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5화
제10화. 낯선 접촉(3)
연예계 관계자들이 SSS에 출연하고 있는 연습생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건 권이연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습생들과 쉽게 접촉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SSS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이 전부 다 LC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장고윤은 이연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면서 적극적으로 캐스팅 어필에 나섰다.
“대한민국 연예계에 LC 엔터테인먼트만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만약에 제가 그쪽으로 간다면, LC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분명 태클이 들어올 텐데요.”
“그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법무팀을 동원해서 최대한 권이연 씨를 보호해 드릴 테니까요. 이래 봬도 꽤 유명한 변호사들이 많이 있거든요. 부장판사 출신들도 많고요. 계약 문제에 대해선 그분들이 잘 해결해 주실 거예요.”
당돌한 여자였다.
하기야. 이렇게 자신의 안목에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캐스팅 매니저 일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이연은 장고윤의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소속사를 옮기느니 뭐니 할 여력이 안 됩니다. 프로그램 하나에만 온전히 집중하고 싶거든요.”
게다가 기껏 데뷔했는데, 괜히 소속사 간의 계약 문제 가지고 대중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장고윤도 이연의 이런 생각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중에 생각이 달라지시면, 그때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저희는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요.”
화장실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안 된다.
혹시 몰래 듣는 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장고윤도 그걸 알고 오늘은 가벼운 자기소개 정도로만 넘어가겠다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그녀가 준 명함을 다시 한번 바라본 권이연.
“……그렇단 말이지.”
그녀의 머릿속에 어느 호기심 하나가 번뜩였다.
* * *
팬미팅 행사 준비를 위해서 3일 만에 다시 회사로 모이게 된 팀 다재다능.
짧은 휴식 기간이었지만, 멤버들의 표정은 그새 많이 밝아져 있었다.
특히 치어리딩 미션에서 많은 부담감을 짊어졌던 비아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줬다.
“3일 동안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뒹굴뒹굴거리면서 먹고, 자고, 쉬기만 했어. 살 거 같더라!”
우미가 작게 웃으면서 행복에 겨워하는 비아에게 쓴소리를 들려줬다.
“그러다가 살찌면 어떻게 하려고”
“3일 가지고는 살 안 쪄.”
“정말로?”
“……0.5㎏ 찌긴 했지만.”
아이돌과 다이어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일까 비아는 오늘따라 앨리샤가 부러웠다.
“나도 언니처럼 체중 생각 안 하고 마음껏 먹고 싶은데.”
앨리샤는 지금도 스태프들이 PPL을 위해 가져다놓은 샌드위치를 순식간에 3개째 해치우고 있었다.
점심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간식이라면서 마음껏 먹었다.
앨리샤는 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아무리 먹어도 살 안 찌는 비법 알려줄까?”
“뭔데?”
비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앨리샤의 대답은 이러했다.
“체질을 타고나면 돼.”
“……뭐야. 결국 그것도 재능이잖아.”
“뭐, 그것도 있고. 그리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지.”
앨리샤가 멤버들 중에서 운동량이 가장 많다.
하루에 최소 5시간 이상은 운동에 투자할 정도니까 말이다.
딱 달라붙은 상의 티에 그녀의 복근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는 것만 봐도 앨리샤가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연이 팀원들을 향해 짧게 손뼉을 마주치면서 리더답게 말했다.
“잡담은 이쯤에서 끝내고. 슬슬 연습 시작하자. 센터는 그대로 비아로 가고. 안무는 몇 개만 수정한 채로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수정할 게 있어?”
비아가 기겁을 하면서 물었다.
안무에 수정된 부분이 있다면, 그걸 다시 외우고 연습해야 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런 반응이 나온 거였다.
이연은 비아에게 안심해도 좋다는 어투로 구체적인 내용을 들려줬다.
“살짝 디테일한 부분만 잡고 넘어가는 거니까 어려울 건 없어. 자, 이제 연습해 보자.”
이미 대중들 앞에서 직접 선보였던 무대를 다시 연습하는 거였기에 과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3일 만에 처음 맞춰보는 안무 연습인데도 불구하고 척척 잘 맞아떨어지는 그녀들의 동작들.
하지만 이연의 성에 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앨리샤. ‘이 여름을 뜨겁게 불태워 줘’ 부분에서 뒤로 빠지는 게 0.5초가량 늦었어. 그리고 우미 언니는 양팔의 각도가 자꾸 어긋나. 신경 써줘.”
“알았어. 미안해.”
“그리고 비아는…….”
이연의 시선이 비아의 전신을 쭉 훑었다.
이 중에서 비아가 가장 실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이연의 잔소리가 쏟아질 거라고 모두가 예상했었는데.
“잘했어. 아까처럼만 해.”
“엥? 진짜?”
“어.”
“우와…… 나, 이연 언니한테 잘했다고 칭찬 듣는 거 처음이야.”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치어리딩 미션 덕분인지, 비아는 1라운드 때보다 훨씬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야 이연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걸 그룹의 형태가 조금씩 갖춰지기 시작했다.
물론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 안무 연습을 마친 다재다능 팀.
“15분 정도 쉬었다가 하자.”
이연의 지시에 따라 팀원들이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스마트폰으로 어느 영상 하나를 시청하는 비아.
우미가 영상에 관심을 보였다.
“어머, 이거. 벨로렛 선배님들 아니야?”
“응. 어제 컴백하셨잖아.”
벨로렛이라는 말에 이연은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게 있었다.
벨로렛은 3인조 걸 그룹으로 활동 중이며, 소속사는 이연과 최근에 간접적으로 연이 있었던 렛플 엔터테인먼트다.
“이번 노래도 엄청 좋더라. 언니도 들어봤지?”
“당연하지. 딱 보니까 음원차트 상위권에 무조건 올라가겠던데?”
“상위권이 문제가 아니라 볼 필요도 없이 이건 1위라고, 1위. 아…… 너무 예쁘시다. 나, 특히 이 안무가 제일 좋더라.”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비아가 이런 말을 흘렸다.
“나도 벨로렛 선배님들하고 같이 무대에 선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을 하고 나서 본인도 아차 싶은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렛플에 가겠다는 뜻은 아니야!”
비아의 이 말이 오히려 엄한 이연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3일 전에 렛플 엔터테인먼트 캐스팅 매니저한테 정식으로 이직 제의를 받았던 권이연.
당시에는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서 거절하긴 했지만.
‘왠지 그 장고윤이라는 사람의 성격상 쉽게 물러서진 않을 거 같단 말이지.’
어떤 식으로든 다시 권이연에게 접촉해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권이연은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을 해볼 생각이었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만, 일단은 이 생각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으니까 말이다.
“쉬는 시간 끝. 다시 연습하자.”
“응!”
팬미팅에 올 팬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보여줘야 한다.
* * *
팬미팅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았을 때.
이연은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주형운과 양인박, 그리고 권민준까지. 세 남고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자리가 마련된 이유는 바로 이연의 전화 한 통이었다.
예전에 밀크티의 무대를 꾸미는 데에 큰 도움을 줬던 자칭 아이돌 박사, 주형운.
이연은 그에게 나중에 꼭 보답하겠다는 의미로 맛있는 걸 사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설마 양인박하고 권민준까지 올 줄은 몰랐다.
주형운이 두 친구를 향해 찌릿 노려봤다.
모처럼 이연과의 다정한 데이트 아닌 데이트가 될 수 있었는데.
친구들 때문에 망해 버리고 말았다.
“너희는 왜 여기에 있냐.”
양인박이 크게 당황하며 말했다.
“나? 나는 뭐…… 우, 우연히 지나다가 온 거지! 우연히!”
“아하. 우연히 토요일 오후 2시에 네 집에서 지하철로 10정거장 떨어진 곳에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거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우연이었다.
“민준이, 너는.”
“난…… 니들 감시하려고.”
“감시?”
“……그런 게 있다.”
친구들이 괜히 자기 누나에게 허튼수작 부릴까 봐. 그것 때문에 일부러 오게 된 거였다.
이래저래 해도 가족은 가족이었다.
사실 이연이 주형운을 부른 이유는 빚을 청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에게 추가로 물어볼 게 있어서였다.
“렛플 엔터테인먼트라고, 알고 있지?”
“렛플이요? 연예계에게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회사 아닌가요?”
“잘됐네. 마침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이연은 주형운에게 장고윤이 넘겨준 명함을 직접 보여줬다.
“이거, 진짜로 렛플 엔터테인먼트 명함인지 구분 가능해?”
이 업계에는 사기꾼이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권이연은 혹시 장고윤이 렛플 엔터테인먼트 캐스팅 매니저를 사칭하고 다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홍류현 실장이나 박도수 매니저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이 명함을 그들에게 보여주면 이연이 렛플 엔터테인먼트에게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는 게 드러난다.
그래서 권이연은 이 업계에 대해 잘 알지만, 정작 깊은 관계는 아닌 주형운에게 확인을 받기로 했다.
혹시 주형운이 명함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기대는 크지 않았다.
명함은 업계 관계자가 아니면 접하기 힘드니까.
그러나.
“네. 이거, 렛플 엔터테인먼트 명함 맞아요.”
주형운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답했다.
양인박과 함께 명함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권민준이 마침 이연이 하고 싶어 하던 질문거리를 꺼냈다.
“네가 이걸 어떻게 아는데? 설마 너도 렛플 엔터테인먼트한테 캐스팅 받았냐?”
“내가 무슨 건덕지로. 아이돌 커뮤니티 사이트 돌아보다가 어떤 사람이 렛플한테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고 인증샷 올린 적 있었거든. 지금은 삭제되고 없지만, 그때 봤던 명함 디자인하고 판박이야. 그래서 알 수 있는 거지.”
“역시 아이돌 박사. 그 열정으로 공부를 하면 무조건 전교 1등일 텐데.”
“시끄럽다. 공부 못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누나 앞에서 아군끼리 서로 총질하지 말자.”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연은 이런 거에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장고윤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이연의 머릿속에 어느 계획 하나가 그려지려고 할 무렵.
양인박이 날카로운 질문을 꺼냈다.
“근데 누나. 렛플 엔터테인먼트한테 캐스팅 제의받은 거예요?”
“어. 일단은 이 이야기, 아무한테도 하지 마. 너희만 알고 있어야 한다. 알았어?”
“네,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양인박과 주형운이 믿으라는 식으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권민준도 누나가 말한 대로 입 다물고 있을 생각이었다.
다시 명함을 회수한 이연은 장고윤이 했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연락 기다린다고 했었지.’
이연의 생각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