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4화
454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19)
칙쇼!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은 켄은 얼른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엔진의 우렁찬 울음을 들으며, 켄은 지금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정했다. 마음이 급했다. 셋 중 하나를 얼른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급히 정하면서도, 정확히 포인트를 짚어야 했다. 늦어서는 매우, 아주아주 위험했다.
이유는 하나.
쿄타로가 자기보다 먼저 밥을 먹었다는 후미코 선배란 사람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유명하다.
지독히도 유명하다. 일본 경찰계에서 좀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마녀 후미코.
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후미코를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후미코는 대학 졸업 후 본청에 임관했을 때, 그의 사수였던 사람이었다. 거기에 본청 생활을 같이한 것만 해도 10년이나 된다. 그래서 그는 정말 누구보다 마녀 후미코를 잘 안다. 성은 안 좋아하니 거론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본청에 근무한 인간치고, 마녀 후미코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심지어 청소 업체의 직원도 마녀 후미코는 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그녀에게 달려간다. 왜? 도와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이니까.
어쨌든 그런 후미코라면.
“무조건 직선이야. 본능적인 직감의 소유자……. 아주 높은 확률로 정답을 향해 돌진했을 거야.”
그럼, 그 새끼는 누굴까?
정보과의 개미지옥 쿄타로의 정보는 지극히 믿을 만하다. 그 친구는 예전부터 정보원을 기가 막히게 썼다. 한 번 그에게 잡히면, 영혼까지 털린다. 하지만 그래도 그 정보원은 쿄타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
“빨아먹기만 하는 건 아니거든…….”
빨아먹기만 하면 거죽과 뼈만 남아 악에 받치게 된다. 그럼 오염된 정보를 주든가. 이 X발 새끼야! 그냥 죽여! 하고 자폭해 버린다. 그러니 빨아먹는 만큼, 다시 채워주는 건 ‘관리’의 기본이다. 쿄타로는 그걸 적당한 정보로 대체했다.
사건이 터졌을 때, 형사들이 브로커를 찾기 시작할 때.
너무 큰 건은 정보를 풀지 않지만, 어느 정도 괜찮은 건이라면 슬쩍 알려줘서 얼른 자리 털고 튀게 해줬다. 이런 먹이는 정보원에게 아주 귀중했다. 마작 한판 때리다가 슥 들어온 형사가 패를 뒤집는 손에 수갑을 덜컥 채워버리는 일은 피할 수 있으니까, 더없이 귀중하다. 그런 관리의 달인이다.
그리고 강력하게 경고도 한다.
선을 넘지 마라. 본청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건은 절대로 도움을 줄 수 없으니, 급을 잘 찾아서 중개해라. 이런 경고도 반드시 남긴다.
이런 쿄타로의 정보는 반드시 ‘참’이다.
적어도 쿄타로가 ‘참’이라 생각하는 것들로 추려온 게 분명했다. 그러니 쿄타로의 정보가 참일시, 마녀 후미코의 직관이 터진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가장 중요한 중개인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마녀의 직관은 그만큼 무섭다.
마녀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사건이 터지면, 보통 형사는 정보를 토대로 외곽부터 파고들어 간다. 하나의 작은 단서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굴비처럼 엮어가며, 그렇게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니까 기본은 탐문 수사라는 거다. 하지만 후미코는 아니었다. 그녀의 어마어마한 직관은 범인으로 가는 직선상의 길을 기가 막히게 알려줬다.
그러니 실적 면으로는 당연히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마녀 후미코는 제물이 되어버렸다.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정관계, 재계의 높은 양반들 자녀가 들어오면 실적 몰아주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뜻이다.
“나는 남자 새끼들, 선배는 쌍년들 제물…….”
뿌득!
이가 갈렸다.
제물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첫 번째.
능력이 있었다는 것.
두 번째.
공무원 3종 신기가 없다는 것.
둘 다 문제지만, 그래도 두 번째가 조금 더 큰 문제였다. 공무원에게 3종 신기란 별거 아니다. 학연과 인맥, 그리고 돈이다. 경찰대를 나왔지만, 그건 인맥에 끼지 못한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거지만, 거긴 그 코스는 기본으로 깔고 인맥과 학연, 그리고 돈이 넘쳐나는 자식새끼들이 더럽게 많았다.
이 3종 신기가 없는 자신과 후미코는 그 자식새끼들의 앞길을 닦는 걸레가 됐다. 처음에는 달콤하다. 이번에 한 번 양보하면 다음엔 반드시 챙겨주마. 그렇게 꾄다. 그리고 그렇게 꾀이는 순간부터, 끝이 없다.
“그놈의 미안하다……. 누구누구 아들이 이번에…… X발!”
울화가 터질 것 같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의 멘탈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고, 가정에 신경도 쓰지 못하게 했었던 끔찍한 기억이다. 그 때문에 딸이 천재인지, 자폐증 연기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코너에 몰려있었던 것도 몰랐다. 아내는 아귀처럼 딸을 잡아먹고 있기도 했다. 모은 돈? 부모님이 준 건물 한 채가 아니었다면 길바닥에 나앉았어야 할 거다.
집은, 합의 대가로 넘겼으니까.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절로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된 켄은 다시금 본론으로 사고회로를 돌렸다.
“자, 자. 같은 처지였다지만…… 지금은 경쟁 관계지. 선배가 어디로 갔을까……?”
머릿속에 박아 넣은 정보를 수첩을 꺼내 차곡차곡 정리했다.
세 놈의 브로커.
후미코 선배는 이 중 한 놈을 찍어서 움직였을 것이다.
‘아니, 아니지. 아예 직감이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셋 다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또 지극히 적다. 왜? 마녀 후미코는 그가 아는 한 엄청난 능력자지만, 개미지옥 쿄타로도 만만찮은 인간이다. 정보 상인에게 정보의 신용도는, 그 자체다. 어설픈 정보를 던지면 신뢰를 아주 차곡차곡 잃게 된다. 아니, 그냥 수직 낙하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는 말처럼 뚝 꺾인다.
그러니 쿄타로는 확실한 정보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걸 가정하면, 직감은 발동했다.’
그럼 후미코는 반드시 한 놈에게 향했다.
그걸 파악해야 했다.
셋 중에 하나니까, 확률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켄은 이럴 때마다 자기에게는 이런 직감이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그는 전형적인 수사관이었다. 철저하게 주변부터 파고들어 본체로 이동하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이건 모든 수사관이 비슷하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게 있다면, 켄은 속도감이 있었다.
다른 수사관보다 조금은 빠르게, 그 시각차는 적어도 하루 정도다. 그래서 실적 챙기기의 희생양으로 아주 적당한 거다. 하루 먼저 단서를 잡는다는 것은 아주 큰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런 수사력보다, 마녀의 직감이 필요했다. 이런 마녀의 직감이 경시청에서 사라졌을 때, 당시 수사 해결력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진급시켜야 할 애새끼들은 많은데 실적이 없어서 아주 곤란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런 마녀의 직감.
자신에게 없는 것.
“빌어먹을.”
칙쇼!
어떤 쪽도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찍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정된 정보밖에 없으니 자기 선택이 제발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부웅-.
결국 하나를 찍었다.
30분쯤 달려 일본에서는 지극히 쉽게 볼 수 있는 연립주택 앞 근처에 차를 댄 그는 길게 몸을 누였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차를 빠르게 훑었다. 마녀 후미코의 차는 그가 잘 안다. 월급을 모으고 모아서 산 SUV. 유려한 곡선? 그런 건 따지지 않는다. 오프로드 성능과 단단함을 보고 고른 차라서, 그걸 봤을 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새까맣고, 무광에, 바퀴는 더럽게 두꺼운, 아주 육중한 놈.
그 차는 빗자루로 불렸었다.
마녀의 빗자루.
그게 근처에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는 거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다시 몸을 세워 차를 운전해 주변을 더 샅샅이 살폈다. 없었다. 그럼? 여긴 아니라는 뜻이다. 마녀의 직감이 이곳에 꽂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칙쇼…….”
혀를 찬 그는 두 번째로 이동했다.
이제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는 가까운 곳으로 먼저 향했다. 이번엔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적어도 일반 회사원은 살기 힘든 곳. 천년고도, 교토와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고급 오피스텔이다.
교토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처럼 우뚝 솟은.
하지만 이곳에도 마녀의 빗자루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도 꽝이란 뜻이었다. 결국은 마지막 남은 곳이다.
“염병…… 세 개에서 하나를 찾는 건데! 어떻게 다 틀리냐!”
쿠미에게 부탁하면 교통망을 해킹해 마녀의 빗자루도 찾을 수 있겠지만, 이건 자존심이다. 쿠미는 지금도 드러낼 수 없는 정보를 찾느라 바쁘다. 그런 딸에게 부탁해 빗자루를 쫓는 건, 실적 챙기기와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었다.
딸의 천재적인 실력에만 의지해 밥을 빌어먹고 산다?
그건, 때려죽여도 못 할 짓이었다.
일은 ‘같이’하는 거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대가 또한, 공평하게 나눴다.
딸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하고,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딸이 한다? 그런데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면.
“알지, 개똥고집이라는 건…….”
그건 본인도 알았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 길을 가지 않는 건 당연히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그 더러운 기억 때문에 그는 발로 뛰어야 했다. 그게 그는 수사의 기본이라 생각했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쉰 그는 마지막 장소로 이동했다.
마른 멸치.
제일 독하게 생겼던 놈의 거처다. 그 장소에 도착하자, 문짝이 너덜너덜해진 파친코 가게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앞을 막고 있는 마녀의 빗자루도 보였다.
“하아…….”
결국 늦은 거다.
마음이 예쁘게 정리됐다.
차에서 내린 그는 박살 난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칙쇼, 칙쇼…….”
벌써 바닥에 네댓 놈이 뻗어 있었다. 하나같이 어깨며 무릎,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 누가 그랬는지는 안 봐도 빤했다. 마녀 후미코. 그녀는 괴물이다. 그가 마음속으로 그녀를 사수라 진실로 인정하는 이유가, 그녀는 결코 직감만 좋은 인텔리전트가 아니라는 점도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그녀는 현장을 직접 발로 뛰는 타입이다.
그것도 가장 지능적이며, 흉악한 강력범죄만 담당하는 특수 1과 소속이었고, 거기 과장이었다. 그녀가 해결한 굵직한 사건은 정말로 미치도록 많았다. 심지어 야쿠자 조직에 직접 들어가기도 했다.
“미친 직감과 그것보다 더 미친 무력이 합쳐지면, 뭐…… 이런 꼴 나는 거지.”
파친코 가게는 아예 박살이 나 있었다. 뭔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아주 엉망이었다.
“악, 아으으…….”
한 기계는 액정이 아예 나가 있었는데, 거기엔 모니터 속에 얼굴을 처박고 바동거리는 조직원이 있었다.
“흠.”
잠시 구해줘야 할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냥 지나갔다. 팔목까지 내려오는 문신, 귀에 피어싱. 직감적으로 구해줄 가치가 없는 놈이란 판단이 들었다. 매장 안에는 여섯이 뻗어 있었다. 부서진 안쪽 문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에 두 놈이 또 굴러다니고 있었다. 정신을 좀 차린 것 같은 놈인데, 켄을 보자마자 비척이며 일어나더니 손에 쥔 칼을 밑도 끝도 없이 훅 찔러 들어왔다.
턱.
빠-악!
켄은 그걸 툭 쳐내고, 그대로 손바닥 안쪽으로 뺨을 후려갈겼다. 고개가 덜컥 돌아가더니 놈은 다시 축 늘어졌다. 하나 더 있던 놈은 그렇게 쓰러지는 동료를 보더니, 고개에 주고 있던 힘을 풀었다.
털썩.
꽥.
의지가 하도 빤히 보여서.
“굿 초이스.”
엄지를 내밀어줬다.
계단을 다 내려와 안으로 들어가자, 와장창!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칙쇼! 칙쇼-오! 뭔데! 뭐냐고!”
“어머, 말했잖니? 탐정이라고.”
“지랄하지 마! 뭔, 뭔 탐정이 이 지랄인데!”
“이런 탐정도 있는 법이란다. 호호.”
나직이 호호. 하고 웃는 저 웃음소리.
켄은 그냥 웃음이 났다. 어차피 여긴 뺏긴 거다. 자기가 양아치라면 여기서 뒤통수를 쳐서 보너스 스테이지 보상을 독식하겠지만, 그는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었다. 아니, 끔찍이 증오하는 일이다.
여길 먼저 쳐들어와서, 마른 멸치를 잡았으면 딴 놈이 들어와 개지랄을 떨어도 아가리를 털어버렸겠지만, 어차피 늦었다.
그러면 깔끔하게 인정하는 게 낫다.
나보다 뛰어난, 유능한 사람에게 졌다는 것은 인정하는 것만이 가슴에 화가 쌓이지 않게 해준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난장판이 된 지하실을 가로질러 갔다. 바닥에 지폐가 곳곳에 보이지만, 그의 신경을 건드리진 못했다.
파친코는 합법이다.
여기도 분명 인가를 받은 거고.
고로, 이 돈은 합법적으로 번 돈이다.
그걸 건드리는 건?
강도짓이고.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짜악!
뺨따귀 날리는 소리와 함께 악! 하는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가는 동안 셋이 더 뻗어 있는 게 보였다. 다행히 선은 넘지 않았다. 칼이나 몽둥이는 보이는데, 총은 없었다. 하긴, 총이 있었으면 저렇게 바닥에서 기어 다니지도 못했을 거다.
온갖 흉악범과 야쿠자 조직을 때려잡던 게 마녀 후미코다.
그런 사람이니 동네 양아치나 다름없는 놈들은 당연히 상대도 안 된다. 총을 꺼내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짝! 짜악!
악! 아악!
마치 하모니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마녀와 브로커가 보였다.
“선배, 그만합시다. 거, 애 잡겠수.”
“어? 이 목소린……? 오, 애기. 오랜만이네?”
“…….”
애기.
오랜만에 듣는 호칭에 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