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2화
452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17)
미즈노 탐정 사무소.
사무소장 미즈노 켄은 담배를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뻐끔뻐끔 태우며 채널을 돌리다가, 익숙한 얼굴을 한 친구가 나오자 잠시 멈췄다.
[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범은 따로 있습니다. 이에 우리 니시노 하루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범인을 색출할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르게 할 것입니다.]
오호?
화면 아래 지금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을 일으킨 범인들의 사진과 고등학교 동기이자 중, 고, 대학교에서도 항상 자신보다 높은 성적을 냈던 하토리 준이 태블릿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확실히 갭이 있었다.
미즈노 켄은 몇 번 번갈아 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했다.
“범인 바꿔치기?”
덩치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건 어떻게 봐도 그냥 범인 바꿔치기였다. 경찰청에서도 엘리트지만, 끈이 없어 실적 몰아주기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미즈노 켄이지만, 그래서 경찰복을 벗어 던지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설 수사기관이라 할 수 있는 탐정 사무소를 연 그이지만, 감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팽팽!
뇌가 가속하며 빠르게 사건을 재구성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떠올린 뒤, 범인 바꿔치기를 대입하니 뇌를 굴린 게 허무하리만큼 빠르게 답이 나왔다.
“어떤 정신 나간 애송이 새끼들인지 몰라도, 니들은 이제 X 됐다, 야. 크크.”
돈이 없으면 못 하는 일.
돈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
그러니 적어도 진범은 그 두 가지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는 건 곧 사회 지도계층의 자녀일 확률이 지극히 높았다.
‘저기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경호원 배치는 무조건 개입한 거고, 그럼 가드탑이랑 연관이 있겠지.’
니시노 하루히는 분명 거기서부터 팔 거다.
그러면 생각보다 빠르게 진범이 잡힐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니시노 하루히의 성향을 생각하면 그 어떤 외압도 먹히지 않을 테니, 아마 지금쯤 벌벌 떨고 있을 것이다.
“새끼, 노났네. 부럽다, 야.”
이건 뭐.
확실한 증거는 없어도 꼬리는 양손으로 꽉 잡고 시작하는 범인 찾기다. 니시노 하루히의 능력이라면 며칠 걸리지도 않을 거다. 그리고 그런 쉬운 일로 살인적인 수임료를 제시했을 거고. 상대는 그걸 받아들였을 거다.
하토리 준은 이런 대단한 사건을 해결하고, 또 승승장구할 거고.
본래도 능력이 있어 어려운 사건도 잘 해결하지만, 저런 쉬운 일은 더 빨리 해결한다. 니시노 하루히가 악명이 높은데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긴 굳이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괜히 늦장을 부려 의뢰인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소리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거의 전격전이다.
태풍처럼 몰아쳐서 팽팽한 접점을 끊어버린다. 그런 속도감에 의뢰인들은 당연히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얄팍한 수작 따위는 부리지 않아서, 그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러니 이번 사건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겠지. 뭐여, 근데 이 시간에?”
부르르 떠는 폰의 존재감에 힐끔 봤는데 번호가 이상하다. 일본에서는 본 적이 없는 번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이 번호 체계가 옆 동네 스타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 한국에서 왜?”
고개를 갸웃거린 미즈노 켄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느릿하게 일어나며, 모시모시?
-미즈노 켄 탐정 사무소. 맞습니까?
“맞는데…… 뉘슈? 번호 보니 한국 쪽이던데?”
-국적이 중요합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이 일 10년 넘게 하는 중에 이런 적은 또 처음이라서 말이야.”
-의뢰,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어쭈?
고저 없이 그냥 본론으로 치고 들어온다.
“뭐, 받습니다만.”
그래서 제대로 일어나 앉아, 미지근한 아사히 캔 남은 걸 고대로 들이켰다.
-의뢰는 간단합니다. TV 봤습니까? 좀 전 니시노 하루히 변호사가 한 인터뷰.
“지금 보고 있습니다만?”
-그 건입니다. 진범을 찾습니다.
“어…….”
번쩍!
눈이 번쩍 트였다.
저 사건의 진범을 찾는다고?
그 땅 짚고 헤엄치기 같은 사건의 범인을?
-착수금 백만 엔, 증거를 먼저 찾을 시 단계별로 3. 5. 7. 보상, 진범을 완벽하게 찾아주면 천만엔.
천만엔?
이 바닥에서 이 금액이면 대형 의뢰다. 단계별 보상을 전부 합치면 최소 이천만 엔이니까. 그래서 수락의 메시지가 입에 담기기 시작하는데, 뇌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접수. 주의할 게 있습니까?”
-과실을 딸 주자가 미즈노 한 곳은 아닙니다.
“네?”
-반환점과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한 주자가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딸 사다리를 받을 겁니다.
“오…….”
빙 돌려 얘기했지만, 미즈노 켄은 금방 이해했다. 이 말은 곧 이 의뢰를 넣은 게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즉, 늦장 부리면 저 달콤한 열매를 딴 놈이 먼저 딴다는 뜻이었다.
‘그건 용납 못 하지. 흐흐.’
원래 뭐든 독식이 제일 맛있는 법이다.
특히 이 바닥에서는 더더욱. 파이는 나누면 작아지는 게 진리 아닌가? 그 진리를 거스를 생각이 그는 조금도 없었다.
“그럼 계약서는……?”
-이 번호로 메일을 보내겠습니다. 그쪽으로 국제 공증기관의 전자 계약서를 보내주십시오.
“오, 깔끔하니 좋군요.”
이 일을 하다 보면 탐정을 만나기 껄끄러워하는 고객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의뢰 내용은 전화로 듣고, 계약서는 공증기관 전자 계약서로 대체한다. 법적 효력 또한 있는 거라, 계약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그리고 1분도 지나지 않아 메일 주소가 하나 들어왔고, 미즈노 켄은 얼른 그 메일 주소로 의뢰인이 미리 말해준 계약 내용을 수정해서 보냈다. 꼼수는 쓰지 않았다. 이런 건 신뢰니까. 나중에 또 고객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괜히 장난질 쳐봐야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큰 손이기도 하니까 더더욱 말이다.
계약서를 보낸 미즈노 켄은 초조해졌다.
분명 통화는 제대로 끝났지만, 그가 서명했다는 답변이 오지 않으면 이 일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실제로 그랬던 적이 제법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안 해 답답해서 먼저 일을 시작했더니, 중간보고만 듣고 계약을 깨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계약서에 정식 서명이 끝나는 순간부터 움직였다.
아무리 큰 건이지만, 그는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20분쯤 지났다.
기다리던 답변이 왔다.
영어 계약서지만, 상대는 정확히 서명해서 하자 없이 계약을 끝냈다. 초조한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꼼꼼하게 계약서를 살핀 그는 노트북을 덮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출입문과 화장실 문 말고, 딱 하나 더 있는 문을 열었다.
자는 중, 팻말이 걸려 있고 이 방 안 사람이 얼마나 잠에 예민한지 알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쿠미! 쿠미!”
“쿠우, 쿠우…….”
“어이 딸! 얼른 일어나 봐라!”
“으…….”
퍽!
깨었더니 곧장 발이 날아왔다. 잘 때는 망나니나 다름없는 딸의 사정없는 발길질이지만, 가라데와 유도를 수련한 그는 쉽게 피해 발을 잡아 뒤집고는 다시 딸을 깨웠다. 바둥거리던 딸은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악을 썼다.
“아 왜……!”
“일어나! 큰 건이다!”
“큰 건……?”
“천만 엔!”
“…….”
잠에서 막 깨 한껏 예민했던 표정이 사르륵, 녹는 게 느껴졌다. 저항기가 없자 놔준 미즈노 켄은 싱긋 웃으며 딸, 미즈노 쿠미에게 말했다.
“사람 찾는 일. 중간 보너스까지 받으면 이천만 엔!”
“…….”
번쩍!
짝!
아악!
눈을 치켜든 딸은 자기 뺨을 세차게 때려 졸음을 쫓아냈다. 그러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난 쿠미를 향해 미즈노 켄은 씩 웃고는 정신 차리고 나오라고 한 뒤 방을 나섰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며 미즈노 켄은 딸 쿠미를 잠시 생각했다.
쿠미는 천재였다.
자폐증을 연기하며, 딸의 인생을 휘두르려던 친모까지 내쫓은. 쿠미는 전형적인 천재 과였다. 그걸 안, 이제는 이혼한 전 부인은 딸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다. 하필이면 그때 미즈노 켄 본인도 경시청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에이스 실적 몰아주기의 제물에서 벗어나려고 악을 쓰던 때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결국 백 없는 자신은 안 된다는 현실을 절감하며 경시청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했을 때쯤, 딸은 자폐아가 되어 있었다.
딸이 자폐아가 되자 패닉에 빠졌던 전 부인은 상의도 없이 경시청에서 나오겠다는 남편의 말에, 악을 썼다. 그리고 떠나갔다. 딸도 두고서. 깔끔한 합의 이혼. 근데 이혼 뒤, 쿠미는 자폐아 연기를 때려치웠다.
의사까지 속였던 천재 쿠미는 실의에 빠져있던 미즈노 켄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당돌하게 물었다. 켄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쿠미가 내놓은 답은 가히, 걸작이었다. 자기를 믿냐고.
믿는다고 했다.
자폐아 연기를 했었지만, 그래도 딸은 똑똑했으니까.
딸은 방으로 켄을 불러 전 부인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짜 ‘실력’을 선보였다. 일본 내 관공서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쿠미. 심지어 CCTV 망까지 해킹하여 모니터에 띄었을 땐, 그래도 경찰이었으니 이 아이를 잡아 넘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을 정도였다.
라이트 노벨이나, 일본 범죄 드라마, 혹은 경찰 드라마에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천재 해커.
딸은 그 분야의 천재였다.
사람 찾는 건 자기가 잘하니까, 탐정 사무소 하자고. 그렇게 시작됐다. 자폐아 연기를 때려치운 딸은 켄이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작은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자마자 이것저것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드 디스크는 기본이고, 모니터부터 시작해 아주 착실히 사들였다. 어려서부터 받은 용돈 전부를 모았던 딸은, 통장을 탈탈 털어 작은 방에 자기 작업실을 따로 차렸다. 그러곤 대체 어떻게 배운 건지 통신설비와 전기설비까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뜯어고쳐서 자기만의 작은 성을 만들었다.
사람 찾기 전문. 미즈노 탐정 사무소는 그렇게 시작됐다.
근데 사람만 잘 찾는 게 아니었다.
불륜, 그 외에 폭력 사건의 증거 같은 것도 기가 막히게 찾았다. 아시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시장치가 깔린 게 바로 일본과 한국이었다. 거의 웬만한 모든 구역에 깔린 CCTV를 통해 딸은 증거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불륜?
호텔 망을 해킹하면 끝이다.
사내 비리?
그것도 그냥 털어버렸다.
딸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딱 몇 군데였다. 금융,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기업, 그리고 경시청을 포함한 기관, 그리고 군. 켄도 그런 곳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걸리면 진짜 좋게는 안 끝난다고. 똑똑한 딸은 호기심에서라도 거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업계에서 명성을 키웠다.
그런데 요즘은 일이 없었다. 다들 잘 먹고 잘사는지. 범죄율은 그대로인데. 아니, 높아지는데 자기를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그래서 직접 영업도 뛰어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런 의뢰가 들어온 거다.
그러니 눈에 불이 켜질 수밖에.
딸이 나왔다.
“내용은?”
앞에 앉은 딸은 어느새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에 사토 레미 사건 알지?”
“알지.”
모를 리가 없다.
심심하면 인터넷을 유영하는 딸이니까.
“그 진범 찾기.”
“응? 진범이 있어?”
“있더라고. 봐라, 지금도 떠드네.”
턱짓으로 쿠미의 뒤에 있는 TV를 가리켰더니 딸은 몸을 돌려 뒤집힌 판을 보도하는 뉴스를 자세히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린 딸에게 켄은 직구를 던졌다.
“너라면 어디서부터 찾을래?”
감은 잡았으니, 그렇게 일단 물어봤다.
딸은 그 질문에 역으로 되물어왔다.
“아빠라면?”
“나? 주변 탐문부터 하지. 저 새끼들이 진범이 아니면 어디선가 분명 진짜 경호원이랑 교체해서 들어왔을 테니까.”
“나도, 주변부터 시작할 거야.”
얼굴에 바로 확인하는 건 힘들 거다.
코로나가 안정세가 됐더라도, 아직도 마스크는 기본이니까. 자기도 그렇고 딸도 밖에 나갈 땐 마스크를 기본적으로 한다.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썼을 거다. 멋 좀 내보겠다며. 그러니 얼굴을 바로 특정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어설픈 새끼들이, 정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했을까?
미즈노 켄은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대화였지만, 어차피 서로 할 일은 이제 명확하게 갈렸다.
“아빤 교토로 갈 테니까, 잘 부탁한다, 우리 딸!”
“응, 아빠 고생해.”
“아! 그리고 우리 말고 몇 군데 더 의뢰한 모양이야. 그게 뭔 뜻인지 알지?”
“그럼! 접수! 최대한 빨리 찾아서 보낼게!”
“그래, 믿는다! 딸!”
필요한 장비를 챙긴 미즈노 켄은 곧장 사무실을 벗어나 자기 차에 올랐다. 그리고 곧장 교토로 출발했다. 밤새 달려 교토에 도착해 무료 주차장에서 한숨 때리고 일어나 아침까지 먹고 기다리기를 잠시. 쿠미가 영상 하나와 함께 주소를 보내왔다.
“흐흐.”
역시, 천재다.
씩 웃은 켄은 쿠미가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를 합법적으로 취득하기 위해 차에서 내려 휘적휘적, 거리를 가로질렀다. 목적지는 사토 레미의 집에서 3㎞ 정도 떨어진 한 음식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