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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33화 (33/299)

환생했는데 걸그룹이 되었다 33화

제10화. 낯선 접촉(1)

음방 미션.

선배 가수들과 같이 음악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말에 팀원들은 그야말로 ‘멘붕’하는 표정이 되었다.

카메라는 당황하는 연습생들의 얼굴을 찍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다들 이제는 방송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리액션도 맛깔나게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다른 건 다 잘해도 리액션만큼은 0점인 권이연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2라운드 두 번째 팀 미션이 공개되었을 때에도 이연은 ‘그렇구나’ 하는 생각으로 끝났다.

여기에 특별 룰이 하나 추가되었다.

“그리고 2라운드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팀원 변동 없이 치어리딩 미션 때 구성했던 팀원들로 쭉 미션을 치르게 될 겁니다. 그 점, 다들 숙지해 두시기 바랍니다.”

권이연은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진절혜는 달랐다.

이번에도 팀원들을 바꿀 생각이었던 진절혜는 눈치를 보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보란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좋은 팀 분위기와는 달리, 다른 팀들은 치어리딩 미션 때 꽤 우정을 돈독하게 쌓은 모양인지 환호를 질렀다.

다재다능 팀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들! 우리, 또 같은 팀이야!”

“이번에도 열심히 해보자, 알았지?”

“응!”

우미, 비아, 앨리샤. 셋은 이번에야말로 1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의욕만 앞선다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순 없다.

우선은 2라운드 두 번째 팀 미션 내용부터 좀 더 확인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같이 설 선배 가수팀의 명단을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대형 화면이 바뀌면서 이은솔이 언급한 다섯 개의 가수팀 명단이 발표되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2팀이 있었다.

[이은솔(솔로)]

[민주린]

진행자와 심사 위원 역할을 맡고 있는 두 사람도 연습생들과 함께할 선배 가수팀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연습생들은 크게 기뻐했다.

이은솔은 원래부터 연습생들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던 선배라서 좋아하는 거였고.

민주린은 비록 호랑이 선생님처럼 무서운 면모를 보이곤 했지만, 그래도 만나본 적 없는 선배 가수팀과 같이 무대를 만드는 것보단 나았다.

연습생들 머릿속에선 무서움보다는 익숙함이 앞선 것이다.

당연히 연습생들의 1지망은 이은솔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연습생들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선택권을 주지 않았다.

이미 먼저 선택할 팀은 정해져 있었다.

“사랑의 요정들 팀이 먼저 선택하시겠습니다.”

치어리딩 미션 1위를 달성한 팀의 베네핏 내용이 바로 두 번째 미션 우선 선택권이었다.

연습생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은솔 선배님 고르겠지?”

“백 퍼센트야, 백 퍼센트.”

“아…… 내가 은솔 선배님하고 같이 무대 꾸미고 싶었는데.”

안 봐도 뻔하다는 것처럼 연습생들은 거의 확신에 가까운 어투로 말했다.

그러나 사랑의 요정들 팀은 전혀 의외의 선택지를 보여줬다.

“‘페어리퀸’ 선배님들 선택하겠습니다.”

완전히 빗나간 예상.

연습생들은 크게 동요했다.

“아니, 대체 왜?”

“은솔 선배님이 더 낫지 않아?”

“페어리퀸 선배님들도 잘하시고 좋긴 한데…….”

그래도 연습생들 입장에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요정들 팀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은솔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를 묻자, 팀장 역할을 맡은 연습생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저희 다섯 명 다 페어리퀸 선배님들을 보고 가수의 꿈을 꾸게 되었거든요. 팀명 보시면 아시겠지만, 페어리퀸 선배님들 따라서 지은 거예요.”

“그러고 보니 둘 다 요정이 들어가네요.”

“네!”

동경의 대상과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건 또 하나의 꿈을 이루는 일이다.

인터뷰를 듣고 나니, 연습생들은 사랑의 요정들 팀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이은솔이라는 카드가 남아 있는 상황.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 공동 2위를 차지한 각 팀 대표들 나와주세요.”

권이연이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에 비아와 우미가 그녀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잘하고 와, 언니!”

“이연아, 너만 믿을게!”

앨리샤도 말만 안 했을 뿐, 눈빛에는 두 사람 못지않은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는 이연.

비슷한 타이밍에 진절혜도 무대 위에 올랐다.

현재 1, 2위를 달리고 있는 연습생이 둘이서 정면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PD는 이런 장면을 원했던 모양인지, 카메라 감독들에게 좀 더 자세히 찍으라고 지시했다.

이은솔이 먼저 두 연습생에게 물었다.

“이다음 선택권을 정해야 하는데. 혹시 어떤 방법으로 정할 거 같습니까?”

권이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위바위보가 낫지 않을까요. 어떤 ‘편법’도 동원할 수 없으니까요.”

유독 편법이라는 단어를 강요하는 권이연을 보면서 진절혜는 순간 표정 관리가 무너질 뻔한 위기를 맞이했다.

다시 활짝 미소를 짓는 진절혜.

이에 따라 권이연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진절혜도 권이연의 말에 찬성했다.

“가위바위보가 좋을 거 같아요, 선배님.”

“그러면 가위바위보로 정하죠.”

제작진도 설마 치어리딩 미션에서 공동 2위가 나올 줄 몰랐던 모양인지, 추가 대책을 정해두진 않았었다.

그래서 두 연습생의 합의한 대로 가위바위보로 두 번째 선택권을 정하기로 했다.

이건 순전히 운이다.

권이연은 이미 A, B. 두 가지 플랜을 머릿속에 완성시켜 뒀다.

둘 중에 어느 작전을 택하더라도 이연은 자신 있었다.

“가위바위…….”

“보!”

이연이 낸 건 가위.

그리고 진절혜는…….

주먹이었다.

“진절혜 연습생이 승리했습니다.”

1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팀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반면, 다재다능 팀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바로 눈앞에서 이은솔이라는 최고의 패를 놓치게 생겼으니. 아쉬워할 만도 했다.

이은솔이 진절혜에게 물었다.

“팀원들하고 상의해 본 다음에 정하시겠습니까? 시간은 충분히 줄게요.”

“아니요, 선배님. 이 자리에서 바로 선택하겠습니다.”

진절혜가 고른 선배가수 팀은.

“민주린 선배님으로 하겠습니다.”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 * *

두 번이나 연속으로 턴이 넘어간 이은솔.

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연습생들이 자신을 1지망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사랑의 요정들 팀에 이어서 1위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팀까지. 이은솔이 아닌 다른 팀을 택했다.

그렇다고 딱히 연습생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대신에 이유가 궁금했다.

“민주린 선배님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민주린 선배님을 존경하고 있어서요. 선배님의 걸크러시 이미지도 저희 팀의 컬러에 잘 맞을 거 같고요. 그래서 골랐습니다.”

연습생들이 전부 무서워하는 민주린을 용기 있게 택한 진절혜.

그녀의 팀원들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진절혜가 미처 말하지 못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은솔에 관한 거였다.

한편, 다른 연습생들은 진절혜가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연은 그렇지 않았다.

‘잘 골랐네.’

이연도 내심 민주린을 생각하고 있었다.

걸 그룹에 대한 이해도도 높을뿐더러, 어떤 연습생이 어느 걸 잘하는지. 이런 걸 민주린도 다 알고 있으니까 주도적으로 딱딱 잡아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이은솔도 그렇지 않을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일단 이은솔은 걸 그룹이 아닌 보이 그룹 출신이다.

그리고 다른 연습생들이 보지 못한 맹점이 하나 있었다.

이은솔은 연습에 관해선 민주린보다도 더 엄격하다.

아마 다른 연습생들이 이은솔과 같이 무대를 준비하게 되면, 180도 다른 그의 태도에 멘탈이 많이 나갈 터.

‘이번에도 이석호 트레이너가 조언을 준 건가.’

진절혜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민주린을 골랐다.

행동만 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권이연이 1지망으로 삼고 있었던 민주린이라는 카드도 사라졌고.

남은 세 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권이연 연습생, 골라주세요.”

이은솔을 제외한 다른 두 팀은 밴드거나, 아니면 솔로 발라드 가수거나. 굉장히 애매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몰래 한숨을 삼킨 이연은 마지못해 선택지를 골랐다.

“이은솔 선배님 하겠습니다.”

“마침내 제가 뽑혔네요.”

팀원들은 환호했지만, 이연은 그렇지 못했다.

‘어쩌면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일지도…….’

뒤늦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권이연은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까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

마침내 모든 팀들이 서로 매칭되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중요한 게 오픈되지 않았다.

팀원들의 순위는 어떻게 정해지나.

이에 대해 이은솔은 제작진을 대표해 이렇게 말했다.

“음방 미션이 끝나고 난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연습생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평가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그에 걸맞은 작전을 짤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걸 비밀로 하겠다니, 연습생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공지 사항이 더 있습니다.”

이은솔이 당황해하는 연습생들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음방 미션은 음악 프로그램과의 스케줄 조정으로 인해서 3주 뒤에 펼쳐질 예정입니다. 시간이 너무 길기도 하고. 그리고 중간에 여러분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제작진이 그사이에 SSS 팬미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팬미팅이라는 말에 연습생들의 얼굴이 다시 활짝 펴졌다.

그동안 그녀들은 한 번도 공식 석상에서 팬미팅을 가져본 경험이 없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녀들을 알아보는 사람들하고 몇 번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일 뿐.

“원래는 팬미팅이 계획에 없었는데, 팬 여러분들이 워낙 여러분들을 보고 싶어 하셔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팬미팅은 다음 주에 열릴 예정이니, 그전까지 여러분들은 일단 쉬시면서 마음의 준비를 해주시면 됩니다. 2라운드 2차 팀 미션은 팬미팅이 끝나고 시작될 테니까요.”

이번에야말로 제작진이 연습생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려고 하는 듯했다.

안 그래도 이연도 슬슬 연습생들에게 숨 고르기 정도는 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이들은 기계가 아니니까.

체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달리다 보면 반드시 지칠 수밖에 없다.

가수에게 있어서 팬들의 응원만큼 잘 먹히는 약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오늘의 녹화도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이연도 다른 연습생들과 함께 집에 돌아가려고 하던 찰나.

“이연 양.”

이은솔이 그녀를 찾아왔다.

“2차 미션, 같이 하게 되어서 기뻐. 내가 도움이 될 만한 건 열심히 알려줄 테니까 같이 힘내보자고.”

“네, 선배님.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은솔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타인과의 스킨십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연이었기에 살짝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래도 대선배의 성의를 거절하는 건 그녀의 유교 사상에 맞지 않았다.

덥석.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았다.

순간 권이연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보기와는 다르게, 굳은살이 상당히 많이 박여 있는 이은솔의 손.

‘이거, 연습할 때 고생 좀 하겠는데.’

머지않아 이연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은솔이 연습 귀신이라 불린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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