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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42화 (442/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42화

442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7)

흔한 클리셰라는 게 있다.

알기 쉬운 이야기, 설정, 캐릭터, 갈등 구조로 이야기를 꾸려간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는 모든 드라마나 영화는 이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독하게 새로운 건, 시청자나 관객에게 어색하고 이질적인 거고, 그런 것은 내성이 없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이해하는 소수를 노리는 것과 이해하는 다수를 노리는 것은 당연히 극명히 차이가 난다.

극단적으로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야 상업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오직 본인의 예술을 찾아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마냥 달리겠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일단 제작하기 위해선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었다.

일반인의 기준에서는 기가 막혀 헛웃음도 안 나올 정도로 많은 돈이 드는 그 바닥이니까.

그러니 상업성을 따져야 했다.

상업성은 흔히 말하는 돈 되는 설정, 구조, 이야기다. 아주 개지랄을 하고 자빠졌네! 하고 욕을 해도 뒤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는. 막장이든, 흐름이 기름칠이라도 한것마냥 매끄럽게 잘 빠진 웰메이드든 상업성은 무시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게 영화보다 드라마가 세다.

왜?

시청률이란 절대적인 집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청률에 따라 광고가 붙고, 그 자체가 드라마의 성공 자체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니 상업성으로 포장되는 흔한 클리셰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면 무조건 그걸 따라가야 하나?

당연히 그것도 아니다.

참신한 소재, 번뜩이는 아이디어.

작가에게 찾아오는 그 순간의 각성과도 같은 이야기나 설정은 극을 살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당연히도 작가는 이걸 포기하지 않는다. 이걸 포기하는 건, 작가에게 펜을 놓으라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 참신한 소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당연히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성공확률을 따지면 오히려 실패할 확률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그리고 작가들도 그걸 알고, 아는데도 작가들은 그걸 놓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

새로운 도전.

솔직히 이걸 빼놓으면 시체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진짜 달콤하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게 개봉한 지 꽤 시간이 지난 극한직업이라는 영화였다. 전개가 빤히 예상되는 이야기 속에서, 몇 개의 설정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됐고, 관객에게 충만한 ‘재미’를 선사했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에서 흥행 순위로 따졌을 때 몇 손가락 안에 꼽는 작품이 되었다.

흥행?

상업성을 따졌을 때도 최고였다.

그런 작품을 나도 쓰고 싶다.

나도 그런 작품을 자식으로 둔 작가가 되고 싶다.

이런 욕망은 어느 작가에게나 있었다.

2화 시청률.

31.5%.

무려 2화 만에 20%도 아니고, 30%이란 벽을 돌파한 나의 무사님은 그럼 어떤 작품일까? 참신한 소재로 범벅된 작품일까? 아니면 흔하디흔한 낡아빠진 설정과 전개, 구조로 이루어진 이야기일까?

아니면 그 중간에 있을까?

답은 명백한 후자였다.

낡아빠진 정도까진 아니어도, 유추 가능한 흔한 스토리 전개였다. 이야기를 보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뒤에 나올 이야기가 예상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해, 특별할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의 전개가 전부였는데도, 고작 그 정도가 끝이었는데도. 2화가 끝났을 때 이 작품을 까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평론가들은 1화가 끝나고도 평론을 내놓고, 2화가 끝나고도 즉시 평론을 내놓았다.

꽤 많은 미사여구로 점철되어 있던 이 평론에도 일관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흔하지만 그만큼 탄탄했던 이야기의 흐름,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주인공인 재가 절벽에서 떨어진 뒤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제대로 보여줬고, 거기서 드러나야 하는 감정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아주 적절하게 보여줬다는 얘기만큼은 다들 같았다.

그리고 이건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다.

이야기는 흔하다 해도, 그 흔한 이야기가 단단하면 어떤 이야기가 되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절절한 선고의 감정과 시즌2에서 이어지는 연의 감정변화. 그리고 숙적이 될 후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를 오롯이 전개와 연기력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감정 전달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굳이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나의 무사님의 이런 세계적인 대히트가 누구의 몫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무사님을 보는 사람들은 그 주인공인 강지영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태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1화와 2화에서 강지영의 신은 1화 첫 인트로 신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런데도 그걸 섭섭하게 생각하는 팬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

재밌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가 상업성을 추구할 때 반드시 갖춰야 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 재미가 작품이 원맨쇼가 아니라는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이번 회차의 백미인, 선고의 마지막 신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만들었다. 재의 복수를 부족이 믿는 신에게 맹세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난도질하는 장면은 다들 처음엔 아, 가발을 쓰고 자르는 거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잘라 간소하게 차린 제단에 올리고, 새벽녘에 일어나 목욕재계 후 재의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을 계속 보면서 가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에 특수분장 기술이 좋아져 감쪽같이 가발도 진짜 머리카락처럼 만들 수 있지만, 보면서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가발을 씌웠으면 원래 선고의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서 뭉쳐 망으로 씌워 고정한 뒤에 가발을 씌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뭉쳐 놓은 머리카락 때문에 좀 부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화가 끝나고, 이에 의문을 느낀 전문가들이 프로그램을 돌려 이전 신과 머리를 자르고 난 뒤에 짧게 나온 신을 모아서 돌려본 결과,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작업해놓고 했을 수도 있긴 하다. 그러면 처음과 나중 신의 차이가 얼마 없을 테니까.

그리고 대부분 그럴 거라 생각했다.

설마, 여배우가, 머리를 저렇게 쥐 파먹은 것처럼 잘랐을 것이란 생각까진 가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화가 방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심수정의 SNS의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자른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글귀는, 이랬다.

[머리카락은 또 자라니까요.]

이 말이 방점을 찍었다.

저렇게 말했다는 것은, 실제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뜻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용기에 시청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 여배우. 아니, 여성. 아니아니, 패션의 완성은 머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자나 여자에게 헤어스타일은 매우 중요했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잘랐다.

오로지 작품을 위해서.

저런 과감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극히, 정말 극히 드물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따져봐도 매우 희귀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저 정도로 극단적으로 잘라 놓으면 수습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헤어디자이너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저건 삭발밖에 답이 없다고.

배우가 작품을 생각하는 집념, 욕망,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화제성은 더욱 뻥튀기됐다.

물론 좋은 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팬들은 배우에게 저렇게 강요한 감독이나 작가가 잘못한 거라고 매도하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런 글이 올라오자 그녀는 SNS에 다시 글을 올렸다. 짧은 해명 동영상이었다. 전적으로 자기의 선택이었다고.

주연을 맡은 입장에서, 연기력이 부족해 임팩트라도 가져가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감독도 작가도 전부 자기가 가발을 쓰고 자른 줄 알고 있었다고.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오로지 자기의 선택으로 각오를 다지기 위해 이렇게 했다고. 그러니 이해해 달라고. 그러니 논란을 이 이상은 만들지 말아 달라고.

이런 인터뷰가 나가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녀의 용기를 칭찬했다.

시작부터 무수히 많은 화제를 끌어내며 저 높고 먼 안드로메다까지 가는 열차에 올라탄 나의 무사님.

역대급, 대박.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는 평가가 시작부터 줄을 잇기 시작했다. 그런 화제를 품은 채, 3화가 방영됐다.

3화는 머리카락을 자른 선고가 연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너의 목은, 남겨둘게. 그 사람이 원치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대신에 협조해 줘야겠어.]

[……무슨 협조?]

[판을 짜. 내가 조금이라도 더 그 사람을 넋을 기릴 수 있도록.]

[…….]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의 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인 거야. 그러니 나는 나의 의미를 찾으려면 그 사람의 곁으로 가야 해. 하지만 그냥 가는 건 억울하잖아?]

시린 분노를 태워대는 선고의 눈빛을 연은 조금도 기죽지 않은 눈빛으로 마주 봤다. 심연처럼 새까만 유리알과 비슷한 그 눈빛은, 순간적으로 아주 작게 흔들렸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선고. 너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 전쟁을 위해서, 너는 반드시 있어야 해.]

[아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할걸? 그 세 치 혓바닥이 잘리고, 손목과 발목의 힘줄이 잘려 개처럼 기어 다니고 싶지 않으면. 왜, 그 눈빛은 뭘까? 내가 못 그럴 것 같아?]

[…….]

[나한텐 네가 그토록 증오하는 후, 그 개자식보다, 네가 더 쌍년이야. 지금도 너를 죽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는걸.]

[…….]

[그러니 판을 짜. 내 말대로 해. 살고 싶으면.]

[후후, 하하하. 살기 위해서라도 그래야겠는걸?]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대답하지만, 이미 볼 근육이 일그러져 희미한 조소를 짓는 중에 나온 대답이었다. 그에 선고도 시리게 웃었다.

[그래. 그게 네 본성이지. 마지막에라도 보여줘서 고마워. 너를 죽이고 싶은 증오도 내 화살에 담아줄게.]

[기대할게.]

대화는 그걸로 끝……나는 듯했으나 밖으로 나가기 전 선고는 몸을 돌렸다.

[아, 이곳에 죽은 듯이 있어.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절대로 내 앞에 다시 서지 마. 눈에 띄는 순간 내 목을 뚫어버릴 거야. 잘 처신해.]

[후후, 그럴게.]

그렇게 대화는 끝.

살벌했던 대화가 끝나자 연은 지도를 펼쳤다. 그러곤 심연처럼 일렁이는 눈빛으로 판을 짜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겨운 초소전의 시작 말이다.

연은 즉시 영역을 짜고, 초소를 짓기 시작했고 이런 이족의 행동은 당연히 후의 귀에도 들어갔다.

후 또한 지도를 살펴보고 이족이 전선에 설치 중인 초소를 보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의도를 단숨에 파악한 것이다.

[지루한 소모전이라……. 후후, 좋지. 이번엔 잠시 따라주지. 어차피 해결해야 일도 있으니.]

심유한 눈빛으로, 오히려 연보다 더욱 맑게 빛나는 눈빛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후는 직접 영역을 정해주고, 연의 대응을 맞받아줬다. 그리고 그는 숙청을 시작했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었다.

고문부터 시작되어, 멸족까지.

후는 가차 없었다.

그는 삼족을 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기의 씨앗을 품은 자의 가족은 살려두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이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진 않았지만, 후는 철저하게 숙청을 이어갔다. 그리고 숙청이 끝남과 시작된 초소전.

마치, 땅따먹기하듯이 초소를 빼앗고 빼앗기며 피가 줄줄 흘렀다.

숲과 산맥에서는 이족을 따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평야로 나오면 이족의 전사들은 제국의 정예병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지루한 초소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죽고, 죽이고.

의미 없는 피가 흘렀다.

하지만 누군가에는 또, 기가 막히게도 의미가 있었다.

선고였다.

그녀에게 모든 제국군은 의미가 있었다.

죽여도 되는, 재의 영을 기릴 훌륭한 제물이었다. 그녀는 자기 혼자서는 후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중궁궐을 침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의 곁에는 재도 어쩌지 못한 제국제일검이 있었다.

저격?

그건 이미 빛살처럼 날아드는 화살을 전부 쳐내던 것을 직접 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라도 더 많은 제물을 쌓기 위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사냥.

그런 사냥이 해가 지나도 이어졌다.

겨울에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다시 가을이 왔다가, 겨울이 오고. 그렇게 계절이 몇 번이나 변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3화의 내용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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