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5화
455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20)
애기.
갓 들어온 신입은 24시간 챙겨야 하는 신생아와 같다는 마녀의 지론에 따라 얻은 별명이 애기다. 들을 때마다 어른으로서의 자존감이 사각사각 깎여 나가는, 그런 별명이기도 했다.
완전히 망가진 지하실.
거기에 마녀에게 작살난 양아치들이 꿇어앉았다. 저항? 반항적인 눈빛? 몇몇 그런 눈빛이긴 했지만, 감히 나설 생각은 못 했다. 처음엔 좀 더 개겨보려고 했지만, 신고받고 출동한 경관 하나가 후미코를 보더니 흠칫 굳으며 경례를 올리더니 돌아가는 걸 본 이후로, 반항은 아예 내려놨다.
불만이 많아도,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눈치챈 모양새였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은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우리 애기. 잘 지냈니?”
“네, 뭐. 선배처럼 탐정 바닥 들어와서 그럭저럭 벌어먹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데 여기 온 걸 보면 그럭저럭은 아닌 것 같은데?”
호호.
마녀가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웃었다.
이 사람은 아마 많은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직감에 맡긴다지만, 그렇다고 직감만 의존하는 인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직감을 뒷바탕 할 수 있는 실력. 몸 쓰는 것도 그렇지만, 사고력 또한 상당했다.
자기의 직감에 가진 지식과 지력을 플러스시킬 줄도 아는 게, 이 마녀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더욱이…….
‘그걸 정말 배우고 싶었지.’
하지만 배우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그에겐 직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보통, 보편적인 방식으로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 특수1과에서 살아남았으니, 물론 켄의 실력도 상당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위다.
“5는 너지?”
훅 들어온 질문에 켄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접니다.”
“음, 탐문 실력은 아직 안 죽었나 보구나?”
“네, 뭐…….”
“그리고 유능한 팀원도 있는 것 같고. 5의 보상을 받았으니 적어도 꼬리는 확실히 물었을 건데, 그건 하루아침 만에 찾긴 힘들지. 해킹했니?”
“…….”
이거다, 이거.
이런 식이다. 이렇게 그냥 직선으로 팍 치고 들어온다. 켄의 표정이 미묘해지자, 마녀는 씩 웃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유능한 동료와 함께하게 됐구나? 축하해.”
마녀란 별호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밖에 없는 게, 이런 식으로 칭찬, 혹은 축하도 해준다. 이런 칭찬과 축하는 정신을 무장 해제시키는데, 저건 거의 즉효다. 상대가 40이 넘었지만 서른 초중반처럼 보이게 해주는 축복받은 노화 방지 유전자를 가졌고, 본래도 아름다운 외모까지 더해졌으니 이건 뭐, 답이 없는 거다. 하지만 켄도 하도 당해서 이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선배는 혼자 일합니까?”
“너나 나나 이제 누구 뒤치다꺼리하는 건 좀 질리지 않니?”
“그렇네요. 근데 여기까지 혼자…… 선배도 진짜. 하하.”
“왜, 안 변해서?”
“네. 선배답습니다.”
“후후, 성격이 뭐 하루아침에 변할까.”
몇 년은 더 됐는데요?
그 말은 그냥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힐끔.
정신을 차리고 몸을 비트는 마른 멸치에게 시선을 잠시 둔 마녀가 다시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후룩.
“이제, 협상해 볼까?”
“협상…… 좋습니다.”
“나는 알다시피 혼자란다. 그래서 열매를 다 따먹지 못해. 배만 부르고. 그리고 과식은 몸매에 좋지 않잖니.”
“네.”
“그래서 그냥 적당히 먹고 빠질 생각이란다. 음, 5는 이미 네가 가져갔으니 어쩔 수 없지. 남은 3과 7은 양보해 줬으면 해. 대신, 사다리는 네가 가지렴.”
“……그래도 됩니까?”
보너스 스테이지.
자신이 그렇게 명명한 것만 먹고 빠지겠단다. 왜?
‘아.’
애초에 그렇게 욕심이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특수1과라는 곳을 맡으면서도, 일 년에 처리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많지 않은 일이 더럽게 컸던, 사회가 흔들릴만한 일들이어서 그렇지, 1과의 위엄치곤 그리 많지 않았다. 일이 내려와도, 거의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 왜? 능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면 똥멍청이다. 결과적으로 귀찮아서다. 또한, 그래야 자기의 가치가 보존된다는 것도 알았다.
3종 신기가 없는 공무원은 결국 소모품이다.
그것도 가장 빨리 닳아 없어져서 자주 갈아줘야 하는. 그러면서도 아주 중요한 부품이다. 없으면 기계가 전반적으로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자기의 가치와 귀찮음.
거기에 더해, 천재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흥미.
이 정도가 그녀가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이 말이 ‘참’이라 판단을 내린 켄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좋아. 말이 통해 다행이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
“응? 배려? 우리 애기. 까먹었구나?”
“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잊었니?”
“어…… 아.”
“후후, 기억났니? 나는 너를 배려하는 게 아니란다. 덜떨어진 아해들을 걱정한 거지. 그 아이들에게 내가 가면…… 후후.”
“…….”
기억났다.
그렇게 귀찮으면서도, 성추행과 성희롱, 그리고 성범죄자는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예전에 술자리서 들은 얘기로는, 그녀의 여동생이 이지메에 이어 집단윤간까지 당한 뒤 자살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지메, 그리고 직급으로 찍어누르는 성희롱, 성추행은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보내는 건 그러니, 증거를 잡아 영혼까지 턴다.
그래서 본청 청소 업체 용역들도 그런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후미코를 찾는다.
‘선배가 그만두고 범죄검거율은 떨어지고, 청 내 추문은…… 올라갔지.’
그랬다.
한 번은 연쇄강간범을 잡은 적이 있는데, 마녀는 그 범인의 알 하나를 터뜨려 버렸다. 그걸로 크게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만약, 이번 범인을 찾으면?
‘이지메에 윤간까지……. 불구로 만드는 정도에서 안 끝날 수도 있어.’
마녀의 특기는?
이런저런 게 많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저주다. 사람 모양의 밀짚 인형에다 바늘을 쿡쿡 찌르는 그런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마녀의 이미지다. 아마 이번에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인생 전체에서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컸다. 아니, 100% 그럴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래. 우리 애기. 옛날과는 다르게 말이 잘 통하네? 다행이야.”
푸근하게 웃는 마녀의 미소에, 켄은 티 나지 않게 입술을 깨물었다. 마녀는 미소를 거두고 일어나 바닥에 엎어져 있던 마른 멸치를 일으켜 세웠다.
“얘기는 다 들었으리라 믿어. 내가 원하는 건 하나야. 너에게 일을 중개한 브로커.”
“…….”
우르릉! 쾅!
벼락이 쳤다.
‘와…….’
켄은 감탄이 삐져나오지 않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역시 마녀다.
마녀는 마른 멸치 또한 일을 중개 받았음을 이미 꿰고 있었다. 사실 켄은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진범. 진범들은 직접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일은 진짜 처리한 건, 셋 중 하나가 부리는 비서일 것이다.
밑을 닦아주는 놈.
그놈이 브로커를 통해 가짜 범인을 세웠을 것이다.
여기까진 켄도 예상했다.
하지만 설마 브로커를 이중, 삼중으로 걸어놨을 거란 사실은 솔직히 깨닫지 못했다.
‘이런 건 배워야 해…….’
천금 같은 교육이다.
자신도 알던 거지만, 그걸 다시 한번 복습한다는 개념으로 이걸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마른 멸치는 마녀의 말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얼굴은 싸다구에 너덜너덜하게 갈려있지만, 그래서 더 흉악한 미소였다.
역시 독기가 남다른 놈이었다.
사진에서 만큼의 독기면, 역시 솔직하게 이실직고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켄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본청에 있을 때 만났던 범죄자들을 생각하면 이놈 마른 멸치는 진짜 애송이 수준이다. 특히 특수1과는 정말 온갖 극악한 놈들은 다 상대한다. 여기 이 마른 멸치는 중간 보스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험악한 놈들을 물리게 만나본 게 마녀고, 미즈노 켄이었다.
“쉽게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이네. 흠, 그럼 말하지 않아도 된단다. 대신, 너의 가족은 끔찍이 아플 거야. 그건 괜찮겠니?”
“……무슨?”
마른 멸치가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이 이곳에 왔겠니? 보자. 너는 딸이 있더구나. 흠, 딸이. 이거 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일단 좀 맞자.”
쫘-악!
세워뒀던 고개가 거칠게 돌아갔다.
어르고 달래듯 하던 말투가 사라졌다는 것은 마녀가 스스로 설정을 깼다는 거고, 그건 매우 화가 났다는 뜻이다. 마녀는 폭력을 잘 쓴다. 180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신장이 주는 위압감만 무서운 게 아니라, 진짜 저렇게 손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히 주먹이 아니라 뺨을 맞으면…… 골이 흔들린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사정에 못 이겨 1년간 배구를 배웠다고 했는데, 그때 저 손바닥은 살인 무기가 되어버렸다. 참고로 그때 1년 배워서 마녀는 학교 배구부를 인터 하이 직전까지 끌고 갔다. 막판 듀스에서 다른 부원의 어이없는 실수만 아니었으면 인터 하이까지 갔을 거라고 했다. 본인이 직접 한 얘기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너는.”
쫘-악!
“딸이 있으면서.”
쫘-악!
“그 딸보다 고작 몇 살 많은 소녀를 윤간하는데.”
쫘-악!
“대타를 세워준 거니?”
네다섯 대를 쳤다. 그것도 풀 스윙으로. 따귀 몇 방에 마른 멸치는 이미 동공이 풀려 있었다. 고개를 다시 세웠는데, 다시 앞으로 툭 꺾였다. 그만큼 충격이 엄청났다는 뜻이다. 배구 선수의 따귀는 진심…… 결이 다르다고 한다. 제대로 맞으면 피부가 찢길 수도 있다고 했었다. 진짜 깊은 피멍까지 들 정도. 그런 걸 저렇게 맞고 나면,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 당연히 힘들었다.
‘그렇게 일단 혼을 빼놓고.’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후우. 딸 이름은, 보자. 뭐랬더라. 츠무기였나? 올해 초등학교 1년생. 맞지?”
“…….”
딸의 이름과 학년이 나오자, 마른 멸치의 눈에도 반응이 왔다. 그걸 어떻게? 하는 표정이었다. 마녀는 그런 마른 멸치의 시선에 싱긋 웃었다.
“내가 그럼, 너를 만나러 오는데 그냥 왔겠니? 업계 친구 좀 만나고 왔어. 나는 정말 딱 범인이 너 같았거든.”
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시간상 보면, 좀 있긴 하다. 왜냐하면, 자신은 두 군데를 돈 다음 이곳으로 왔다. 그런데 직선으로 이곳으로 왔을 마녀는 자기가 왔을 때쯤에 막, 판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상, 한 10분에서 20분 정도 먼저 온 걸로 추정된다. 그럼 중간에 뭘 했을까? 그녀가 정답을 말했다. 그녀는 정말 업계 동료에게, 마른 멸치의 정보를 얻어 온 것이다.
그리고 장담컨대, 아마 그게 끝이 아닐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를 먹는 게 좋을 거란다. 이 누나는, 이런 죄를 아주 싫어하거든. 나는 그런 의미에서 함무라비 경전을 좋아해. 동등한 죄의 값.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한 소녀의 인생이 처참하게 망가지는데 한 손 거하게 거들었던 너의 인생도. 너를 아빠를 둔 딸의 인생도 끝장날 거란다.”
“끄윽…….”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켄은 끝나간다 느꼈다. 그래서 다리를 꼬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도움을 좀 줄 작정이다. 뒤에 있는 자기의 행동은 그 자체로 저들에겐 압박이 될 수도 있다. 무심하게, 자비 없이. 그런 느낌이 나도록 조금만 연기해 주면 된다.
경찰조차 왔다가, 경례를 올려붙이고 돌아가게 할 정도로 상대가 대단하다는 점에서 이미 의지는 쨍강 깨졌으니,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다.
마녀는 재킷을 살짝 열더니, 안에서 사진 세 장을 꺼냈다. 그리고 카드를 펴듯이 손안에서 주륵 펼치자, 순간적으로 마른 멸치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끝났네.’
저건 확인 작업이다.
마른 멸치는 이제 저 사진에 이번 일을 자신에게 중개해 준 브로커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거의 반사적으로. 저런 건 훈련받지 않은 이상 동공반사와 같은 순간의 본능을 이기지 못한다. 뺨따귀로 혼을 빼고, 딸을 건드려서 정신을 더 흔든 다음, 기습적으로 툭 펼쳐주면.
보게 된다.
있나 없나.
없으면 순간적으로 안도하고, 있으면 거기서 시선이 잠시 멈춘다. 눈코입을 비롯해 맞는지 아닌지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따라 아주 잠시간 뇌가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확인 끝.”
쫘-악!
억…….
손을 어깨 뒤로 바짝 당긴 다음, 그대로 휘둘러 친…… 전매특허. 그 한 방에 마른 멸치는 그대로 털썩, 기절해 버렸다. 그걸 보며 켄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밖으로 나온 켄은 마녀와 여기서 헤어졌다. 그리고 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너스 스테이지는 강제 종료, 메인 스토리에 올라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