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72화
472화. 전설로 가는(11)
그렇게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끝.
하고 상황이 정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토 레미의 이민을 축하하며, 레미! 한국에서는 꽃길만 걷자!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으면 정말 좋았을 거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인터넷이란 공간을 모두가 보지 않았다.
이미 더러운 언론의 악의와 익명성의 뒤에 숨어 더러운 단어를 나열하는 놈들은 한국이라고 없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소수였다. 아주 극소수. 하지만 대한민국 인구가 5천만이 넘어간다. 그런 5천만에서 극소수를 뽑아도, 그 인원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비즈 엔터테인먼트는 사토 레미 양에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악의 가득한 글을 남겼던 전원을 고발합니다. 고발 예정자는 685명이며, 이 소송은 윤원 로펌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미리 말하겠습니다. 이번 소송에 선처는 없습니다. 이상입니다.”
촤라라락!
비즈 엔테 사무소의 지역 경찰서를 찾은 장세리는 아예 정보를 흘렸다. 그러자 당연히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온 장세리는 아주 단호하게 악플러를 고소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곤 미련 없이 경찰서를 떠났다.
기자들이 따라붙으며 질문을 던졌지만, 차갑게 굳은 장세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경찰서를 떠났다. 그러자 기자들의 시선은 함께 왔던 윤원 로펌의 변호사에게 향했다.
윤원 로펌.
유명한 곳이다.
로펌 자체는 한국의 메이저 로펌과 비교하면,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이들은 콘셉트가 아주 확실하다. 로펌 소속 전원이 본인, 혹은 가족과 지인 중에 악플러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악플러와 전쟁을 선포했고, 대한민국의 악플러 고소 건은 거의 이쪽으로 들어온다. 연예계 회사 대다수가 이쪽과 연을 맺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그만큼 믿을 만한 곳이다. 어떤 식으로? 철저하게, 사회적 말살까지 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게 몰아친다.
물론 그래서 악플러 고소 전문치고는 수임료가 비싸지만, 작정하고 악플러들을 조질 마음을 가진 모든 회사, 개인은 이곳을 찾았다. 장세리도 마찬가지였다.
“윤원 로펌 윤태주입니다. 따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장세리 대표님의 의지가 곧, 저희의 의지이니.”
윤원의 대표 중 한 명인 윤태주의 말에 기자들은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윤태주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본래는 판사였다. 하지만 여동생이 아이돌이었는데, 악플러의 악의 가득한 괴롭힘에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하며, 거의 폐인이 되어버렸다. 그에 눈이 돌아버린 윤태주는 판사직을 때려치우고 나와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거기에.
“윤원의 원정원입니다. 이하동문입니다. 자, 악플러 여러분. 이제 벌 받을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한순간 기분 좋자고 쓴 글들이 여기 다 있고, 이미 사이버 수사대를 통해 전부 본인 확인을 거쳤습니다. 참고로 여러분이 다른 곳에 싸지른 더러운 댓글 또한 이미 전부 확보했습니다. 뭐, 긴말하긴 그렇고, 법정에서 봅시다. 참고로 우리 의뢰인은 여러분과 만날 일이 없습니다. 고양이가 쳤네, 제가 취업난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제가 술에 취해서, 아시죠? 요즘 안 먹히는 거. 하하. 각오하고 오세요. 여러분의 인생, 제가 잠시나마 망가뜨려 줄 터이니. 아, 말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하하.”
원정원 변호사의 말에 기자들은 다시 물러났다.
이 양반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원래 검사였고, 변호사가 된 계기는 윤태주와 비슷했다. 두 대표가 직접 나왔다는 건, 가해자들을 확실하게 응징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두 사람이 떠나자, 기자들은 속보! 라며 데스크에 연락해 얼른 기사를 써서 내보냈다. 반응은 대단했다.
-이거지. 이거…….
-솔직히 악플러 새끼들 글 볼 때마다 진짜, 역겨워 죽을 것 같았음. 강지영이 가만히 두니 더 그러는 거 빤히 보이고.
-솔직히 그 새끼들도 지영이 드라마 인기에 영향 줄까 봐 이번에도 참을 줄 알았을 거임. 근데 이번에 지영이 보니까. 아니, 황금세대랑 비즈 엔터 보니까 진짜 칼 갈고 있었음. 일본에서 니시노 하루히 선임해서 조진 거 생각하면 답 나왔는데, 등신들은 대가리가 텅텅 비어서 그걸 모름.
-근데 저렇게 고소해도 벌 세게 안 받지 않아요?
-ㄴㄴ 예전이랑 다름. 악플러에 대한 법이 개정되면서, 이번엔 진짜 잘못하면 쇠고랑 차야 함. 벌금으로 대체해도 장난 아니게 깨지고. 저번에 수천 깨졌다는 기사도 있었음. 몇십, 몇백이던 시절이 아님 이젠.
-ㄷㄷㄷ
-그래도 속 시원하네요. 지영이가 이제 칼 빼 들어서.
-ㅇㅇ 지금 커뮤 가보셈. 난리임 지들 글 지우느라.
-근데 이미 늦었음. 윤원이 나선 거면 이미 모조리 싹 턴 후일 거임.
-ㅇㅇ 이미 아이피는 싹 털렸을 거임. 등신처럼 아이피 조작 안 했으면, 이제 법정에서 전원 강제 정모할 거임
여론은 지영의 편이었다.
이미 악플러들의 도를 넘은 짓거리는 대중에도 알려져 있었다. 지영과 관련된 거면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 라고 지영이 말했다, 라고 기사를 내도 조회 수가 파바박 박힌다. 그러니 악플러가 날뛰면, 그건 그것대로 기삿거리다. 그걸 기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근 며칠간 악플러의 도 넘은 악의! 같은 제목으로 기사가 많이 올라갔고, 그래서 대중의 시선은 매우 싸늘한 상태였다.
그래서 분위기는 거의 99% 이상 강지영 편이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심지어 지영을 어떻게든 몰락시키고 싶은 ‘일부’ 언론도 숨죽이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악재만 화제가 된 건 아니었다.
-나의 무사님! 시청률 40% 넘었다.
-10화 전에 40% 돌파! 역사에 기록을 세울 것인가?
-나의 무사님 S3! 초반은 지영과 심수정의 독무대! 두 사람의 합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나의 무사님은 순항을 넘어, 광속 항해 중이었다.
아직 초반부가 전부 지나지도 않았는데 시청률 40% 넘기며,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의 반열에 합류하기 위한 항해를 아주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었다.
호재와 악재.
그런 지영의 행방을 보며 한 네티즌은 이런 말을 남겼다.
-얘는 정말 인생을 사네…….
그 댓글엔, 좋아요가 수만 개나 달렸다.
인생.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 그게 인생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강지영의 인생은, 정말 인생 같았다.
그래서 안타까웠고, 안쓰러웠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지영은 다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서 동요 없이 자기가 할 일에 임하고 있었다.
* * *
일주일간의 휴가.
“몸이 굳어 있는 걸 생각해서 이번 주는 액션 신 없이 간대.”
임은진의 말에 지영은 대본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끄덕였다.
“스케줄 괜찮대요?”
“응, 괜찮을 거라고 하더라. 홍 감독님이 다 견적 내보고 내린 결정일 테니까 괜찮을 거야.”
“네. 알겠어요. 이번 주는 그러면 몸만 만들어놔야겠네요.”
“그렇게 하자. 연습실 잡아줄까?”
“아니요. 스쿨로 나갈게요. 그래도 직접 합을 맞춰보는 게 편해요.”
“어이구, 알았다. 그럼 난 나가 있을게. 필요한 거 생기면 불러.”
“네, 감사합니다.”
지영의 감사하단 말에 임은진은 그냥 빙긋 웃고는 대기실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지영은 시간을 확인했다. 공지 받은 준비 시간까지 아직 50분 정도 남았다. 지영은 대본부터 일단 숙지했다. 대사와 지문은 전부 숙지했지만, 그래도 여기에 자기만의 감각을 보태 캐릭터를 조형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필요한 액션 신은 사실 앵커리지 세트장에서 80% 이상을 찍었다.
그래서 남은 액션 신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기에 촬영팀을 나눠 찍으며 달려서 어느덧 작업은 절반 이상을 끝낸 상태였다. 드라마의 중반은, 격렬한 감정 신 위주로 이어진다. 초반엔 초소전 영역을 초토화하고, 재는 더 이상은 타격이 불가능할 것 같아 선고와 관영, 제선과 함께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족의 부족으로 향한다.
재의 생환.
이는 소모전만 이어지던 전장의 극적인 반전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거기에 아직 정체를 들키지 않았지만, 제국의 새로운 황제 후는 재의 생환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그래서 대대적인 징병이 이어지고, 훈련에 돌입한다.
그런 첩보를 입수한 이족 또한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갈등.
중반부의 흐름이다.
이 흐름이 시작되면 선고는 잠시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그 자리로 연이 올라오며 재와 대치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대치한다는 부분이다.
대치는 곧, 대립이다. 서로 아군임은 분명하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연은 이미 전쟁이란 마물에 먹혀, 그녀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버렸다. 반대로 재는 전장에서 잠시 벗어나 깊은 사색을 통해, 머리를 명료하게 세탁한 상태였다.
“전쟁의 의미…….”
재는 전쟁의 의미를 생각했다.
[재, 사색하다. ‘이 전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번민이 들다. 깊고 짙었던 번민 끝에 재, 연과 대립하다.]
이런 확실한 지문을 보면 재는 연의 방식에 확실히 반기를 들었다. 이 대립은, 연을 철저하게 악인으로 몰아갔다. 이미 시즌3 초반부에서 연과 선고의 대립에서 보여준 바가 있었다. 연이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
이 중반부는 그 절정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액션 신보다는 감정 신이었다. 지영은 사실 감정 신에 약했다. 일단 연기 경력이 깊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 신은 액션 신보다는 확실히 깊이가 떨어졌다. 그걸 특유의 표정과 마스크, 거기에 감각으로 커버를 하곤 있지만, 진짜 감정 연기의 대가, 이연과 합을 맞추기 시작하면 그 차이는 분명하게 보일 것이다.
극명하고, 아주 적나라하게.
엇비슷한 정도만 되어도 어떻게든 비벼보겠는데, 전에 이연이 보여준 연기는 그 정도를 한참이나 벗어났다. 지영이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연기 하나만 보고 자기를 철저하게 몰아붙였던 이연을 따라가려면 멀었다.
“누나는 아주 미세한 표정 연기까지 가능해.”
얼굴 근육을 움직여 음영까지 만들어내는 배우다. 표정의 다양화. 어조 컨트롤. 이 모든 게 수준급 이상이다. 그래서 연이란 캐릭터는 사실 주연치고는 출연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엄청난 임팩트를 신마다 선사했다.
그래서 누구도 이연이 주연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과 이제 제대로 감정 신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사실 이 부분이 앵커리지에 처음 갔을 때, 이연의 연기를 보며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연습으로 어떻게 커버할 수 있지 않나? 이 또한 안일한 생각이었다.
지영은 이미 선고 역의 심수정과의 합에서도 한번 밀린 적이 있었다.
칼을 갈고 온 심수정은 재와 선고가 처음 만나는 신에게 감정으로 지영을 압도했다. 그것도 지켜보는 이가 그 차이에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철저한 영역 안에서. 당시 지영은 정말 충격받았었다.
그 차이가 뭔지 지영은 알고 있기도 했다.
자신은 올림픽을 위해 한동안 유도에만 집중했다. 원하는 목표가 있기에, 그것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오히려 그전에 연기로 공백이 누구보다 많았기에 더더욱 연습에 매진했다. 몸이 쉴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만을 제외하곤, 오직 유도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심수정은 그런 지영과 정반대로 살았다.
그녀는 오직 연기만 봤다.
나의 무사님이란 대단한 작품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배역에 집중했다.
그 차이.
그래서 심수정과도 그 정도 격차가 났다.
그런데 그런 심수정보다도 최소한 두세 수 위에 있는 이연이다.
“후우…….”
걱정이다.
너무 강력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어서.
짝!
하지만 지영은 뺨을 강하게 친 뒤.
“먹힐 수는 없지.”
다시 대본을 쥐었다.
모든 것은, 모든 정답은 이 안에 있다.
지영은 그렇게 믿으며 다시금 대본에 천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