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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501화 (50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01화

501화. 왕의 귀환(10)

코펜하겐.

발트해와 북해 사이의 골목길 같은 곳에 위치한 코펜하겐의 날씨는, 정말 죽여줬다. 좋은 뜻이 아니라, 나쁜 뜻으로. 맑았다가 소나기가 쳤다가, 다시 맑았다가. 다시 소나기가 몰아치다가. 날씨가 정말 변화무쌍하다 못해 천변만화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몸을 풀러 가려는데, 맑고 화창하던 하늘에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어후, 날씨 진짜 왜 이러냐.”

같이 방을 쓰는 임효중의 말에 지영은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분명 들어올 때만 해도 맑았다. 도중 소나기가 두 차례나 쏟아졌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체크인하고 숙소에 올라와 짐을 푸는 사이 하늘은 다시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지영아. 네 팬들 전부 경기장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냐?”

“그랬는데, 비 맞고 기다리고 있진 않겠지?”

“음? 그럴까? 아까 보니까 여기 분들 우산은 아예 안 챙겨 다니던데?”

“어…… 그렇긴 했지.”

비가 이렇게 불규칙적으로 쏟아지는데, 우산을 챙겨 다니는 시민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걸 생각하면 경기장으로 간 수백 명의 팬 또한, 잘못하면 비를 맞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경기장인 만큼, 수백 명의 팬을 갑자기 수용하기도 힘들 것이다. 정확히는, 관리인이 경기장 안으로 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지영은 부디 비를 피할 처마가 있기를 바랐다.

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사람은 남자팀 주장 강한결이었다.

“30분 뒤에 출발한다니까 시간 맞춰 내려와.”

“응.”

시합은 내일모레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고 몸을 풀지 않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시간에 맞춰 지영은 도복을 챙겨 아래로 내려갔다. 대여한 대형버스에 올라서 시합장까지 다시 30분. 시합장에 도착하자 우비를 뒤집어쓴 팬들이 비를 그대로 맞으며 기다리는 게 보였다.

“아이고……. 쯔쯔.”

가장 앞에 앉아 있던 전기정 감독이 그런 팬의 모습에 혀를 찼다. 경기장은 하필이면 처마가 너무 짧았다. 그래서 벽에 바짝 붙어 있는데도, 해풍에 밀린 비가 그대로 안으로 들이쳤다. 그런데도 저렇게 집에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지영의 사인 때문이었다. 원래는 공항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팬서비스를 해주기는 힘들어서 지영은 시간에 맞춰 경기장으로 오면 사인해 주겠다고 했다.

공항까지 달려와 준 팬들이다.

그런 팬들에게 사인 하나 해주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시합 때는 예민해지는 지영이다. 최대한 시합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근래는 그러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어쩌면, 지영을 직접 보는 일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반대로 지영은 어딜 가나 팬이 모이고. 거꾸로 생각하면, 시합의 예민함이라는 미명하에 팬들의 소망을 짓밟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지영은 자기의 현재 위치, 그리고 인기가 전부 팬 덕분임을 정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영은 가능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팬 서비스는 전부 해주고 싶었다. 버스가 서고, 선수단이 내리자 시선이 대번에 집중됐다. 버스 앞에 코리아 유도팀이라고 큼지막하게 팻말도 붙여 놨으니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꺄아아아!

지영이 내리자 팬들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뚫을 정도로 크게 환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다행히, 지영에게 막 달려오진 않았다. 지영은 우산을 쓰고 경기장 관리인들의 통제에 따라 벽에 착 붙어 있는 팬들에게 다가갔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몸을 풀어야 해요. 경기장에서 각 나라 팀마다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지금이 아니면 몸을 풀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죄송하게도 또 기다리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부터 시간을 제대로 공지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코펜하겐에 비는 일상이에요! 그러니 우리 걱정하지 마세요!”

지영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다들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말을 합창하듯 하는 팬들을 보며 지영은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쯤이다. 한국팀 사용 시간은 딱 한 시간이다.

“훈련이 다섯 시에 끝나요. 끝나고 나와서 전부 사인 꼭 해드릴게요. 약속해요.”

와아!

지영이 전원 사인을 해주겠다고 하자 또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팬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 지영은 들어가서 바로 준비운동 대열에 합류했다. 몸은 가볍게 풀었다. 오랜 비행으로 굳어 있던 육체에 딱 기름칠만 해주는 수준으로. 딱 떨어진 컨디션만 도로 올리는 수준으로. 그런데 그렇게 가볍게 해도, 땀은 비 오듯이 쏟아졌다.

훈련이 끝난 지영은 체중계에 올라갔다. 72.7. 딱 적당한 체중이었다. 먹는 것만 조심하면 계체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영은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지영의 시합도 항상 같이 따라다니는 임은진이 어느새 도착해 지영이 사인하기 편하게 천막과 테이블을 세팅해 줬다.

“하하, 고생해라.”

“응, 얼른 하고 갈게.”

고개를 끄덕인 친구들이 버스에 오르려고 했는데, 팬들 몇이 그런 친구들한테 다가갔다. 팬이 향한 곳은 이성진이었다.

“어? 저요?”

“더 런닝 팬이에요! 빅팬!”

“아하? 감사합니다, 정말! 사인?”

“네!”

이성진은 환하게 웃으며 사인을 해줬다. 그런데 그런 이성진에게 오는 팬들이 제법 많았다. 이성진에게 사인받은 팬은 옆의 임효중과 강한결, 그리고 황석에게도 사인을 받았다. 생각해 보니 친구들도 인지도가 적지 않았다. 특히 이성진은 팬이 상당히 많았다. 더 런닝이 중국과 동남아, 유럽 쪽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다 남았다. 그에 팬들은 더 좋아했다.

“제가 아이들 챙겨서 갈게요. 죄송합니다. 감독님.”

임은진이 빠르게 전기정 감독에게 다가가 황금세대를 챙기겠다고 말했고, 전기정 감독은 그냥 웃으면서 그러라고 하곤, 먼저 떠났다. 사인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줄 시간까진 없어서 그나마 일찍 끝났지만, 2시간은 충분히 넘었다. 그렇게 사인해 주는 지영의 모습은 그날 유럽 전역에 기사로 나갔다.

시합 직전인데도, 진심을 담아 사인해 주는 지영과 황금세대의 모습에 외신은 모든 ‘유명’ 인사가 꼭 보고 배워야 하는 모습이라고 하면서도, 시합을 앞둔 선수에게 저런 사인을 하게 한 코펜하겐의 팬들은 ‘자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자의 의견은.

‘코펜하겐엔 유명인이 오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서 딱 두 번 왔다. 욕심이고, 무례인 걸 알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 일생에 있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는 말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한 댓글 하나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유럽엔 대도시가 많지만, 확실히 북해 쪽 도시들은 프로모션을 할 때도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찾지 않는 도시. 코펜하겐을 갈 바에는 파리나 런던, 베를린을 가는 게 훨씬 나았다. 그걸 아니, 비난 여론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런 짧은 논란 끝에, 세계 선수권이 시작됐다.

일정은 역시 이틀이다. 첫날은 남자부 경량급, 여자부 중량급이고. 이튿날은 그 반대다. 지영은 이중, 당연히 첫날이다. 그래서 첫날 취재진이 정말 많이 모였다. 사실 세계 선수권에 지영이 참가한다는 기사가 나가면서, 세계인들은 하나의 의문을 품었다. 강지영은 작년 올림픽 이후 반년 가까이 드라마 촬영에 임했다.

그런 강지영이, 과연 메이저급 대회인 세계 선수권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운동선수의 폼은, 지속적 훈련을 통해 유지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정도는 스포츠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여성들도 아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강지영은 무려 반년이다. 자국의 국가대표 선발전은 1위를 차지했지만, 그 실력이 과연 세계에서도 먹힐 것인가. 이 부분이 쟁점이었다.

그런 강지영의 시합 결과는, 스포츠 베팅업체에도 등장했다. 강지영의 우승 확률만 놓은. 배당이 높지는 않지만, 일종의 이벤트로 등장했다. 결과는, 불가능에 좀 더 많은 베팅이 몰렸다. 팬심은 팬심이지만, 아는 것이다. 반년을 쉰 선수가 세계 정상을 차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그걸 확인차, 코펜하겐에서 가장 큰 체육관은 선수들이 몸을 풀 때쯤엔 벌써 만원이었다.

“컨디션 어때?”

파트너로 잡아주는 장대호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만 끄덕였다. 호흡을 터뜨리는 중이라, 대답하기 힘들었다.

“괜찮구만.”

“하아, 하아. 나쁘, 진 않지. 후우…….”

“10초 지났다. 시작.”

“…….”

호흡을 터뜨리는 과정은 정말…… 정말 괴롭다. 이걸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1회전은 지옥이다. 그래서 지영은 언제나 이 과정을 몸 풀 때 어떻게든 해결했는데, 해결할 때마다 솔직히 버거운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래도 해야 했다. 첫판 상대는 힘이 좋은 상대다. 이런 상대와 붙을 때는 체력 소모가 훨씬 빨리 일어난다. 게다가 데이터가 없다.

올림픽이 끝나면, 아주 높은 확률로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베테랑이 올림픽이란 축제가 끝나면 보통은 은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체급은 상당히 많다. 한국팀이야 역대급 황금세대라 불리는 중이라, 이성진부터 시작해 장대호까지 모두 10년은 더 해도 될 정도지만,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첫판인 벨기에 선수가 그랬다.

세대교체로, 새롭게 국가대표가 된 신성이다. 정보는 힘이 좋다는 것 정도밖에는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지영은 첫판 준비를 정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변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때가 1회전이다. 이유 또한 간단하다.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서. 그래서 이때 자이언트 킬이 가장 많이 나온다. 그리고 지영은 1회전에서 자이언트가 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동안 정말 이 악물고 호흡을 터뜨렸다.

평소보다도 더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전기정 감독이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꿋꿋이 터뜨린 호흡 덕분에, 자신감이 확 붙었다.

경기가 시작됐다.

꺄아아아!

우와아-!

관중의 환호성이 크고, 길게 울린 뒤에 시작된 1회전.

남자 -60과 여자 -70 1회전이 시작됐다. 1회전에, 첫 게임인데 한국 선수가 들어갔다.

그 선수는 이번에 새롭게 국가대표가 된 박창준이었다.

한국 유도의 -60은 현재 춘추전국시대였다. 대회마다 우승자가 변했다. 66부터는 황금세대와 장대호가 꽉 잡고 있지만, 60엔 그런 선수가 없어서 선발전과 대회마다 피 튀기는 접전이 펼쳐졌다. 이번에 올라온 박창준은 이전 대회에서 3위 밖에 없었다. 만년 3등 선수라는 오명 아닌 오명을 썼던 선수가 절치부심해서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고작, 경기 시작 20초.

중국 선수의 파워풀한 모두걸기에 박창준의 몸이 붕 떴다. 마지막에 몸을 비틀긴 했지만, 점수를 뺏기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와자아-리!

절반.

중국 코치가 강하게 항의했다. 이게 왜 한판이 아니냐고. 지영이 보기에도 각도에 따라 절반과 한판의 경계가 갈릴 것 같았다. 심판이 경기장 밖의 부심과 잠시 상의까지 했지만, 점수는 바뀌지 않았다. 시작과 동시에 절반을 빼앗긴 건, 뼈아픈 실책이다. 이어서 경기는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중국의 리시안은 경기 종료 30초를 남기고, 다시 모두걸기를 쓸었다.

박창준은 그걸 피하지 못했다. 왜? 30초밖에 남지 않아 강하게 덤벼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심이 붕 뜬 상태인데, 그걸 옆으로 피하면서 제대로 쓸었다. 결과는 절반. 합쳐서 한판.

박창준의 첫 세계 대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시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정말 오랜만에 한국이 품은, 여자 유도계의 신성이라 불리는 선수의 차례가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30분 정도가 흐른 뒤, 그 한국 여자 선수가 입장했다.

-70의 국가대표로 자리를 굳힌, 강유진이었다.

그런 강유진의 첫판은, 일본 선수였다.

상대는 세계 유도의 여제라 불리는…… 안자이 히카리.

두 나라 다, 절대로 패해서는 안 되는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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