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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443화 (443/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43화

443화. 왕관의 무게와 책임(8)

후우…….

길게 한숨을 내쉰 지영은 땀을 닦아냈다. 얼마 남지 않은 액션 신을 위해 지영은 오늘도 연습에 매진했다. 오늘은 지영을 빼고 대규모 전투 신을 찍는 날이라서, 지영은 잠시 시간이 났다.

“괜찮냐?”

현장보단 지영의 곁에서 직접 그와 이연두를 관리 감독하는 김진우의 질문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요. 좀 지치네요. 하아.”

“너도 지치긴 하나 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연두도 녹초가 됐다.”

“네.”

지영은 검을 내려놓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자 이연두도 주저앉아 후들거리는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합을 맞춰 준 김진우는 땀을 조금 흘리긴 했는데, 너무 생생했다.

“형은 정말…… 끄덕도 없네요. 역시 제국제일검…….”

제국제일검 진의 역할은 김진우가 직접 맡았다.

그는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검을 잘 쓴다고 소문이 났던 사람이었다. 물론 스포츠로서의 검도 안에서의 얘기였다. 지영처럼 아주 어린 나이에 검도에 입문해, 세계 정상도 차지해 봤던 인물이다. 실제로 말이다.

그런 김진우는 검을 아주 당연하게도, 기가 막히게 다뤘다.

막 싸움 느낌이 나게도 할 수 있지만, 제국제일검이란 캐릭터에 맞춰 아주 우아하고, 고풍스럽지만, 군더더기 없는 실전검술을 당연히 구사할 줄 알았다. 이제는 은퇴한 전 왕주형 관장이 그의 시합을 우연히 보고 찾아가 몇 번이나 설득했을 정도로 그의 검 쓰는 실력은 진짜였다.

“나야 한평생 이것만 휘둘렀잖냐. 하하.”

“그래도요. 체력 하나는 진짜 자신 있는데, 역시 검도는 또 다른 영역이네요.”

“당연하지. 지영이 네가 유도를 잘하는 거지, 검도를 잘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같은 투기라고 해도 유도랑 검도는 결이 다르지.”

“음, 맞아요. 많이 다르죠. 후우…….”

그의 말이 맞았다.

유도나 검도나 둘 다 투기 종목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지만, 결은 확실히 달랐다. 태권도와 합기도가 비슷하고, 복싱은 또 다른 영역이고, 유도는 레슬링이나 씨름과 좀 비슷하고. 하지만 검도는 앞서 말한 종목에는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장비.

투기 종목 중에서도 펜싱이 장비를 쓰는데, 검도는 펜싱과도 느낌이 달랐다. 같이 무기를 쓰지만, 펜싱은 거의 찌르기 위주고, 검도는 찌르기, 내려치기, 베기 등이 자주 쓰였다. 이것만 봐도 느낌은 어느 정도 다르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펜싱도 아니고 유도다. 달라도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지영이 너 정도면 엄청 빠른 속도로 느는 거야. 지금 선수로 뛰는 애들도 너처럼 합 보여주진 못해.”

“그분들이야 연기를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걸 빼고도 잘하고 있다는 거다. 너도 연두도. 어, 현장에서 연락 오네. 난 이만 가볼 테니까 알아서 마무리해.”

“네.”

씩 웃은 김진우가 장비를 벗어 정비한 다음 사물함에 넣고는 먼저 떠났다. 지영은 그가 떠나자 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연두도 지영과 함께 스트레칭하고,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그녀는 언제나 씻고 식사를 한다. 반대로 지영은 먼저 먹고 식사하는 편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임은진이 다가왔다.

그런데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어, 음……. 일단 숙소로 가자.”

“네.”

임은진이 이렇게 나오니 지영도 자연스럽게 표정이 굳었다. 더불어 운동으로 개운해졌던 마음에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와 섞여드는 것처럼 기분이 별로로 변했다. 숙소로 돌아오자 임은진은 심신을 다스릴 때 좋다는 차를 타서 지영의 앞에 놓였다.

“이런 것까지 주는 걸 보면…… 무슨 소식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별론가 보네요.”

“……응.”

하.

지영은 차를 일단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차가 식어가던 몸을 사르륵 녹여줬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레미한테 문제가 생겼어.”

“……문제요. 음, 사고가 아니라요?”

“응, 사고. 그게 맞겠네.”

“후우…….”

사토 레미.

정말로 강하던 소녀.

그런 사토 레미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결코 좋은 종류의 사고는 아닐 거란 계산이 너무나 빠르게 서버렸다.

“직접 보는 게 빠를 거야.”

“……네.”

그녀가 건네준 태블릿을 받아 보자, 한글 기사가 떴다. 이미 일본발 기사가 터졌고, 그걸 바탕으로 한국에서 2차 기사가 나간 것이다. 기사 내용은 간단했다.

사토 레미는 지영이 떠나고 며칠 뒤에 퇴원했다. 집에서 통원 치료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퇴원하고, 사토 레미의 어머니가 일자리를 알아보러 나간 틈에, 그녀의 집에 강도가 침입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을 당했다.

강도는 셋.

다리까지 다친 사토 레미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으면 이렇게 기사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는 그 이후부터였다.

‘직접 경찰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가서 DNA 채취하고, 경찰 조사까지 받고, 신고까지 직접…….’

지영은 심유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기분 탓인지 순간적으로 흑백으로 변한 세상에서 기사를 끝까지 읽어나갔다. 그런데 기사는 거기까지였다. 뒤로가기로 기사에서 나온 지영은 사토 레미에 관한 기사를 찾아 하나씩 전부 읽었다.

역시 거기까지였다.

직접 경찰에 신고한 부분까지만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대단하네요, 한국 기자들. 레미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도 안 하고 그냥 올렸네요?”

“…….”

“역시 대한민국 참언론, 일 잘하네요. 참 열심히 해.”

“…….”

임은진과 임수진, 뒤늦게 이 문제로 지영의 숙소에 들어온 지영의 스태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건 인권 유린이었다. 이러면 안 됐다. 적어도 피해자의 신상은 지켜줘야 했다. 이름까지 밝힌 거야, 사토 레미가 지영 때문에 워낙에 유명해져서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적어도 얼굴은 밝히지 말았어야 했다. 사토 레미의 SNS에 가도 거기엔 그녀의 사진 한 장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구했는지, 이들은 사토 레미의 사진을 구해서 그냥 그대로 박제해 버렸다. 미친 짓이었다. 어떻게 봐도, 용서가 안 되는 짓이었다. 물론 전부가 그런 건 아니었다. 사진을 대놓고 올린 것들은 딱 봐도 냄새가 나는 자들이었다. 간판을 계속 바꿔가며 지영을 까 내리는, 지영과 척진 일부 언론들이었다.

이들은 사토 레미의 이 일로, 지영이 추락하길 바라고 있었다.

지영은 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친구들을 포함해 메시지가 많이 와 있었다. 신지와 히카리에게도 와 있었고, 장세리 대표가 회사가 전력으로 대응하겠다는 메시지도 와 있었다. 지영은 잠시 메시지를 보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지영아.

“바빠, 지금?”

-아니, 지금 다 회사에 와 있어. 친구들이랑 같이.

“그래? 기사 봤지?”

-응. 너한테 바로 전화하려다가, 은진 누나한테 먼저 했는데 너 훈련 중이라고 해서 안 하고 있었다. 너도 기사 본 거지?

“응. 지금 막.”

-후우.

강한결은 지영의 담담한 목소리에 그답지 않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섣부르게 위로하지 않는 신중함. 강한결은 그런 친구였다. 지영은 그런 친구의 반응에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믿을 수 있는 친구.

“한결아. 일본 좀 가줘라.”

-내가?

“응. 너라면 믿고 내가 갈 때까지 잘 지켜줄 테니까.”

-올 거야? 아. 너 며칠 안 남았지?

“응. 딜레이 되도 삼사일이면 여기서 신 다 끝나. 어떻게라도 그 안에 끝내고 넘어갈 테니까 네가 가서 레미 좀 지켜줘. 그 아이 지금 아무도 편이 없어.”

-알았다. 애들이랑 같이…… 그건 아닌가.

애들이랑 같이 갈게.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끝맺지 않은 건, 혹시 모를 상황 때문이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레미다. 그러니 트라우마가 작동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지영은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강한 아이였다.

적어도 2회차인 지영만큼이나, 멘탈이 아주 강력한 아이였다.

“괜찮아. 내가 미리 연락해 놓을게. 레미 강한 아이라서 괜찮을 거야.”

-그래?

“응. 위로하려고 갔다가, 내가 위로받고 왔을 정도였어. 이번 일도…….”

까득!

떠올리는 순간 절로 이가 갈렸다. 눈앞이 순간적으로 뿌옇게 변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눈에 맺힌 눈물 때문이었다. 화가 나는데, 화가 너무 나는데, 이걸 풀 수가 없었다. 친구와 통화 중인 지금도 풀 때가 아니었다.

-……지영아. 진정해.

“후우…… 그래야지. 어쨌든 부탁할게. 진짜 미안한데, 집 앞에 텐트라도 쳐서 좀 지켜주라.”

-하하, 그래야지. 걱정하지 마. 올 때까지 우리 공주님 안전하게 지키고 있을게.

“……그래.”

믿을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지영은 자기 주변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즉각 의견을 구하거나 도와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지금 옆에 있는 임은진보다도 강한결이 먼저였다. 지영이 자신이 품은 비밀을 반드시 말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강한결을 찍을 것이다. 전 재산을 믿고 누군가에게 반드시 맡기라고 해도, 지영은 어김없이 강한결을 찍을 것이다.

뭘 해도 믿을 수 있는 친구.

강한결은 그런 친구였다.

당장 뭘 어떡해야 할지, 머리가 텅 비어버린 지금, 지영이 반사적으로 강한결을 찾았다. 그리고 친구는 자기도 이런 일은 처음일 텐데, 지영의 부탁을 그대로 들어주었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 만나면 시간마다 보고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도 거기 스케줄 있으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해. 알았어?

“……응.”

조금은 엄한 목소리.

언제나 부드럽게 중심을 잡아주는 목소리가 아니라, 조금은 엄한 목소리다. 마치 훈계하듯, 다그치듯, 타고난 리더의 목소리였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뺨을 소리가 나게 때렸다.

짜악!

강렬한 통증이 볼을 타고 번지자 정신이 그래도 좀 돌아왔다.

“누나.”

“……응.”

“예전에 유진이 사건 때문에, 이번에 경호원 고용하지 않았어요?”

“응, 했지…….”

“그런데 어떻…… 아, 하하.”

말을 하던 지영은 그냥 벼락이 관통하듯이 저절로 깨달아버린 진실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범인은 경호원이다. 그게 아니라면 경호원의 가드를 뚫고 대낮에 일을 저지르지 못했을 것이다.

“신입…… 이래. 막 들어온 신입 셋을 붙였다고 했는데. 벌써 잠수 탔어.”

임은진도 사건이 터지자 즉시 알아본 것 같았다.

“그쪽 경찰한텐 말했고요?”

“하라고 했는데, 안 했을 거야. 자기 간판이 걸린 일이잖아?”

“…….”

임은진의 말을 들으니 할 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경호업체를 고용해 한 소녀의 경호를 맡겼다. 그런데 그 업체의 신입이 사고를 쳤다. 그것도…… 경호 대상에게.

이건 간판에 먹칠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간판을 떼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 분명 그 정보를 직접 경찰에 전할 리가 없었다.

“지랄 맞네요, 진짜…….”

“……미안해. 내가 좀 더 신중하게…….”

“아니요. 누나 잘못은 아니죠.”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걱정해서 경호업체를 고용한 건 맞다. 그런데 그 업체의 신입이 그렇게 미친 새끼들일 수도 있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일 순 없었다. 그러니 이건 임은진의 잘못이 아니었다. 지영은 이 부분은 확실하게 짚었다.

“누나, 자책할 거면, 그 에너지 차라리 이 문제 해결하는 데 써주세요.”

그래서 임은진에게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어조로, 상황을 직시시켰다. 그러자 임은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것이다. 그녀가 그럴 정도이니 다른 스태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분노가 한도 끝까지 차오르면 이성을 잃는 이도 있지만 아주 극히 드물게, 천장 한번 치면 바닥으로 도로 가라앉는 경우도 있었다. 지영이 지금 그런 상태였다. 강한결과의 통화 후 지영의 머리는 팽팽 돌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이 사고를 나는 막을 수 있었을까?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나지.’

예고된 사고가 있기도 하다.

어떤 병신들은 인터넷에 자랑스럽게 작당 모의를 한 뒤에 범행을 저지르니까. 하지만 그건 가해자의 입장이지. 피해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사고에 직면하게 된다. 그냥,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뚝, 하고 떨어진다.

레미에게, 이번 사고는 그랬던 거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태풍은 차라리 징조라도 있지…….’

그러니 자연재해는 아니고, 인재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짐승에게서 일어난.

그러니 인재는 인정하고, 이제는 복구할 때다.

레미를 지키기 위한, 대책을 생각할 때였다. 지영은 애초에 레미의 왕따 사건도 자신의 책임이라 생각했었다. 그걸 위해 일본을 찾았고, 막상 만난 레미는 지영의 생각 이상으로 강한 아이였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강한 것 이상이었어.’

인생 2회차인 자신도 그렇게는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미는 그렇게 했다. 그것만 봐도 2회차 지영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그 강한 마음이 지금도 괜찮을 거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게 지금은 제일 걱정이었다.

단단한 마음이, 결국 꺾였을까 봐.

“누나. 이치카 씨 연락처 있죠?”

“응, 있지. 연락할까?”

“네. 한결이 아마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갈 거예요. 그러니까 먼저 연락해 주세요. 걱정하지…… 말라고도 해주시고요.”

“응, 그럴게.”

“저 시간 좀 주세요.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요.”

“알았어.”

지영의 말에 화들짝 놀란 스태프들이 얼른 자리를 비워줬다. 오직 임은진만 남아 바로 이치카 씨에게 연락하고 있었다. 지영은 그런 그녀를 잠시 보다가, 다시 뺨을 짝 소리가 나게 때렸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강지영.”

정신 못 차리면, 내일부터 찍을 신에서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나 아니면, 나와 합을 맞출 파트너가 다치게 된다. 그런 일만큼은 피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이 문제도 신경 써야 했다. 여러모로, 너무나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지.”

책임을 져야 하니까.

지영은 이를 깨물며 기사를 일단 더 살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범인이 잡혔다. 아니, 자수했다. 그러면서 나온 이유가. 더러운 조센징에게 달라붙은 년을 교육했다는 내용이었다. 허탈할 정도로 엿 같은 이유였다. 당당하게 경찰서로 입장하는 사진도 있었는데, 그걸 볼 때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혐오감을 견뎌내는데, 폰이 지잉! 지잉! 울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내려다본 폰의 액정에는, 사토 레미의 이름이 떠 있었다.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

-도와주세요.

“…….”

-이번엔, 도움이 필요해요.

도움이 필요하다고는 하는데.

건조하기 그지없는, 그런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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