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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41화 (441/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41화

441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6)

“선고!”

기겁한 이족의 원로들과 전사들이 급히 나서서 선고의 앞을 막았다.

“놔!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릴 거야!”

“왜 이러는 거야! 미쳤어?”

“저년 때문이야! 저년이……! 저년이 나의 재를!”

악을 쓰는 선고.

그러나 그녀는 나이를 먹었어도 여전히 강인한 육체를 유지 중인 원로들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버둥대는데, 입술을 질끈 깨물고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여인, 연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나의…… 재?”

꿈틀.

눈매 아래의 볼 근육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가, 순식간에 펴지더니 씻은 듯이 사라졌다. 선고는 봤다. 그 순간의 눈빛을. 적의. 그건 명백한 적의였다. 선고는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다시 비죽 웃었다.

“그랬구나, 그랬어. 넌…… 일부로 재를 죽을 자리에 보냈구나?”

“……재가 원한 일이야.”

“닥쳐! 더러운 마녀! 재가 원했다고? 그 작전을 입안한 게 누군데? 그것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한 게 누군데!”

선고의 악에 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족을 이끄는 대장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넌, 몰라. 재의 각오를.”

“각오가 아니라 족쇄겠지! 넌 족쇄를 이용한 거고!”

“아니야. 재가 바란 일이야.”

“이용한 거야! 너는, 너는…… 너는 너를 여태까지 지켜주었던 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야!”

“…….”

재차 말문이 막혔다.

말문이 막히자, 선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척 봐도 알 수 있는, 조소였다.

“사악한 년. 추악한 년……! 네년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게 제국으로선 다행이겠어! 왜? 네년이 제국을 경영했다면, 필시 말아먹었을 테니까!”

“…….”

그녀가 할 수 있는, 그녀가 이 순간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큰 욕을 해준 그녀는 힘을 풀고 원로들이 잡고 있던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단 한시라도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리는 정도로 넘어 칼로 울대를 갈라버리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잡초처럼 무럭무럭 솟아서 심신을 제어하기 힘들었다.

그대로 막사를 떠난 선고는 어느새 지기 시작한 노을을 지켜봤다. 서쪽이었다. 서쪽의 절벽에서 재가 떨어졌다.

마치 저렇게 떨어지는 해처럼.

가슴이,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재는 저 해를 좋아했다. 뜨는 해 말고, 지는 해를 좋아했다. 그때는 왜 지는 해를 좋아하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재는 지고 싶었다. 해가 지면, 인간은 쉰다.

영원히 쉬는 건 아니지만, 해가 떨어지면 보통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는 이족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에서 일하는 것보다 밝은 해가 뜬 낮에 일하는 더 효율이 좋으니까 당연히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쉰다.

재는 그걸 동경했다.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쉬는 것처럼, 안식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또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해줬던 얘기가 있었다.

[선고, 나는 얽매여 있어.]

[응? 뭐에?]

[양부의 유언에. 그래서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유언. 아…… 근데 재, 쉬고 싶어?]

[…….]

재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쉬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답하려 했던 것 같았다. 왜 대답하지 않았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다. 그 대답조차 족쇄에 걸려 목구멍을 나오다 말고 잡혔음을.

“재…….”

그런 재를 떠올리며 멍하니 이름을 입에 담았던 그녀의 볼을 타고,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 * *

1화가 끝났다.

화르륵! 화르르륵!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끝남과 동시에 모든 커뮤니티가 불타기 시작했다.

-미친;; 영상미 뭔데?

-와, 와 진짜;; 홍진아 감독이 영상미는 기가 막히게 뽑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대박이네요;;

-영상미도 영상민데; 연기력이 진짜 미쳤음;; 이연 볼 근육이 조절하는 거 보심? 저거 진짜 쉽지 않은 건데;;

-이연 표정 연기는 워낙 정평이 나 있잖아요. 나는 이연보단, 심수정이 더 대박인듯요. 사실 시즌1, 2까지는 양궁 실력 때문에 뽑혔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번에 1화 보고 그런 생각 싹 가심요 ㅋㅋ

-저도요. 진짜 미친 ㅋㅋ 솔직히 지영이는 그냥 분위기로 압살하는 캐릭터고, 이연이나 강서훈 연기력은 죽여줬잖아요 워낙에. 심수정이 주연 중에 그나마 제일 딸리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님. 진짜 칼을 갈고 온 듯 ㅋㅋ

-그러니까요. 조소 날리는데 진짜 대박;;

-ㅠㅠ 진짜 재밌었는데, 우리 지영이 안 나오니 넘나 아쉽 ㅠㅠ

-어, 그러네요. 안 나왔네 ㅋㅋ 인트로에 잠깐 나오고 ㅋㅋ

-근데 지영이 생각도 안 났음 ㅋㅋ 연기력이 워낙에 대박이어서 진짜 ㅋㅋ

-이걸로 강지영 원맨쇼는 아닌 걸로 판명 남 ㅋㅋ

-그건 또 다른 거겠죠? 지금 이 세계적인 인기를 지영이가 견인한 정도가 아니라 멱살 잡아 끌어올린 정도인데 ㅋㅋ

-ㅇㅇ 그건 맞죠;; 지영이 없었으면 나의 무사님 이 미친 성공은 애초에 불가능했음 ㅋㅋ

-저도 동감해요. 드라마 자체나 배우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영이의 공이 너무 압도적이고 남사벽이죠.

-그래서 1화 시청률은 얼마래요?

-아 맞다. 시청률 나옴?

-웹플 순위도 나올 때 아님?

-조금 시간 걸리지 않을까요?

-좀 기다리긴 해야 할듯요. 그런데 1화 내용은 왜 아무도 말을 안 함?

-말해 뭐해요? ㅋㅋㅋ 솔직히 저는 몇 년 뒤! 이러고 시작할 줄 알았는데 웬걸;; 시즌2 이어서 바로 시작했네요 ㅋㅋ

-감정묘사가 압권이었음. 특히 선고의 롤러코스터한 감정이 압권;;

-진짜 딱 보이는 스토리도 좋았고. 이제 다음 화나, 3화 시작할 때쯤 되면 몇 년 뒤 시점에서 시작하겠죠. 안 그러면 얘기가 너무 길어질 테니.

-ㅇㅇ 지금 시점부터 달리면 50부작은 가야 함 적어도. 근데 시즌3는 절반도 안 가니, 시점을 시즌2랑 바로 이어갈 순 없을거임.

-ㅇㅈㅇㅈ

화르르, 화르륵…….

1화 내용에 관한 얘기, 배우의 연기, 시청률 등으로 커뮤니티는 식을 줄을 몰랐다. 거기에 방영일이 금요일이다. 토요일은 어차피 쉬는 날이라, 밤새 떠들어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타는 와중에, 시청률이 떴다.

-시청률 떴다!

-오! 몇퍼임?

-미친; 29.4%…….

-헐……. 첫방이 방송사 시청률 2위를 넘은 거임?

-ㅇㅇ 불시착이 3위인데 21퍼고, 나의 무사님 시즌1 전전 편성이었던 비밀의 숲이 24퍼였음. 그거 넘은 거…….

-와…….

첫방 시청률이 무려 29%였다. 나의 무사님 시즌 2가 끝난 이후, 시청률 20% 작품이 안 나온 건 아니었다. 공중파에서 작정하고 찍은 사극 작품 하나가 최대 21%를 찍긴 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수많은 드라마가 나왔었지만, 시청률 20% 자체가 견고한 철벽이었다. OTT 플랫폼을 포함해 많은 서비스 매체에 파이를 다 뜯어먹혀서, 시청률 20%는 마의 장벽이 되었다.

솔직히 작품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시청률 20%는 바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강력한 장벽이었다. 여기에 더욱 고무적인 건.

-같은 시간대 동시 방영한 드라마들 시청률 조금 감소하긴 했는데, 큰 폭차는 아님. 그냥 이건 드라마 안 보던 사람들도 대거 기다렸다고 봐야 함.

-와, 강지영 파워 죽이네, 진짜…….

-진짜 드라마 관계자들 지영이 잡으려고 난리도 아니겠다 ㅋㅋㅋ

-하지만 안 찍쥬? 우리 지영이 무신 찍을 거쥬?

-ㅇㅇ 드라마도 좋지만, 무신은 놓치면 안 되지 ㅋㅋ

-모르는 거임. 또 뭐 잘못해서 엎어질지 ㅋㅋ

-어이쿠 기레기님 등장 ㅋㅋ

-타이밍 기가 막히게 잡고 등장하네 벌레새끼 ㅋㅋ

-아 솔직히 모르는 거 아님? 이번에도 사고 쳤더만.

-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

-사고쳤대 ㅋㅋㅋㅋㅋ

웃음으로 조롱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밥은 먹고 다니냐?

누군가가 명대사를 치는 순간, 그는 더는 말을 달지 않았다.

지영의 성공은 역시 누군가에겐 매우 배가 아픈 일이었다. 그래서 스리슬쩍 그를 비난했지만, 돌아오는 건 조롱이었다. 이번 일로 명성을 더하다 못해 폭발시켰고, 책임을 지는 모습을 한껏 보여줬기에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어김없이 찾아온 저녁 10시. 2화가 시작됐다.

* * *

“찾지 못했다고?”

“네, 폐하! 척후대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을 찾지 못하였다 하옵니다!”

“그런가. 흐음.”

제국의 황제.

후는 지도를 바라보며 짧게 콧소리를 내었다. 높은 절벽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그런 곳에서 떨어졌으면 죽는 게 정상이다. 게다가 자신을 지키는 든든한 친우가 가슴에 깊은 검상을 새겨 넣었다.

그랬다면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후는 그런 데도 흔적을 찾게 했다. 놈이 죽었다는 흔적. 그게 필요했다.

“알겠다. 나가 보아라.”

“예, 폐하!”

척후대를 이끄는 대장이 나가자, 재의 칼에 당한 상처를 치유하고, 옆을 든든히 지키고 선 제국제일검이 입을 열었다.

“그 높이에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끼리니, 편하게 말하자.”

“……그러지. 후. 너는 그에게 집착이 심해.”

친우의 말에 후는 피식 웃었다.

웃은 이유는 친우가 제대로 파악해서고, 파악했다는 것은 곧 진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후는 지도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친우를 향해 돌아앉았다.

“진. 그거 아나? 나는 사실 살아남은 황녀 연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네.”

“……그런가?”

“그래. 그 여자는 분명 똑똑하지. 하지만 그 정도야. 딱 그 정도. 내게 위협이 되진 못해. 이미 내 손에 넣은 걸 도로 찾을 능력은 없지. 이족을 결집시킨 것도 멍청한 놈들이 그들을 먼저 건드리지 않았으면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었지. 그러니 그녀가 세력을 갖춘 것도, 결국엔 네 덕분이지. 그녀의 능력이 아니라.”

“흠.”

후의 신랄한 평가에 제국제일검 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그랬다. 후는 이족과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전쟁의 광기에 취한 추적대 놈들이 하필이면…… 이족의 아이들을 살해했다.

그 결과가 이족의 집결로 나왔다.

즉, 그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연은 세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후는 이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족은 척박한 대지에 살면서도, 크게 호전적이진 않았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쯤은 이미 그간 강 하나를 두고 소 닭 보듯 살아온 천 년의 세월이 말해줬다.

그래서 후는 이족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히려 협상을 통해 연을 넘겨받을 생각이었다. 그걸 멍청한 놈들이 망쳐 놓은 거고. 뭐, 이미 벌어진 일이라 후는 그 일을 후회하진 않았다.

어쨌든 그게 연에 대한 평가고.

“태생조차 그래. 그 여자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황녀가 된 것이 아니야. 태어났더니 황녀였을 뿐이지. 그녀가 갖춘 것 중에, 그녀가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은 하나도 없지. 그러니 평가가 박할 수밖에.”

“그렇군.”

“하지만, 재. 그자는 달라. 모든 것을 스스로 쟁취했지. 백선 선생의 눈에 든 것조차도, 그 어린 시절 그자가 스스로 이룩한 것을 선생이 보았기 때문이니까. 그조차도 쟁취한 것이지. 그 이후의 행보도 같아. 칼을 쥐고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갈고닦았고, 제도의 뒷골목에 넘쳐나는 부랑아 중 재능이 있는 이들을 모아 백적파도 만들었어. 그 또한 그가 이룩한 것이지.”

“…….”

“그가 이룩한 눈부신 전공을 보게. 진. 내 친우여. 당연히 나는 그대도 충분히 그 정도의 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말이야. 자네한테 그런 공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그대는 제국제일검이니.”

“…….”

“하지만 그는 제국제일검이 아니지. 그럼에도, 그 정도였네. 불가능할 것 같은 토벌을 수도 없이 이룩해냈지. 그러면서 자신을 거둔 백선 선생을 받쳐줬고.”

“그래서 그렇게 급하게 거사를 기획했나?”

“후후, 그랬지. 재. 그자가 더 크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음…….”

“그래서 병력이 수가 부족했고, 황궁의 비밀장소도 파악을 못 끝내고 거사를 시작했지. 결국 백적파와 함께 한 그 탈출을 막지 못했고.”

제국제일검 진은 친우 후의 말에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가 아는 후는 이런 약한 얘기를 할 친구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었다.

“보게. 내가 그만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렇군. 그래 봐야 내게 일검을 맞고 떨어졌지만.”

“살아 있을 거야.”

“……그 검상에, 그 높이에서 떨어졌다. 살아날 수 없어.”

“내 직감이 그리 말하네. 살아남았을 거야. 후후, 그는 그리 쉽게 죽을 이가 아니야. 내 장담하지. 반드시 그는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야.”

“…….”

친구이자 황제인 후의 말에 제국제일검은 침묵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친구의 얼굴에 핀 미소가, 지극히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해했다. 친구는 숙적이 없었다.

친구인 자신에게는 그런 감정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그저 친우로 봤다.

그런 친구에게, 숙적이 생긴 것이다.

재, 라는 거대한 숙적이.

흥분될 것이다.

한평생 없던, 숙적이 생긴 거니.

모든 게 너무 쉬웠기에 무료했을 친구가, 드디어 흥미와 재미란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니 진으로서도 기꺼웠다.

“그럼 앞으로 나도 좀 더 검을 갈아야겠군.”

“자네도?”

“후후, 스승님에게 검을 물려받고, 처음으로 내 몸에 상처를 낸 친구야. 다음엔 좀 더 강해져서 올 테지. 진일보하지 못하면 다음에 절벽에 떨어지는 건 그 친구가 아니라 내가 될 게 분명해.”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래, 노력하게. 내 곁에서, 내가 그를 확실히 끝내는 그 순간을 위해.”

“그러지.”

둘은 씩 웃었다.

이렇듯, 후는 재의 생존을 확신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선.

사각. 사각. 사각. 사각.

한 여인이 재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다.

“…….”

붉으며 푸르른, 차갑고 뜨거운 귀화를 태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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