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09화
509화. 이 사람이란 확신(1)
사실 유도란 종목 자체는,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이런 사실은 뭐, 새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유도 세계 선수권이 열렸던 며칠, 세계의 기사는 유도 얘기로 도배가 됐다. 북아메리카, 서유럽, 중유럽, 북유럽, 그리고 아시아권까지, 유도 얘기로 가득 찼다.
그만큼 한 인물이 주는 파급력이 컸단 얘기다.
하지만 그 선수만 다루지는 않았다. 기자들은 기사를 쓰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기사가 더 잘 팔릴까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당연히 고민 끝에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실, 강지영이란 한 인물만 조명하기는 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뿌리 깊은 스포츠 강국은, 자국의 선수가 최고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국의 선수들을 같이 조명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기가 막혔다. 스포츠 전문 기자라고 해도, 유도를 깊게 아는 정도는 아니다. 이들은 당연히 유도보단 축구나 야구 같은 메이저 종목을 더 자세히 안다. 하지만 기사 방향이 나왔으니, 이들은 유도를 깊게 팠다.
그리고 거의 리포트에 가깝게 기사를 냈다.
강지영의 장점, 자국 선수의 장점. 강지영의 약점, 자국 선수의 약점. 강지영을 통해 보완할 점. 과정과 방향 등을 세세하게 짜서 올렸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먹혔다. 유도 선수는 성적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어필이 충분히 가능하단 말이다.
이유야 당연히 건강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구기 종목 선수들의 섹시함과는 다르다. 건강미야 당연하고, 거기에 강인함이 섞인다. 강인함은 특히 여성들에겐 강력한 어필 수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이란 것 자체에 끌리는 것은 만국 공통이란 뜻이다.
덕분에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올림픽 때나 좀 반짝하던 유도 선수들의 인기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외모만 봤지만, 지금은 그 선수 ‘자체’를 보게 됐다. 유도가 인기 스포츠로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자국 유도 선수 중에 누가 잘하나 하고 흥미를 갖게 된 거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도의 부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더 챌린지로 잠시 주춤했었던 열기가 강지영이란 한 개인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같이 비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은 징조였다.
유도인으로서는, 정말로 나쁘지 않은. 잠시 반짝하는 인기라고 해도, 그게 어딘가 싶을 거다.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인기 종목을 제외한 종목의 선수 풀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비인기 종목의 비애는, 역시나 만국 공통이니까.
그러던 차에 그래도, 비인기 종목 중에서는 그래도 나름 인기 종목에 가깝단 평을 받던 유도가 흥행을 시작했으니, 선수 풀이 잠시나마 유지될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사실 가장 좋아해야 하는 건 일본이었다.
유도는 일본이 종주국이니까.
하지만 이런 사태에 대해서, 일본에선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세계 선수권의 치욕 때문이었다. 첫날엔 그래도 한국과 성적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튿날…… 일본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남자부는 81부터 플백까지 모조리 한국에 졌고, 여자 경량급도 강호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권에 전부 져서, 결승에 아무도 올라가지 못했다.
그 결과, 이튿날은 그냥 노 금메달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금메달 4개를 추가했고, 은2, 동1도 추가했다. 여자부에서 선전해서였다.
종합성적이 그래서…… 처참했다.
세계 선수권에도 단체전이 있는데, 단체전도 한국에 걸려 4-0으로, 그냥 끝나버렸다. 그것도 1회전에서. 이것도 정말 일본으로서는 치욕적인 게, 황금세대는 딱 한 명만 포함됐던 대진이었다는 점이다. 여자 3게임, 남자 3게임에 황금세대는 임효중만 포함됐다. 그런데도 그냥 터졌다.
강유진을 포함한 여자부가 2승, 장대호와 임효중이 2승. 이렇게 경기가 끝난 것이다.
이런 성적 때문에 일본은 귀국과 동시에 취재진 앞에 코치진 전체가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러니 이런 유도의 흥행 소식에 한 발 걸칠 수가 없었다.
잘한 건 하나도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남은 일본의 입장에서, 한국 덕을 봤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던 거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한국은 그런 일본의 반응까지 기사로 내가면서 축제를 이어갔다.
금의환향.
한국 유도팀은 일본팀과 정반대로 모두의 축하 속에서 입국해,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 * *
모두가 다음 대회를 준비할 때, 지영은 다시 선수촌을 나왔다. 아시안 게임은 본래 올해에 열려야 정상이지만, 일본이 작년에 수해를 입어 대회 지역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년 연장을 했고, 그래서 내년에 열린다. 지영은 마지막 그랜드 슬램을 앞두고 있지만, 그걸 위해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다시 반년……. 또 촬영이다.
무신 척위준.
그나마 임은진이 맹렬한 기세로 협상한 덕분에 얻은 시간이, 이때밖에 없었다. 레인 스튜디오의 입장에서도 이 정도면 충분히 양보한 게 맞았다. 이 스케줄 때문에, 지영은 한국으로 돌아와 전기정 감독과 몇 번이나 미팅을 가졌을 정도였다.
올림픽도 올림픽이지만, 아시안 게임도 당연히 메이저 대회이면서, 아주 중요한 대회다. 특히 이전 아시안 게임의 오욕은…… 아직도 유도인들의 가슴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유도는 일본 유도에 철저하게, 처절하게 발렸다. 진짜 속된 말로…… 개발렸다.
개인전 절반이 넘는 체급에서 일본을 만나, 영혼까지 썰렸다.
단체전은 말할 것도 없고…… 대참사였다. 그리고 그 비난은…… 황금세대에게 고스란히 넘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의 에이스를 가지고 놀았던 미야모토 신지를 두 번이나 잡은 게 강지영이고, 66에 나왔던 기무라 히로는 이성진이 잡았다. 즉, 황금세대가 나왔으면 이런 치욕은 없었을 거라는 언론의 질타가 그대로 비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던 게 아시안 게임이다.
그렇기에 이번 아시안 게임은 올림픽과는 다른 의미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지영은 다시 도복이 아닌, 무복을 입어야 했다.
영화 촬영은 빨리 끝나지 않는다. 최대한 노력해도 몇 달은 걸린다. 길면 반년 이상이다. 내년 여름에 열리니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반년 가까운 공백은 충분히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했으니까.
그래서 한국을 떠나기 전에, 지영은 오랜만에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틀을 쉬고, 휴가를 떠났다. 친구들과 연인이 함께하는 첫 휴가였다. 다행히 전부 시간이 맞아서, 빠진 사람 없이 전원 모일 수 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은 다니기 힘든데, 이성진은 용케도 사람이 정말 별로 없는 곳을 찾아냈다. 우정혁이 매해 가족과 함께 다닌다는 곳으로, 정말 편하게 쉬기엔 일품인 곳이었다. 숙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지영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펜션 입구를 포드사의 새하얀 데스티니 한 대가 들어섰다.
이성진의 차였다.
“어, 언제 왔어?”
“좀 전에. 소영이 안녕?”
주차하기도 전에 호들갑을 떨 조짐을 보이는 이성진을 건너뛰고, 그 옆에 앉은 정소영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환히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아줬다. 이성진이 조금은 서툴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지영의 차 옆에 대고 내렸다.
이성진과 정소영.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소영아!”
“언니!”
이제는 제법 활발해져서, 양유진과도 자주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고 들었다. 그런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 손을 잡고 콩콩 뛰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저렇게 반가울까? 아까 오면서 듣기론 세계 선수권 생중계도 양유진의 집에서 같이 봤던 거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여자의 텐션은 지영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다. 괜히 며칠 전에 봤으면서 또 그렇게 반가워? 이렇게 물어 초를 치지 않았다.
“일찍 출발했네?”
이성진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지영과 같은 마음임에도, 똑같이 눈치 없는 말은 꾹 참고 지영의 옆으로 와 말했다.
“새벽에 출발했지. 누나 서울에서 픽업해야 하니까.”
“그렇겠네. 나는 서울에서 바로 출발했는데. 피곤하겠다. 좀 자야 하는 거 아냐?”
“버틸 만해. 다른 애들은? 운전하느라 톡을 못 봤는데.”
“30분 안에 다들 올 거야. 일단 체크인하고, 짐부터 나르자.”
“응.”
지영은 이성진과 함께 짐을 날랐다. 두 사람이 쪼르르 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짐이 워낙에 무거워 그냥 주변 구경하고 있으라고 한 뒤 직접 가방을 날랐다. 펜션은 두 채를 잡았다. 남자 숙소와 여자 숙소, 이렇게. 짐을 놓고 나오자 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역시, 포드사의 차다.
“누나 왔다아!”
누나는 무슨.
저 소리에 누군지 대번에 알아봤다.
이성진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주차를 마친 차에서 다이어트에 성공해 다시 중고등학교 시절의 몸으로 돌아간 한은정이 내렸다.
“언니 안녕하세요! 소영이 안녕! 꺄아! 얼마 만이야!”
역시 텐션 하면…… 한은정이다.
양유진도 텐션이 높긴 하지만, 한은정과 비교하면 일반인 수준이다. 한은정은 타고난 여걸이다. 회귀 전에, 무릎이 불편해 결혼을 망설이던 황석을 멱살 잡아 식장으로 끌고 들어간 그녀였다. 황석도 나중에 직장을 잡고 가장의 역할을 시작했지만, 그 이전까진 그녀가 전부 이끌었다.
그런 한은정을 지영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나 좋은 기억으로 말이다.
인사를 나눈 한은정이 달려왔다.
흠칫.
지영은 그 기세에 몸을 슬쩍 뺐다.
“도망가면 죽는다!”
“아 정말…….”
하. 이성진이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다. 지영은 그냥 슬그머니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부터 저 텐션에 어울려 주자니, 그건 피로감이 너무 세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자, 도끼눈을 뜨고 한은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흥, 구라 치네. 너 그러면 재미없다?”
“폭력배야, 뭐야? 텐션 좀 낮춰. 어차피 이틀이나 같이 있을 건데.”
“히히, 오랜만에 야외라 그런가? 주체가 안 되네?”
“어휴, 석아. 네가 고생이 많다…….”
“뭐! 우리 석이가 왜!”
“하하…….”
지영의 말에 황석은 그냥 난감한 웃음을 흘리며 웃었다. 차 한 대가 또 들어왔다. 강한결의 차였다. 차에서 내린 강한결과 양지원.
“오, 금메달리스트 오셨습니까!”
이성진의 깐족거리는 인사에 양지원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깃들었다. 금메달리스트. 대한민국 피겨에서 두 번째 금메달 주인공은 양지원이었다. 피겨퀸처럼 정말 압도적인 점수 차로 금메달을 목에 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최고의 연기로 금메달을 결국 따냈다.
“오빠, 어떻게 좀…….”
“하하, 성진이가 저러면 나도 못 막아.”
“하아…….”
절레절레.
꾸벅.
한은정과 정소영에게 인사를 한 양지원이 조금 불편한 걸음으로 양유진을 향해 걸어갔다. 양유진은 동생의 걸음에 입술을 삐죽였으나, 얼른 달려가 동생을 안아줬다.
“흐잉.”
“또또.”
“안 울거든!”
“거짓말.”
“이잉…….”
양지원은 은퇴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너무 무리했다. 올림픽 이전에도 충분히 좋지 않았었던 몸이다. 몸에 맞지 않는 장비와 열악한 환경에서의 훈련, 제대로 된 케어받지 못해 누적된 부상이 올림픽이 끝난 직후 전부 터졌고,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올림픽 금메달의 인기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병원에 입원, 결국 수술을 받았다. 그것도 세 번이나. 완치 불가. 일반인처럼 살 수는 있지만, 격렬한 운동은 앞으로 무리란 판정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함이 컸다.
그녀가 꿈꿨던 최종 목표인 올림픽 금메달을 양유진의 목에 걸어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은퇴에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그래서 양유진은 동생을 볼 때마다 입술을 삐죽이며 슬퍼했다. 매번 울음을 참는 느낌이다. 양지원은 은퇴 후, 청주에 있었다. 그래서 자주 못 보는 두 사람이라 저런 애틋함이 이해가 갔다.
부우웅.
마지막 차가 들어왔다.
역시, 포드의 차다.
운전석에서 임효중이 내렸고, 보조석에서 고개를 푹 숙인…… 강유진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