄 수 있을 테니까.”
이연이 직접 2차전 팀에 들어가서 봐줄 수도 있지만, 흐름상 그건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이연은 자리가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니엘의 서브 리더는 나여솜이다.
그녀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연의 시선이 앨리샤와 우미, 두 사람을 순서대로 훑었다.
“혹시 3차전 나갈 사람?”
3차전은 비아와 시우가 기피 순위 넘버원으로 뽑았던 솔로 대진이다.
두 사람은 이연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솔로는 못 해.”
“나도. 저쪽은 분명 절혜가 솔로 파트로 나올 텐데. 난 자신 없어.”
두 사람 다 진절혜와 1대1로 맞붙는 사실에 대해 많이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멤버들 대부분은 진절혜를 상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딱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알았어.”
이연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 끄적끄적 필기를 해가면서 경우의 수를 적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언니하고 리샤가 듀오로 나가.”
이연이 나갈 곳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내가 솔로로 나가서 진절혜 박살 내고 올게.”
권이연과 진절혜.
시작부터 이미 정해진 대진이나 다를 바 없었다.
* * *
30분의 회의 끝에 각 팀의 팀장들이 스태프에게 각 파트에 출전할 멤버들의 이름을 적어 제출했다.
결과를 통보받은 이은솔은 큐시트를 보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흥미진진한 대진이 완성되었네요.”
한자리에 다시 모인 연습생들은 서로를 힐긋 바라봤다.
경계심이 가득 담긴 눈빛.
그러나 그녀들의 이목은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 이은솔의 멘트로 인해 무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자! 1차전 듀오 대진, 공개하겠습니다. 하니엘의 양우미, 앨리샤 연습생. 그리고 벨제브의 정담화, 시라이시 유키 연습생! 이렇게 첫 번째 듀오 대진이 성사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권이연, 진절혜. 두 사람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다음, 3 대 3 대진입니다. 하니엘의 나여솜, 이빙, 연시우 연습생. 벨제브의 황리은, 서문아, 최규은 연습생.”
마지막 솔로 파트만 남았다.
모두의 시선이 각각 권이연과 진절혜에게 향했다.
이은솔도 세 번째 솔로 대진이 가장 흥미진진하게 보였는지, 아까보다 한층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마지막 솔로 대진입니다. 하니엘의 권이연 연습생, 그리고 벨제브의 진절혜 연습생입니다!”
서윤철 PD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 대진은 무조건 시청률 대박이다.
본능적으로 그런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닛 대결은 2주 뒤에 있을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각자 최고의 무대를 준비해서 청중평가단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건투를 빌겠습니다!”
이은솔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모든 녹화가 종료되었다.
그러나 피 튀기는 혈전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 * *
이연은 어제 있었던 녹화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진절혜와의 일대일 대결은 솔직히 자신 있었다.
본인의 무대는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1차전, 2차전이 걱정이다.
권이연이 진절혜를 상대로 승점을 가져온다 할지라도 앞선 두 대진에서 모두 패배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벨제브 팀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
아직 베네핏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1차 미션은 우리가 이겼으니까 2차 미션은 내주지, 뭐’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투표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베네핏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베네핏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별로 안 된다 할지라도 권이연은 진절혜 팀을 상대로 일부러 지려고 하거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경쟁인 이상, 상대가 누구든 무조건 이길 생각이다.
‘준비 기간이 2주밖에 안 된다고 했지.’
유닛 대결에는 한 가지 특별한 룰이 존재했다.
같은 멤버라 할지라도, 각 유닛의 연습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곡 추천도, 안무 연습을 봐주는 것도, 같이 모여서 보컬 연습을 하는 것도.
전부 일절 금지다.
이게 가장 골치 아팠다.
만약에 룰을 위반할 경우, 페널티를 받게 된다.
페널티의 내용은 2차 미션 당일, 청중평가단한테 받은 표의 일정 개수를 차감하는 것이다.
한 표 한 표가 소중한 와중에 차감까지 한다?
‘절대로 안 되지.’
결국 룰을 절대로 어기지 말라는 제작진의 무언의 압박인 셈이었다.
방송을 안 할 때 사적으로 따로 만나서 몰래 도움을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그랬다가 괜히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각 유닛들끼리 알아서 잘 연습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톡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
이연은 당분간 멤버들의 멘탈 코칭을 위주로 활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연도 본인의 솔로 무대를 준비해야 하니까.
‘슬슬 운동 가볼까.’
안무, 보컬 연습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체력을 기르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LC 엔터테인먼트로 향하기 전에 이연은 회사에서 마련해 준 헬스장에 먼저 출근 도장을 찍었다.
원래는 집에서 따로 홈트레이닝만 했던 그녀지만, 파이널 라운드 진출을 확정 지음으로 인해 소속사에서 아예 12명의 연습생들 전원에게 따로 헬스장을 등록시켜 줬다.
회사 근처에 있어서 운동하고 출근하기도 편했다.
헬스장에는 LC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연예인들 말고도 다른 회사에 몸담고 있는 셀럽들의 모습도 더러 보였다.
본격적인 운동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연은 거울 앞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에 돌입했다.
최근에 이연은 몸에 딱 달라붙는 티와 레깅스에 부쩍 꽂혀 있었다.
처음에는 여체 라인이 너무 도드라져서 민망했으나. 막상 입으니까 의외로 꽤 편했다.
그래서 요즘은 안무 연습을 할 때에도 이런 복장을 즐겨 입는 편이었다.
덕분에 남녀 할 것 없이 헬스장에 있는 대다수의 이들의 이목이 이연에게 집중되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유독 이연의 눈에 밟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독 짧은 머리를 한 채 혼자 근력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남자.
“정우재 선배님?”
군대에 있어야 할 그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