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6화
제10화. 낯선 접촉(4)
SSS가 방영되고 난 이래로 처음 가지는 팬미팅 현장.
원래는 장소가 크지 않은 곳으로 대여했었지만, 팬미팅 참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제작진의 예상을 훨씬 웃돈 탓에 급하게 더 넓은 곳으로 대관을 진행하게 되었다.
SSS의 기본 의상을 입은 권이연은 팔랑거리는 스커트를 보면서 짧게 혀를 찼다.
물론 속바지를 입어서 속옷이 보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내아이로 태어난 기억이 있는데 여성스러운 복장을 해야 한다는 게 아직도 영 걸렸다.
제작진의 인도를 받으면서 22명의 연습생들이 버스에 올랐다.
먼저 팬미팅 현장에 도착한 연습생들은 무대 감독과 심사 위원들의 진두지휘 아래에 리허설을 진행했다.
“음향 체크, 다시 한번만 해주실래요?”
“무대가 생각보다 크진 않으니까 연습생분들은 동선 이동할 때 조심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팬미팅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이미 밖에는 대기열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10분 뒤.
“입장하실게요!”
스태프의 외침에 팬미팅 참가자들이 우르르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텅 비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니,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에어컨도, 가용 인원도 풀 가동.
웅성이는 현장 소리가 무대 뒤에 위치한 대기실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긴장 때문일까. 우미가 계속해서 물을 마셨다.
조용히 그녀를 지켜보던 이연이 충고했다.
“너무 많이 마시면 무대 도중에 화장실 가고 싶어질 수도 있어. 적당히 마시는 게 좋아.”
“그, 그렇지.”
우미도 이연의 말이 맞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자꾸만 물 쪽으로 손이 간다.
우미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가장 말이 많기로 소문이 자자한 비아조차도 너무 긴장했는지 말을 한 마디도 하고 있지 않았다.
반면, 이연과 앨리샤는 크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연이야 워낙 이런 무대에 자주 서 봤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앨리샤는 원래부터 담이 큰 편이어서 그런지 웬만하면 잘 긴장하지 않는 편이었다.
스태프가 그녀들이 있는 대기실을 찾아왔다.
“곧 팬미팅 시작한다고 하니까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연습생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향하는 계단 아래로 집결했다.
미리 무대 위에 올라서 현장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던 이은솔이 마침내 연습생들의 등장을 알렸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22명의 연습생들을 모셔보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연습생들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은 다시 한번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섯 개의 팀이 나란히 섰다.
자기소개는 가장 먼저 1위 아니면 죽음을 달라 팀부터.
“안녕하세요! 팀장을 맡고 있는 진절혜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실 줄 몰랐거든요. 정말 고마워요! 오늘 즐거운 시간 보내시다가 가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다음, 팀 다재다능의 권이연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진절혜와 달리, 그녀의 자기소개는 간단했다.
“팀 다재다능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비아가 뒤에서 이연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면서 ‘좀 더 애교 있게! 귀엽게 말해야지!’라고 작게 외쳤지만, 이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진절혜처럼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팀의 소개가 끝나고.
팀별로 따로 자리가 마련되었다.
팬미팅에서 토크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은솔이 연습생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토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먼저 말을 붙였다.
“우리 사랑의 요정들 팀은 긴장 엄청 많이 한 거 같네요. 치어리딩 미션에서 사람들 앞에 당당히 무대까지 펼치셨으면서, 너무 긴장하는 거 아닙니까?”
바로 어제, 치어리딩 미션 최종편이 방송되었다.
사랑의 요정들 팀은 수줍게 웃으면서 이은솔의 멘트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당황하고 있었다.
차라리 대본이 정해져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닌 데다가 아직 데뷔도 못 한 연습생들이라서 그런지 이런 게 낯설게 느껴졌다.
이은솔이 다음 타깃으로 지정한 사람은 진절혜였다.
“진절혜 연습생은 어때요? 긴장되나요?”
“네.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그래도 다른 연습생분들에 비하면 비교적 여유로워 보이시는데요?”
“티가 잘 안 나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음은 권이연의 차례로 넘어갔다.
“권이연 연습생은요?”
“저는 긴장 안 하고 있습니다.”
권이연의 사전에 내숭은 없었다.
그냥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바로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러고 보니 치어리딩 미션 때, 시청자분들이 왜 권이연 연습생이 센터에 안 섰는지. 굉장히 궁금해하시는 거 같더라고요.”
“이유는 방송에 나간 그대로입니다. 우리 비아가 보다시피 한 귀여움 하지 않습니까? 물론 사랑의 요정들 팀에게 귀여움으로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싸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귀여움 콘셉트로 따지면 사랑의 요정들을 넘을 순 없었다.
솔직담백한 그녀의 평가에 팬들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연습생들 중에서 자신들의 상태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권이연이다.
심사 위원들도 권이연의 이런 점을 그녀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밖에 다른 연습생들과의 토크도 이어갔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를 촬영하면서 생겼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토크의 주를 이루었다.
음방 미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이은솔이 다시 한번 팀 다재다능 팀원들에게 물었다.
“다재다능 팀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저하고 같이 호흡을 맞추기로 했잖아요. 이번 자리를 통해 혹시 저한테 궁금하신 점 같은 거 없을까요?”
이연은 마이크를 팀원들에게 넘기면서 생각나는 거 있으면 해보라고 말했다.
이연이 웬만한 건 다 도맡아서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턴이 넘어오니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의외의 인물이 이연이 건네준 마이크를 붙잡았다.
앨리샤. 그녀가 이은솔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혹시 선배님께서는 연습을 빡세게 주문하는 스타일이신가요?”
연습생들 사이에선 이게 가장 궁금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지만, 연습생들은 아직 이은솔이라는 남자에 대해 잘 모른다.
유명 보이 그룹인 벡스의 멤버이자 MC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각종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최근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 정도.
최근에는 같은 그룹의 멤버가 군대에 입대함으로 인해서 벡스 완전체 활동이 아닌, 솔로 활동과 진행자 역할을 번갈아 방송을 이어나가고 있는 추세였다.
이에 대한 것들만 알 뿐. 이은솔이 안무 연습을 할 때 어느 것을 중시하는 스타일인지. 그의 취향은 무엇인지. 연습생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반대로 권이연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도…….
“네. 빡세게 굴리는 타입입니다.”
권이연의 예상이 적중했다.
이은솔이 본인의 입으로 직접 이렇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여전히 못 믿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냥 팬들 웃기려고 장난으로 한 말이겠지.
이렇게 받아들였다.
다재다능 팀원들뿐만 아니라 다른 연습생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단 두 명. 권이연과 진절혜를 제외하고 말이다.
* * *
토크 타임이 끝나고, 팬미팅을 찾아온 사람들과 사인회를 가지는 시간이 펼쳐졌다.
스태프들이 확성기를 들고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인을 받길 원하시는 팀 앞으로 서주시면 됩니다! 딱 한 팀만 받으실 수 있으니까 잘 선택해 주세요!”
SSS가 방영되면서 쭉 인기를 끌어온 권이연 팀과 진절혜 팀의 줄이 역시나 가장 길었다.
사랑의 요정들 팀 역시 치어리딩 미션에서 많은 두각을 드러낸 덕분인지 예전에 비해서 많은 팬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한 팀에게만 받을 수 있다는 스태프의 말이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팀 인원이 최소 4명은 되기 때문에 결국 그만큼 한 번에 많은 사인을 받을 수 있어서 팬들은 불만이 없었다.
팀 다재다능을 찾아온 팬들 중에서 이연에게 아는 척을 하는 세 명의 남고생이 있었다.
“누나!”
“저희 왔어요!”
주형운과 양인박, 그리고 권민준까지. 셋이 사이좋게 팬미팅을 찾아왔다.
우미가 이연에게 물었다.
“누나라니? 아는 사이야?”
“이쪽이 내 친동생. 그리고 여기 둘은 동생 친구들.”
“아, 맞다. 이연이 남동생 있다고 했었지. 만나서 반가워요. 이연이 동생이라 그런지 잘 생겼네.”
비아와 앨리샤도 이연의 남동생이 왔다는 소식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주형운과 양인박은 그렇다 치더라도.
“너까지 여기에 올 필요는 없는데.”
어차피 집에서 맨날 보니까. 사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이연에게 부탁하면 될 일이었다.
권민준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자신의 친구들을 가리켰다.
“이 녀석들이 억지로 끌고 와서 그래.”
말은 그렇게 해도, 싫지만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연은 머릿속에 어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츤데레.
피식 웃은 이연은 세 사람에게 사인을 해줬다.
그동안, 주형운과 양인박은 미리 준비해 온 선물을 그녀에게 건넸다.
“이거, 누나한테 어울릴 거 같아서 샀습니다!”
“이게 뭔데.”
두 친구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운동화예요. 사이즈는 민준이한테 직접 물어보고 샀으니까 아마 맞을 겁니다.”
“좀 더 비싼 거 사드리고 싶었는데, 저희가 아직 학생이라서…….”
권이연은 딱히 그런 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선물이라는 건 주는 마음이 중요한 법이니까. 고맙다.”
“네, 누나!”
“음방 미션도 응원할게요! 힘내세요!”
열정 넘치는 남고생 트리오에 이어서 다른 팬들이 입장했다.
앨리샤가 이연과 비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까 비아 어머님, 아버님도 오셨고. 이번에는 이연이 동생하고 친구들도 오고. 가족들이 많이 왔네?”
“앨리샤 언니는?”
“난 가족들이 미국에 있으니까 당장은 못 오지. 나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우미 언니는 오실 수 있지 않아?”
앨리샤를 제외하면 우미의 가족들만 현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연습생들도 직접 가족들이 와서 축하해 주고 응원해 주고 있었다.
순간 우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반응. 이연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미의 집에 방문했을 때. 그때도 가족 이야기가 나왔었다.
비아가 앨리샤를 따라 우미의 가족에 대해 물으려고 하려던 찰나.
“지금은 팬들 맞이하는 일에 집중하자고.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사정이 있어서 못 오시는 것일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이연이 적절하게 커트했다.
그녀의 말에 팀원들은 곧장 수궁하는 반응을 보였다.
다행이라는 뜻이 담긴 작은 한숨을 내쉬는 우미.
이연도 내심 우미의 속사정이 궁금했지만, 사람마다 말 못 할 사정이라는 건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이연이 원래는 남자였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팬들을 맞이하고 있을 무렵.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나타난 정장 차림의 여성이 이연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이연 씨. 또 보네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에 이연의 관심이 쏠렸다.
설마.
“장고윤 씨입니까?”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살짝 벗은 그녀가 이연에게만 몰래 얼굴을 보여줬다.
“네, 맞아요.”
이연의 예상이 그대로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