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3화
453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18)
흠.
“여긴데?”
딸 쿠미가 보낸 주소지는 90년 가까이 된 노포(老鋪) 집이었다. 일식 전문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포 집치고 젊은 주방장이 재료를 손질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 아들? 부엌 안에 인기척이 없고, 표정에서 느껴지는 다부진 느낌과 자부심이 이제 막 일을 배우고 있는 자식 같지는 않았다. 30대 초중반인데 벌써 가게를 물려받았다.
물론 추론이다.
진짜 주인장은 아직 출근 전일 수도 있다.
“아직 개시 전입니다만?”
가벼운 인사 뒤에 젊은 사내가 한 말에 시간을 슬쩍 본 그는 몇 시부터 엽니까? 하고 물어봤다.
“30분 뒤부터 엽니다.”
“그럼 그때 오겠습니다.”
그렇게 깔끔하게 물러난 그는 건물을 나와 주변을 슬슬 둘러보기로 했다. 전형적인 주택가다. 이 집은 퇴근하는 이들과 주변 상권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점심, 저녁 장사를 하는 걸로 보이고.
그는 일단 이곳에서 사토 레미의 집 방향을 확인하고, 반대쪽으로 걸었다. 쿠미가 이곳을 보냈다는 것은, 여기가 범인이 경호원과 교대한 곳이란 뜻이다. 그러니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짧은 영상을 통해 그는 이곳에서 경호원과 교대한 진범들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30초가량의 영상은 신원을 확인 후, 교대하는 장면이 전부다. CCTV에 찍혔기에 화질도 별로였다. 이걸로 범인을 특정하는 건 역시 무리다.
주변을 슬슬 돌아보며 그는 CCTV가 달린 곳을 확인했다. 골목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도로변에는 많고, 번화가에는 미어터지지만, 이런 좁은 골목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두 개쯤은 더 있었다.
“총 세 개. 저기, 여기서 마지막에 찍혔을 거면…… 흠.”
고개를 돌려보니 대로다.
차가 생! 하고 지나가는. 게다가 넓은 대로다. 좌에서 왔을 수도 있고, 우에서 왔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여기저기 CCTV가 보이긴 한다만.
“나름 머리를 굴리려고 했을 테니까 이 근처에선 못 잡겠지.”
아마 다른 곳에서 내려 여기까진 걸어왔을 것이다. 곧 저지를 범죄를 생각하며 잔뜩 흥분한 채로. 아마 상당한 거리를 걸어왔을 것이다. 그럼 확인해야 하는 영상도 확 늘어난다. 그러나 그 일은.
“쿠미가 하면 되는 거고. 난 내 일을 해야지.”
옛날 자기가 이를 갈았던 실적 챙기기를 딸에게 고스란히 되풀이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시간을 확인한 켄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픈했는지, 팻말이 돌아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벌써 손님이 둘이나 근처에서 일하는 노동자 같은 행색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그 복장을 보고 사람을 무시하지 않았다.
엘리트였던 옛날에는 몰랐지만, 탐정계에 발을 들이고 이곳저곳 직접 발로 뛰면서 깨달은 게 있으니, 일본이란 거함은 이런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에서 백날 기획해 봐야 현장에서 뛰는 사람이 없으면 그 어떤 기획도 굴러가지 않는다. 이들이 피땀 흘려 생산하는, 혹은 일구어내는 그 자체가 일본을 굴러가게 한다.
진실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물론, 자국민 노동자만.
ㄷ자 형태의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은 켄은 음식을 시켰다. 아까 그 젊은 사내는 안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음식을 내오는 사람은 비슷한 나이 때의 여인이었다. 눈을 반짝인 식사 준비를 세팅해 주고 빠지려는 여인을 불렀다.
“저기.”
“네?”
질질 끌어봐야 좋을 건 없었다.
빠르게 본론으로 팍 치고 들어가야 한다. 손님이 더 끌리면 부담스러워할 테고, 그리고 저 젊은 사내보단 같은 여인에게 부탁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켄은 명함을 건네며 즉시 본론을 꺼냈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어머, 탐정님이 왜?”
어머, 하고 놀라는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지만 순진한 눈빛엔 걱정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죄를 안 짓고 사는 사람이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너는 떳떳하느뇨? 하고 물어보라 하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끄덕일 사람들이다. 물론 가끔,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개X끼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이 여인은 아니었다.
형사의 직감이, 탐정의 감각이 그렇게 알려줬다.
“불쌍한 소녀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하하.”
살짝 표정에 변화를 줬다.
여인, 아니, 안주인은 불쌍한 소녀란 말에 잠시 생각하다 말고 안타까운 표정이 됐다. 세상 사람들이 다 욕을 해도, 성범죄에 대해 여자가 문제라고 하는 건 가해자의 가족밖에 없다. 그 외의 다른 여자들은 100이면 100 피해자 편이다.
“그, 레미 말씀인가요?”
“네. 보니까 가게 앞에 CCTV가 달려 있던데, 혹시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네, 그럼요. 근데, 저희 카메라에 뭐가 찍혔나요?”
“그걸 좀 확인해 보고 싶어서요.”
감성이 먼저 움직이면 구멍이 숭숭 난 이런 변명도 판가름하지 못한다. 게다가 탐정이란 압박도 조금은 있고, 하루 만에 뒤집힌 사건의 주인공인 레미를 돕는다는 것에 홀라당 넘어가면 이성적인 사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 이쪽으로…….”
안주인은 바로 켄을 안내했다.
가게 한쪽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좀 오래된 PC가 있었고. 영상이 저장된 서버로 접속한 뒤 한 발자국 물러나 줬다. PC에도 저장이 되지만 영상은 기본적으로 업체 데이터베이스로 들어간다. 쿠미도 그쪽을 통해 영상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는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직접 발로 움직여 지금처럼 합법적으로 받아 내는 게 뒤끝이 좋았다. 언제인지는 알지만, 일부러 며칠 전과 후로 빠르게 훑고, 쿠미가 보낸 영상의 날짜와 시간에 맞춘 영상을 틀었다.
“으음, 이 사람들인 것 같은데요?”
앞으로 빨리 감자 얼마 되지 않아 목표했던 영상이 나왔다.
“어머…….”
“이걸 제가 복사해서 가져갈 수 있을까요?”
“네, 그러세요……. 세상에, 세상에…….”
깜짝 놀란 안주인을 뒤로하고 영상을 빠르게 복사한 뒤, 시켰던 음식을 순식간에 해치운 뒤 곧장 나왔다. 생각보다 첫 번째 증거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차로 돌아온 켄은 영상을 캡쳐 해 슥슥 손을 비빈 뒤, 의뢰인의 번호로 보냈다.
그리고 잠시 뒤. 입금됐다.
그것도 무려 오백만 엔이었다. 3. 5. 7이라고 했는데, 그쪽 결정은 중간인 5였던 것 같았다.
“이야…… 진짜 큰손인데?”
눈이 번쩍 트였다.
고작 이 정도 얻은 걸로 오백만 엔을 받았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씩 웃은 그는 보너스 활동을 더 하기로 했다. 더불어, 진범으로 가는 길도 열어보기로 했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 그는 이 보너스 스테이지면서, 메인 스토리로 이어지는 길을 도와줄 친구를 찾아봤다.
“어디 보자, 교토로 온 놈이…… 여기 있네. 흐흐, 반갑다, 동기야.”
실실 웃은 그는 곧장 그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거의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 탐정 나부랭이가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나?
“뭐 하냐? 점심이나 먹자.”
-점심? 흠…….
좀 전에 밥을 먹었지만, 당연히 보너스 앞에서는 한 끼가 아니라 두 끼도 더 먹을 수 있어야 했다. 경시청에서도 많이 해봤다. 밥 먹고 들어왔는데 회의 갔던 팀장이 밥 먹으러 가자, 하면 하이, 하고 일어나야 했던 그런 경험은 미어터지도록 많았다. 그리고 일할 땐 잘 먹어야 했다. 먹는 건 그 자체로 체력이고, 의뢰인이 속도전을 원하지만 그래도 이 일이 장기전이 될 수도 있었다. 집에 못 가고 몇 날 며칠을 돌아야 하는데, 잘나가다가 막판에 체력이 없어서 삐걱거리면 다 잡은 고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형사 시절에도 그래서 먹는 것만큼은 무조건 신경 썼다. 빵과 우유, 라멘으로 때우는 일은 그의 사전엔 없었다.
-그러지 뭐. 지금 교토여?
“그렇지 뭐.”
-뭐 때문에 내려왔는지 알겠구만. 일단 서 근처로 와. 아, 어디인지는 알지?
“그럼 알지. 하하.”
-거기 근처로 오면 다시 전화해.
“그러지.”
켄은 전화를 끊고 곧장 그가 근무하는 서로 이동했다. 하지메 쿄타로. 본청에 같이 근무했던 친구지만 자기보다 먼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여긴 글렀다며 악을 쓰곤 다른 곳으로 전출간 친구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됐다.
브로커.
그는 경찰 내 브로커가 됐다.
탐정과 합을 맞춰 수수료를 챙기는. 정의로웠던 형사는 한세월이 지난 후 훌륭한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 영리함을 갖췄고, 중요한 사건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직 경찰조직에 속해 있었다.
그가 근무하는 서 근처에 도착해 전화하자, 이번에도 주소가 넘어왔다.
가보자 고급까진 아니어도, 제법 가격이 나가는 음식점이었다. 따로 룸으로 되어 있는. 오랜만에 본다고 포옹하고 그러진 않았다. 그냥 건너편에 앉아, 뒤따라 들어온 점원에게 음식을 시켰다.
문이 닫히자.
하지메 쿄타로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사토 레미 일로 왔지?”
“그렇지. 의뢰인이 진범을 알고 싶어 하셔서.”
“그 집안 보니까 돈은 별로 없던데. 니시노 하루히에 이어 우리 탐정까지 고용했다라. 거기 들어간 친구들 짓이겠구만.”
“그렇겠지?”
사실 미즈노 켄도 진즉에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눈치챘다. 별 관심도 없는 연예인과 연예인의 친구. 하지만 니시노 하루히를 고용하고 자신마저 고용할 정도의 재력은 그 집안 안에서 나올 수 없었다. 게다가 타이밍을 생각하면 무조건 그 집 안에 있는 제삼자다. 거기까지 생각했지만, 굳이 그 이상은 나가지 않았다.
왜?
의뢰인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건 돈이다.
대의?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대의적으로 봐도 이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뭐, 자기 손으로 지배층의 자식을 잡아넣는 데 크게 일조하게 되겠지만, 지배층에 반감이 상당한 그로서는 오히려 반길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앞에, 하지메 쿄타로도 마찬가지고.
쿄타로는 살인 사건 같은, 서에서 자체적으로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사건의 브로커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회 지배계층이 연관된 사건은 오히려 넘긴다. 왜?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이가 갈리도록.
자신처럼 똑같이.
“원하는 건?”
“가짜 범인들 주선했을 브로커 명단.”
“흠…… 역시 에이스 켄. 감이 죽지 않았구만?”
“이런 거로 뭔 감을 운운하나? 기본도 못 되는 거구만.”
“그런가?”
“그런 거지. 그래서, 대충 예상되는 놈들은 있지?”
교타로는 향이 그윽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다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그런 놈들이야, 늘.”
“자, 까보자고.”
“그전에 제시부터 해야지, 이 친구야.”
“한 장.”
“천만 엔은 아닐 거고, 백만?”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그렇구만. 음, 충분해. 과욕은 우리 관계를 망칠 뿐이니 한 장으로 하지. 자.”
툭.
그는 옆에 뒀었던 서류를 꺼내 툭 던졌다. 이미 이 친구는 왜 자기가 만나자고 했는지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딱 정보를 챙겨 온 거지.’
안에 든 건 인적 정보였다.
교도소에 처넣기 전에 찍는 정면, 옆면 사진이 붙어 있고, 이름과 죄가 적혀 있었다. 번호도 당연히 같이 있었고.
“머리에 담어. 가지고 가지 말고.”
“기본이지, 그 정도는.”
켄은 쿄타로의 말에 곧장 암기를 시작했다.
일단, 마른 멸치 같은 새끼 하나.
이놈은 독기가 줄줄 흐르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머리는 레게 스타일이고, 피어싱과 문신이 온몸에 판을 친다. 동네 양아치 같은 기색이지만, 이런 놈이 대가리는 기가 막히게 굴린다. 앞뒤가 없는 놈이라서, 영악함이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푸근한 인상이다.
길 가다가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화이트칼라 느낌이 진하게 났다. 하지만 전형적인 소리장도다. 저 웃음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싱글생글 처웃으며 칼질하게 생긴 놈이다. 이런 놈은 완전히 잡히면 반항은 안 한다. 포기는 그래도 빠르다는 거다.
‘그 포기까지 가는 게 지랄맞게 힘들어서 문제지.’
마지막은 전형적인 엘리트처럼 보였다.
반듯하게 빗어넘긴 머리. 운동으로 다져진 적당한 육체미. 차분하게 빛나는 눈빛. 동경대를 수석으로 수료했을 것 같은 느낌. 이렇게 사진으로 보기 전엔 도쿄의 마천루를 내려다볼 인재 같은 느낌이다.
‘이름, 주소, 심지어 메일 주소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구만.
역시 왕년에 정보과의 개미지옥으로 불렸던 교타로다웠다.
자신도 별로 안 변했지만, 이 친구도 별로 변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보며 암기한 그는 서류를 돌려줬다. 오면서 인출 한 백만 엔도 같이.
씩 웃으며 돈을 챙기는 쿄타로.
“잘 풀리길 빌지.”
“그러면 한턱 쏘지. 좋은 곳에서.”
“그거 좋지.”
하하. 하고 웃고 나자 문이 열리고 시켰던 메뉴가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세팅이 자신 앞에만 이루어진다. 점원이 나가자 켄은 쿄타로를 향해 물었다.
“자넨 안 시켰나?”
“아, 난 먹었거든.”
“어? 먹었다고?”
“응, 자네가 오기 전에 후미코 선배랑.”
“…….”
잠시 머리가 텅 비었다.
너무 뜬금없는, 아니, 들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 나와서였다. 그리고 그만큼 반응은 격렬했다.
“칙쇼!”
벌떡 일어난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도 팽개치고 얼른 신발을 신었다. 그런 그의 귀로.
“계산은 하고 가라?”
“……뿌득!”
개자식!
욕할 시간도 아까운 켄은 빛의 속도로 음식점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