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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02화 (50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02화

502화. 왕의 귀환(11)

신지는 이번 대회에 나오지 않았다.

따로 연락은 받았다. 안자이 히카리와 함께할 신혼집 인테리어를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다고. 그래서 이번 시합은 불참했다. 하지만 안자이 히카리는 나왔다. 안자이 히카리는 여자 유도계에선, 황금세대와 버금가는 저력을 보여주는 선수다.

그녀는 1번의 패배를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 1패도 사실 주최국 버프로 인한 반칙패였으나, 경기 내용은 안자이 히카리가 훨씬 우세했다. 그것도 컨디션이 매우 안 좋은 상태기도 했다. 그래서 안자이 히카리는 믿는 금메달 선수였다. 내보내면 금을 들고 오는. 따라서 안자이는 유도인들 사이에 ‘여제’란 별명으로 불렸다. 유럽권에선 퀸이라 불렸고.

그런 안자이 히카리와 붙는 강유진.

의미가 있는 대결이었다.

강유진. 일본에서는 이시카와 사오리라고 불렸는데, 이때 사오리는 안자이 히키라의 뒤를 이어갈 차세대 천재라 불렸다. 본래는 한 체급 아래였고, 일본 여자 유도는 미야모토 신지나 오노 쇼헤이 같은 여자 선수를 둘이나 보유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만큼 이시카와 사오리는 유망주였다.

‘질투와 차별로 범벅된 부상을 입기 전까진 말이지.’

이시카와 사오리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사오리는 십자인대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유도 선수가 당하는 부상 중, 가장 두려운 걸 꼽으라면 십자인대 부상이다. 이쪽은 끊어지면 최소 반년의 재활이 필요하다. 이때 피지컬은 물론 감각은 가히,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곤두박질친 ‘실력’을 도로 끌어올린다는 보장도 없다. 이전의 폼은커녕, 그 이하에서 밑도는 일도 있고, 이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도 있을 정도다. 그런 부상을 질투와 차별 때문에 입었다. 아마 대놓고 다리를 꼬아 넘겼다든가, 아니면 뒤에서 안다리를 걸거나 하는 반칙을 했을 거다.

그렇게 부상당한 사오리를 향한 비난과 조롱, 멸시, 차별. 그리고 노출된 범죄.

결국 지영은 교포 3세인 사오리와 사오리의 가족을 귀화시켰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가 지금 저거다.

본래는 안자이 히카리의 한 체급 아래에서 그 천재성을 폭발시키고 있었을 이시카와 사오리가 재활하며 불어난 체중 때문에 한 체급을 올려, 여제라 불리는 안자이 히카리를 강유진이란 이름으로 마주 선. 이게 결과다. 아마 일본은 스태프와 코치진은 속이 어마어마하게 쓰릴 거다. 강유진은 벌써 성적을 내고 있었다. 파리 오픈에서 금메달을 땄고, 가노컵에선 2등을 했다. 이기고 있다가 프랑스 선수에게 막판에 카운터를 맞지만 않았어도, 분명히 1위를 했을 거다. 이때 준결승에선 안자이 히카리 대신 나온 일본 선수를 꺾어버렸다. 당연히 기사가 나갔다. 조국에 비수를 꽂았다고. 그에 강유진은 신분증명서를 SNS에 올리며 자기를 저격한 기사를 반사! 해버렸다.

교포 국적.

애초에 강유진은 한국인 호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의 미친 이지메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강유진은 그대로 일본 국가대표가 됐을 거다. 그때도 이미 실력은 워낙에 출중했으니까. 그런 강유진이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일본 선수와 붙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일본 여자유도의 간판인 안자이 히카리와.

천재와 천재의 대결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이미 만개한 천재와 이제 개화하는 천재의 대결이란 점이었다. 안자이 히카리는 이미 그랜드 슬램을 이룬 선수였다. 그렇기에 성적 면에서는, 안자이 히카리가 압도적으로 위였다.

그렇기에 만개한 천재와 개화하는 천재의 대결이라 보는 것이다.

“효중아.”

“응?”

긴장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보는 임효중을 부른 지영은.

“누가 이길 것 같냐?”

하고 물어봤다.

그러자 임효중은 긴장한 표정을 순식간에 지우곤 씩 웃으며 대답했다.

“유진이가 이기지. 히카리 보니까 폼이 좀 떨어진 것 같더만.”

“그래?”

“어. 좀 무거워 보여.”

“흠.”

아까 잠깐 보긴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 건 맞았다. 하지만 실력이 극단적으로 떨어지진 않을 거다. 지금까지 여자 70체급엔 히카리의 적수가 없기도 했고, 컨디션이 안 좋아도 그녀는 충분히 체급 최강자였다. 그와 반대로 강유진은 경험이 부족했다. 이제 개화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대회 출전 경험 자체가 적었다.

그렇기에 해볼 만은 하지만, 사실 지영은 히카리 쪽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야 동생으로 생각하는 강유진이 이겼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한 법이다. 그러니 냉정하게 봐야 한다.

하지메!

시합이 시작됐다.

천재와 천재의 격돌은…… 격렬했다.

보통 초반엔 좀 간을 보는데, 둘은 그런 것도 없었다. 강유진과 히카리는 둘 다 전통 오른쪽 잡기다. 거기에 허리 기술과 발기술, 이어지는 굳히기의 강자들이다. 그런 둘은 필연적으로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선수들이 생각보다 부담스러워하는 자세다.

왜?

저 자세에서 제대로 찍히면 무조건 한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은 탐색전도 없이 시작부터 와락 달려들어 빙글 돌더니, 거의 동시에 목과 소매 깃을 잡고 팔을 쭉 펴며, 잡기를 마쳤다.

그 과정까지 1초 남짓이다. 순간 파박! 하는 순간 잡기까지 끝냈다.

이어서 둘은 힘 싸움을 시작했다. 이렇게 잡았을 때는 힘이 좋은 선수에게 확실히 유리했다. 턱으로 상대의 팔을 제압하고, 반대로 나의 팔로 상대의 목을 제압하면 70% 이상은 이겼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싫어한다. 특히 힘 좋은 상대와 맞잡는 건. 기술이 아닌 힘에 게임이 터질 수도 있으니까.

힘겨루기는 길게 이어졌다.

둘 다 아는 거다.

이 자세에선, 모든 기술이 위협적이지만, 반대로 모든 기술이 되치기당할 확률 또한 올라간다는 것을.

한번 밀리면, 뒤가 없다.

그러니 긴장감이 솟구쳤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일반 관중들은 오오! 하면서 보겠지만, 유도를 좀 해본 사람이나 자주 본 사람들은 안다.

잘하면, 여기서 결판이 난다는 것을.

물론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둘 다 기술을 걸지 않고 버티면 심판은 그쳐를 선언할 테니까. 하지만 둘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시작은 예상외로 히카리였다. 먼저 목을 받치고 있던 팔을 툭 쳐서 공간을 만들더니, 힘으로 빙글 돌린 다음 다시 당겼다. 원심력을 받아 강하게 잡아당겨서, 그대로 차올렸다.

맞잡은 상태에서, 허벅다리 후리기.

대담한 기술.

맞잡은 상태에서 허벅다리 후리기다.

몸을 돌리기 전에 되치기당할 위험도가 정말 큰데, 그걸 그대로 걸었다. 하지만 제대로 걸리는 것 같았다. 그 증거 강유진의 몸이 순간 붕 떠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강유진이 강하게 목깃을 잡고 있던 손을 양손으로 밀어내며, 기술을 깨버렸다. 허리후리기는 상대의 목을 제압해야 한다. 목을 제압한다는 것은, 상대의 중심을 강제로 앞으로 쏠리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걸 못하면, 맞잡은 상태에서 허벅다리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짝잡은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타이밍 좋고…….”

강유진은 그 타이밍을 제대로 잡았다. 막 차올려 몸을 뜨는 짧은 순간에, 양손으로 강하게! 그렇게 기술을 깬 다음 그대로 덧걸이처럼 발을 툭 넣었다. 히카리는 중심이 이미 앞으로 쏠린 상태였고, 목깃을 잡았던 팔도 밀려 중심이 제대로 깨진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들어간 덧걸이는 치명적인 카운터로 변했다.

중심이 무너진 히카리가 뒤로 쓰러졌다.

워낙에 신장과 피지컬이 좋아, 거목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

쿵!

와, 와자리!

심판의 절반 선언.

“나이스!”

“굳히기 잡아!”

지영은 벌떡 일어났다.

임효중의 외침을 마치 들은 것처럼, 강유진의 공세가 이어졌다. 급하게 엎드린 히카리의 겨드랑이 쪽으로 손을 넣어 반대쪽 목깃을 잡았다.

‘잡혔다.’

제대로 잡은 거다.

강유진은 이어서 몸을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천천히. 여기서부턴 피지컬 싸움이다. 포지션은 강유진이 완벽하게 잡았지만, 히카리는 굳히기의 달인이다. 5판 정도 하고 우승한다 치면, 거기서 굳히기로 끝나는 게 반드시 한두 게임은 있었다. 많으면 세 판을 넘어갔고. 상대를 잘 누른다는 것은, 그만큼 방어도 잘한다는 거로 봐야 했다. 왜? 상대가 엎드린 자신의 어디를 잡는가에 따라, 이미 머릿속에 방어 로드맵이 주르륵 떠버리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히카리는 잡히자마자, 겨드랑이를 최대한 안쪽으로 말아 넣고, 안쪽으로 웅크렸다. 강유진이 걸 기술이 뭔지 알고 있는 거다. 하지만, 제대로 잡혔을 땐…… 방어는 부서진다. 굳히기에 철벽 방어란 없다. 포지션을 더럽게 뺏기면 더더욱.

강유진은 히카리의 반대로 다시 넘어가서, 어깨를 받쳐 히카리의 방어를 천천히 부숴갔다.

일본 코치는 감을 잡았는지 맛테! 빨리 맛테! 하며 악을 썼지만, 굳히기는 이어졌다. 저건 자초한 결과다. 일본이 바꾼 결과가 저거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2000년대 초반엔 굳히기 시간이 상당히 짧았다. 이때 일본 유도는 암흑기였다. 워낙에 세계 유도가 바짝 쫓아왔고, 피지컬을 이용해 일본의 기술 유도를 무참히 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타파하기 위해 일본이 꺼낸 카드 중 하나가 바로 굳히기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굳히기 강자였다. 다들 세계 유도 흐름에 맞춰 자유 연습 형태의 기술을 연마할 때, 일본은 그래도 종주국이라 유도의 정통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굳히기도 끝없이 연구했다.

그리고 천천히 흐름을 바꿨다.

본래는 짧게 주어졌던 굳히기 시간이, 지금은 기술이 걸린 것 같단 판단이 들면 20초 이상도 이어진다. 20초가 짧은 것 같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다. 특히 제대로 잡은 상태에서 20초면,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이었다.

그 결과 강유진이 상위 포지션을 잡은 상태다 보니 심판은 당연히 그쳐를 선언하지 않았다.

피지컬은 둘이 비슷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임효중의 외침에 강유진이 힘이라도 내는 건지, 끝끝내 저돌적인 어깨로 밀기 끝에 히카리의 몸을 반쯤 뒤집었고, 다시 반대쪽으로 이동하며 누르기를 완성했다. 격투기에서는 암 트라이앵글이라고도 부르는 기술이었다. 어깨를 턱 아래로 껴서 짓누르고 있기에, 이대로 조르기까지 가능한 포지션이었다.

‘어깨가 완전히 들려서 제대로 걸렸어. 저건 못 빠져나가.’

지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심판의 누르기 선언 뒤, 히카리는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상대가 강유진이다. 히카리가 굳히기의 스페셜리스트라면, 강유진 또한 스페셜리스트다. 실력 차가 났다면 풀 수 있겠지만, 실력은 동률이다. 강유진은 완벽한 중심이동으로 히카리의 저항을 완벽하게 죽였다. 거기서 승부는 났다.

삐이이-!

절반에 이은 절반.

합쳐서 한판.

첫 격돌에서, 승부가 났다.

허벅다리 후리기 카운터에 이은 굳히기까지. 물 흐르듯이 완벽한 연계였다. 지영은 박수를 쳤다. 진짜, 제대로 잡았다.

짝짝짝!

1회전인데도 박수가 많이 나왔다.

그런데 강유진은 이기고도, 크게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도복을 고쳐 입은 다음, 꾸벅, 예의를 갖춰 악수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경기장 밖에서 인사까지 하고 나서야 환히 웃는 강유진.

그와 반대로…… 패자의 걸음은 무거웠고, 고개는 떨어졌으며, 미소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씁쓸하게, 또 씁쓸한. 게다가 안자이 히카리는 여제라 불리는 선수다.

현시대에, 적수가 없었던.

그렇기에 패배는 충격적이었다.

그 본인에게도, 얼굴을 감싸 쥔 일본 팀에게도.

지영은 그런 일본팀과 히카리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몸을 풀 때도 생각했지만, 1회전은 자이언트 킬이 많이 나온다. 거인이 쓰러지는 거다. 저렇게, 씁쓸한 모습으로. 그게 유도였다.

그리고 유도에서는.

“몸을 제대로 못 풀었다는 변명은 안 통하지.”

“…….”

그 혼잣말에 임효중이 지영을 힐끔 보더니 피식 웃었다.

많이 안도한 모습이다. 오랜만에 세계 대회라 감을 잃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지영의 지금 혼잣말에, 그런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한 것이다.

잠시 뒤 이성진이 들어갔고, 2분 만에 한판으로 깔끔하게 1회전을 통과했고, 다시 한 시간 뒤.

지영의 첫 게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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