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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34화 (34/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4화

제10화. 낯선 접촉(2)

집으로 돌아온 이연은 제작진이 메일로 보내준 파일을 쭉 확인하면서 작은 불만을 흘렸다.

“쉬게 해준다면서.”

팬미팅의 식순을 보면, ‘쉰다’라는 말과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순히 팬들과 만나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인사하고. 준비한 선물을 받고. 그러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팬들이 멀리서 애정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그냥 보내면 섭하지 않은가.

그래서 치어리딩 미션 당시에 각 팀이 연습했었던 오리지널 곡을 가지고 한 번씩 팬들 앞에서 무대를 선보이기로 했다.

어차피 팬미팅 때 가지는 무대는 순위와 전혀 상관이 없어서 팀 미션 때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거 같지만.

그래도 무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변함없었다.

‘뭐, 오히려 이게 좋을지도.’

1주일이나 쉰 다음에 다시 제작진이 짜준 일정대로 연습을 하려면 몸도 마음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가볍게나마 이렇게 무대를 준비하게끔 일정을 짜는 것이 역으로 연습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센터는 그대로 비아 체제로 가면 될 테고.’

굳이 다시 다른 포지션으로 연습할 이유가 없었다.

에너지 낭비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제작진이 보내준 이메일을 다시 한번 정독하는 사이.

“누나.”

권민준이 이연의 방문을 열고서 스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이연은 늘씬한 다리를 뻗어 문짝을 뻥! 하고 차버렸다.

놀란 권민준이 다시 문을 열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뭐 하는 짓이야!”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너보다 서열 순위가 높은 형제의 방문을 어딜 함부로 열고 그러나!”

“또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가끔씩 튀어나오는 이연의 유교 사상에 권민준은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권이연은 아직도 화가 덜 풀린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지?”

“엄마가 간만에 외식하자고 그러잖아.”

“외식? 뭐, 나쁘지 않을지도.”

생각해 보니, 그녀가 권이연의 몸으로 들어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집안의 장녀다운 역할을 잘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송 때문에 바빴다 치더라도. 꼰대 언니, 유교 걸이라 불리고 있는 이연이라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가 없었다.

“지금 바로 가나?”

“한…… 10분 뒤?”

“그렇군. 알았다. 넌 나가 있어라.”

“왜, 또.”

이연이 벽 한쪽에 수북하게 걸려 있는 옷들을 가리켰다.

“옷 갈아입으려고 그런다.”

“알았다고. 나도 누나 옷 갈아입는 거 보기 싫거든?”

이번에는 권민준이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하아.

동생의 태도에 깊은 한숨을 내쉰 이연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나중에 또 예절 좀 주입시켜 줘야겠군.”

* * *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외식 길에 나선 권이연이었지만.

첫 단계에서부터 운이 영 좋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지금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바로 식사하시긴 어려울 거 같습니다.”

“웨이팅은 얼마나 걸려요?”

“1시간 정도 걸릴 거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연의 어머니는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여기가 맛과 가성비, 둘 다 챙길 수 있는 가게인데.

하긴, 그러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 수도 있다.

권민준이 먼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그냥 거기 가자. 감자탕집.”

“그럴까?”

어머니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연은 남동생의 제안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모처럼 어머님하고 외식 나왔는데. 좋은 곳 가야지.”

“좋은 곳이 어딘데?”

“저기.”

권이연이 가리킨 곳은 바로 3층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는 한식당이었다.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었다.

“저기, 엄청 비싼 데잖아.”

권민준의 말대로 한 사람당 최소 5만 원 내지 10만 원은 내야 하는 곳이다.

어머니도 비싼 곳은 부담스러운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장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제가 낼게요. 그러니까 오늘은 비싼 거 마음껏 드세요.”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출연료 받았으니까 그걸로 내면 됩니다. 따라오세요.”

이연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장녀의 단독 행동을 말릴 새도 없었다.

먼저 가게로 들어간 이연.

그녀를 보자마자 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이런 생각이 들고 있었다.

잠시 뒤, 한 직원이 먼저 권이연을 알아봤다.

“SSS의 권이연 연습생!”

“네, 저 맞습니다.”

권이연은 딱히 정체를 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귀찮아서.

제작진 측에선 가급적이면 신변 노출하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눈을 완벽히 속일 순 없었다.

특히 SSS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권이연이나 진절혜, 두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자리 있나요?”

“네, 물론이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조용한 곳이 좋겠죠?”

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직원의 친절에 따르기로 했다.

권민준과 남매의 어머니도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권이연의 뒤를 따랐다.

이곳 한식당의 좋은 점은 바로 식당 내부가 룸 형태로 되어 있다는 거였다.

사람들이 그녀한테 말을 걸어올 걱정도 없고.

이것 때문에 이연은 비싸다는 걸 알면서도 가족들을 이곳으로 데려왔다.

자리에 앉은 어머니와 권민준은 뻘쭘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차려입고 올 걸 그랬다, 얘.”

“나도 그냥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걸치고 왔는데.”

권이연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그냥 편한 옷차림으로 나왔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짧은 청팬츠와 반목티셔츠. 이게 다였다.

메뉴를 하나하나씩 세팅하던 직원들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이연을 한 번씩 훑고 지나갔다.

문이 닫히자, 이연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격식을 갖춘다는 건 복장이 아니라 그 자리에 맞는 품위를 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너무 눈치 안 보셔도 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먼저 식기를 들 것을 권유했다.

“먼저 식사하시지요, 어머님.”

“어? 응…… 그, 그래. 고마워, 우리 딸. 잘 먹을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먼저 숟가락을 들어 전복죽을 맛봤다.

“확실히 비싼 곳이라서 그런지 맛도 다르네. 내가 알던 전복죽이 아니야. 너희들도 어서 먹으렴. 어서.”

“잘 먹을게, 누나!”

잔소리가 심한 누나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사주면 착한 사람이라는 공식이 있다.

누나 덕분에 포식하게 된 권민준은 빠른 속도로 배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반면, 이연의 먹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애초에 환생하기 전에도 이연은 소식하기로 유명했던 음유시인이다.

만약 이 자리에 이연이 아닌 앨리샤가 있었더라면.

‘식비만 돈백은 깨졌을지도.’

방송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팀원들 생각이 나는 걸 보면, 확실히 정이 많이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권이연은 처음에는 이래저래 팀원들에게 불안한 마음이 컸었지만, 팀원들은 이연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만약에 같이 데뷔하게 된다면, 그날은 이연이 팀원들에게 제대로 대접해 줄 생각이 있었다.

‘물론 이것도 다 데뷔한 이후의 일들이겠지만.’

우선은 모든 연습생의 목표이기도 한 데뷔라는 목적부터 이뤄야 한다.

지난날의 회포는 그때 풀어도 늦지 않다.

그렇게 한창 식사를 하던 중에 이연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위치는 어딘지 아니?”

“네. 아까 오면서 봐뒀습니다.”

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서 화장실로 향했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갈림길에 선 이연은 절로 한숨을 내뱉었다.

여자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 이연은 비어 있는 칸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여자의 몸이 되고 나서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 덕분에 당황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많이 적응한 편이었다.

바지를 다시 올리고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로 향한 그녀.

마침 한 여성이 누군가와 바삐 통화를 하고 있었다.

뒤늦게 이연을 확인한 그녀는 ‘먼저 쓰세요’라고 말을 하면서 차례를 양보했다.

“감사합니다.”

쏴아아-.

강한 수압과 함께 꽤 오랫동안 손을 씻은 이연은 복도로 나와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때.

“저기, 잠깐만요.”

아까 통화 중이었던 여성이 이연을 불러 세웠다.

“……권이연 씨 맞죠?”

통화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런 걸까.

이제야 권이연임을 알아본 여성이 그녀를 다급히 붙잡았다.

“맞네, 권이연 씨. 죄송해요. 제가 급한 통화 때문에 이연 씨를 못 알아봤네요.”

“아니요. 딱히…….”

권이연은 비아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 줬으면 하는 욕심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모른 척 조용히 넘어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일반 시민과 마주쳤을 때의 반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여성.

‘연예인 한두 번 만나본 듯한 반응이 아닌데?’

이연은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연예계 쪽에 종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방금 식당 입구에서 마주쳤던 직원들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연예인을 눈앞에서 처음 본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침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눈을 의심하거나. 리액션이 상당하거나.

그러나 여성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연의 예상대로였다.

“아, 그렇지. 제 소개부터 먼저 해야겠네요. 안녕하세요. 렛플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있는 장고윤이라고 해요.”

그녀가 명함을 건네주면서 자신을 짧게 소개했다.

렛플 엔터테인먼트.

이연도 들어본 적 있는 곳이다.

업계 톱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규모가 있는 연예 기획사로 알려져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가수들도 꽤 있는 편이다.

“스페셜 스타 스테이지, 잘 보고 있어요. 보면 볼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하더라고요. 서윤철 PD님이 원래 그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류는 잘 만드는 줄 알고 있긴 했는데. 이번에 SSS 한 방으로 제대로 대박 쳤던데요?”

“그렇습니까.”

대중들로부터 꽤 반응이 좋다는 건 이연도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시청률도 알고 있지만, 이연이 아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이다음 상세한 부분은 연습생이 알 수 있을 법한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제작진이라면 장고윤이 말하는 ‘대박’의 정확한 수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제가 보기엔, 이연 씨는 무난하게 데뷔할 거 같은데요.”

“글쎄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니까요. 방심은 안 할 생각입니다.”

“그런 마인드, 좋네요. 티비 봤을 때부터 이연 씨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까 더 탐이 나는데요?”

장고윤이 손으로 권이연에게 건네준 명함을 가리켰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나중에 시간 한번 내주실래요? 이연 씨한테 좋은 제안 드리고 싶은데.”

명함을 들어 장고윤의 직책을 확인하는 이연은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캐스팅 매니저]

아직 데뷔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권이연을 탐내는 기획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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